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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 - 여자들에 대한 글쓰기
캐롤린 하일브런 지음, 김희정 옮김 / 여성신문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캐롤린 G.하일브런은 미국 컬럼비아대 영문학과 교수로, 문학평론가이자 미스터리 소설 작가이다. 미스터리 소설은 아만다 크로스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는데, 주인공 케이트 펜슬러의 직업 역시 영문학 교수다.
1988년에 발표된 본 작품의 원제는 여자들에 대한 글쓰기(Writing a Woman's Life)인데 2002년 국내에 번역·소개되면서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이라는 가정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 나온다. 만약 셰익스피어에게 재능 있는 누이가 있다면, 그녀 역시 셰익스피어만큼 문학에서 성취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 그녀는 교육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원치 않는 남자에게 시집가도록 강요받지 않았을까? 그녀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다 매를 맞고 런던으로 도망친 후 연극을 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남성들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조롱 받다가, 누군가에게 겁탈 당한 끝에 임신한 채 자살하고 만다. 이것이 당시 유럽에서 천재적인 여성이 걷게 될 인생 행로였을 것이다.
작가는 책은 서문에서 낸시 밀러의 말을 인용한다.
비관습적인 삶을 글로써 정당화하는 일은 다시 한 번 원죄를 저지르고, 다시 한 번 남성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된다.
성서에서 하와가 아담을 꼬드겨 선악과를 먹게 하고 이로써 인류가 원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여성에게 근원적 죄의식을 심어준다. 이러한 신화는 반복적으로 남성들에 의해 공고화되고,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여성은 '셰익스피어의 누이' 처럼 사는 것이 관습적이고 도덕률에 합치되는 삶이라는 신화에 '비자발적 동의'를 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굴레어서 벗어나기 위한 생각과 글쓰기는 또 다른 '원죄를 저지르는' 행동으로 취급된다.
이런 이유로 너무나 오랫동안 '익명성'은 여성을 표현하는 데 걸맞는 단어였다. 욕망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 자기 삶을 자율적으로 통제하려는 욕구의 표현이 여성에게 금지되었으며, 그 결과 여성들은 분노를 감추기 위해 '어린시절에 대한 노스텔지어'라는 가면 뒤로 숨거나, 우울증에 빠지거나, 미쳐버림으로써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여성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발명되든가, 발견되든가, 아니면 다시 쓰여야 하는 것이다.
1장
여성들은 침묵 속에서 절망할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그들 자신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 한. - 샌드라 킬버트
이 장에서는 조르주 상드와 버지니아 울프, 조지 엘리엇, 샬럿 브론테의 삶과 작품에 대해 다룬다. 그녀들은 스스로를 일상의 삶에서 '여성' 이라는 그릇에 담겨져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가길 거부하고, 여성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에 대해 비판했다.
그 결과 동시대 작가 플로베르는 조르주 상드에게 '아, 당신의 제3의 성이지요' 라는 말로 상드를 불렀고,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셰익스피어의 가상의 누이'가 누렸을 법한 삶을 이야기했으며, 조지 엘리엇은 내러티브가 없는 여성의 비참함을 이야기했다. 또, 샬롯 브론테 역시 출판업자에게 "저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며 다만 작가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여성은 언어가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고 남성의 언어를 베끼는 일을 멈출 필요가 있다. 권력에 대한 여성적 충동이라고 이름 붙인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텍스트를 발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여성이 자신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집단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2장
삶은 도로시 세이어스에게서 만족스러운 감정 교류와 성적 관계, 그리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가져다주는 평범한 인간적 경험을 거의 다 빼앗아갔다. 그녀가 지성의 세계에 의지할 수밖에 없없던 것도 당연하다. - 제임스 브라바존
도로시 세이어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여 1등으로 학위를 받은 중세 문학자인 동시에, 피터 윔지 경에 이어 해리엇 베인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탐정소설을 써서 대단한 인기를 얻은 작가다. 그녀의 삶은 여성에게 결혼을 요구하고 결혼생활과 그 결과물인 아이들을 여성 삶의 절대 중심 세계임을 강조하는 결혼이라는 플롯을 벗어나 직업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조건에 무의식적으로 '빠져드는' 여성의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하지만 그녀의 글쓰기도 물론 한계가 있다. 구약의 하느님처럼, 세이어스는 피터 윔지를 먼저 창조한 뒤 여성 인물 해리엇 베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해리엇 베인을 유지해 나가는 데 실패한다.(해리엇 베인은 결혼하면서 경력이 단절됨)
한 사회의 문제를 변명하는 사람이 되긴 쉬워도, 그 사회를 미묘하게 전복시키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3장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오십 세가 다 되었을 것이다. - 맥신 쿠민
이 장에서는 1923년에서 1932년 사이에 태어난 여성 시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면서 여성이 최초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순간을 연구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여성에게 영감을 준 사람은 가부장제의 대표인 아버지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어머니는 여성의 변화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어머니들은 딸을 깨닫지 못한 상태 속에 남겨둔다. 이는 자신의 롤 모델을 어머니로부터 찾기 어려운 시기의 페미니스트가 아버지와의 관계 정립에서 고통 받는 상황인데,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라는 말과 '중요한 것은 권력의 문제'라는 말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균형적인 세계관이 전제되지 않을 때 모든 것을 극한의 남녀대립으로 이해하고 조악한 투쟁에 매몰되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아가리로 빨려들어갈 위험이 있다고 생각된다.
4장
여성은 절대 돈 키호테가 될 수 없다고들 말한다. 주변에서 우리가 매일 듣는 이야기는 환상에 빠지는 이야기들뿐이다. - 레이첼 브라운스타인
이 장에서 캐롤린 하일브런은 결혼생활에 대해 분석한다. 대개의 경우 결혼은 남성에게 편한 것이다. 여성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독립을 성취하고 모성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될 경우에나 결혼 패턴이 변화를 보일 가능성이 생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부성적 역할과 모성적 역할로 구분해 나누는 한 결혼은 절대 새로운 것으로 거듭날 수 없다.
여성이 제정신을 가지고 낭만을 끝까지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낭만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연인과의 결혼은 치명적이다. 연인은 남편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남편은 연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연인과 남편을 한 사람 속에서 찾으려는 강박증은 어떤 환상보다도 여성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
연인을 남편으로 삼을 수 있다는 환상은 가부장제에 의해 조심스럽게 확대되어 왔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게 결혼관계 밖에서 연인과 함께 하는 삶을 감히 꿈꾸었다는 이유로 소외 당하는 벌을 내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캘롤린 하일브런은 여기서 더 나아가 결혼이라는 미궁 속으로 가는 길의 열쇠가 성적 매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열쇠인 경우는 거의 없으며, 스탠리 캐블의 말을 인용하며 훌륭한 결혼은(균형잡힌) '다시 결혼하기' 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스탠리 캐블은 "이미 결혼한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결혼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한 바 있다.
5장
애정이란......영향을 끼치고 내 뜻을 따르게 하고 마음을 움직여 감동시키는 것이며, 또 어떤 여자에게서 영향받고 그 뜻을 따르고 마음이 움직여 감동받는 것을 의미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것을 "내 상상력에 불을 지르는 것은 여자들뿐이다"라고 표현했다. 울프는 이렇게 덧붙였을지 모른다. "여자들만이 나를 행동하게 하고 힘을 갖게 만든다"고. - 재니스 G.레이먼드
이 장에서는 이디스 워튼에 대해 언급하며 우정을 테마로 전개된다. 남성의 우정이 권력의 영역에서 공명하는 반면, 여성의 우정은 대게 언급조차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조롱당하고 하찮게 여겨지고 잘못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대게의 경우 남성들은 친밀감을 모른다. 특히 공적인 영역에 불행한 영향을 크게 끼친 남성들은 분명히 알지 못한다. 이는 유태-기독교 전통의 한 이상으로 간주되는 남성다움이란 전사가 되는 것이고, 양육이나 따스한 애정 같은 '좀 더 부드러운' 미덕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남성에게는 전통적으로 문화가 지정해준 양육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 역할을 본인이 수행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도 있다.
두 사람이 공적 영역 안에서 일에 대한 놀라운 에너지를 공유하는 여성의 우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6장
마릴린 먼로는 여성의 화신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성의 화신이 되도록 훈련받는다. - 글로리아 스타이넘
여성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분신을 창조하고, 이를 통해 여성의 운명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든다. 한편, 필명이나 익명성에서 자신의 글에 대한 진가를 정당하게 평가받고 샢어 한다.
여성작가는 '자기만의 방'과 심리적 공간을 찾고자 하며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자아를 창조하려 한다.
낸시 밀러는 <여주인공의 텍스트 The Heroine's Text> 에서 소설 속의 여성들에게 가능한 두 가지 종착역은 죽음과 결혼뿐이며, 그것이 대게 같은 장소라고 주장한다.
7장
진보적인 젊은 여성들이 세파에 길들여질 수는 있을지 모르나, 나이 든 진보적 여성들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이 지구상에 없다. - 도로시 세이어스
사회가 여성을 배제시켜 왔다는 생각을 표현하기로 결심하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두 가지 중요한 장애물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첫째는 여성에게 강요된 운명에 분노를 표시하는 사람들에게 가부장적 사회가 퍼붓는 조롱과 비참함, 불안감이었다. 두 번째 장애물은 그녀 자신 속에 있었는데 문학에서 예술과 선전을 구분하는 문제였다.
최근의 소설들은 여성이 노년에 느끼는 일종의 자유로움을 과감히 다루기 시작했는데, 변화된 여성의 삶에서 웃음이 나타날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여성들이 함께 모여 웃는 것이야말로 통찰과 사랑과 자유를 드러내는 표시이며, 또 그것에 대한 자발적인 깨달음이다.
여성이 함께 웃을 수 있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며, 독립과 여성의 결속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 웃음이 있을 때 환상과 백일몽이 끝난다.
'~가 된다면', '~한다면' 하는 식으로 어떤 일이 정착되고 완전히 정리되면 만족을 얻을 것 같은 생각은 수동적 삶이 지닌 미혹이다. 완결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환상을 그칠 때, 여성을 위한 모험이 시작된다. 우리는 안정과 노년을 활용하여 위험을 감수하고, 소음을 만들고, 용기를 내어 인기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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