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의 어릿광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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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1장 현혹하다

수상한 종교단체 구아이회에서 기묘한 일이 발생한다. 배반자로 지목된 제5부장이 교주 렌자키 시코의 추궁과 '송념'에 의해 창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해 버린 것이다. 렌자키 시코는 '염력'으로 그를 추락시켰다고 주장한다.

제2장 투시하다

술집 아가씨 아이짱(아이모토 미카)은 명함을 보지 않고도 이름을 알아 맞히고, 가방 속 물건도 척척 알아낸다. 손님들은 그런 아이짱을 지목하여 비밀을 알아내려 하지만 아이짱 매상만 올려줄 뿐이다. 그런 아이짱이 목 졸려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콜드 리딩 만으로는 설명 안 되는 아이짱의 능력,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 아이짱의 가족사와 후회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제3장 들리다

석달 전 회사에서 여사원 한 명이 자살했다. 그리고 3개월 뒤 그 여직원과 불륜 관계였던 하야미 부장이 투신 자살한다. 불쾌한 이명과 환청은 이들의 사망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제4장 휘다

도쿄 엔젤스 소속 투수 야나기사와의 아내가 스포츠센터 주차장에서 둔기에 맞아 사망한 채 발견된다. 범인은 쉽게 특정 되었지만 피해자의 최근 행동에서 불륜의 냄새가 난다. 이상한 형태로 벗겨진 자동차 칠,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쇼트 케이크와 자명종 시계가 단서다.

제5장 보내다

쌍둥이 동생이 언니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집으로 가보니 과연 언니가 습격당해 쓰러져 있다. 동생은 정말로 쌍둥이끼리 통한다는 텔레파시 같은 걸 느낀 것일까.

제6장 위장하다

한 여성이 경찰에게 부모님이 살해 당했다고 신고한다. 현장에 가보니 남자 쪽은 다케와키 가쓰라라는 유명 작가로 가슴에 총상이 있었다. 여자 쪽은 아키고이며 목 졸린 흔적이 있었다. 그녀에게서 목에서 희미하게 남자의 핏자국이 발견 되었으므로 정체 불명의 범인은 남자를 먼저 쏴 죽인 뒤 여자를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보였다. 알 수 없는 점은 범행 도구인 총이 정원에 내던져져 있었다는 것.

제7장 연기하다

고마이 료스케라는 사내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다. 경찰은 피해자의 전화 발신 이력과 찍혀 있는 사진 등을 근거로 수사를 진행해 나간다. 하지만 이는 범인의 알리바이 조작이었음이 밝혀진다.

구사나기/우쓰미 조합과 갈릴레오가 등장하는 2021년도 작품이다. 수수께끼 풀이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속도감 있게 읽힌다. 각 에피소드 트릭은 다음과 같다.



1. 사이비 종교단체의 염력: 전자레인지 원리를 이용

2. 아이짱의 투시: 적외선 카메라

3. 이명과 환청: 초지향성 스피커, 하이퍼소닉 사운드 시스템(전자파로 소리 전달)

4. 불륜이 의심되던 아내 행동의 비밀: 대만에서 야구를 계속하게 해주려던 노력

5. 쌍둥이의 텔레파시: 형부를 의심한 동생이 끊임없이 언니 안전을 확인함

6. 죽음의 순서: 유산을 위해 의부보다 어머니가 나중에 죽은 것으로 조작

자살인 이유: 안락의자에서 산탄총에 맞으면 반동으로 앞으로 굴러 떨어지나,

피해자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음

7. 알리바이 조작: 피해자 스마트폰을 훔쳐 타인과 있을 때 자신에게 전화하여 알리바이 확보, 시체 발견 시 스마트폰 되돌려 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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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
전건우 지음 / &(앤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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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어두운 물>에서 수귀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룬 민시현은 사건 직후 방송국에 사직서를 낸 뒤 강이 없는 시골로 이사한다. 전화번호를 변경하고 웹소설 작가로 전직한 민시현은 사건에서 멀어져 잊혀지고 싶었다.

한편, 무꾸리 윤동욱은 민시현과 달리 언론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시간을 견뎠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윤동욱에게 민시현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잡음이 심하고 끊기는 전화 목소리 사이 사이 비명 같은 게 들리자 윤동욱은 민시현에게 안전한지, 지금 옆에 누가 있는지, 등을 묻는다.

민시현이 아닌 다른 다른 누군가가 '그래' 라고 답을 하고, 그와 동시에 민시현은 자신이 나무의 바다, 수해(樹海)에 있다고 말한다. 어서 그곳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윤동욱의 말은 그러나 민시현에게 전해지지 못한 듯 싶었고, 전화기는 끊기고 만다.

일본 아오키가하라 숲에 버금가는 어두운 숲. 나무에 목 메단 사람들이 빨래처럼 달려있다 해서 일명 '빨래 숲'으로 불리는 그곳에서 영가 따윈 상대도 되지 않는 윗것이 악의를 갖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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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우 소설의 단점은 도대체가 분위기만 있고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인물의 형상화가 부족하다 보니 등장인물들이 죄다 따로 놀아 이야기에 매끄럽게 녹아들지 못한다. 또한 같은 이유로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민시현과 무꾸리 윤동욱의 능력이 버성겨서 헐거운 나사처럼 따로 논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족보 따윈 개나 줘버리고 서양, 일본, 한국의 설정을 막 섞어 놓아 난잡하기 그지 없다. 윗것과 영가는 일본의 지박령처럼 굴고, 다른 한쪽에선 도대체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모를 서양의 악마숭배자들이 설쳐댄다.

<불귀도 살인사건>에서 다소 기대를 걸었고, <어두운 물>에서 갸우뚱 했었는데, <어두운 숲>에서 전건우의 한계를 본 듯하다. <작가의 말>에서 '나는 장르소설 작가입니다'라는 뜬금없는 고백은, '장르소설 작가한테 뭘 기대하셨던 건데요' 라는 질문으로 들린다.

작가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솔직하게 고백한 이상, 아쉽지만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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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읽을 시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민음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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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대학 생활의 두 번째 여름방학을 맞은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온양 온천 역사 옆 온천 슈퍼마켓을 출발하면서 시작된다. '나'는 남서쪽 지방으로 이르는 자그마한 마을들을 방문할 예정이었고, 길에서 만난 담배가게들을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도화 서점'에 들어가 천오백원 짜리 지도를 산 '나'는 담배가게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나',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막간 상념'이 시작된다. 학창시절 '헤밍웨이와 결혼할거야'라고 말하던 여자애가 떠오르는가 하면, 손해보기 싫어하는 금연가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가 끼어들고, 아버지 심부름으로 아리랑 담배를 사던 기억이 틈입한다.

카스트로-쿠바-시거-타악기에 관해 완상한 뒤, 담배를 처음 배웠던 1987년을 회상하고, 치과의사와 엉덩이가 큰 간호사를 떠올리며, 서기 2010년대의 햄버거의 죽음에 관해 하릴없는 공상을 한다.

염소에게는 얼마만큼의 초지가 필요한지 계산한 사람과, 높은 곳에서 바라봐야 발견하게 되는 사잇길, 그리고 '매혹'의 속성, 버려진 냉장고... 상념은 계속된다.

불량배들에게 이유 없는 폭력을 당하는가 하면, 이정표를 무시하고 코너를 틀었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뭐든지 없애준다는 주식회사 블랙홀을 거쳐 집으로 돌아와 빨간 우체통과 씨름한 '나'는 아버지에게 돌아왔다고 말한 뒤 자전거를 분해해 창고 속에 넣는다. 그래야만 자전거가 편히 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이 순간, 햇빛이 나고 비가 뿌리는 그런 시각이라면 당신은 샛별 비디오점 근처 어딘가에 서 있어야 한다......당신 눈앞에 샛별 비디오점이 보인다면 잠시 멈춰 담배를 피워물어야 한다......거기 어느 곳에선가 고개를 들어 우산을 쓰지 않아도 좋을 만큼 흩날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 당신 얼굴은 야간 일그러져 있는데, 새로 들어서는 오 층짜리 건물의 비계가 어지른 하늘 때문이 아니라 태양을 마주볼 수 없는 곤혹스러움 때문이다. 그러나 상기해야 할 것은 그가 바로 당신이라는 점이 아니라, 그가 누구든 담배를 빼무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 때 그 자리가 바로 당신 생의 막간이기 때문이다.

<헤밍웨이 읽을 시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는 생의 막간과 개인의 서사에 대한 소설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념의 퇴조는 일상에서 흔히 대하는 기호들의 발아를 증폭시킨다. 담배 가게 표지판도 그 범주에 들 것.

소련은 무너졌고, 거대 담론은 실패한 90년대. 이 땅의 모순은 아무것도 해결된 것 같지 않은데, 나와 우리를 인도해주던 빛이 꺼져버렸다.

공동체와 이념이 붕괴된 자리에서 개인의 서사가 시작된다. 개인의 서사는 '막간'과 '기호'라는 토양 위에 자라날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화자의 정체성은 정해져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막노동꾼에게 '막간'이 가당키나 한가. 한 달 이상 자전거 여행을 하며 자신의 '기호(嗜好)'에 맞는 '기호(記號)'를 찾아다닐 수 있는 신분으로 대학생이 선택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담배가게 표지판을 지도 위에 기록하며, 떠오르는 상념들을 기록해 나가는, 당시로서는 다소 실험적이기 까지 한 구성.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혹은 레이먼드 챈들러)를 연상시키는 아버지와 아들의 쿨한 대화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헤밍웨이 읽을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을까. 어느모로 보나 이념의 퇴조와 헤밍웨이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로 참전하는 등 누구보다 시대와 부대꼈던 작가가 헤밍웨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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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 (외)
김구 지음 / 범우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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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어렸을 적 국문, 한문을 수학하였다. 과거에 뜻을 두었으나 낙방한 뒤 풍수, 관상, 병법을 배웠고, 동학도에 입교한 뒤 접주가 되어 의병운동을 펼쳤다.

스무살에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로 밀정 쓰치다 조료를 살해하여 사형을 언도 받았으나, 고종의 특명으로 목숨을 건진 뒤 탈옥하여 방랑하다 마곡사 중이 된다.

이듬 해인 1899년 환속한 그는 약혼자의 죽음과 파혼을 거친 뒤 1904년 결혼하였고,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신민회를 통한 구국운동과 교육활동에 힘을 쏟았다.

1909년 안중근 의사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 석방 되었고, 1911년에는 데라우치 총독 살해 사건에 연루되어 17년 형을 언도 받는다. 이 시기에 이름을 九로 고치고, 호를 白凡이라 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해에 망명하여 임시정부 요직을 거쳤고,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였으며, 이봉창, 윤봉길의 거사에 관여 하였다.

장개석 정부와 관계 하였으며, 독일과 일본에 선전포고 하고 미국 원조 하에 본토 상륙 작전을 추진하였다. 이승만 등과 반탁운동을 벌였고, 남북이 갈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진력하다 1949년 경교장 앞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사망한다.

<나의 소원>은 1947년, 해방 이후 혼란이 극에 달한 시기, 38선이 그어지고 남북이 갈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발표된 글이다.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우파 민족주의자의 카랑카랑한 일성이다. 이어 김구는 말한다.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 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댄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이 정도면 그의 민족주의적 신념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안 될 지경이다. 그에게 있어 민족이야 말로 유일무이한 선이요, 진리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거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그러나 그는 민족주의가 필연적으로 갖게 될 배타성이라는 한계를 우려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최근 김구의 이러한 비전에 대하여 '김구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 라는 밈이 유행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일본 문화 개방을 앞두고 '일본의 문화 식민지가 될 것'이라며 우려하던 시기에 대학을 다녔던 나로서는 경천동지할 만한 상황이다.

비록 해방시기 혼란 정국, 민족주의에 경도된 나머지 '일본제국주의-미제국주의'로 이어지는 세계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그 결과 김구는 여수 순천 10.19. 사건과 제주 4.3.사건의 진실을 파악하지 못해 중립을 표방한다), 이승만과 연대하여 객관적 조건을 떠난 반탁 운동에 골몰한 점, 김두한과 같은 정치 깡패의 테러에 대해 '이해할 만 하다'고 언급한 점 등 그의 민족주의 사상에 한계는 분명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쪽같은 민족·보수주의자로서의 행보들은 진실성과 진정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동학농민운동부터 항일운동과 대일전쟁선포국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한치의 사념도 없었다는 점에서, 존경할 만한 우파 보수주의 인사다.

개인의 영달과 안녕만을 위해 신념이나 사상도 없이 그때 그때 이득이 되는 말만 주워 섬기며 더러운 요설을 뱉어내는 자칭 '보수', 타칭 '친일매 국토착왜구' 들과는 일말의 공통점도 없다 하겠다.

주요 연보

1876년 7월 11일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 출생. 아명은 창암(昌巖)

1884년 국문과 한문 수학

1889년 <통감 通鑑>, <사략 史略> 등 병서 읽음

1890년 <당시 唐詩>, <대학 大學>, <과문 科文> 배움

1892년 과거 낙방, 풍수, 관상, 병서 탐독. 동학 입도 후 창수(昌洙)로 개명

1893년 최시형 만남

1894년 팔봉접주로 해주성 공략, 실패

1895년 소년 안중근 만남. 

            해서의 성리학자 고능선(高能善) 지도 받음

김이언이 지휘하는 의병대 참가

1896년 일본 간첩 쓰치다 조료(土田壤亮) 살해. 명분은 명성황후 시해의 복수

1897년 사형 확정. 고종 특명으로 특사령 내려짐

1898년 탈옥 후 방랑 하다 공주 마곡사 중이 됨

1899년 환속

1901년 엄친 김순영 사망

1902년 여옥(如玉)과 약혼

1903년 여옥 사망 후 기독교 입교. 안창호 영매 신호와 약혼, 그러나 파혼

1904년 신천 사평동 최준례와 결혼

1905년 을사늑약 체결

1906년 해서교육회 총감. 학교 설립 추진

1908년 신민회를 통한 구국운동. 양산학교 세움

1909년 재령 보강학교 교장. 10월 안중근 의사사건 연좌, 해주감옥 투옥 후 석방

1910년 신민회 비밀회의 참석

1911년 1월 5일 데라우치 총독 암살하려한 안명근 사건 관련 체포, 17년형 언도

1913년 옥중에서 이름을 九, 호를 白凡이라 함

1914년 감형으로 7년 형기 끝내고 7월 가출옥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 망명 후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

1923년 임시정부 내무국장

1924년 부인 최준례 사망

1926년 임시정부 원수인 국무령 취임

1927년 헌법 개정, 임시정부를 위원제로 고쳐 국무위원 취임

1928년 <백범일지> 상권 집필 시작, 3월 이동녕, 이시영 등과 한국독립당 조직

1929년 <백범일지> 탈고. 재중(在中) 거류민단장 겸임

1931년 한인애국단 조직, 단장 취임 후 독립투사 양성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일황 저격 실패. 4월 29일 윤봉길 홍구 공원 폭탄 투척

1933년 강소성 가흥으로 피신. 장개석 장군과 친교.

낙양 군관학교를 광복군 무관 양성소로 할 것을 결정

1934년 임시정부 국무령 취임

1936년 이동녕 등과 한국국민당 창당

1937년 임시정부를 진강(鎭江)에서 장사(長沙)로 옮김

1938년 민족주의 3당 통합 논의하던 남목청에서 조선혁명당원 이운한의 총격

1940년 광주(廣州)로 갔다가 장개석 도움으로 중경(重慶)으로 감

            임시 정부 주석으로 다시 취임. 한국독립당 집행위원장 취임

            무장부대 편성 노력

1941년 12월 9일, 임시정부가 일본에 선전포고

1942년 7월 임시정부과 중국 정부 사이에 광복군에 대한 정식 협정 체결

            연합군과 공동작전에 진력

1944년 주석 재선. 광복군 특별 훈련반 설치 후 미국 원조로 본토 상륙작전 추진

1945년 2월, 임시정부가 일본군과 독일에 정식 선전포고

            11월 환국.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 후 12월 28일 부터 반탁 국민운동

1946년 2월, 비상국무회의 조직되어 총리 취임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3명 의사 유골을 효창공원에 봉안

1947년 1월, 비상국민회의가 국민의회로 개편되어 부주석 취임

            2차 미소공동위원회 열리자 이승만과 반탁투쟁위원회 활동

            11월, 유엔 감시 하 남북 선거에 의한 정부 수립 결의안 지지

            <나의 소원> 발표

1948년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발표

            4월 19일 남북협상 참여를 위해 평양행

            5월 10일 선거 이후 건국실천원양성소에 힘을 기울임

1949년 6월 26일 안두희 흉탄에 서거. 효창공원에 안장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중장(重章)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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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리 일기
임영태 지음 / 운향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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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정리는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박달재 근처 시골마을로 30여 호의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사는 곳이다. 작가 임영태는 2002년 여름, 사십 중반의 나이에 아내이자 작가인 이서인(이정순)과 이곳으로 이사를 한다. 시골 살이를 하러 간 이유는 '시골에 살고 싶다'는 이유 보다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이유가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정리 시절은 작가에게 매우 특별한 시기로 기억되는 듯 하다. 그런 심사는 소설에서도 드러나는데,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에서 세상과 날을 세워 '대결'만 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모정리에서 농사짓고 살던 시절 이야기가 아련하게 묘사된다.

현실에서도 작가에게 모정리 옛집은 '시랑산방'이라는 이름으로 애틋하게 기억된다. 2016년경 작가가 모 카페에 올린 사진에 '시랑산방'을 멀리서 찍은 사진과, 작가가 한가로이 책을 읽는 모습, 그리고 '태인'이로 짐작되는 백구 한 마리와 <모정리 일기>에서 어찌어찌 모양꼴을 갖춰 본 김치움 등이 찍혀 있는데, 책에서 읽었던 정경들을 실제로 보니 나 역시 애수에 젖는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나 '모정리 시절'과 같은 한 때가 있기 때문이리라.

짧았던 모정리 시기는 생활의 문제 때문에 계속되지 못한 듯 하다. 이후 행보는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에서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동교동의 반지하 연립주택에 작업실을 꾸린 후 대필 작업과 소설 쓰기를 병행한 듯 하다. 이 시기에 지어진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이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하여 1억원 고료를 타게 되지만, 이후로도 작가의 형편이 썩 나아지진 못한 모양이다.

2017년 <지극히 사소한, 지독히 아득한>을 7년 만에 지어낸 후 작가는 새로운 책을 내지 않고 있다. 2020년경 '평동리 버스정류장 옆 파란 대문집'에 대필 작업실을 냈다는 블로그도 업데이트가 없다. 다만 파란 대문만 한 차례 수리를 했는지 나무 대문으로 바뀌어 있고, 대필 작업실 명패는 떨어지고 없다.

어쩌다 보니 <모정리 일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임영태 작가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책 뒷면에 쓰인 글귀를 그대로 옮겨 적어 본다.

저기 어느 곳엔가는 심각하게 고뇌하고, 사유하고, 논쟁하고, 힘차게 무언가를 주장하는 사람들 있으리. 누군가는 혁명을 외치고, 누군가는 고요히 독서하고, 누군가는 몸을 팔고, 누군가는 신 앞에 참회하고 있으리.

그 모든 열정과 신념, 그 모든 욕망과 회한, 그것들을 고스란히 저 세상의 몫으로 남겨두고, 우리는 여기에서 이렇게 산다. 그것은 외면도, 무시도, 초극도 무위의 道도 아니다. 그저 저들은 저 세상을 살고, 이들은 이 세상을 산다. 그뿐, 자기 발밑에 자기 세상이 있다. 그뿐.

분명치는 않지만 그런 여러 가지 빛깔의 철학적, 종교적 단상들이 그때 우리 마음을 스쳐갔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런 말을 나누는 우리의 마음이 아주 고요했다는 것이다. 편안했다는 것이다. 무언가 흔연히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다 좋아 보였다. 삶이란 얼마나 단순한 것이던지, 간결한 것이던지......

그럴싸한 철학도, 현란한 문장도 아니다. 하지만 임영태의 글들은 그런 거창한 것들을 훌훌 털고 담백하게 쓰여진 글이기에, 나는 임영태의 글을 좋아한다.

인터넷 카페에 공개되어 있는 글이 하나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모정리 일기>에도 수록된 에피소드로 <개 팔러 장에 가는 길>이라는 글이다.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s://cafe.daum.net/refarm/5NF4/1307?q=%C0%D3%BF%B5%C5%C2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251274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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