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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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정이 지난 시각, 교통경찰 진나이 슌스케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마쓰토야 유미의 <리프레인이 외치고 있다>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대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고 교통사고가 접수된다. C마을 3번가 교차점에서 외제차와 경차가 충돌했다는 것이다.

현장에 가보니 외제차는 그다지 피해가 없었지만 경차는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외제차 운전자인 도모노 가즈오는 경차가 신호 위반을 했다고 주장했고, 동승자인 여자친구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사고 직후 신호등이 초록색이었다가 곧이어 노란색으로 바뀌었다고 진술했다.

한편 경차 운전자 미쿠리야 겐조는 중상을 입고 후송되어 진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동승자인 여동생 미쿠리야 나호가 초록불이라고 주장했으나 그녀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녀는 오빠가 사고 나기 조금 전 '됐어, 초록색이야. 굿 타이밍!' 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경차 운전자가 끝내 사망한다. 경찰은 사고 현장에 목격자를 찾는 프래카드를 내걸었다.

얼마 뒤 목격자가 나타난다. 이시다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사고 현장을 목격했는데 시간은 12시 조금 전이었고 경차 운전자가 신호를 위반했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어쩐지 의심쩍은 진술이었다.

이 이야기를 나호에게 확인하니 그녀는 모두 거짓말이라고 하며 사고는 12시가 지난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라디오에서 나쓰토야 유미의 <리프레인이 외치고 있다>의 가사 중 '~이 비추면서' 부분에서 충돌이 이뤄졌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한다.

사고 직후 현장을 찍은 비디오에 은행 시계가 잡혀있었기에 나호의 진술, 그리고 교통신호제어기의 신호 주기를 역산하여 진나이는 경차가 파란불에 교차로에 진입했다는 것을 밝혀낸다. 외제차 운전자 역시 빨간불에 지나갔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했다. 외제차 운전자의 동승자 역시 사고 직후 내려 은행 시계를 보니 0시 1분으로 바뀌었다며 뒤늦은 진술을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진나이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은행 시계는 41초 느렸던 것이다.

사고 직후 나호가 공중전화를 걸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녀는 공중전화로 시보를 듣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후 신호주기를 파악해 진술을 짜맞췄던 것은 아닐까. 두 차 모두 빨간불에 교차로에 진입한 것은 아닐까. 진나이는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낀다.

교통사고와 교통경찰의 에피소드 6편을 담은 <교통경찰의 밤> 첫 머리에 실린 < 천사의 귀 > 줄거리이다.

이 밖에도 무단횡단하는 중년여성을 피하려다 트럭이 전복되어 운전자가 사망한 사건을 다룬 <분리대>, 운전이 미숙한 운전자를 상대로 난폭운전과 위협운전을 일삼다 도리어 운전자의 계교로 여아살인범으로 몰린다는 <위험한 초보운전>, 아무 생각 없이 주차된 불법차량 때문에 아이를 잃은 사연을 다룬 <불법주차>, 살인을 일으킨 사람이 고속도로 창밖으로 캔커피 깡통을 버려 누군가를 실명케 하고, 피해자의 집요한 추적 때문에 결국 살인을 들키고 마는 <버리지 마세요>, 일본과 운전석이 다른 미국에서 면허증을 땄기 때문에 착오로 사고를 일으킨다는 <거울 속에서>가 실려 있다.

지금이야 블랙박스와 CCTV가 있어 사고 이후 다툼이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20년 전쯤엔 도로 위에서 운전자끼리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상황히 상당히 자주 발생했다. <교통경찰의 밤>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동차부품회사 엔지니어로 일하던 당시의 경험을 살려 쓴 소설이라 교통경찰들이 사고 조사를 함에 있어 타이어 자국, 목격자 진술, 신호등체계 등에 의존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최근의 작품 보다 농밀한 느낌을 주며 수수께끼 풀이에서는 젊은 패기가 느껴진다. 1992년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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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 밀리언셀러 클럽 110
마커스 세이키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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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카터와 에번 멕건은 시카고 브리지포트에서 나고 자랐다. 아일랜드 이주민이 모여사는 그 동네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곳이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경찰이나 소방관이 되거나, 범죄자가 되거나.

대니 카터와 에번 멕건은 후자를 택했고, 죽이 잘 맞았다. 전당포에서 에번이 총을 발사하기 전까지는.

대니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번은 매번 절도를 강도사건으로 발전시키려했다. 그날도 전당포 주인을 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에번은 권총을 발사했다. 대니는 그 자리를 피해 도망쳤지만 에번은 그러지 못했다. 체포된 에번은 살인미수로 12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한다. 에번은 대니의 이름을 대면 감형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

7년이 흘러 대니는 손을 씻고 합법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건설업자 리처드 밑에서 건실하게 일했고, 자기 소유의 집과 차를 소유했다. 여자친구 캐런과도 장래를 약속했다. 모든 것은 순조롭게 풀려갔다.

하지만 대니의 평온과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었다. 에번이 가석방으로 조기 출소해 대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에번은 끝내 대니의 이름을 대지 않은 것을 상기시켰고, 죄를 모두 짊어진 자신에 대한 대니의 행동이 매우 박절했음을 토로했다. 대니는 에번의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고, 면회도 가지 않았던 것이다.

에번은 몇 차례 대니의 주변에 나타나 '새로운 건수'에 참여할 것을 은근히 종용했다. 대니는 전과 2범이었고 과거 에번과의 범죄를 추궁당하면 지금의 평온한 삶이 산산조각 날 것이 뻔했다. 대니는 에번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대니는 이런 사정을 자신의 친형제나 다름없는 패트릭에게 털어놓는다. 패트릭은 여전히 거친 삶을 살고 있었고, 자신의 형이나 다름없는 대니를 위협한 헤번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에번을 조금 겁주려던 패트릭의 칼날보다, 감옥에서 비정함을 몸에 익힌 에번의 총이 훨씬 빨랐다.

에번은 대니가 패트릭을 보냈다고 생각해 분통을 터뜨렸다. 패트릭을 죽였다는 사실을 대니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대니의 여자친구 캐런을 위협했다.

대니는 같은 아일랜드계로 약간의 안면이 있는 션 놀란 형사에게 자신이 처한 처지를 하소연해봤지만 될 일이 아니었다. 션 놀란은 대니가 7년 전 사건의 공범이었다는 심증이 있었기 때문에 대니를 좋게 보지 않았다.

결국 막다른 길에 몰린 대니는 에번에게 굴복한다.

에번의 계획은 대니가 일하는 건설사 사장 리처드의 어린 아들을 납치하는 것이었다. 대니는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고, 자신의 방식에 따라, 마지막 범죄를 저지른다는 조건으로 계획에 동의한다.

납치는 그럭저럭 성공하지만 이들이 간파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리처드는 아이티 버블 붕괴로 가진 돈 대부분을 주식으로 날려 에번이 요구한 100만 달러를 마련하지 못할 처지라는 것이었다. 설혹 그가 100만 달러를 마련하더라도 그의 건설사는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고, 그에 따라 거기서 밥을 먹는 많은 사람들이 곤란하게 될 터였다.

그 즈음 패트릭의 시체가 발견된다. 션 놀란 형사는 패트릭의 음성사서함에서 대니의 메시지를 들은 뒤 유력한 참고인으로 대니를 지목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잘 풀리지 않는 납치와, 대니와 에번을 뒤쫓는 션 놀란, 그리고 계획과 무관하게 폭주하기 시작하는 에번으로 인해 사건은 엉망진창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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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미널 마인드 시즌 6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본 문구인 것 같은데 '과거는 치유되지 않는다'(엘리자베스 1세)는 말이 나온다. 그 말이 정말인지 모른다. 과거에 풀지 못한 일이 이제와서 치유될 리 없다. 단지 희미해지거나, 기억나는 빈도가 뜸해지거나 할 뿐.

악역은 명백히 에번이지만, 에번에게 힘을 주는 것은 대니의 존재다. 범죄에 대한 죄값을 치루지 않고 현재 가진 것들도 뺏기지 않으려 하므로 대니는 명분도, 힘도 없는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무언가를 쥐려면 쥔 손을 먼저 펴야 하는 법이다.

대니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그 과정은 '공포' 그 자체다. 과거의 망령이 살아나 현재의 나를 사로잡고 놓아 주지 않는 그 상황을 '공포'가 아닌 다른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망각하는 것으로 숙제를 무기한 연기하는 삶의 어느 뒷골목에서, 우리는 예고없이 과거와 직면하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삶이 한 부분이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파괴 이후 새로운 건설을 시작할 지', 아니면 '파괴의 잔재만 남겨둘지' 두 가지 뿐이다.

마커스 세이키는 미시건 주 플린트 출신으로 기업홍보 및 마케팅 부문에서 10년간 일하며 글쓰기를 준비했다고 한다. 2007년 발표된 본작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 The Blade Itself>는 그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구성과 치밀한 심리묘사, 스타일리시한 문체 등이 평단의 호평을 받아 '제 2의 데니스 루헤인'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스트랜드 매거진 비평가상'의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칼날은 저 스스로 폭력을 부르나니' (호메로스,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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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장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5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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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시작된다.

나의 이야기는 K의 죽음에서 시작되었으며 K의 죽음으로 끝난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누구도 두 번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 K는 15년 전 자살을 위장했다. 그는 30여 년간 쉬지 않고 뛰어난 작품을 써왔다는 60대 소설가였다. 어촌마을 후미진 공터 컨베이어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자신이 죽은 것으로 꾸민 K는 '나'를 대역으로 고스트라이터를 자청한다.

"우리가 서로의 인생을 훔친다면 그것은 제법 공정한 거래이지 않겠습니까?" 라는 제안에 '나'는 동의한다. 그리고 전희정이라는 필명으로 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15년간 그가 써주는 작품으로 문학상을 수상하고 인세를 타내고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어느 때인가는 스스로 작품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어본다. 물론 될 일이 아니었으므로 포기한다.

15년이 경과한 어느 날, 그가 죽는다. '나'는 그가 죽었을 경우 따라야 할 프로세스에 따라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누군가는 그의 흔적을 지워주었다.

K에게는 강재인이라는 딸이 있었다. 그녀 역시 소설가였고, 아버지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의미에서 손승미라는 이름으로, 성까지 개명했다. 아버지 사후 10주년에 아버지를 추모하는 글 쓰기를 거부했고, 아버지에 대해 들먹이는 문단관계자들을 불편해했다.

그녀는 책과 둘러싸인 공간에서 자랐고 그 영향으로 독서에 탐닉했다. 그리고 마침내 소설가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미친 긍정적 영향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생활은 허위로 가득찬 사람이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경원했다.

그러던 참에 K가 죽자, '내'가 K의 딸에게 K가 그녀에 대해 쓴 글들을 출력하여 몰래 두고 온다. 이로써 '나'와 K의 딸이 연결된다.

강재인, 아니 손승미가 아버지 사후 15주년에 발간되는 문집에 글을 쓰기로 한다. '나'는 그녀에게 K와의 일과 관련된 파일을 보낸 뒤 문단을 떠난다. 그리고 전희정이라는 필명을 버리고 한영주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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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생물학적 딸은 강재인으로 태어나서 손승미로 살아간다. 그녀는 아버지의 영향력을 거부하고, 아버지와 대결한다. 예술이라는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한 여성판 오이디푸스다. 그녀는 실비아 플라스, 조지아 오키프, 지하련, 최정희와 정신적 자매가 되고자 한다.

이에 대해 '이 경계를 지나면 유효하지 않은 승차권을 쥐게 된' K는 예방주사를 맞는다. 여성 오이디푸스에게 살해되기 전에 스스로 자살한 뒤, 에밀 아자르를 창조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강력한 적에게 여성 에밀 아자르를 내세워 대결하게 한다. 효과가 있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점이라면 전희정이라는 변수였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대신 사는 것 외의 배역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배역을 연기한 것이다.

소설은 갖가지 장치와 기교가 난무한다. 하지만 탄탄하지 못한 서사와 얼버무리는 디테일 탓에 성기고 맥빠진 느낌을 준다.

사실 K의 딸이 강재인이니, K는 '강'이다. 하지만 작가는 카프카의 <성>, <심판>의 주인공과 같은 K라는 이니셜을 사용한다. 원하던 효과를 얻었는지 의문이다.

K가 자살을 위장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억지다. 시체가 어디서 난 것인지, 시체의 감식 결과는 어땠는지 얼버무린다. 현실에서 시체가 탔다고 해서 유전자 감식 없이 K로 확정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작가가 이러한 부분에 완전 문외한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설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K와 아버지의 불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어야 한다. 하지만 작가는 몇 마디 말로 K와 강재인의 관계설정을 독자와 상호합의한 것으로 퉁친다. 독자는 여전히 강재인이 왜 K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그를 거의 경멸하다시피 했는지 알지 못한다. 상징과 현실의 미숙한 사용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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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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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강두용 옹이 83세로 사망한다. 가족들은 혼자 남겨진 80세 홍간난 여사가 걱정되어 3수생 강무순을 늦잠 자는 사이 떨궈놓고 서울로 도주한다.

강무순은 뒤늦게 일어나 현찰 50만원과 함께 남겨진 쪽지를 보고 여섯 살 때 잠깐 지냈던 충청남도 운산군 산내면 두왕리 오지에 남겨진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다.

휴대폰도 안 터지고, 놀 거리도 없는 산골에서 강무순은 하릴없이 방을 뒤적이다 동화책 사이에 끼워진 '보물지도'를 발견한다. '다임개술'이라는 정체불명의 제목의 지도에는 종갓집 대문 옆에 보물이 묻혀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강무순은 시간이 많았으므로 보물을 꺼내러 간다.

가는 길은 삼거리를 지나게 되어 있다. 마을 바보 일영이가 엉덩이골을 드러내고 쪼그려 앉은 채 '공기를 집다'가 강무순에게 집적였다. 가볍게 무시하고 종갓집 문 앞에서 보물상자로 보이는 약상자를 꺼냈다.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자전거와 소년이 조각된 목각상 하나, 오각형 배지 하나, 그리고 젖니가 있었다. 왜 그것들이 보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보물상자가 열림으로 인해 강무순은 여름 내 미스터리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사건은 이렇게 흘러갔다. 강무순이 보물상자를 파고 있는 걸 종가집 종손 유창희가 발견한다. 유창희는 나무조각상이 아무래도 자신의 누나 유선희가 조각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은 동네 어른들이 단체관광으로 해수온천욕을 떠난 날이었다. 어른들이 한 나절 잘 놀고 저녁 느지막이 돌아와 보니 여학생 4명이 동시에 사라지고 없었다.

없어진 4명은 평소 행실이 음전하고 예쁘장한 종가집 여중생 유선희, 행실이 방정치 못한 여고생 유미숙, 종가집 서자 집안으로 애비는 허리병신 남동생은 배냇병신이라 지지리 복 없는, 그러나 효녀로 알려졌던 여중생 황부영, 그리고 초등학교 다니는 목사집 딸 조예은이었다.

경찰은 조사를 하긴 했으나 도무지 종적이 묘연하자 넷 다 가출한 것으로 처리해 버렸는데 이유는 유선희는 남녀차별에 반항, 유미숙은 남자가 생겨서, 부영이는 가정불화로, 조예은은 방학숙제 때문에 하는 식이었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 강무순과 종가집 창희는 나무조각상의 주인공을 찾는 것으로부터 미스터리를 풀어나가기로 한다.

하지만 좀처럼 나무조각상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실마리가 엉뚱한 곳에서 풀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유미숙의 엄마와 아빠가 제사가 있다고 친정에 간다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홍간난 여사는 유미숙네 친정은 교회 믿어서 제사 걷어치운지 오래라며 미행해보자 했고, 공주의 미용실까지 따라간 그곳에서 뜻밖에도 유미숙을 발견한 것이다.

사실 유미숙은 진짜 남자애들이랑 가출해서 보령해수욕장에 놀러간 것이었다. 9일이 지나서 그 사실이 밝혀졌는데, 여자아이들이 셋이나 없어진 판에 단순가출이라고 밝힐 수가 없어 타이밍을 잡다 보니 지금까지 흘러와버린 것이었다.

유미숙을 찾은 날로부터 며칠 뒤 폭우가 내렸다. 토사가 무너지면서 사람 뼈가 발견된다. 경찰이 뼈를 수거해서 조사해보니 조예은의 것이었다. 아마도 산 끄트머리 동굴에 들어갔다 무너져 사망한 것 같았다.

황부영은 강무순이 일영이의 짧은 새끼손가락을 보고 어떤 여자를 떠올리게 되어 찾게된다. 보물을 찾으러 가던 날 어떤 여자가 조예은의 뼈가 발견된 장소 부근에서 토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새끼손가락도 무척 짧았던 것이다.

황부영은 알려진 바와 달리 효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엄마가 배냇병신 일영이와 폭력적인 아버지를 자기에게 쓸어 맡기고 도망가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엄마보다 먼저 가출한 것이었다.

가출하던 그 날, 황부영은 우연히 조예은이 동굴이 무너지며 사망하는 장면을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황부영은 앞으로 자신을 찾지 말라며 유선희에 대해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떠난다. 유선희는 사라지기 전 임신중이었다는 것이다.

강무순과 창희는 고심 끝에 이 사실을 종가집에 알렸고 창희 부모는 그들도 알고 있었노라고, 사실 유선희는 몰래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 친척이 운영하는 서울 병원에 갔었던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녀는 약물 알레르기로 수술을 받지 못했고, 조산 끝에 사망한 것이었다.

자전거와 소년의 주인공은 키 작고 못 생긴 노총각 고실장이었다. 고실장은 어느 날 유선희에게 어떤 남자가 치근대는 것을 보고 같이 있어줄 생각에 자전거를 탄 채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려줬던 적이 있었다. 유선희는 그게 고마와 조각한 것이다.

결국 4명의 실종과 관련한 미스터리는 모두 풀렸지만 얼마 뒤 정신이 이상해진 조예은의 엄마가 우편배달부를 자신의 딸을 데려간 외계인이라고 생각해 칼로 찌르는 사건이 일어난다. 우편배달부는 죽어가면서 자신이 성폭행한 유선희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 박연선은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드라마 <연애시대>, <얼렁뚱땅 흥신소>, <화이트 크리스마스>, <난폭한 로맨스>를 쓴 시나리오 작가이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소설 데뷔작이다.

적절하게 뿌려대는 떡밥과 나름 깔끔한 회수가 짜임새 있는 구성과 맞물리면서 술술 읽힌다. 그리고 사이사이 유머가 조미료 처럼 적절하게 첨가되어 천연덕스러운 충청도식 전개가 이어진다. 영화나 드라마와 문법이 다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작가 본인의 강점을 살려 유쾌한 코지 미스터리 창작에 성공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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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토머스 해리스 지음, 이창식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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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메탐페타민) 제조와 유통에 책임이 있는 이벨다 드럼고를 잡기 위해 FBI, DEA, ATF가 합동팀을 꾸려 펠리시아나 어시장을 급습한다. 두목 이벨다 드럼고는 자신의 갓난아이를 방패 삼아 격렬히 저항했지만 클라리스 스탈링이 쏜 총에 현장에서 즉사한다. 그녀가 쏟아낸 피를 흠뻑 뒤집어쓴 갓난아이를 스탈링은 재빨리 생선 도마에 올려놓은 뒤 물로 씻어냈다. 이벨다는 AIDS 양성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언론에 고스란히 잡혀 보도되었다. 어디선가 작전계획이 샌 것이 분명했다. "죽음의 천사 클라리스 스탈링, FBI의 살인기계"가 내셔널 태들러의 헤드라인이었다.

버팔로 빌로 알려진 연쇄살인마 제임 검을 체포한지 7년이 흘렀다. 스탈링은 남성적인 조직문화와 폴 렌들러 같은 출세주의자의 집요한 견제에 지쳐가는 중이었다. 잭 크로포드는 퇴직을 앞두고 있어 힘이 빠져 있었고, 마틴 상원의원 역시 현역이 아니었다. 여러모로 스탈링에게 불리한 환경에서 펠리시아나 어시장 총격 사건과 관련한 청문회가 개최된다. 그리고 스탈링은 정직 처분된다.

한편, 열 명을 살해하여 멤피스 감방에 수감되었던 한니발 렉터는 탈출 과정에서 5명을 추가 살해한 뒤 브라질에서 성형 수술을 받고 위조 여권을 취득하여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완벽한 이탈리아어와 중세와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한니발은 카포니 궁 관장을 살해한 뒤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한니발의 흔적을 엄청난 자금을 동원해 뒤쫓는 이가 있었다. 바로 메이슨 버저였다. 한니발에게 한쪽 눈과 코, 입술 등을 제거된 뒤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는 메이슨 버저의 유일한 소망은 한니발을 산 채로 잡아다 돼지 먹이로 주는 것이었다. 그는 납치전문가를 고용하고 엄청난 현상금을 내걸어 한니발을 쫓았다. 그리고 그의 이런 노력에 확실한 응답이 있었다. 현상금에 혹한 이탈리아 경찰 하나가 소매치기로 하여금 한니발로 보이는 자를 털게 했고, 그 과정에서 지문을 은팔찌에 찍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런 상황도 모르고 한니발은 스탈링이 FBI에서 받는 박해와 그녀의 구원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스탈링을 스토킹하며 그녀를 도우려는 한니발, 한니발을 뒤쫓는 메이슨 버저, 자신을 도우려는 한니발을 뛰어난 추리와 직감으로 추적하는 스탈링. 마침내 스탈링이 한니발의 행동과 습관을 분석해 흔적을 잡아내는 데성공하지만, 선수를 친 것은 메이슨 버저와 그들의 일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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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해리스가 창조해 낸, 범죄소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 한니발. 그가 그토록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가려져 있음' 덕택이다.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어 있지 않으므로 독자는 한니발에 대한 빈 틈을 상상으로 메울 수 밖에 없다. 상상 속에서 한니발은 대적할 수 없는(invincible) 악한으로 거듭 난다.

그런 한니발을, 본편에서 땅으로 끌어내려 형상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찰흙을 붙어가며 모양을 만들어 가면 갈수록 한니발은 초라해진다. 그의 살인과 식인의 이유가 무엇인지 얼핏 보여주고, 스탈링에 대한 태도도 '사랑'의 형태로 좀 더 뚜렷하게 제시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신(神)격은 분해될 뿐이다. 바벨탑은 무너진다.

한니발을 구한 스탈링은 그를 체포하지 않고 함께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토머스 해리스는 프리퀄 <한니발 라이징>을 통해 다시 한번 한니발의 형상화에 도전한다. 성공할 수 있을까...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63645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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