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인류 역사가 곧 계급투쟁의 역사'임을 선언하고, '중요한 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는 것'이라며 끝을 맺는다. 1848년 영국에서 발간된 이 소책자는 이후 수많은 변혁운동과 혁명에 영감을 불어 넣었다.

​

그리고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러시아에서 발생했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소비에트 연방은 소련과학아카데미를 만들고 연방 옹호를 위한 각종 교육자료를 발간했는데, 상당히 도식적이고 기계적인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 그리고 신화와 역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련공산당사> 따위가 그것이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한 이 교과서는 '모순'을 중요하게 다루고 두 가지로 구분했다.

타협과 평화적 해결이 불가능한 '적대적 모순'과, 부분적 차이와 대립은 있으나 타협으로 해결이 가능한 '비적대적 모순'.

​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따르면 계급 갈등은 '적대적 모순'이므로 대화와 타협에 의한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계급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유혈혁명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득권 계급이 자신의 기득권을 평화적으로 내놓을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등의 복잡다단한 층위와 중첩을 '주요/부차', '적대적/비적대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실천적으로 증명' 되었다.

​

그렇다면 이러한 거대담론을 밀어붙인 진보 진영에서 페미니즘은 어떤 양태를 띠었을까?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은 여성 문제가 계급 모순의 하위 문제로 중첩되어 나타난다는 입장이다. 즉, 여성노동자는 '여성차별'로 인해 남성노동자 보다 가혹한 조건에서 노동력을 착취 당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사회재생산의 기본단위를 가족으로 설정하고(가족에 전가하고), 여성을 남성의 하위 파트너로 자리매김으로서 계급 내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주요 착취 대상인 남성노동자를 보좌하고, 2세 노동자를 양육하며, 필요 시 부분노동자(파트타임)로서 착취도 당하는, 어찌 보면 노동자 재생산 기본단위의 최말단을 차지한다.

이는 육체노동의 비중이 높고(남성이 선호되는 이유), 요리, 청소, 육아 등 가정노동을 대신해줄 수단이 충분치 못해, 오롯이 여성 한 사람 분 노동력이 가족 재생산을 위해 필요했던 시기에 상당히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물론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여성이 그러한 위치에 있어도 된다는 '당위'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원하는 가족재생산의 '효율적 형태'라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육체노동의 비중 축소, 가정노동력을 대신할 수단의 증가,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공교육 비중 확대 등으로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 사이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권력지형으로까지 진화하고 고착 되었다.

​

한편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은 말 그대로 거대담론에서 파생된 이론으로, 주요모순 이외의 문제에 대응할 만한 미세 전략이 부실하다. 기껏해야 여성차별 문제는 계급문제가 해결되면 저절로 해소된다는 낙관론만 있을 뿐이다.

즉 노동자가 착취에서 해방되고, 공공사회가 자녀 양육을 분담하는 사회주의가 된다면 여성에게 부여된 '남성의 하위파트너' 및 '2세 양육 담당자' 역할은 자연 해소된다는, 어찌 보면 상당히 순진한 이론이다.

그런 이유로 진보진영에서 남녀모순은 계급모순 해결 이후 처리할 별도 과제로 취급되며 우선순위가 밀려 왔다. 그 어느 곳보다 평등한 남녀관계를 지향해야 할 운동권 내부에서 성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뒤처리도 기묘하게 진행되는 이유가 이러한 사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

그런데, 이러한 반성으로 부터 새로운 여성해방이론이 탄생하지는 못한 듯하다. 새로 태어난 최신판 페미니즘 이론은 20세기 초반 마르크스-레닌주의 교과서를 표지갈이만 해서 새로운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론에 대해서는 고차원적인 분석이 필요 없다. 자본가 대신 '남성'을, 노동자 대신 '여성'을 대입하면 99% 똑같기 때문이다. 혐오에 기반한 극단적 남여 대립을 이론의 핵심으로 하므로 기존 페미니즘과 구분하기 위해 표지갈이 페미니즘은 레디컬 페미니즘이라고 하자.

​

<82년생 김지영>의 해설을 쓴 김고연주의 글을 내가 임의로 써 넣은 괄호 안의 단어로 치환해 읽어보면 어떤 느낌인가.

​

다양한 정체성들 중에서도 자기 정체성의 핵심은 '성(계급)'이다. '여성(노동자)'이라는 정체성에 주목하면 한국인의 절반은 상당히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 성(계급)에 기반한 "젠더(계급성)는 사랑, 결혼, 가족 구성, 출산, 양육, 노령화를 포함한 사적인 영역부터 경제, 종교, 정치, 미디어, 학교 등 모든 공적 영역에 작동하는 강력한 '체제'" 이기 때문이다.(180p)

​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노동자계급에게 도덕은 없다' 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있다. 얼핏 보면 과격한 이 문장은 '현재 법률과 도덕은 자본가계급이 자신의 계급에 유리하게 제정한 것이므로 노동자계급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노동자계급의 해방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가 도덕의 판별 기준이다' 라고 해석된다.

레디컬 페미니즘은 이 문구를 '성인지감수성' 이라는 용어로 치환하여 써먹는다.

현행법(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제도, 규칙이 있다 할지라도 이는 '남성'이 자신들의 성에 유리하게 제정한 것이므로 여성은 여성만의 별도 '성인지감수성'으로 성추행여부 등을 결정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갸륵한 투쟁 노력으로 성추행 관련 범죄는 '유죄추정원칙'이 적용되는 듯하다. 성추행 고발을 당하면 무고죄로 대항할 수 없고, 무죄 판결을 받아도 무고죄 확정이 되지 않는다.

​

그렇다면 '남성혐오'를 통해 '여성해방'을 이룩하자는 레디컬 페미니즘이 과연 여성들의 광범위한 공감대를 기반으로 확산된 것일까?

나는 레디컬 페미니즘을 표방한 강좌, 교육, 도서출판 등 돈이 되는 곳에 종사하는 자들이 안정적 수입원을 유지하기 위해 혐오를 조장한다고 느낀다. 이들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PPT를 띄워 놓고 주장하는 내용은 혐오와 공포의 조장, 남성에 대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 주조를 이룬다.

​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싱글맨>에서 조지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자기 집단이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고 자기 집단이 가장 심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죠......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은 자기 상황을 미워합니다. 그런 상황을 일어나게 만든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그래서 미움의 세계에 있습니다......"

​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던 진보프로젝트도 실패했지만, 수조원대 자산가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단지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일한 모순과 질곡을 겪는다고 주장하는 레디컬 페미니즘도 실패할 것이다.

돈이 되지 않는다고 판명되는 시점이 되면 그들은 가뭇없이 사그라들 것이다. 이들이야 말로 자본주의 속성을 가장 잘 파악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니, 강사니, 무슨무슨 단체니 하는 타이틀에 기댄 소수 '전문가'가 자기 집단의 영향력을 부풀려 과시하고 국회의원 비례대표 자리를 얼씬대거나 책을 팔아먹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사이비 종교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그저 그런 영향력에 그칠 것이다. 혐오에 기댄 사이비 정의는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

​

<82년생 김지영>에 관해선 그다지 할 말이 없다. 작품이 발표되기 20년 전인 90년대 초 방영된 <아들과 딸>이 차라리 균형잡힌 시각이었다는 느낌이다. 가부장제의 질식할듯한 분위기와 고통받는 딸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남성 역시 가해자이자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제시함으로서 혐오와 부정이 아니라 인정과 대안을 촉구했다고 생각한다.

​

<오늘의 작가상>은 가급적 구입해서 챙겨 읽는데 <82년생 김지영>은 <부초>, <머나먼 쏭바강>, <숲속의 방>,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 옆자리가 아니라 <철수사용설명서> 옆자리에 꽂아 두어야겠다. 문학작품의로서 딱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466323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문구 ㅣ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6
이문구 지음 / 돌베개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문구는 또래보다 늦되는 축이라 책 읽는 재미를 안 것이 나이 열두서너 살 어간이었다고 회상한다. 동네에 책 읽기 좋아하는 양반이 있어 그 집에 가서 <유충렬전>, <옥단춘전>, <임경업전>, <장화홍련전> 따위 육전소설을 빌려다 유창하게 읽었는데, 마을꾼들이 듣고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우스운 대목에서는 열두 가지 소리로 웃고, 욕할 대목에서는 욕해가며 들었다.

그러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제대로 된 소설책을 접했다. 그 뒤 고대소설에서 현대소설로 취향을 옮기게 되었다.

이문구는 소설의 재미가 줄거리에 있는 것이 있고, 말이나 문장에 있는 소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20살 때 읽은 채만식의 <태평천하>를 후자에 속하는 작품 중 백미로 치는듯 하다.

​

이문구 아버지는 해방 이후 남로당 보령군 총책을 맡았다가 전쟁 중에 사망한다. 두 형 역시 이문구가 아홉 살 때 사망했고 어머니는 6년 뒤에 돌아가셔서 사실상 가장 노릇을 해야했다.

이문구는 중학교를 마친 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궂은 일을 하다 훈장질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평생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모신 김동리를 만나게 된다.

​

김동리는 이문구의 문체를 매우 특이하게 여겨 시험문제로 이문구의 글을 출제하기도 했으나 칭찬에는 매우 박했던 것 같고, 추천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5년 동안 39편을 쓰고 10편을 스승에게 보여주었지만 한 장 이상을 읽어준 원고는 두 편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65년 9월 현대문학에 <다갈라 불망비>를 초천해준 직후 스승이 건낸 말은 "10원짜리 막소주 한 고뿌씩만 할까?" 였는데, 이문구는 김동리가 그날 참으로 다정했다고 기억한다.

​

서울살이 18년을 마치고 이문구는 귀향을 했다. 하지만 나고 자란 고향으로의 귀향은 아니다. 이문구가 살러간 곳은 화성군 향남면 행정일리, 정작 충청도 대천에서 치면 천리타관인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구는 이 곳을 자신의 동네로 여겼다.

1972년부터 쓰기 시작해 1977년에 마무리되는 <관촌수필>이 나고자란 고향 보령을 배경으로 쓰였다면, 1977년부터 쓰기 시작해 1981년에 끝이 나는 <우리동네>는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 화성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우리동네>는 우리동네 김씨, 우리동네 이씨 하는 식으로 소제목이 붙는데 유독 등장하지 않는 성씨가 박씨다. 박씨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소설을 붙잡고 기관원이 불러다 매일같이 불순한 의도가 있지 않았는지 귀찮게 하니 그 뒤로는 박씨성 가진 이를 소설에서 싹 빼버렸기 때문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

어린시절과 대학시절, 화성에서 살던 <우리동네> 시절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 말에 대한 애정과 시류담 등이 섞여 있는 이 수필집은 한 번 읽어서는 안 되고 여러번 다시 읽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아름다운 우리말과 방언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처음엔 갸우뚱 하며 읽은 문장도 곱씹다 보면 '맛'이 살아난다. 이문구 앞에 이문구 없고, 이문구 뒤에 이문구 없다. 우리 문단에서 이문구가 차지하는 영향력을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4636997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내가 죽였다 ㅣ 내가 죽였다
정해연 지음 / 반타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업 변호사 김무일은 진실을 찾기보단 의뢰인을 찾는데 골몰한다. 최근엔 아예 불법파일 공유 카페를 뒤져 저작관 소송을 기획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벌이는 쏠쏠했고 성정에도 맞았다.

그런데 함께 호흡을 맞춰온 변사무장이 '쪽팔린 사건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며 사직서를 들이민다. 형사사건을 맡아 해보자는 그의 말에 김무일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사무장을 새로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 김무일은 어쩔 수 없이 응낙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변사무장이 형사사건 의뢰인이랍시고 데려온 사람이 다름 아닌 건물주 권순향이었다.

​

권순향은 7년 전 302호에서 사망한 세입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날 부터 월세를 밀리더니 연락을 받지 않았다. 화가 난 권순향이 방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자 임의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 그런데 어디 숨어 있었는지 세입자가 나타나 권순향에게 밑도 끝도 없이 달려 들었다. 엎치락 뒤치락 하던 끝에 정신을 차린 권순향은 자신이 드라이기줄로 세입자의 목을 감아 죽이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하고 있는 그 때, 권순향 앞에 시커먼 차림의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는 권순향에게 처벌받고 싶지 않다면 당장 여기서 나가 모든 것을 잊으라 했다.

얼마 뒤 302호 세입자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경찰은 302호 세입자가 성적 판타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기 목을 조르는 형태로 자위행위를 하다 죽었고, PC에서 다량의 부적절한 동영상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

권순향은 사건 이야기를 마치더니 자수하고 싶다 했다. 김무일은 다음 날 경찰서에 출두하자고 말한 뒤 의뢰인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 신여주에게 연락했다.

현직 형사에 각종 무술 유단자이며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신여주 역시 김무일과 같은 건물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김무일은 신여주에게 사랑의 주파수를 발신하고 있었지만 신여주는 이를 불법주파수 쯤으로 취급하고 있기에 둘의 전화통화는 매끄럽지 못했다. 언제나 김무일의 느물거림과 신여주의 분노폭발로 끝이 나곤 하는 식이었다.

어찌됐든 이번 건은 명백히 살인범의 자수라는 공적 업무가 개입되어 있으므로 신여주도 어쩔 수 없이 김무일의 청에 따라 포장마차에서 한 잔 하며 사건 내용을 들었다. 그리고 함께 오피스텔로 돌아오는 데 사고가 일어났다. 권순향이 5층 자택에서 투신하여 자살한 것이다. 김무일은 권순향이 투신하기 직전 모습을 보았고, 그가 자의로 떨어진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

7년이나 지난 살인사건을 파렴치한 성도착자의 사고사로 위장한 사람은 누구이고, 그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권순향을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무엇보다도 7년 전 사망한 그 사람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

------

​

2012년 국가정보원과 국방부가 여론을 조작했다. 대통령 지시하에 대통령 직속 국가기관인 국정원, 국군, 국군사이버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 경찰청이 한통속이 되어 저지른 사건으로 국기문란 및 공권력 남용 사건 중 으뜸이다.

특히 국가정보원은 민간인 사찰과도 연관이 있었다.

2015년 7월 국가정보원 해킹 프로그램 도입과 민간인 사찰의혹 핵심 실무자인 국정원 직원이 용인 야산에서 빨간색 마티즈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사건은 자살로 처리되었지만 유가족은 타살을 주장하며 재수사를 요구했다.

​

<내가 죽였다>에서 7년 전 사망한 302호 세입자는 국정원 공작원이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내부고발을 준비하고 있었고, 국정원 요원의 습격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그 즈음 권순향이 문을 따고 들어오자 국정원 요원이 찾아온 것으로 오인하여 그를 공격하다 오히려 사망한 것이다.

이후 사고 현장을 수습한 자들이 진짜 국정원 요원이었다. 국정원은 유가족이 사망 사고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고인을 파렴치 범으로 몰아 사고사로 처리한다.

김무일과 신여주는 권순향이 자수를 결심하고 변호사와 상담한 날 밤 자살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도 국정원 끄나풀이 있어 암약하고 있어 이들의 조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벽에 가로막히곤 한다.

​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은 그 양태와 피해 범위가 엄청난 사건이었음에도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대표적인 국가범죄이다. 이 사건을 베이스에 깔고 매사 덤벙대지만 속 깊은 김무일과, 그런 김무일 담당 일진 신여주를 적당히 배치한 <내가 죽였다>는 구성과 전개가 영화로 제작해도 괜찮겠다 싶은 느낌이 든다.

<홍학의 자리>의 안일한 복선과 수수께끼 풀이, <아이가 없는 집> 같은 졸작 추천으로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안 좋았는데 <내가 죽였다>는 앞 선 두 번의 실점을 조금 만회하는 작품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4609070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58개띠들의 이야기 - 이 시대의 화두, 그들에게 축배를
임백천 외 지음 / 화남출판사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좋아하는 임영태 작가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집어든 책인데, 필진들 면면을 곰곰 살펴봐도 어떤 기준에 의해 선정되었는지 아리송하다.

​

58년 생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최초의 베이비붐 세대로 그 수가 꽤 많다. 공직에서 58년 생만 퇴직하면 티오가 풀려 승진이 한결 수월하리라던 말이 떠돌던 것이 몇 년 전이다. 58년 생들은 '가난', '반공', '유신', '뺑뺑이', '5월', '5공', '민주', '자유', '6월항쟁', 'IMF', '명퇴' 등의 키워드를 공유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

임영태 작가는 58년생은 왠일인지 뒤에 '개띠'를 붙여 '오팔년 개띠'라 칭하는 일이 흔하고, 소개를 할 때도 58년생 앞에 '흔히 말하는', '이른바', '그 유명한' 등등의 수식어를 내세우기도 한다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런데 사실 임영태 작가는 58년 생이면서도 7살에 학교를 들어간 탓에 57년생 들과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58년 생과 달리 '뺑뺑이'로중고등학교를 배정받은 것이 아니라 시험을 치루고 진학했던 것이다.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 와서 치룬 첫시험에서 맛 본 열패감, 자존심과 오기가 발동해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로를 정한 일, 적성에 맞지 않았던 고교 시절과 인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고 싶었던 열망 등이 적혀 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와 단편 <그해 여름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작가가 실업계 고등학교 시절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쓴 얘기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

다른 길을 걸어왔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지금의 가치관, 정서도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현재의 나를 사랑한다. 지금의 나를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과거는 함께 긍정된다...나를 긍정하고 내 세월을 긍정한다.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생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유일한 나이기 때문이다.(144p)

​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4546017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무차별 살인법
저우둥 지음, 이연희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중화3로 교차로 근처 벙벙룽 전자오락실에서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끔찍하게 난자당해 살해 당한다. 범인은 범행 직후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지만 CCTV에 그 모습이 찍혀 있어 경찰은 어렵지 않게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 이름 천원칭, 올해 나이 30세였다.

천원칭은 도주를 이어갈 생각은 없었는지 PC방에서 태연히 만화를 보다 체포된다.

​

경찰 심문에서 왜 어린아이를 죽였느냐는 질문에 천원칭은 '별거 없다, 감옥에 평생 갇혀 공짜 콩밥을 먹고 싶었다' 따위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했다. 일자리도 없고 빌린 돈도 갚지 못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그는 '두 세 사람은 죽여야 무기징역이 나올 것 같았는데 한 명 밖에 못 죽였다, 아이는 저항할 힘이 없어 죽였고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한편, 변호사 위윈즈는 애인 리팡을 묻지마 범죄로 잃은 뒤 변호사 일도 잘 되지 않아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그런 위윈즈에게 심리상담사 중완칭이 천원칭의 변호를 맡아 달라고 찾아왔다. 위윈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묻지마 살인 피해자에게 묻지마 살인 가해자 변호를 해달라는 것이 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인가.

위윈즈의 애인 리팡은 몇 년 전 기차역에서 떠밀려 죽었는데, 범인은 '그저 살면서 좋은 일이 한번도 없어 불만과 화가 쌓여 한 두사람 죽여 화풀이 하고 싶었다'면서 '피해자는 누가 되든 상관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얼마 후 구치소에서 자살했다.

​

중완칭은 위윈즈에게 묻지마 살인의 이유를 끝내 알아내지 못한 채 범인을 사형장으로 보내는것 만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묻지마 살인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를 파헤치고, 범인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면 치료 후 참회시켜야 한다고 설득했다.

위윈즈는 리팡을 죽인 범인이 구치소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느꼈던 분노를 떠올리며 고뇌하다 결국 천원칭 변호를 맡기로 한다. 그리고 위윈즈에게 비난과 경멸의 시선이 날아든다.

살인범을 당장 사형에 처해 피해자의 원통함을 풀어줘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항변에, 위윈즈는 변변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묻지마 살인의 이면에 어떤 심리상태가 있는지, 사회적 차원의 문제는 없는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리팡을 온전히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

------

​

작가 저우둥은 대만 작가로 가오슝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등단작 <진화의 시작>이 제14회 타이완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여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

자기조직화 임계성으로 번역되는 self-organized criticality는 리팡이 위윈즈에게 설명해주던 이론이다. 한 시스템이 자기조직의 임계점에 달하게 되면 아주 사소한 사건도 전체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원뿔형 모래 더미에 모래알을 떨어뜨려 쌓다보면 언젠간 무너지는데 무너지기 직전의 시점이 바로 임계점이다. 모래알이 아래로 떨어질 때 충돌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그 에너지가 모래 더미의 모래알 하 알 한 알에 전달돼서 연쇄적인 에너지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저우둥은 이 이론을 사람과 사회에 투영시켜 어떤 사람이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교육의 수혜를 입지 못하며, 생계수단도 일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사회에 내동댕이 쳐진다면 결국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

초반의 문제제기와 전개는 나름 흥미진진한데 후반부에 '악의 무리'가 사회적·정신적 한계에 달한 사람들을 찾아내 자신들이 정의한 '사회쓰레기'를 살해하도록 세뇌한다는 다소 황당한 결말은 아쉽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4538086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