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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할아버지 강두용 옹이 83세로 사망한다. 가족들은 혼자 남겨진 80세 홍간난 여사가 걱정되어 3수생 강무순을 늦잠 자는 사이 떨궈놓고 서울로 도주한다.
강무순은 뒤늦게 일어나 현찰 50만원과 함께 남겨진 쪽지를 보고 여섯 살 때 잠깐 지냈던 충청남도 운산군 산내면 두왕리 오지에 남겨진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다.
휴대폰도 안 터지고, 놀 거리도 없는 산골에서 강무순은 하릴없이 방을 뒤적이다 동화책 사이에 끼워진 '보물지도'를 발견한다. '다임개술'이라는 정체불명의 제목의 지도에는 종갓집 대문 옆에 보물이 묻혀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강무순은 시간이 많았으므로 보물을 꺼내러 간다.
가는 길은 삼거리를 지나게 되어 있다. 마을 바보 일영이가 엉덩이골을 드러내고 쪼그려 앉은 채 '공기를 집다'가 강무순에게 집적였다. 가볍게 무시하고 종갓집 문 앞에서 보물상자로 보이는 약상자를 꺼냈다.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자전거와 소년이 조각된 목각상 하나, 오각형 배지 하나, 그리고 젖니가 있었다. 왜 그것들이 보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보물상자가 열림으로 인해 강무순은 여름 내 미스터리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사건은 이렇게 흘러갔다. 강무순이 보물상자를 파고 있는 걸 종가집 종손 유창희가 발견한다. 유창희는 나무조각상이 아무래도 자신의 누나 유선희가 조각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은 동네 어른들이 단체관광으로 해수온천욕을 떠난 날이었다. 어른들이 한 나절 잘 놀고 저녁 느지막이 돌아와 보니 여학생 4명이 동시에 사라지고 없었다.
없어진 4명은 평소 행실이 음전하고 예쁘장한 종가집 여중생 유선희, 행실이 방정치 못한 여고생 유미숙, 종가집 서자 집안으로 애비는 허리병신 남동생은 배냇병신이라 지지리 복 없는, 그러나 효녀로 알려졌던 여중생 황부영, 그리고 초등학교 다니는 목사집 딸 조예은이었다.
경찰은 조사를 하긴 했으나 도무지 종적이 묘연하자 넷 다 가출한 것으로 처리해 버렸는데 이유는 유선희는 남녀차별에 반항, 유미숙은 남자가 생겨서, 부영이는 가정불화로, 조예은은 방학숙제 때문에 하는 식이었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 강무순과 종가집 창희는 나무조각상의 주인공을 찾는 것으로부터 미스터리를 풀어나가기로 한다.
하지만 좀처럼 나무조각상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실마리가 엉뚱한 곳에서 풀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유미숙의 엄마와 아빠가 제사가 있다고 친정에 간다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홍간난 여사는 유미숙네 친정은 교회 믿어서 제사 걷어치운지 오래라며 미행해보자 했고, 공주의 미용실까지 따라간 그곳에서 뜻밖에도 유미숙을 발견한 것이다.
사실 유미숙은 진짜 남자애들이랑 가출해서 보령해수욕장에 놀러간 것이었다. 9일이 지나서 그 사실이 밝혀졌는데, 여자아이들이 셋이나 없어진 판에 단순가출이라고 밝힐 수가 없어 타이밍을 잡다 보니 지금까지 흘러와버린 것이었다.
유미숙을 찾은 날로부터 며칠 뒤 폭우가 내렸다. 토사가 무너지면서 사람 뼈가 발견된다. 경찰이 뼈를 수거해서 조사해보니 조예은의 것이었다. 아마도 산 끄트머리 동굴에 들어갔다 무너져 사망한 것 같았다.
황부영은 강무순이 일영이의 짧은 새끼손가락을 보고 어떤 여자를 떠올리게 되어 찾게된다. 보물을 찾으러 가던 날 어떤 여자가 조예은의 뼈가 발견된 장소 부근에서 토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새끼손가락도 무척 짧았던 것이다.
황부영은 알려진 바와 달리 효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엄마가 배냇병신 일영이와 폭력적인 아버지를 자기에게 쓸어 맡기고 도망가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엄마보다 먼저 가출한 것이었다.
가출하던 그 날, 황부영은 우연히 조예은이 동굴이 무너지며 사망하는 장면을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황부영은 앞으로 자신을 찾지 말라며 유선희에 대해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떠난다. 유선희는 사라지기 전 임신중이었다는 것이다.
강무순과 창희는 고심 끝에 이 사실을 종가집에 알렸고 창희 부모는 그들도 알고 있었노라고, 사실 유선희는 몰래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 친척이 운영하는 서울 병원에 갔었던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녀는 약물 알레르기로 수술을 받지 못했고, 조산 끝에 사망한 것이었다.
자전거와 소년의 주인공은 키 작고 못 생긴 노총각 고실장이었다. 고실장은 어느 날 유선희에게 어떤 남자가 치근대는 것을 보고 같이 있어줄 생각에 자전거를 탄 채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려줬던 적이 있었다. 유선희는 그게 고마와 조각한 것이다.
결국 4명의 실종과 관련한 미스터리는 모두 풀렸지만 얼마 뒤 정신이 이상해진 조예은의 엄마가 우편배달부를 자신의 딸을 데려간 외계인이라고 생각해 칼로 찌르는 사건이 일어난다. 우편배달부는 죽어가면서 자신이 성폭행한 유선희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 박연선은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드라마 <연애시대>, <얼렁뚱땅 흥신소>, <화이트 크리스마스>, <난폭한 로맨스>를 쓴 시나리오 작가이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소설 데뷔작이다.
적절하게 뿌려대는 떡밥과 나름 깔끔한 회수가 짜임새 있는 구성과 맞물리면서 술술 읽힌다. 그리고 사이사이 유머가 조미료 처럼 적절하게 첨가되어 천연덕스러운 충청도식 전개가 이어진다. 영화나 드라마와 문법이 다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작가 본인의 강점을 살려 유쾌한 코지 미스터리 창작에 성공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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