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복수 - 시스티나 천장화의 비밀 반덴베르크 역사스페셜 4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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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을 방문한 화자에게 새하얀 수염의 수도자가 휠체어를 밀며 다가온다. 그는 화자에게 "나를 어떻게 찾아냈느냐, 아들아?" 라며 말을 건낸다. 그리고 예언자 예레미야를 아는지 묻는다. 수도자는 자신이 예언자 예레미아이고 진실을 알고 있는 까닭에 수도원에 감금당해 있다고 말한다. 수도자는 화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화자는 그 말을 아래와 같이 글로 옮겨 적는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복원하던 중 그림 층 사이에서 문자가 발견된다. 교황청은 미켈란젤로가 이교적 성향이 있었고 댓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려했던 교황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상기하며 이 문제를 조사할 사람으로 교리 담당 추기경 옐리넥을 지목한다. 옐리넥 추기경은 대학교수와 추기경, 도서관 사서로 구성된 위워회를 구성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노련한 도서관 사서인 아우구스티누스가 발견된 글자에 관한 의미있는 추리를 제시하지만 그는 곧 국무장관 추기경으로부터 사서 자리를 내놓을 것을 종용당하고 후임으로 피오 세고니 신부가 임명된다.

한편 옐리넥은 누군가로부터 소포를 받게 되는데, 소포의 내용물은 요한 바오로 1세의 실내화와 안경으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요한 바오로 1세가 암살당했다는 것과 옐리넥이 문자의 비밀을 계속 캐낼 경우 마찬가지로 살해당할 것이라는 협박이었다.

피오 세고니 신부가 더 이상 조사하지 말아야한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기고 자살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신부가 사서 자리를 되찾는다. 옐리넥은 아불라피아(ABULAFIA)라는 카발라 신봉자의 이름이 뜻하는 바를 계속 추적하다가 뜻 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한 미켈란젤로 연구자가 시스티나 천장화에 남겨진 글자의 비밀 일부를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모든 비밀을 알기 직전 나치에 의해 제지 당한다. 나치는 글자의 비밀을 모두 풀어낸 뒤 이를 바탕으로 교황청을 협박하여 자신들의 신분 세탁 장소로 삼았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 비밀의 내용을 알게 된 요한 바오로 1세가 이를 공표하려 하자 모종의 세력이 교황을 암살하고 글자의 비밀은 묻혀졌는데 이제 복원 과정에서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카발라 신봉자 아불라피아는 예수가 죽은 후 시신이 탈취당하였는데 이를 <루가복음>에서 부활한 것으로 날조한 후 진실이 왜곡되었다는 내용을 책에 남겼고, 이를 알고 있던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에 ABULAFIA라는 글자를 남김으로서 교황청에 복수를 의도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옐리넥 추기경은 투신 자살을 시도하고 그때 그의 입에서는 예레미야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추기경은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자신이 예언자 예레미야라는 착각에 빠진다. 교황청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옐리넥 추기경지만 그가 알고 있는 진실이 두려워 그를 감금하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화자는 이 내용을 책으로 남긴다.

 

역사소설의 대가 헨릭 시엔키에비츠는 "역사가는 문헌과 기록의 틈새를 '추리'로 메우지만, 소설가는 그것을 '직관'에 의해서 메운다"라고 하였다. 반덴베르크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문헌과 기록의 틈새를 온통 '거짓'으로 메워 놓았다. 거기에는 '추리'나 '직관', 하다 못해 '허구'도 아닌 '거짓'으로 잔뜩 메워져 있기에 소설은 매우 저급하다.

음모론은 독자를 흥미롭게 만들고 그중 둘째 가라면 서로운 것이 교황청과 관련된 것이다. 내가 <푸코의 진자>를 이런 음모론을 다룬 소설 중 으뜸으로 치는 이유는 음모론을 다루면서도 현실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까소봉 일파의 음모론이 아이러니하게도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까소봉들이 도리어 현실로부터 추방되는 과정은 지적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만든다. 한편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그 표절 여부에 관한 논쟁은 논외로 치고, <푸코의 진자>와는 달리 음모론을 독자에게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도록 갖가지 기교를 부린다. 그 기교의 수준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빈치 코드>는 중(中)은 간다 할 수 있다. 반면 <미켈란젤로의 복수>는 음모론을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거짓에 기반하고 있어 그 수준을 논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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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눈뜰 때 장정일 문학선집 5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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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열 아홉살,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턴테이블을 가장 가지고 싶었던 주인공 '나'는 원하던 대학에 미끄러진 후 재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고등학교 때 시화전에서 알게 된 여자친구 은선은 최승자 스타일의 시를 썼는데, 처음 관계를 맺던 날 '나'에게 앞으로 '아담'으로 부르겠다고 한다. 시험이 끝나고 발표가 날 때까지 둘은 서로의 몸을 탐한다.

87년 대선 기간 동안 비판적 지지의 편에 가담했던 주인공의 형은 스스로를 이기적인 사람이라 평가하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버린다. 은선은 이별을 통보하며 대학에서 좀 더 즐길 계획이고 시인으로 등단하겠다고 말한다.

어느 날 친구가 기도로 있는 디스코텍에서 만난 고등학생 현재와 관계를 맺게 되는데, 둘 다 스탠다드 록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둘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딱히 만날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만나게 되면 서로 관계를 갖는다.

가지고 싶던 세 가지 중 턴테이블은 오디오 가게의 호모 사장과 하룻밤을 지낸 후 얻게 된다. 두번째 뭉크화집은 디스코텍에서 만난 중년의 여성 화가의 야릇한 모델일을 해주고 얻는다. 하지만 그 화집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춘기>가 찢겨져 나가고 없었다.

은선이 종북주의의 시를 발표하여 구속된다. 은선은 시인이 되고자 했으나 운동권 써클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박탈당한 채 집체 시에 이름을 빌려주었던 이야기를 한다. 우연히 만난 현재와 관계를 맺은 일주일 후, 그녀는 투신 자살한다. '나'는 현재에게 자기의 수치스러웠던 일을 모두 얘기한 것이 그녀를 존중하지 않았던 비겁한 행위었다고 생각한다.

공부에 매진한 나는 결국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지만 등록을 포기한다. 서울역에서 창녀를 사서 밤을 보내고, 창녀는 '나'를 배웅해준다. 등록금의 일부를 헐어 타자기를 산 나는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표제작인 <아담이 눈뜰 때>는 다분히 자전적인 소설이다. 가지고 싶었던 세 가지는 램프의 지니가 들어 주는 소원을 연상시킨다. 타자기와 턴테이블, 화집은 각각 문학과 음악, 미술을 상징하는 것일까? 셋 중 주인공이 비교적 정상적인 의지로 얻게 되는 것은 타자기이고 타자기만이 생산을 해내는 도구이다. 턴테이블과 화집은 소비의 도구(매체)이다. 독학자인 장정일이 록음악의 연주자가 되거나 화가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진로를 잡은 것은 작가의 길이다. 한편 뭉크 화집에서 <사춘기>만이 뜯겨져 나간 것은 사춘기를 겪지 못한 작가 자신, 혹은 시대 자체를 웅변하는 것 같다.

<아담이 눈뜰 때> 외에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을 읽은 남녀가 7일간 <창세기>의 조물주가 세계를 창조하듯이 갖가지 에로티즘의 이론을 그로테스크하게 체험하는 과정을 그린 <제7일>, 소설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뒤로 한 채 대가족을 책임지던 은행원 큰아들이 죽어버린 사건을 카프카의 <변신>과 같은 스타일로 그려낸 <아이>, 여관에서 살아가는 모기가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고발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의 임무는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모기>, 실크 커튼이라는 반투명한 막을 매개로 '다리가 예쁜' 창녀와 '폐병쟁이'가 관찰/피관찰 하는 모습을 그려낸 <실크 커튼은 말한다>, 어느 날 자기 집으로 날아 들어온 펠리컨을 학대한 죄로 공안 경찰에게 끌려가 고문 당하고 결국 죄를 내면화하는 <펠리컨>, 희곡 스타일의 세 가지 이야기인 <아버지를 찾아가는 긴 여행>이 함께 실려 있다.

 

장정일의 초기 작품집으로 자전적인 이야기와 실험적인 시도, 문학에 대한 고민들이 담겨져 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와 마찬가지로 성을 통한 탈출의 욕구, 운동권(혹은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혹은 부당한) 비아냥 등이 드러나 있다.

독학자는 종종 관심의 '폭'이 넓고, 그런 연유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문제는 독학자 특유의 자유로운 비판 의식이, 특정 권위의 내재적 관점을 도외시한 결과 비아냥과 조롱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장정일의 글들은 그가 정규 과정이 아닌 독학과 무지막지한 독서의 결과이므로 그만의 색깔이 있고, 신선함이 있다. 한편, 실천적 인식의 깊이가 아쉬울 때가 있다.

 

<아버지를 찾아가는 긴 여행>의 2번째 이야기인 <어머니>는 내가 연극으로 본 작품이었다. 나는 연극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즐기지도 않는 편인데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98년도나 99년도에 이 작품을 관람한 기억이 난다. 당시 '흰얼굴'로 출연한 배우가 함께 연극을 보러 간 친구와 고교 동창이었고, 그런 인연으로 관람했었는데 꽤 훌륭했다고 느꼈었다. 함께 연극 관람한 친구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어떻게 사는지 모르고, 당시 관람했던 연극의 제목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이 책을 읽다가 당시 내가 본 연극이 장정일의 원작을 극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정일의 재기발랄하고 파격적인 사고가 흥미로워 <장정일의 독서 일기> 1권도 함께 샀다.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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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의 1/4 - 2004 제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한수영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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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o 공허의 1/4

 

류머티즘 관절염에 걸린 주인공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며 '룹알할리, 룹알할리...... 나는 룹알할리에 갈 것이다'라고 주문을 건다. 오년 전 진단을 받은 후 점점 통증은 심해지고 있고 80퍼센트는 불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언니는 정신이 이상해져서 요양원에 수용되어 있고, 현재는 엄마와 살고 있다. 남자같은 성격의 엄마는 아버지를 패대기쳐 허리를 주저 앉게 만들었고, 아버지는 시름시름 5년을 앓는 동안 엄마와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복수한다.

직장인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은 냄새에 민감한 사람으로 '나'는 언제나 걸레를 락스에 담궜다가 꺼내 청소를 한다. 단지 내 청소를 맡아 하는 '남자'는 정신에 조금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수레를 낙타라고 부르고,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건물에는 과학 학원이 있는데 그곳의 김선생과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갈 곳이 마땅치 않을 때엔 학원으로 간다.

과학 학원을 다니는 아이 중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는 걸 목격한 후 충격으로 1년간을 잠만 자려하다가 엄마가 안드로메다로 갔을 뿐 죽은 것은 아니라고 믿는 진우라는 아이가 있다. 진우는 언제나 사슴벌레를 어깨에 올린 채 외따로 다녔는데 사슴벌레가 어느 날 날아가버리고, 대신 올려 놓았던 토끼도 죽고 만다.

'나'는 어느 날 엄마가 행사장에 따라가 3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옥장판을 사온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와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던 '나'는 자신이 진짜 아버지의 딸인지 묻고, 얼마 후 엄마의 옥장판 값을 받으러 거친 사내들이 동사무소를 방문한다.

'남자'가 청소하는 아줌마들에게 '아랫도리'가 잡힌 채 모욕을 당하면서도 어쩔줄 몰라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산책하던 중 남자의 집을 발견한 '나'는 '남자'의 아버지가 룹알할리 사막에서 낙타와 찍은 사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와 몸을 섞는다.

'남자'는 진우의 청으로 죽은 토끼의 가죽 안에 솜을 채우고, 우주선을 만든다. 진우가 과학 학원에 빠져 김선생이 진우의 집으로 전화를 걸고 경찰은 진우가 유괴된 것으로 믿는다. 진우와 '나', 그리고 '남자'는 경찰을 뒤로 한 채 도망치고, '나'는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그 순간 '나'는 룹알할리고 가고 있다고 느낀다.

 

o 개와 늑대의 시간

 

저녁 무렵 그의 부음을 듣는다. '나'는 남편을 졸라 아이를 데리고 어느 바닷가로 간다. 공동 화장실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른 후 여자 두명이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던 중년의 여자가 '미친년들!'이라고 욕한다. 그리고 '나'는 과거 그와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운동권 써클에 있던 '나'는 어느 날 가투에서 '그'와 함께 전투경찰을 피해 화장실로 숨는다. 그곳에서 '그'는 나에게 담배를 권했고, 나는 '그'와 키스를 한다. 어느 순간 전투경찰이 난입하여 둘을 끄집어내며 '미친년들!'이라 욕을 한다. 자신을 내던지는 형태의 사랑에 빠진 나와 달리 '그'는 자퇴한 후 공장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공장에 들어가기 전날 둘이 함께 갔던 곳이, 지금 '내'가 있는 이곳 바닷가이다. 공장 생활을 정리한 후 '그'가 프랑스로 떠났다. 그리고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불리는 시간대에 '그'의 부음을 듣는다.

남편과 아이가 갯벌에서 돌아오고 있고, 나는 남편과 아이가 나를 더 크게 불러주고 잡아달라고 속으로 말한다.

 

o 십일월

 

김노인은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손녀의 얼굴이 신통치 않다고 느낀다. 노인은 헛헛한 중에 뒤주를 바라본다. 먹감나무를 못을 박지 않고 짜맞춘 그 뒤주는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집안이 기울자 사람들은 오래된 먹감나무를 베어 만들어 동티가 났다고 했다. 세간살이가 팔려 나가는 중에도 뒤주만은 그대로 있었다.

김노인은 담배를 피우고 조각 헝겊을 바느질 하는 것으로 소일 한다. 남편은 역마살이 있는 양반이었는데 병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 대신 담배불을 붙여 주다가 담배를 배우게 되었다. 남편은 삼 남매와 나이 든 시어머니, 그리고 텅 빈 뒤주만 남겨주었다.

잠이 든 김노인을 손자 셋을 본 며느리가 깨워 밥을 차려준다. 김노인은 며느리에게 목욕이 하고 싶다고 말한다. 목욕 후 죽은 아들의 환갑 잔치 때 비디오를 보고 싶다고 한다. 아들은 힘들다는 소리 한번 안하고 가장 노릇을 했고 그것이 김노인의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김노인은 무덤에 부어놓을 술, 지금 먼저 한잔만 달라며 며느리에게 술을 청해 마시고 뒤주를 열어본다. 뒤주에는 새까만 어둠이 고여 있고, 빈 뒤주에 노인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고인다. 비디오 화면에서는 이승과 저승이 얼크러진 춤이 계속되고 있다.

 

 

잘쓴 글이지만, 흥미롭지 않다. 구성은 탄탄하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을 때 가장 혼란스럽다.

흥미롭지 않은 것은 서사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이 어떻게 될지가 별로 궁금하지 않다. 다음이 궁금한 것이 이야기의 제일 미덕일텐데, 대충 짐작이 간다. <공허의 1/4>에서는 남자와 '내'가 관계를 갖게 될 것이고, 그 형태가 '나'의 절망과 맞닿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한치 어긋남 없이 맞아 떨어진다. 이쯤 되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고 일어난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 오면 그 작위적인 느낌이 한층 강해진다.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현재와 과거를 절묘하게 배치시킨 구성은 좋았으나, 주인공이 운동보다는 담배를 가르쳐준 그녀와의 파국적 동성애에 빠져들게 되는 과정에 개연성이 없고, 남편과 아이로 표징되는 현재로부터 이탈하려는 주인공의 심리 역시 다분히 병리적으로 읽힌다.

오히려 <십일월>은 담백한 맛이 있어 좋았다. 

한수영이라는 작가의 색깔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소설집이었다. 작품들은 유행이 조금 지난 옛날 소설 느낌이 난다. 작위적인 느낌은 몰개성과 진지함의 결합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잘 썼다고 생각하지만, 흥미가 동하거나 다른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이유도 바로 그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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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반양장)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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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쾌적하고 안락한 굴속에 사는 호빗 골목쟁이네 빌보는 부유한 편이고 모험이나 예상에서 벗어나는 짓은 하지 않아 평판이 좋았다. 어느 날 마법사 간달프가 빌보를 찾아온다. 빌보는 툭 아저씨로부터 그 마법사의 이름을 들은 기억이 났다. 빌보는 귀찮은 일에는 말려들고 싶지 않아 간달프를 멀리 하는데, 다음날 빌보의 집에 드워프 열 세명이 몰려 온다. 드워프들은 간달프로부터 빌보가 매우 유능한 좀도둑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성터와 보물을 스마우그라는 용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빌보를 찾아온 것이었다. 툭 아저씨의 기질이 빌보를 모험에 뛰어들게끔 부추겼고, 이로써 용을 물리치러 가는 열 다섯명의 모험대가 구성이 된다.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트롤 세마리를 만나는데 이들을 물리치고 엘프의 검인 '글람드링(비터)'와  '오르크리스트(바이터)'를 얻게 된다. 엘프들의 거처를 찾아간 일행은 그들로부터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받는다. 하지만 고블린들의 동굴에서 한바탕 위기를 겪게 되는데 일행과 떨어진 빌보는 반지 하나를 얻게 된다. 그 반지는 골룸이 떨어뜨린 것인데 반지를 끼면 모습이 사라지는 반지였다.

고블린과 늑대들에게 곤경에 처했을 때 우연히 독수리들이 도움을 주고 위기를 넘긴 일행은 베오른을 찾아간다. 그는 동물을 애호하며 조용히 살아갔는데 곰의 형상으로 변하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베오른과 함께 쉬면서 휴식을 취한 드워프들과 호빗은 간달프와 헤어져 여행을 계속하는데 거미들로 인해 곤경에 처하고 숲속 엘프들에게 감금당하기도 한다. 빌보의 기지로 간신히 탈출하여 마침내 스마우그의 거처에 당도하는데 스마우그는 온몸에 몇겹의 비늘 갑옷을 입고 있는데다 불음 내뿜기까지 해서 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란 없어 보였다. 빌보가 반지를 끼고 술잔을 훔친데 화가 난 스마우그는 인간의 마을을 습격하고 용감한 바르드가 용의 약점을 화살로 쏘아 죽인다.

인간의 마을이 폐허가 되어 바르드는 용의 보물 일부의 권리를 주장하며 드워프 소린에게 나누어주길 요청하지만 보물의 매력에 빠져버린 소린은 정당한 인간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인간과 요정의 연합군과 드워프들의 전쟁이 불가피해 보였다. 하지만 빌보가 드워프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보석 아르켄스톤으로 협상을 도모하고 늑대와 고블린의 군대까지 밀려오자 인간과 요정, 그리고 드워프는 한편이 되어 이들에 맞서게 된다. 소린은 뒤늦게 나마 드워프의 긍지를 지닌 채 전사하고 빌보는 보물의 일부를 받아 호빗 마을로 돌아온다.

 

톨킨이 자기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지은 동화가 판타지 소설의 고전이 되었다. <호빗>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반지의 제왕>이 출간되기 17년 전인 1937년에 쓰여졌고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의 출발이 된다.

그 후로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호빗>이라는 하나의 전형을 출발점으로 한다. 1974년 TSR이 <던전 앤 드래곤>이라는 테이블 롤 플레잉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의 변경에 엄격함을 더하지만 사실 <던전 앤 드래곤> 역시 출발은 톨킨의 아이디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톨킨의 아이디어를 가장 잘 구현한 게임은 SOE사의 <에버퀘스트>가 아닐까 싶다. 물론 에버퀘스트는 그 자체의 세계와 세계관이 있고 12개의 종족이 갖는 직업과 그들이 섬기는 신도 톨킨의 작품과는 다르지만 판타지 MMORPG 게임의 고전이 될 수 있었던 수많은 업적들이 톨킨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에버퀘스트는 MMORPG 게임에서 '레이드'라는 모험 형태를 최초로 제안한다. 레이드를 위해서는 각 직업과 종족이 적절히 균형을 맞추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에버퀘스트를 통해 생겨난 또 하나의 개념이 바로 풀러, 탱커, 힐러, 데미지딜러, 버퍼 등이다. 이러한 에버퀘스트의 직업, 종족, 역할 등은 블리자드사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매우 초보적인 형태로 이식되는데, 뜻밖에도 이러한 소프트함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켜 인기 면에서는 <에버퀘스트>를 넘어서게 된다. 

<에버퀘스트>를 했던 게이머는 누구든 <에버퀘스트> 이외의 MMORPG 게임에는 몰입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에서는 직장 동료가 라이벌이라면 <에버퀘스트> 시디를 선물하라는 말도 있었다.

비록 서비스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노라쓰'라는 세상은 역사와 함께 사라졌고, 나의 한 시기도 사라졌다고 느낀다. 이런 느낌이 어떤 것인지, <에버퀘스트>를 플레이 했던 사람들과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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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나를 보낸다 장정일 문학선집 2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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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인공 한일남은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곧바로 표절 시비에 휘말린다. 한일남은 자신이 꿈 속에서 본 것을 그대로 썼을 뿐이라 항변하지만 그 후로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미니스커트를 입은 <바지 입은 여자> 정선경이 한일남을 찾아온다. 그녀는 자신이 꾼 꿈과 한일남의 소설 내용이 똑같아 놀랐고, 따라서 표절이 아니라는 것도 믿으며, 그가 멋진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한다. 한일남의 집에 눌러 붙은 <바지 입은 여자>는 한일남을 독려하는 한편, 일정 분량 이상의 글을 쓴 날은 그 대가로 몸을 제공한다.

 

그런데 사실 한일남은 소설 쓰기를 집어 치우고 기관원에게 도색소설을 6백매당 3백만원에 팔아치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기관원은 한일남 뿐만 아니라, 시인 이정박(그 역시 표절 시인이로 낙인 찍혔다)에게도 똑같은 일을 의뢰하였고, 한일남과 이정박이 쓴 도색소설은 주체사상과 마르크스주의와 연관된 제목으로 역전 앞 노점상에서 팔려 나간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도색소설 제목으로 주체사상과 마르크스주의를 접하여 왜곡된 인식을 갖도록 하는 '이중사고' 의도라 추측한다.

한편, 한일남의 친구 <은행원> 조사명은 매일 '수정궁'이라 불리는 은행의 유리 부스 안에서 잔돈을 바꿔주는 일을 한다.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 독서반과 문예반을 두고 한 달을 고민한 끝에 독서반을 가입하였고, 당시 엽집에 살던 택시운전기사의 매맞는 부인과 일년간 관계를 맺었으며, 그 일로 성병을 얻어 발기 불능이 된 사내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새로운 슬픔>에 바나나 껍질 마약이 나온다며 직접 시행해보는가 하면 <내일을 향해 쏴라>라는 영화 속 인물에 자신을 투영시켜 보기도 한다.

 

기관원이 <바지 입은 여자>가 써준 독후감으로 쫓겨나고, <바지 입은 여자>는 '경산 문화협회'의 백형두에게 몸을 내어준 후 배우로 성공하는 모습을 꿈꾸게 된다. <바지 입은 여자>는 <은행원>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알려준다. 그녀가 <바지 입은 여자>로 불리게 된 이유는 그녀가 쓴 시 때문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오만과 자비>라는 운동권과 동거를 하게 된다. <오만과 자비>는 큰 틀에서는 운동권적 사고를 하는 자였으나, 일상 생활은 권위주의적 발상과 변태적 성향으로 뭉친 자였다. 가투가 있던 날 <오만과 자비>와 <바지 입은 여자>는 숨어들어간 화장실에서 비역질을 하고, 그 후 치마 안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던 <바지 입은 여자>가 전경들에게 연행되어 궁둥이를 드러내고 원산폭격 하던 장면이 외신 기자에게 찍혀 전 세계에 전파되어 퓰리쳐상까지 타게 되는 일이 있었다.

 

한일남의 이모님이 돌아가시면서 '국제여관'을 물려 주자 한일남은 여관을 물려 받아 그곳에서 기식하고 <바지 입은 여자>는 몸을 팔다가 영화감독을 따라 서울로 가 출세한다. <은행원>은 수정궁을 나와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한일남은 <바지 입은 여자>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한 끝에 그녀의 '가방모찌'가 된다. <바지 입은 여자>는 <은행원>이 준 책을 한일남에게 건내며 소설 쓰기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길 권하고 한일남은 자신이 꿈을 꾼 후 소설을 썼다는 말을 아직도 믿느냐고 묻는다.

 

이 책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기억과 이미지들이 있다. 그것들이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일부 왜곡되기도 했었다는 것은 책을 읽고서 알게 되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장선우 감독의 영화로 1994년도에 보았다. 그 영화를 보기 전에 여균동은 <리얼리즘의 역사와 이론> 편역자로 알고 있었고, 장정일은 내 기억이 맞다면 기형도의 <짧은 여행의 기록>에 나오는 '책에 지문 묻히는 것을 싫어하는 소년'으로 알고 있었다. 어쨌든 영화에 대한 인상은 나쁘지만은 않았다. 책에서 <오만과 자비>로 등장하는 자와 <바지 입은 여자>의 화장실 비역신은 물론 불쾌했었지만, 한일남 역의 문성근이 살던 집과 비내리는 풍경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었다.

그 후로 종종 장정일의 원작을 꼭 읽어보고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디에 바나나 마약이 나오는가 하는 것이었다. 을유문화사의 아리송한 번역본에도 없었고 민음사 세계문학 번역본에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책을 읽고서야 사실은 울리히 플렌쯔도르프의 <젊은 베르테르의 새로운 슬픔>을 내가 잘못 들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의 경우 작가 장정일에 대해서는 그의 소설 작품 보다 시에 익숙하고, 그의 성장 과정에 대한 몇몇 단어와 이미지들이 익숙하다.  여호와의 증인, 중학교 졸업, 소년원, 삼중당문고, 거짓말, 재판, '뇌가 있습니다/없습니다', 등등.

그는 콜린 윌슨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웃사이더>라는 역작을 발표한 후 점점 이상해지더니 미스테리와 왜곡된 성에 천착하는 기인. 그 역시 제대로된(혹은 제도화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독학에 의존하여 방대한 지식을 쌓은 후 역작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 길로 들어선 후에 재능을 낭비한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기존 권위에 대한 강력한 반발뿐만 아니라, 그 권위에 대항하는 운동권에 대한 과도한 비아냥이 결국 그를 성에 대해 천착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장정일은 언제나 나에게 신선함을 주고, 그의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일그러진 느낌을 줄 망정, 그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받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은 후 박일문은 뭐하고 있나 궁금했다. 뇌가 있느니 없느니 장정일에게 양 싸다귀를 맞은 후 잠잠해졌다가 그 후로 한 번도 그의 책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혼인 빙자 간음으로 실형을 살았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충격적이다. 

<베끼기의 세 가지 층위>와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표절의 판단 근거로 명시성을 들먹이는 부분을 한껏 비판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 동감하는 바이지만, 페스티쉬를 들먹이며 이인화를 옹호하는 부분은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박일문의 반박이 궁금했었는데 그는 엉뚱하게도 명예회손 운운하며 법에 호소했다. 그런 그가 법 집행을 받고 있으니 아이러니 하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9387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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