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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의 1/4 - 2004 제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한수영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o 공허의 1/4
류머티즘 관절염에 걸린 주인공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며 '룹알할리, 룹알할리...... 나는 룹알할리에 갈 것이다'라고 주문을 건다. 오년 전 진단을 받은 후 점점 통증은 심해지고 있고 80퍼센트는 불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언니는 정신이 이상해져서 요양원에 수용되어 있고, 현재는 엄마와 살고 있다. 남자같은 성격의 엄마는 아버지를 패대기쳐 허리를 주저 앉게 만들었고, 아버지는 시름시름 5년을 앓는 동안 엄마와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복수한다.
직장인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은 냄새에 민감한 사람으로 '나'는 언제나 걸레를 락스에 담궜다가 꺼내 청소를 한다. 단지 내 청소를 맡아 하는 '남자'는 정신에 조금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수레를 낙타라고 부르고,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건물에는 과학 학원이 있는데 그곳의 김선생과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갈 곳이 마땅치 않을 때엔 학원으로 간다.
과학 학원을 다니는 아이 중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는 걸 목격한 후 충격으로 1년간을 잠만 자려하다가 엄마가 안드로메다로 갔을 뿐 죽은 것은 아니라고 믿는 진우라는 아이가 있다. 진우는 언제나 사슴벌레를 어깨에 올린 채 외따로 다녔는데 사슴벌레가 어느 날 날아가버리고, 대신 올려 놓았던 토끼도 죽고 만다.
'나'는 어느 날 엄마가 행사장에 따라가 3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옥장판을 사온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와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던 '나'는 자신이 진짜 아버지의 딸인지 묻고, 얼마 후 엄마의 옥장판 값을 받으러 거친 사내들이 동사무소를 방문한다.
'남자'가 청소하는 아줌마들에게 '아랫도리'가 잡힌 채 모욕을 당하면서도 어쩔줄 몰라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산책하던 중 남자의 집을 발견한 '나'는 '남자'의 아버지가 룹알할리 사막에서 낙타와 찍은 사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와 몸을 섞는다.
'남자'는 진우의 청으로 죽은 토끼의 가죽 안에 솜을 채우고, 우주선을 만든다. 진우가 과학 학원에 빠져 김선생이 진우의 집으로 전화를 걸고 경찰은 진우가 유괴된 것으로 믿는다. 진우와 '나', 그리고 '남자'는 경찰을 뒤로 한 채 도망치고, '나'는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그 순간 '나'는 룹알할리고 가고 있다고 느낀다.
o 개와 늑대의 시간
저녁 무렵 그의 부음을 듣는다. '나'는 남편을 졸라 아이를 데리고 어느 바닷가로 간다. 공동 화장실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른 후 여자 두명이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던 중년의 여자가 '미친년들!'이라고 욕한다. 그리고 '나'는 과거 그와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운동권 써클에 있던 '나'는 어느 날 가투에서 '그'와 함께 전투경찰을 피해 화장실로 숨는다. 그곳에서 '그'는 나에게 담배를 권했고, 나는 '그'와 키스를 한다. 어느 순간 전투경찰이 난입하여 둘을 끄집어내며 '미친년들!'이라 욕을 한다. 자신을 내던지는 형태의 사랑에 빠진 나와 달리 '그'는 자퇴한 후 공장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공장에 들어가기 전날 둘이 함께 갔던 곳이, 지금 '내'가 있는 이곳 바닷가이다. 공장 생활을 정리한 후 '그'가 프랑스로 떠났다. 그리고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불리는 시간대에 '그'의 부음을 듣는다.
남편과 아이가 갯벌에서 돌아오고 있고, 나는 남편과 아이가 나를 더 크게 불러주고 잡아달라고 속으로 말한다.
o 십일월
김노인은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손녀의 얼굴이 신통치 않다고 느낀다. 노인은 헛헛한 중에 뒤주를 바라본다. 먹감나무를 못을 박지 않고 짜맞춘 그 뒤주는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집안이 기울자 사람들은 오래된 먹감나무를 베어 만들어 동티가 났다고 했다. 세간살이가 팔려 나가는 중에도 뒤주만은 그대로 있었다.
김노인은 담배를 피우고 조각 헝겊을 바느질 하는 것으로 소일 한다. 남편은 역마살이 있는 양반이었는데 병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 대신 담배불을 붙여 주다가 담배를 배우게 되었다. 남편은 삼 남매와 나이 든 시어머니, 그리고 텅 빈 뒤주만 남겨주었다.
잠이 든 김노인을 손자 셋을 본 며느리가 깨워 밥을 차려준다. 김노인은 며느리에게 목욕이 하고 싶다고 말한다. 목욕 후 죽은 아들의 환갑 잔치 때 비디오를 보고 싶다고 한다. 아들은 힘들다는 소리 한번 안하고 가장 노릇을 했고 그것이 김노인의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김노인은 무덤에 부어놓을 술, 지금 먼저 한잔만 달라며 며느리에게 술을 청해 마시고 뒤주를 열어본다. 뒤주에는 새까만 어둠이 고여 있고, 빈 뒤주에 노인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고인다. 비디오 화면에서는 이승과 저승이 얼크러진 춤이 계속되고 있다.
잘쓴 글이지만, 흥미롭지 않다. 구성은 탄탄하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을 때 가장 혼란스럽다.
흥미롭지 않은 것은 서사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이 어떻게 될지가 별로 궁금하지 않다. 다음이 궁금한 것이 이야기의 제일 미덕일텐데, 대충 짐작이 간다. <공허의 1/4>에서는 남자와 '내'가 관계를 갖게 될 것이고, 그 형태가 '나'의 절망과 맞닿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한치 어긋남 없이 맞아 떨어진다. 이쯤 되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고 일어난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 오면 그 작위적인 느낌이 한층 강해진다.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현재와 과거를 절묘하게 배치시킨 구성은 좋았으나, 주인공이 운동보다는 담배를 가르쳐준 그녀와의 파국적 동성애에 빠져들게 되는 과정에 개연성이 없고, 남편과 아이로 표징되는 현재로부터 이탈하려는 주인공의 심리 역시 다분히 병리적으로 읽힌다.
오히려 <십일월>은 담백한 맛이 있어 좋았다.
한수영이라는 작가의 색깔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소설집이었다. 작품들은 유행이 조금 지난 옛날 소설 느낌이 난다. 작위적인 느낌은 몰개성과 진지함의 결합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잘 썼다고 생각하지만, 흥미가 동하거나 다른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이유도 바로 그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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