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나를 보낸다 장정일 문학선집 2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주인공 한일남은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곧바로 표절 시비에 휘말린다. 한일남은 자신이 꿈 속에서 본 것을 그대로 썼을 뿐이라 항변하지만 그 후로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미니스커트를 입은 <바지 입은 여자> 정선경이 한일남을 찾아온다. 그녀는 자신이 꾼 꿈과 한일남의 소설 내용이 똑같아 놀랐고, 따라서 표절이 아니라는 것도 믿으며, 그가 멋진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한다. 한일남의 집에 눌러 붙은 <바지 입은 여자>는 한일남을 독려하는 한편, 일정 분량 이상의 글을 쓴 날은 그 대가로 몸을 제공한다.

 

그런데 사실 한일남은 소설 쓰기를 집어 치우고 기관원에게 도색소설을 6백매당 3백만원에 팔아치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기관원은 한일남 뿐만 아니라, 시인 이정박(그 역시 표절 시인이로 낙인 찍혔다)에게도 똑같은 일을 의뢰하였고, 한일남과 이정박이 쓴 도색소설은 주체사상과 마르크스주의와 연관된 제목으로 역전 앞 노점상에서 팔려 나간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도색소설 제목으로 주체사상과 마르크스주의를 접하여 왜곡된 인식을 갖도록 하는 '이중사고' 의도라 추측한다.

한편, 한일남의 친구 <은행원> 조사명은 매일 '수정궁'이라 불리는 은행의 유리 부스 안에서 잔돈을 바꿔주는 일을 한다.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 독서반과 문예반을 두고 한 달을 고민한 끝에 독서반을 가입하였고, 당시 엽집에 살던 택시운전기사의 매맞는 부인과 일년간 관계를 맺었으며, 그 일로 성병을 얻어 발기 불능이 된 사내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새로운 슬픔>에 바나나 껍질 마약이 나온다며 직접 시행해보는가 하면 <내일을 향해 쏴라>라는 영화 속 인물에 자신을 투영시켜 보기도 한다.

 

기관원이 <바지 입은 여자>가 써준 독후감으로 쫓겨나고, <바지 입은 여자>는 '경산 문화협회'의 백형두에게 몸을 내어준 후 배우로 성공하는 모습을 꿈꾸게 된다. <바지 입은 여자>는 <은행원>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알려준다. 그녀가 <바지 입은 여자>로 불리게 된 이유는 그녀가 쓴 시 때문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오만과 자비>라는 운동권과 동거를 하게 된다. <오만과 자비>는 큰 틀에서는 운동권적 사고를 하는 자였으나, 일상 생활은 권위주의적 발상과 변태적 성향으로 뭉친 자였다. 가투가 있던 날 <오만과 자비>와 <바지 입은 여자>는 숨어들어간 화장실에서 비역질을 하고, 그 후 치마 안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던 <바지 입은 여자>가 전경들에게 연행되어 궁둥이를 드러내고 원산폭격 하던 장면이 외신 기자에게 찍혀 전 세계에 전파되어 퓰리쳐상까지 타게 되는 일이 있었다.

 

한일남의 이모님이 돌아가시면서 '국제여관'을 물려 주자 한일남은 여관을 물려 받아 그곳에서 기식하고 <바지 입은 여자>는 몸을 팔다가 영화감독을 따라 서울로 가 출세한다. <은행원>은 수정궁을 나와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한일남은 <바지 입은 여자>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한 끝에 그녀의 '가방모찌'가 된다. <바지 입은 여자>는 <은행원>이 준 책을 한일남에게 건내며 소설 쓰기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길 권하고 한일남은 자신이 꿈을 꾼 후 소설을 썼다는 말을 아직도 믿느냐고 묻는다.

 

이 책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기억과 이미지들이 있다. 그것들이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일부 왜곡되기도 했었다는 것은 책을 읽고서 알게 되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장선우 감독의 영화로 1994년도에 보았다. 그 영화를 보기 전에 여균동은 <리얼리즘의 역사와 이론> 편역자로 알고 있었고, 장정일은 내 기억이 맞다면 기형도의 <짧은 여행의 기록>에 나오는 '책에 지문 묻히는 것을 싫어하는 소년'으로 알고 있었다. 어쨌든 영화에 대한 인상은 나쁘지만은 않았다. 책에서 <오만과 자비>로 등장하는 자와 <바지 입은 여자>의 화장실 비역신은 물론 불쾌했었지만, 한일남 역의 문성근이 살던 집과 비내리는 풍경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었다.

그 후로 종종 장정일의 원작을 꼭 읽어보고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디에 바나나 마약이 나오는가 하는 것이었다. 을유문화사의 아리송한 번역본에도 없었고 민음사 세계문학 번역본에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책을 읽고서야 사실은 울리히 플렌쯔도르프의 <젊은 베르테르의 새로운 슬픔>을 내가 잘못 들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의 경우 작가 장정일에 대해서는 그의 소설 작품 보다 시에 익숙하고, 그의 성장 과정에 대한 몇몇 단어와 이미지들이 익숙하다.  여호와의 증인, 중학교 졸업, 소년원, 삼중당문고, 거짓말, 재판, '뇌가 있습니다/없습니다', 등등.

그는 콜린 윌슨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웃사이더>라는 역작을 발표한 후 점점 이상해지더니 미스테리와 왜곡된 성에 천착하는 기인. 그 역시 제대로된(혹은 제도화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독학에 의존하여 방대한 지식을 쌓은 후 역작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 길로 들어선 후에 재능을 낭비한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기존 권위에 대한 강력한 반발뿐만 아니라, 그 권위에 대항하는 운동권에 대한 과도한 비아냥이 결국 그를 성에 대해 천착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장정일은 언제나 나에게 신선함을 주고, 그의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일그러진 느낌을 줄 망정, 그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받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은 후 박일문은 뭐하고 있나 궁금했다. 뇌가 있느니 없느니 장정일에게 양 싸다귀를 맞은 후 잠잠해졌다가 그 후로 한 번도 그의 책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혼인 빙자 간음으로 실형을 살았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충격적이다. 

<베끼기의 세 가지 층위>와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표절의 판단 근거로 명시성을 들먹이는 부분을 한껏 비판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 동감하는 바이지만, 페스티쉬를 들먹이며 이인화를 옹호하는 부분은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박일문의 반박이 궁금했었는데 그는 엉뚱하게도 명예회손 운운하며 법에 호소했다. 그런 그가 법 집행을 받고 있으니 아이러니 하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9387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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