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어린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의 기대 속에 주시험을 치른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2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한 한스는 그곳 생활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한스는 유약한 성격 때문에 신학교 생활이 주는 압박을 잘 견뎌내지 못했고, 친구 하일너와의 우정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된다. 더 이상 모범 학생이 아니게 된 한스는 선생들에게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고 친구 하일너 마저 학교를 쫓겨나게 되자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

신경쇠약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한스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죽음을 생각하던 한스가 잠시나마 엠마라는 여성 덕분에 삶의 활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한스를 유희의 대상으로 여겼을 뿐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음이 금새 드러난다.

한스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기계공이 되기 위해 견습공이 된다. 친구 아우구스트 등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한 날 밤 한스는 물에 빠져 죽는다. 그가 자살한 건지, 아니면 실족하여 물에 빠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초기작으로 자전적인 소설이다. 헤세는 열 세살 난 해에 부모 곁을 떠나 라틴어 학교에 들어갔고, 이듬해에는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인 재질과 신학교의 인습에 얽매인 생활이 서로 맞지 않아 무단이탈을 하기도 하고 신경쇠약에 걸려 휴학을 하기도 하다가 결국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 후 고향에 돌아온 헤세는 견습공으로 일하며 나름대로 적응하려 하지만 우울증에 걸려 여러 해 동안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아주 어렸을 적에 계몽사 문고에 이 책이 있었다. <수레바퀴 밑> 이라는 이름의 축약본이었는데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던 한스가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적응을 못하고 돌아와 자살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제 목이 너무 심하게 부어서 병원에 갔더니 독감이라고 했다. 작년 이맘 때에도 독감에 걸려 <보호주의자들>을 읽었었는데...... 의사가 회사에 갖다 내라며 소견서를 써 주었는데 5일간 격리가 필요하다고 써 놓았다. 덕분에 미뤄둔 일이 쌓여 있는데 원치 않는 휴식 시간을 갖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내와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강의를 하며 근근히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20대 초반에는 시를 썼고 소설에서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한 번 바닥을 드러낸 문학적 감수성은 되살아나주지 않았다.

배롱나무가 있는 폐교에서 우연히 시우라는 이름의 여성을 만나게 된 '나'는 그녀가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의 아버지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선 대처로 나가야 한다'는 어머니 말에 이끌려 험한 부두일을 하다가 알코올중독이 된 끝에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꼭 대학엘 가야 겠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대학 보내기 위해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다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시우의 아버지는 그녀가 스무 번 째 생일을 맞는 날 사라졌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 찾기에 흥미를 갖는다.

 

시우가 스무 번 째 생일을 맞는 날,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가 눈이 내리는 거리를 걸어 오다가 급히 되돌아 간다. 시우는 아버지가 생일선물을 깜빡했기에 가지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아버지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사라지자 어머니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든 결정을 어머니 마음대로 하며 아버지를 압도해왔기에 그런 어머니의 변모는 세 딸들에게 의외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한달 후 죽고 만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시자 경제적 압박이 세 딸들을 찾아온다. 아버지는 회사 공금에 손을 댔다고 했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회사는 가진 돈보다 빚이 더 많은 허울뿐인 회사였다. 차압이 들어오고 지하 단칸방으로 밀려나자 큰언니가 남자친구와 미국으로 떠나겠다면서 두 동생과 의절을 선언한다. 둘째 언니와 시우 역시 아버지 친구인 전무에게 돈을 타쓰고 몸을 주는 과정에서 갈라선다. 가족은 조각조각 해체된다. 시우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고 연극일을 하는 한편 아버지를 찾으러 다닌다. 강경에서 아버지를 봤다는 말에 내려왔다가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친구 텁석부리가 특이한 사람을 소개해준다. '선기철소금'을 파는 사내였는데 김승민이라고 했다. 그는 한대수에 빠져 지냈다면서 노래를 곧 잘 했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듯 했다. 가족은 절름발이 아내, 곱사등이 딸과 실명해가는 막내 딸, 운신을 못하는 처남이 있었다. '나'는 그가 한대수에 빠져 지냈다는 시기가 김승민 나이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따로이 조사를 해본 결과 선명우의 아버지 이름이 선기철임을 알게 된다. 김승민은 선명우가 분명해보였다. 얼마 후 김승민, 아니 선명우가 '나'에게 모든 사정을 이야기해준다. 

 

선명우의 아버지는 염부였다. 큰형은 망나니였고, 작은형은 폐병을 앓았다. 아버지는 선명우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공부를 시켰다. 선명우가 성공하면 아버지와 큰 형, 작은 형 모두를 책임져야 할 것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아버지가 걱정 되어 100리 길을 걸어 집에 왔는데, 아버지는 살기가 번득이는 눈으로 선명우를 쫓아낸다.

그 날 왔던 길을 되집어가던 선명우는 노상에서 기진하여 쓰러지고 만다. 선명우를 구해 준 것은 중학교 3학년 되는 세희였다. 신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는 선명우에게 죽을 먹이고 재워준 그 날 밤에 공교롭게 세희의 할머니가 죽는다. 세희와 함께 할머니 임종을 지키고 상을 치룬 후 세희는 젓갈 공장을 하는 친척집에 맡겨진다. 둘은 종종 왕래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 여름, 젓갈 숙성실에 더위를 피해 들어 갔던 둘이 갖히고 만다. 숙성실 온도가 0도 내외였기에 세희가 자신의 동복 교복을 벗어 선명우에게 입힌다. 그날 본 세희의 늘어나고 헤어진 메리야스가 선명우의 뇌리에 각인된다.

한동안 세희와의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는 봉제 공장 일을 하고 있었다. 선명우는 그녀를 찾아가 단추를 달아주거나 실밥을 뜯어주는 일을 하면서도 기쁨을 느낀다. 따로이 데이트라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선명우를 쫓아다니던 혜란이 사단을 일으킨다. 갑부집 딸 혜란은 자신이 봉제일을 하는 여자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에 못견뎌했다. 선명우의 실수로 생긴 아이가 빌미가 되어 선명우는 혜란과 반강제로 결혼하게 된다. 그후로 세희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대학 졸업식 날 아버지가 염전에서 쓰러져 돌아가신다. 아이러니하게도 소금밭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몸에서 염분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그후로 혜란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선명우는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 사우디에서 5년을 돈을 벌었고, 음료회사에서 소소한 부정을 저질러 가며 승진을 했다. 혜란과 딸들의 소비 규모는 점점 커져만 갔고, 선명우는 자신이 '통장'에 불과하고 혜란과 딸들이 자신의 몸에 '빨대'를 꽂고 있다고 느낀다.

시우가 스무번째 생일을 맡던 날, 생일선물을 깜빡하고 왔기에 되돌아가다가 선명우는 소금을 실은 트럭이 김승민을 덮치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는 잊고 지냈던 자신의 아버지 죽음을 떠올렸고, 김승민이 결국 운신을 못하게 되자 자신이 김승민으로 살아가게 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선명우는 자본주의적인 강압으로부터, 그 생산성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쓴 이야기를 더듬더듬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희누나를 찾아간 이야기도.

세희누나는 이미 죽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 남은 혈육인 딸이 그에게 상자를 건낸다. 상자 속에서는 선명우가 세희누나에게 보냈던 편지들과, 선명우가 봉제 공장에서 단추를 달아주었던 바늘 등속이 들어 있었다. 세희누나의 딸은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고, 세희누나는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시우가 나에게 아이를 가졌다고 말한다. 나는 시우에게 결혼을 하고 싶지도, 아버지가 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시우는 아이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느 날 선명우의 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빈대떡을 굽고 하던 잔치가 벌어졌는데 파장 때 얼핏 시우의 모습이 '나'의 눈에 띈다. 시우는 언젠가부터 선명우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듯 싶었다. 그리고 나의 팔짱을 끼어오는 화해의 몸짓을 한다.

 

------

 

소설 속에는 세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시간적으로 가장 앞선 이는 선기철이다. 선명우의 아버지 선기철은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해 염전에서 일하다가, '염분이 부족해져' 죽고 만다.

다음으로 '나'의 아버지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아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라면 힘든 육체노동을 감내하라'는 어머니의 채근에 못 이겨 대처로 나갔다가 알콜 중독이 되어 언뜻하면 어머니를 패다가 결국 사고로 죽고 만다. 아버지는 '나'에게 '꼭 대학에 가야겠냐' 라고 묻는다. 그 말이 내내 '나'에게는 꼭 '아버지를 죽여서라도 네가 출세길을 가야겠니'로 들렸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선명우가 있다. 선명우 역시 앞선 두 아버지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길을 걷는다. 아버지라는 명칭이 주는 막연한 책임감을 곧 당위로 내면화시켜 소소한 부정도 저지르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김승민의 교통 사고가 일어나고 가족을 떠나게 된다. 특이한 점은 작가가 선명우를 끝내 되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빨대'와 '깔때기' 이야기를 하며 자본의 폭력적 구조가 가족 내에 어떻게 침투해있는지를 그려보인다. 자본의 폭력적인 힘은 '가족'이라는 당위의 영역을 파괴한지 오래이므로 새삼 선명우가 가족으로 돌아갈 여지는 없어 보인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75102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럽 정크
최대환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최대환의 중편 연작소설 <클럽 정크>는 각각 독립된 세 편의 중편 소설이 서로 교차하고 간섭한다. 소설 속에는 총 세 명의 '그'가 등장하는데 '그'가 보고 만나고 관계 맺는 인물들이 다른 작품에서 각자의 스토리를 갖고 등장한다.

 

첫 번째 <화면 속으로의 짧은 여행>의 주인공 '그'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으로 어쩌다 보니 비틀즈 만을 듣게 되었고 성적으로는 한정적 불능이다. <공각기동대>, <아키라>, <에반게리온> 등 만화 속 세계가 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현실적이다. 따라서 그는 <에반게리온>의 레이에게는 불능이 아니지만 현실 속의 '긴 머리 여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불능이다. 클럽 정크에서 술을 마신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단발 머리 여자를 만나는데 '그'는 그녀를 레이라 부르며 함께 지낸다. 그녀가 떠나게 되자 '그'는 자신이 화면 속으로 짧은 여행을 했다고 느낀다.

 

두 번째 <그의 삶의 1920년대>의 주인공 '그'는 고등학교 과학 선생이며 동성애자이다. '그'가 사랑한 남자는 이미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그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SadMouse라는 아이디를 갖고 있는 그는 자신의 방에 출구 없는 미로를 설치하고 그 안에 로봇 쥐를 풀어 놓았다. 쥐는 출구를 찾을 수 없어 매번 미로 속을 헤매일 뿐이었고, '그'는 어쩌면 쥐가 미로를 벗어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쌍둥이처럼 차려입은 두 명의 가출 소녀를 만난 '그'는 그녀들이 동성애자이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함께 지내기로 한다. 도시를 떠나기 전 BeAlone이라는 아이디를 갖고 있는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낯선 도시에 스며들어 살아가는 법>이라는 책을 번역하고 있었고, SadMouse에게 끌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녀와 자는 것에 흥미가 없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SadMouse는 번역한 초안을 '그'에게 건낸다. 낯선 도시로 떠나기 전 '그'는 BeAlone에게 작별인사를 보낸다.

 

세 번째 <그의 꽃, 그녀의 꿈, 마술 같은>의 '그'는 마술사이다. 사랑하던 그녀가 권태를 이기지 못해 떠나간지 1년째 되던 날, '그'는 클럽 정크에 가서 술을 마시고 여자를 만난다. 여자와 술을 마신 후 '그'는 여자에게 꽃을 만들어 건낸다. 얼마 후 여자가 '그'를 찾아와 꽃의 수명이 다했다며 새로운 꽃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사고로 죽은 애인이 꿈에 나타나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의 꽃이 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떠나갔던 그녀에게서 전화를 받은 '그'는 자신이 이제 이 도시에서 붙박여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동원의 해설이 무척 흥미롭다. 흔히들 아날로그의 세계를 인간미 넘치는 세계로, 디지털의 세계를 비정하고 냉혹한 세계로 인식하는데 김동원은 디지털의 세계에서야 말로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를 하나 된 전체로 인식했던 아날로그 기술에 맞서 똑같은 세계를 부분들의 집합체로 보기 시작하면서 하나 된 전체로서의 아날로그 세계를 분할하고 해체해버렸던 디지털 기술의 힘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현대 문명의 주된 조류로 정착해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인식 한계라는 바탕 위에서 그 자유를 누린다.

 

흥미롭고, 공감가는 견해다. 특히 사진에 수록된 흑백 사진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까만 점인데 단지 그 크기만을 크거나 작게 하여 회색을 비롯한 농암을 표현한다는 예시는 탁월한 비유였다.

 

<그의 꽃, 그녀의 꿈, 마술 같은> 中 권태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아서 적어 본다.

 

실상 권태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못 견딜 만큼 벗어나고 싶지만 완전히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이 도시에 대해 느끼는 권태 또한 따지고 보면 이 도시에서의 자기 모습, 자기 삶에 대해 느끼고 있는 것......다른 도시로 옮겨간다고 해도 곧 그곳에 권태를 느끼게 될 것.

 

거듭 느끼는 것이지만 사물에 대한 인식의 밑바닥에는 언제가 자기애라는 침전물이 고여있는 것 같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72791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층의 사각지대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7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김수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월의 어느 날, 팰리스 사이드 호텔 3401호실에서 호텔의 사장 구주 마사노스케가 살해당한채 발견된다. 팰리스 사이드 호텔은 구주 마사노스케의 선견지명과 공격적인 투자 덕분에 업계에서 선두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는데, 최근 도쿄 로열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도쿄 로열은 팰리스 사이드를 압도할 정도의 초고층 빌딩을 건설한 후 항공사와 여행사를 경영에 참가시켜 단체 고정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에 구주 마사노스케는 미국 최대의 호텔업체 크레이튼과의 업무 제휴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 하였다. 

그러던 시점에 구주 마사노스케가 살해당한 것인데, 그가 살해당한 객실 3401호실은 밀실이었다. 객실에는 총 4개의 키가 존재하는데 고객이 가지고 있는 키, 메이드 주임이 해당 층만을 열 수 있는 '플로어 패스키', 프런트에 보관되는 '스페어 키', 마지막으로 지배인이 보관하며 호텔의 모든 방을 열 수 있는 '그랜드 마스터 키'가 그것이다. 하지만 살해당한 방 안에 키는 놓여 있었고, 나머지 세 개의 키도 사용된 흔적이 없었으므로 사건은 초동부터 난황을 보인다.

구주 마사노스케의 비서 아리사카 후유코만이 밀실 트릭을 실현할 수 있는 용의자였으나 그녀에게는 철벽같은 알리바이가 있었다. 바로 수사1과 형사 히라가와 밤을 지세웠다는 것이다. 히라가는 자신이 그녀의 알리바이를 보증하는 증인으로 이용되었음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뒤에 어른거리는 공범의 존재를 느끼며 괴로워한다. 

아리사카 후유코에 대한 경찰의 알리바이 깨기가 진행되던 중 이번에는 그녀가 후쿠오카에서 살해당한다. 그녀는 누군가에 의해 독극물에 중독되었는데 화장실 변기에서 찢어진 종이 조각이 발견된다. 종이는 글씨가 번져 잘 알아볼 수 없었으나 청첩장 내용의 일부가 분명해보였다. 이를 통해 그녀를 살해한 자의 이름이 '구니오'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동종 업계 종사자 중 동일 인물을 가진 사람을 추려내던 수사팀은 도쿄 로열에서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는 하시모토 구니오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알리바이가 있다. 사건 당일 다른 호텔에 체크인과 체크아웃한 기록이 있는 것이다.

 

<고층의 사각지대>는 1969년도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으로 모리무라 세이치의 출세작이다. 그의 등장으로 일본 미스터리계의 3회 붐이 완성되는데, 1회는 전후 요코미조 세이시의 본격미스터리 붐이고, 2회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사회파 미스터리 붐이며, 마지막 3회가 모리무라 세이치의 등장이다. 

모리무라 세이치는 데뷔 초기 현대 사회의 비정한 일면을 날카롭게 파해치며 본격미스터리 계열의 작품을 써냈다. <고층의 사각지대>는 그가 실제 호텔맨으로서 10여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작품인데 호텔 업계 종사자들이 내부 사정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항의하는 해프닝 마저 있었다고 한다.

 

작품 중 범인은 비교적 일찍 특정되지만 문제는 밀실트릭과 알리바이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을 연상시킬 정도로 형사들은 우직하고 성실하게 트릭과 알리바이 붕괴를 위해 발로 뛰며, 그 결과 장애물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간다. 밀실트릭은 열쇠에 달려 있는 패찰을 아리사카 후유코가 바꿔치기 하여 구주 마사노스케와 메이드의 눈을 일시 속인다는 비교적 명쾌한 설명으로 해결이 되지만, 하시모토 구니오의 알리바이는 수많은 장치들이 우직한 형사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수사팀은 도쿄에서 후쿠오카까지의 지리적 거리를 11시간 동안 왕복하며 살인을 해야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 비행기라는 운송 수단을 이용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승객 명단에 집착하지만 명단에 하시모토는 없다. 우회 비행기편을 조사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해결이 되지 않는다. 타이완에 가서 아무런 볼 일도 보지 않고 곧바로 일본 국내선으로 환승을 한다는 허를 찌르는 범인의 행동과 숙박 카드 트릭 등 본격물 마니아를 만족시켜줄 다양한 장치들이 장애물 경주의 허들처럼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69982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벽에서 빠져나온 여자
원재길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o 삼촌의 좌절과 영광

 

꽤 이름난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가 일하던 삼촌은 철도청 고위 간부의 눈에 띄여 그 집의 집사로 스카웃 되어 들어간다. 어느 날 그 집 사모님이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며 삼촌에게 별 생각 없이 꿈풀이를 청했는데 삼촌의 해몽대로 일이 흘러가 목숨을 구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 삼촌은 관상은 물론이고 수상, 족상까지 두루 보며 용한 점쟁이 노릇을 한다. 자연 고관대작들의 면담 요청이 끊이지 않았고, 맞선 자리도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맞선 자리에 나온 여자 대신 그 여자의 어머니에게 반해 일시 부적절한 삶을 살기도 하나 제 궤도로 돌아온 뒤로는 한동안 잠잠하게, 고위층들의 운세나 점쳐 주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철도청 고위 간부의 어린 딸과 눈이 맞아 사랑의 행각을 벌이게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각이 되어 생이별을 경험한다. 딸은 자살하고, 삼촌은 남미로 훌쩍 떠나간다.

고국에 방문한 삼촌이 식사를 하던 도중 레스토랑 웨이터에게 패악을 떠는 노부인을 보더니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칠레에서 오신 유명한 예언가라는 말에 노부인은 삼촌 앞에 와서 미래를 알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 삼촌은 노부인의 남편이 몇 살인지부터 시작해서 소소한 일들을 맞춰나가더니 급기야 그 노부인의 딸이 자살한 사건까지 덤으로 알아 맞추고, 조만간 호되게 나가 떨어질 것이라 예언한다. 아니나 다를까 노부인은 출구를 향해 허둥지둥 달려가다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o 벽에서 빠져나온 여자

 

한 사나이가 벼락을 맞은 후 없던 능력이 생겨났는데, 벽을 마음대로 통과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사내는 자신의 능력을 신기해하며 여자 목욕탕을 드나들다가 이것이 시들해지자 부자들이 사는 집을 돌아다녔고, 음악회나 미술 전람회를 공짜로 구경하기도 하였다. 전국을 구경 다닌 이후에 사내는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탄 후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호텔이건 레스토랑이건 공짜로 이용했다.  

사내가 어느 날 해장국이 간절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가 우연히 한 여자가 <벽에서 빠져나온 여자>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 가는 것을 보았다. 사내는 여자에게 자신이 몇 년동안 너무나 고독했다면서 책을 쓴 작가와 대화하면 뭔가 통할 것 같다면서 저자가 어디 사는지 아느냐 물었고, 여자는 자신이 책의 저자라고 밝힌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여자는 초능력에 시한이 있다고 말한다. 듣느니 처음인 얘기에 반신반의하는 사내에게 여자는 자신이 언젠가 세종문화회관에 갔다가 벽에 반쯤 끼인 사내를 보았는데 그 사내가 벽을 통과하던 중 능력이 사라져버려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자신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몰라 능력을 쓰지 않고 봉인해왔는데 최근에 벽에 부딪힌 경험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내는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벽을 향해 걸어갔고 두 번 다시 바깥 세상으로 돌아나오지 않았다.

 

원재길의 소설집에 수록된 아홉 편의 이야기는 대부분 기묘한 이야기들이다. <삼촌의 좌절과 영광> 같은 경우 '삼촌의 예지 능력이 기실 사람들이 바라는 바에 기대어 적절히 짜맞춘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는 식으로 설명하려면 못할 바도 아니지만, 이야기들이 모두 현실에서 조금씩 어긋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가령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작가들이 별안간 폭로전과 싸구려 자기고백에 빠져든다든가(신종 바이러스에 관한 보고서), 손이 주인을 배반하여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든가(손), 먼지에 알레르기 반응을 심하게 일으키는 여인이 먼지에 쌓여 죽어간다든가(먼지의 집) 하는 식이다. 또한 주체 박약이라는 신경증을 앓고 있는 화자가 은행원과 여급의 이중생활을 완벽히 수행하는 여인을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되는 블랙 코미디인 <싸락눈>, 어느날 홀연히 나타나 자취 없이 사라진 '솜다리' 여인에 관한 이야기 <별>, 어머니 대신 여선생에게서 모성을 느낀 이후로 여성의 원형을 찾아 한평생을 헤메이는 <새벽 편지>가 실려 있다.

 

작품집 중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마음을 끄는 작품은 <물 속의 집>이다. 

남편이 벌인 모종의 사건이 범법으로 판가름나자 여자와 아이는 둘이서 텐트촌을 떠돌게 된다. 어느 날 여자가 잠결에 칭얼대는 아이의 입을 막아 조용히 시켰는데, 다음 날 깨어보니 아이가 죽어 있었다. 여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집을 떠올리고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집은 여자가 마을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몰되어 지금은 없다. 여자는 허탈한 상태에서 허청대며 길 옆 풀숲에 있다가 낚시꾼 두 명에게 윤간을 당한다. 여자는 트렁크를 들고 물 속에 있는 할머니의 집으로 걸어들어간다. 잠시 후 물 속에 잠긴 트렁크에서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나온다. 할머니가 여자와 아이를 반기고, 여자는 평온했던 과거 할머니 집에서 맞던 물가의 아침 나절을 떠올린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물 속의 집>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비정하게 여인의 동선을 추적한다. 낚시꾼들이 버린 피라미들이 땅바닥에서 썩어가는 모습은 여자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표징처럼 느껴진다. 그녀가 유일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할머니집 이지만 그곳은 이미 수몰된지 오래다. 돌아갈 곳이 없어진 그녀가 물 속으로 걸어들어가며 떠올린 평온한 광경은 환상일 뿐이다. 

작품은 어찌 보면 끔찍하다. 우리가 떠나온 그곳은 이미 수몰되었고, 우리가 한 행동이란 범법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내 손으로 죽이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기껏해야 윤간의 대상이 될 뿐이며, 스스로 죽음으로 걸어들어가며 환상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 뿐이라면, 지금 이곳이 지옥이 아닌가.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66920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