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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내와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강의를 하며 근근히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20대 초반에는 시를 썼고 소설에서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한 번 바닥을 드러낸 문학적 감수성은 되살아나주지 않았다.
배롱나무가 있는 폐교에서 우연히 시우라는 이름의 여성을 만나게 된 '나'는 그녀가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의
아버지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선 대처로 나가야 한다'는 어머니 말에 이끌려 험한 부두일을 하다가 알코올중독이 된 끝에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꼭 대학엘 가야 겠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대학 보내기 위해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다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시우의 아버지는 그녀가 스무 번 째 생일을 맞는 날 사라졌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 찾기에 흥미를 갖는다.
시우가 스무 번 째 생일을 맞는 날,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가 눈이 내리는 거리를 걸어 오다가 급히 되돌아 간다. 시우는 아버지가 생일선물을
깜빡했기에 가지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아버지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사라지자 어머니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든 결정을 어머니 마음대로 하며 아버지를 압도해왔기에 그런 어머니의 변모는 세
딸들에게 의외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한달 후 죽고 만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시자 경제적 압박이 세 딸들을 찾아온다. 아버지는 회사 공금에 손을 댔다고 했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회사는 가진 돈보다
빚이 더 많은 허울뿐인 회사였다. 차압이 들어오고 지하 단칸방으로 밀려나자 큰언니가 남자친구와 미국으로 떠나겠다면서 두 동생과 의절을 선언한다.
둘째 언니와 시우 역시 아버지 친구인 전무에게 돈을 타쓰고 몸을 주는 과정에서 갈라선다. 가족은 조각조각 해체된다. 시우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고 연극일을 하는 한편 아버지를 찾으러 다닌다. 강경에서 아버지를 봤다는 말에 내려왔다가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친구 텁석부리가 특이한 사람을 소개해준다. '선기철소금'을 파는 사내였는데 김승민이라고 했다. 그는 한대수에 빠져 지냈다면서
노래를 곧 잘 했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듯 했다. 가족은 절름발이 아내, 곱사등이 딸과 실명해가는 막내 딸, 운신을 못하는 처남이 있었다.
'나'는 그가 한대수에 빠져 지냈다는 시기가 김승민 나이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따로이 조사를 해본 결과 선명우의 아버지 이름이
선기철임을 알게 된다. 김승민은 선명우가 분명해보였다. 얼마 후 김승민, 아니 선명우가 '나'에게 모든 사정을 이야기해준다.
선명우의 아버지는 염부였다. 큰형은 망나니였고, 작은형은 폐병을 앓았다. 아버지는 선명우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공부를 시켰다. 선명우가
성공하면 아버지와 큰 형, 작은 형 모두를 책임져야 할 것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아버지가 걱정 되어 100리 길을 걸어 집에 왔는데, 아버지는
살기가 번득이는 눈으로 선명우를 쫓아낸다.
그 날 왔던 길을 되집어가던 선명우는 노상에서 기진하여 쓰러지고 만다. 선명우를 구해 준 것은 중학교 3학년 되는 세희였다. 신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는 선명우에게 죽을 먹이고 재워준 그 날 밤에 공교롭게 세희의 할머니가 죽는다. 세희와 함께 할머니 임종을 지키고 상을 치룬 후
세희는 젓갈 공장을 하는 친척집에 맡겨진다. 둘은 종종 왕래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 여름, 젓갈 숙성실에 더위를 피해 들어 갔던 둘이 갖히고 만다. 숙성실 온도가 0도 내외였기에 세희가 자신의 동복 교복을 벗어
선명우에게 입힌다. 그날 본 세희의 늘어나고 헤어진 메리야스가 선명우의 뇌리에 각인된다.
한동안 세희와의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는 봉제 공장 일을 하고 있었다. 선명우는 그녀를 찾아가 단추를 달아주거나 실밥을
뜯어주는 일을 하면서도 기쁨을 느낀다. 따로이 데이트라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선명우를 쫓아다니던 혜란이 사단을 일으킨다. 갑부집 딸 혜란은 자신이 봉제일을 하는 여자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에 못견뎌했다.
선명우의 실수로 생긴 아이가 빌미가 되어 선명우는 혜란과 반강제로 결혼하게 된다. 그후로 세희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대학 졸업식 날 아버지가 염전에서 쓰러져 돌아가신다. 아이러니하게도 소금밭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몸에서 염분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그후로 혜란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선명우는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 사우디에서 5년을 돈을 벌었고, 음료회사에서 소소한 부정을 저질러
가며 승진을 했다. 혜란과 딸들의 소비 규모는 점점 커져만 갔고, 선명우는 자신이 '통장'에 불과하고 혜란과 딸들이 자신의 몸에 '빨대'를 꽂고
있다고 느낀다.
시우가 스무번째 생일을 맡던 날, 생일선물을 깜빡하고 왔기에 되돌아가다가 선명우는 소금을 실은 트럭이 김승민을 덮치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는 잊고 지냈던 자신의 아버지 죽음을 떠올렸고, 김승민이 결국 운신을 못하게 되자 자신이 김승민으로 살아가게 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선명우는 자본주의적인 강압으로부터, 그 생산성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쓴 이야기를 더듬더듬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희누나를 찾아간 이야기도.
세희누나는 이미 죽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 남은 혈육인 딸이 그에게 상자를 건낸다. 상자 속에서는 선명우가 세희누나에게 보냈던
편지들과, 선명우가 봉제 공장에서 단추를 달아주었던 바늘 등속이 들어 있었다. 세희누나의 딸은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고, 세희누나는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시우가 나에게 아이를 가졌다고 말한다. 나는 시우에게 결혼을 하고 싶지도, 아버지가 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시우는 아이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느 날 선명우의 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빈대떡을 굽고 하던 잔치가 벌어졌는데 파장 때 얼핏 시우의 모습이 '나'의 눈에 띈다. 시우는
언젠가부터 선명우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듯 싶었다. 그리고 나의 팔짱을 끼어오는 화해의 몸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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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는 세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시간적으로 가장 앞선 이는 선기철이다. 선명우의 아버지 선기철은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해 염전에서
일하다가, '염분이 부족해져' 죽고 만다.
다음으로 '나'의 아버지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아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라면 힘든 육체노동을 감내하라'는 어머니의 채근에 못 이겨
대처로 나갔다가 알콜 중독이 되어 언뜻하면 어머니를 패다가 결국 사고로 죽고 만다. 아버지는 '나'에게 '꼭 대학에 가야겠냐' 라고 묻는다. 그
말이 내내 '나'에게는 꼭 '아버지를 죽여서라도 네가 출세길을 가야겠니'로 들렸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선명우가 있다. 선명우 역시 앞선 두 아버지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길을 걷는다. 아버지라는 명칭이 주는 막연한 책임감을 곧
당위로 내면화시켜 소소한 부정도 저지르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김승민의 교통 사고가 일어나고 가족을 떠나게 된다. 특이한 점은 작가가 선명우를 끝내 되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빨대'와 '깔때기' 이야기를 하며 자본의 폭력적 구조가 가족 내에 어떻게 침투해있는지를 그려보인다. 자본의 폭력적인 힘은
'가족'이라는 당위의 영역을 파괴한지 오래이므로 새삼 선명우가 가족으로 돌아갈 여지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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