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맨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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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쿄의 고급 아파트에서 헬스센터 경영자의 머리 없는 시체가 발견된다. 욕조의 물을 분석한 결과 장기보존액 성분이 발견되었고 신체의 절단면은 메스로 그은 듯 깨끗했다. 그리고 수술할 때 사용되는 라텍스 장갑의 흔적도 발견된다. 얼마 뒤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되는데 이번에는 몸통이 없었고, 연이어 왼팔과 오른팔 그리고 왼다리와 오른다리가 사라진 시체가 발견된다. 사라진 신체 부위를 모두 합하면 한 사람분이 되는 기묘한 사건이었다.

경시청은 가부라기를 수사본부의 대행으로 지목하고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한다. 가부라기의 옆에는 행동파인 마사키와 최고학부를 나온 엘리트 히메노, 그리고 과학수사 전문 프로파일러 사와다가 함께 한다.


한편, 한 남자가 병상에서 깨어난다. 그의 기억은 온통 뒤죽박죽이었고 몸통과 팔, 그리고 다리는 남의 것을 이어붙인 양 부자연스러웠다. 자신을 다카사카 시온이라 소개한 의사는 남자에게 만능세포를 이용하여 신체를 붙여주었다고 한다. 남자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재활을 시작한 남자가 만난 유일한 환자는 시즈라는 열여덟의 소녀뿐. 하지만 그녀는 곧 퇴원하고, 남자는 그녀와 이메일을 주고 받는다. 그 과정에서 신체 일부가 없어져버린 기묘한 살인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피해자들 모두가 과거에 한 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의 손자들이었다는 것도 알게된다.

고심 끝에 남자는 자신을 '데드맨' 이라 칭하며 가부라기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메일을 받은 가부라기는 큰 의문에 빠지고 만다. 남자의 말은 조리가 있었고 신뢰할만 했지만, 그가 기억하고 있는 주변적인 일들은 모두 40년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도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으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면서도 대가의 기개에 눌리지 않고 우직하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점성술 살인사건>은 점성술에 사로잡힌 화가가 자신의 딸들을 이용해 완벽한 존재를 만들려는 광기에 사로잡히고, 화가가 남긴 수기대로 훼손된 딸들의 시체가 일본 각지에서 발견되는 내용이다. 40여년간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이 미타라이 기요시에 의해 해결되는 내용이다. '아조트' 라는 명칭이나, 40년의 시간 역시 <점성술 살인사건>에 대한 오마주이다.


소설 속에서 가부라기는 본능적으로 애브덕션이라는 추론법을 사용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불가해한 현상 A가 관찰되었는데 어떤 가정 B를 세우면 A는 당연한 귀결이 된다. 그렇다면 가정 B는 옳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인데, 실제 사례로는 해왕성의 발견을 들 수 있다. 천왕성의 궤도에서 설명할 수 없는 흔들림이 관측되자 프랑스 천문학자인 위르벵 르베리에와 영국 천문학자 존 애덤스는 '천왕성 바깥쪽에 미지의 행성이 존재하고, 그 인력이 천왕성의 궤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 가정하고, 가공의 행성 궤도를 정확하게 계산해낸다. 이 가설은 독일 천문학자 요한 갈레가 두 사람이 계산한 궤도 위에서 해왕성을 발견하여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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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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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시자(幻視者)로 일컬어진 불세출의 화가 후지누마 잇세이는 생전에 자신이 본 환상을 화폭에 담았는데 공개되지 않은 유작 <환영군상>은 마니아층 사이에서 풍문으로만 떠도는 걸작이었다.

그에게는 후지누마 기이치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는데 십여 년 전 자동차 사고로 얼굴과 양손을 크게 다친 후 외따로 떨어진 곳에 수차관이라는 저택을 짓고 아버지의 작품을 대부분 되사들였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 아버지와 연고가 있던 마니아들에게만 작품을 공개했다.

기이치의 아내는 이제 갓 열아홉살이 된 유리에라는 앳된 여성이었는데 아버지의 제자 시바가키 고이치로의 딸이었다. 얼굴을 하얀 가면으로 가리고 휠체어에 탄 마흔줄의 기이치와 앳된 아내는 누가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었다.

작품 공개를 이어가던 1985년, 이 수차관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가정부 네기시 후미에가 탑에서 떨어져 사망했고, 후루카와 쓰네히토라는 중이 사라졌으며, 마사키 신고라는 잇세이의 제자가 토막난 채 난로에서 발견된 것이다. 시체가 마사키 신고라는 것은 잘리워진 채 난로 앞에 놓여있던 약지로 알 수 있었다. 경찰은 막연히 사라진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살인범이라 단정하고 사건을 종결시킨다.

1986년, 작품을 공개하기로 한 시기에 시마다 기요시라는 불청객이 찾아든다. 그는 경찰의 지인으로 후루카와의 친구라고 했다. 그는 후루카와가 결백하다는 전제 하에 1985년도에 일어난 사건을 다시 조사한다. 그러나 그 해에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통근 가정부 노자와 도모코가 목이 졸려 살해당고고, 유리에의 방에서 미타무라 노리유키가 망치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기이한 구조의 저택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의 진범을 짚어내는 시마다 기요시와 미래를 예견한 그림 <환영군상>이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본격의 기수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에는 폭우나 폭설, 그리고 외따로 떨어진 기이한 저택이 등장한다. 그 후 수수께끼 풀이를 위한 오래된 수법을 여과 없이 전개하는데, 본격물은 새로운 트릭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는 약점은 있지만 밀실 트릭을 좋아하는 고정팬들이 있다는 장점도 있다. <수차관의 살인>은 미스터리 애독자라면 중반부 즈음에는 범인을 눈치챌 것이다. 가면과 바꿔치기 트릭은 오래된 트릭 중 하나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495698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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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시티 민음사 모던 클래식 17
레나 안데르손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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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덕 시티에서는 오직 JvA 식품에서 만든 음식만 먹을 수 있다. JvA의 사장은 존이라는 인물로 덕 시티에서 무제한의 권력을 누렸고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그는 기름에 튀기고 설탕을 듬뿍 바른 고칼로리 식품을 덕 시티에 무제한 공급했고, 사람들은 이를 소비하며 점점 거대해져갔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덕 시티는 에이헙 작전이라 부르는 효율적인 군사 행동을 통해 체지방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즉시 연행하여 직업과 주거지를 빼앗고 강제 다이어트를 시키기 때문이다. 흰고래 살인범이라는 악당이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는데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불안 요소였지만 어쨌든 덕 시티는 평화로운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존의 하나뿐인 조카 도날드 D는 존의 공장에서 단순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갔다. 식사는 상품화되기 어려운 불량품을 그때 그때 먹어치우는 것으로 대신했고, 급료는 돈 대신 인슐린으로 받았다. 세 명의 조카가 전쟁터에 나가 있어 녀석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끔 울적해지는 것 외에 그럭저럭 단순한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심혈관이 막혀 쓰러진 날 도날드 D는 캐럴벨이라는 상냥한 아가씨를 만난다. 도날드 D는 심장 바이패스 수술을 받은 후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식습관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리고 캐럴벨에 대한 그리움이 데이지에 대한 사랑의 일그러진 형태라 속단한 후 데이지와 사귀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도날드 D가 데이지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증오가 자꾸 커져간다는 점이었다. 그 감정은 증오나 질투와 같은 명확한 감정이 아니었고 그저 막연한 짜증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짜증이 극에 달한 어느 날, 도날드 D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데이지를 목졸라 살해한 뒤 흰고래 살인범의 소행인 것처럼 꾸민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각되어 강제 다이어트를 시키는 수용소에 감금된다. 도날드 D의 조카 셋 중 둘은 뚱뚱해서 탱크에 오르지 못해 적군에게 사살 당한다. 대통령은 체지방을 줄여야 한다는 강박을 이기지 못해 자멸하고 만다.


패스트푸드가 만연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칼로리 과잉 상태에 노출된다. 그런데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일평생 다이어트를 강요받는다. 자본주의적 미의 기준은 평균치 이하의 체지방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덕 시티>는 비유가 독창적이지 못하고, 풍자는 다소 있지만 재치는 없는 밋밋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도날드 D라는 미국적인 캐릭터를 이용하여 '칼로리 과잉과 다이어트를 동시에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쓴 것은 좋은 시도였으나, 사실 이마저도 <슈퍼 사이즈 미>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다루었던 주제이고 작가도 거기서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 후의 전개는 너무나 빤하고 조잡하다. 심지어 작가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다루기 위해 '원자재의 고갈 및 설탕 산의 발견'이라는 희안한 내용을 끼워넣기까지 하는데, 전혀 작품에 녹아들지 못하고 생뚱맞은 느낌을 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해 씌어졌던 도식 소설의 현대판 버전쯤으로 느껴졌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의 공신력을 묻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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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 - 개정판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지음, 정회성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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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삼촌인 페트로스가 사망하면서 물려준 막대한 장서를 모두 헬레닉 수학학회에 기증하고 단 두 권만을 남겨둔다. 한 권은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오페라 옴니아> 제17권이었고, 또 다른 한 권은 독일에서 발행된 <수학과 물리학 월보>라는 잡지였다. <오페라 옴니아>는 삼촌 인생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골드바흐의 추측'이 담겨 있었고, <수학과 물리학 월보>에는 그의 인생의 종착점이 될 '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가 수록되어 있었다.


페트로스 삼촌은 어릴적부터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십대 초반에 이미 고향의 선생님들에게는 더 배울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이에 페트로스 삼촌은 할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유학길에 올랐고, 내로라 하는 수학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연구에 매진한다. 그들 중 유명한 사람을 꼽자면 리틀우드와 하디, 라마누잔 등이 있었다. 하디는 소수론(素數論)과 관련된 많은 문제를 해결한 영국의 수학자로 옥스퍼드에서 기하학을 강의했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순수 수학 교수로 재직한 사람이다. 라마누잔은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뛰어난 직관으로 연분수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고 리만급수, 타원적분, 초기하급수, 제타함수의 함수방정식 등에서 성취를 이루었다. 수학자들은 그가 오일러와 야코비 이래 필적할 상대가 없는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 시기에 삼촌은 미적분학에서 유의미한 연구를 발표하여 약간의 명성을 얻지만 자신의 천재성을 그저 그런 수학적 문제 해결에 소진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하디나 리틀우드의 공동연구 제안을 거절하고 수학적 난제 중 하나에 매달리기로 결심한다. 당시의 수학적 난제로는 '리만의 가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그리고 '골드바흐의 추측' 이 있었는데 마지막 '골드바흐의 추측'이 삼촌의 성정에 가장 맞았다. '골드바흐의 추측'은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일면 단순해보이는 가설이지만 소수의 문제가 수의 구조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나타내는 가설이었고 근본적이고도 창조적인 방법이 아니고서는 증명할 수 없어 보였다. 삼촌이 이후에 배운 해석학, 복소수학, 위상수학, 대수학 등은 '골드바흐의 추측'을 해결하기 위한 무기로 삼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그후로는 지루한 전쟁의 연속이었다. '골드바흐의 추측'을 해결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들이 동원되었고, 꽤나 의미있는 중간 성과도 얻었다. 하지만 페트로스 삼촌은 이것들을 발표하지 않았다. 남들이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골드바흐의 추측'을 해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수학에 있어서만은 최고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고를 가진 완벽주의자였다.

하지만 이러한 삼촌의 폐쇄적인 태도는 그의 몰락을 자초하게 된다. 뒤늦게 중간 성과를 발표했지만 이미 다른 수학자가 이를 발표한 뒤였고, 창조적 능력이 점점 쇠퇴하는 것이 느껴졌다. 수학자에게 가장 창조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시기는 이십대 초반까지이고, 대다수 수학자들도 그 시기에 중요한 성과를 내었다. 페트로스 삼촌은 서른을 넘기면서부터 끊임없는 악몽에 시달렸고, 종종 자신감을 상실하여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가 발표된다. 불완전성의 원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참인 명제일지라도 그것이 증명되지 못할 수도 있다'로 요약될 수 있다. 즉, 맞다고 가정하기로 한 공리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괴델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만약 괴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골드바흐의 추측' 역시 참일지라 증명되지 못할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증명 가능한지 아닌지는 선험적으로 알 수가 없다.

자신감을 상실한 페트로스 삼촌은 결국 체스와 약간의 정원일에 몰두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화자인 '나'의 도발에 최후의 불꽃을 태운 후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했다는 전화 통화를 끝으로 사망하고 만다.


고도의 추상을 더욱 정련하여 논리의 극점을 탐구하여 절대 진리에 다가가려는 수학자들의 모습은 이카루스를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인지 위대한 수학자들 중 다수가 정신병을 얻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이면서도 실존했던 수학자들을 절묘하게 활용하여 페트로스라는 인물이 마치 실제 인물인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책을 읽는 동안 우리가 배워 왔던 수학은 단지 '계산법'에 불과했고, 진짜 수학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수학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학문인지 깨닫게 되었고, 만약 이 책을 중학교 때 읽었더라면 장래 희망이 수학자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른이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한 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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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자락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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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시체 안치소에 한 구의 시신이 들어온다. 다섯 명의 특별 수사관이 아파트를 급습했고, 범법자들이 창문을 통해 지붕을 타고 도주하기 직전 발사한 총에 맞아 사망한 젊은이었다. 신문에는 '이름없는 도둑'으로 보도가 된다. 신분증은 가짜였고, 연고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뒤 보도된 기사에는 그의 현관 문패에 Carlo Nobodi라 씌여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아무런 뜻도 없었다. 카를로는 가장 흔한 이름이었고 노보디는 영어의 Nobody를 연상시켰다.   

그날 시체 안치소를 지키던 스피노는 시신이 누구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스피노가 시체로부터 얻은 것은 오래된 스냅 사진과, 반지 안에 세겨진 문구, 재킷에 수놓아져 있는 이름 정도였다. 처음 찾아간 곳은 죽은 청년을 지원했던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장은 스피노에게 '왜 그에 대해 알려고 하는지' 묻는다. 스피노는 "왜냐하면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답변을 한다. 스냅 사진과 반지의 문구, 재킷 제조업자와 원래 주인을 만나며 스피노는 청년이 누구였는지 탐색한다. 만남을 반복할 수록 청년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단서는 조금씩 나오지만 끝내 명시적인 해답을 얻지는 못한다. 마치 내가 움직임에 따라 수평선 자락도 따라서 움직이는 것처럼.


안토니오 타부키는 1943년 9월 24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나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영향을 받아 평생을 포르투갈어 문학과 관련된 삶을 살았다. 아방궁을 짓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던 위정자 베를루스코니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고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자주 거명되었다. 영화화 하기에는 소설적 언어로 씌여진 작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감독들은 그의 소설을 사랑하여 다수의 작품이 영화화 되었다. 탁월한 역사적 해석과 기호학의 권위자 움베르토 에코와 지식인에 관한 견해 차이를 피력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움베르토 에코가 다소 현실 정치에 대해  침묵의 자세로 일관한 반면 안토니오 타부키는 현실 정치에 적극 개입하려 했다.


<수평선 자락>은 카프카의 <성>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한 사람의 죽음과 이를 추적하는 행위는 사실 부조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년의 죽음을 추적할 그럴싸한 이유가 스피노에게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피노에게 왜 그가 누구인지 알려 하는지 질문한다. 그렇기에 스피노는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존재론적인 답변밖에 할 수 없다. 죽은 것은 사라짐이고, 그것은 '가까운 고고학'의 영역이다. 그 사람의 생애는 누군가와 반드시 연관을 맺고 있었음에 틀림 없고, 따라서 그의 죽음을 '진공의 영역'에 두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임무에 배치된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이 어쩌면 안토니오 타부키의 실천적 측면을 설명하는 요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설 전체의 호흡이 짧고,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남겨진 자의 임무' 모티프는 이 소설의 단점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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