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시티 민음사 모던 클래식 17
레나 안데르손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덕 시티에서는 오직 JvA 식품에서 만든 음식만 먹을 수 있다. JvA의 사장은 존이라는 인물로 덕 시티에서 무제한의 권력을 누렸고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그는 기름에 튀기고 설탕을 듬뿍 바른 고칼로리 식품을 덕 시티에 무제한 공급했고, 사람들은 이를 소비하며 점점 거대해져갔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덕 시티는 에이헙 작전이라 부르는 효율적인 군사 행동을 통해 체지방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즉시 연행하여 직업과 주거지를 빼앗고 강제 다이어트를 시키기 때문이다. 흰고래 살인범이라는 악당이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는데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불안 요소였지만 어쨌든 덕 시티는 평화로운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존의 하나뿐인 조카 도날드 D는 존의 공장에서 단순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갔다. 식사는 상품화되기 어려운 불량품을 그때 그때 먹어치우는 것으로 대신했고, 급료는 돈 대신 인슐린으로 받았다. 세 명의 조카가 전쟁터에 나가 있어 녀석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끔 울적해지는 것 외에 그럭저럭 단순한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심혈관이 막혀 쓰러진 날 도날드 D는 캐럴벨이라는 상냥한 아가씨를 만난다. 도날드 D는 심장 바이패스 수술을 받은 후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식습관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리고 캐럴벨에 대한 그리움이 데이지에 대한 사랑의 일그러진 형태라 속단한 후 데이지와 사귀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도날드 D가 데이지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증오가 자꾸 커져간다는 점이었다. 그 감정은 증오나 질투와 같은 명확한 감정이 아니었고 그저 막연한 짜증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짜증이 극에 달한 어느 날, 도날드 D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데이지를 목졸라 살해한 뒤 흰고래 살인범의 소행인 것처럼 꾸민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각되어 강제 다이어트를 시키는 수용소에 감금된다. 도날드 D의 조카 셋 중 둘은 뚱뚱해서 탱크에 오르지 못해 적군에게 사살 당한다. 대통령은 체지방을 줄여야 한다는 강박을 이기지 못해 자멸하고 만다.


패스트푸드가 만연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칼로리 과잉 상태에 노출된다. 그런데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일평생 다이어트를 강요받는다. 자본주의적 미의 기준은 평균치 이하의 체지방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덕 시티>는 비유가 독창적이지 못하고, 풍자는 다소 있지만 재치는 없는 밋밋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도날드 D라는 미국적인 캐릭터를 이용하여 '칼로리 과잉과 다이어트를 동시에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쓴 것은 좋은 시도였으나, 사실 이마저도 <슈퍼 사이즈 미>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다루었던 주제이고 작가도 거기서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 후의 전개는 너무나 빤하고 조잡하다. 심지어 작가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다루기 위해 '원자재의 고갈 및 설탕 산의 발견'이라는 희안한 내용을 끼워넣기까지 하는데, 전혀 작품에 녹아들지 못하고 생뚱맞은 느낌을 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해 씌어졌던 도식 소설의 현대판 버전쯤으로 느껴졌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의 공신력을 묻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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