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자락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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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시체 안치소에 한 구의 시신이 들어온다. 다섯 명의 특별 수사관이 아파트를 급습했고, 범법자들이 창문을 통해 지붕을 타고 도주하기 직전 발사한 총에 맞아 사망한 젊은이었다. 신문에는 '이름없는 도둑'으로 보도가 된다. 신분증은 가짜였고, 연고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뒤 보도된 기사에는 그의 현관 문패에 Carlo Nobodi라 씌여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아무런 뜻도 없었다. 카를로는 가장 흔한 이름이었고 노보디는 영어의 Nobody를 연상시켰다.   

그날 시체 안치소를 지키던 스피노는 시신이 누구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스피노가 시체로부터 얻은 것은 오래된 스냅 사진과, 반지 안에 세겨진 문구, 재킷에 수놓아져 있는 이름 정도였다. 처음 찾아간 곳은 죽은 청년을 지원했던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장은 스피노에게 '왜 그에 대해 알려고 하는지' 묻는다. 스피노는 "왜냐하면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답변을 한다. 스냅 사진과 반지의 문구, 재킷 제조업자와 원래 주인을 만나며 스피노는 청년이 누구였는지 탐색한다. 만남을 반복할 수록 청년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단서는 조금씩 나오지만 끝내 명시적인 해답을 얻지는 못한다. 마치 내가 움직임에 따라 수평선 자락도 따라서 움직이는 것처럼.


안토니오 타부키는 1943년 9월 24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나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영향을 받아 평생을 포르투갈어 문학과 관련된 삶을 살았다. 아방궁을 짓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던 위정자 베를루스코니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고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자주 거명되었다. 영화화 하기에는 소설적 언어로 씌여진 작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감독들은 그의 소설을 사랑하여 다수의 작품이 영화화 되었다. 탁월한 역사적 해석과 기호학의 권위자 움베르토 에코와 지식인에 관한 견해 차이를 피력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움베르토 에코가 다소 현실 정치에 대해  침묵의 자세로 일관한 반면 안토니오 타부키는 현실 정치에 적극 개입하려 했다.


<수평선 자락>은 카프카의 <성>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한 사람의 죽음과 이를 추적하는 행위는 사실 부조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년의 죽음을 추적할 그럴싸한 이유가 스피노에게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피노에게 왜 그가 누구인지 알려 하는지 질문한다. 그렇기에 스피노는 '그는 죽었고, 나는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존재론적인 답변밖에 할 수 없다. 죽은 것은 사라짐이고, 그것은 '가까운 고고학'의 영역이다. 그 사람의 생애는 누군가와 반드시 연관을 맺고 있었음에 틀림 없고, 따라서 그의 죽음을 '진공의 영역'에 두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임무에 배치된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이 어쩌면 안토니오 타부키의 실천적 측면을 설명하는 요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설 전체의 호흡이 짧고,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남겨진 자의 임무' 모티프는 이 소설의 단점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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