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소리 마마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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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촌 '누카루미 하우스'에서 누가 부모인지도 모른 채 학대받으면서 생활하던 마츠시마 아이코는 하우스의 주인 '왕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보육원 '별의 아이들 학원'에 맡겨진다. 아이코는 '왕언니'가 엄마의 유품이라고 준 하얀 구두에 말을 거는 행동 등으로 기분나쁜 아이로 찍혀 주변으로부터도 백안시된다.

비뚤어진 그녀는 돈이 필요하면 훔치고, 들통날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어릴 적 창녀촌에서 가장 예뻤던 에미라는 창녀의 집에 잠깐씩 몸을 의탁하지만, 싫증이 나면 집을 나가 도둑질과 방화를 일삼다가 어느덧 마흔을 넘긴다. 사냥감을 물색하던 그녀는 호텔 체인을 경영하는 여사장의 집에 가정부로 취직을 하는데 호텔측에 아이코의 과거 행적을 폭로하는 문건이 팩스로 전송되고, 아이코는 과연 누가 자신의 과거를 캐고 뒤쫓는지 의아해 한다.

한편 누카루미 하우스의 창녀들이 모임을 갖는 중에 누카루미 하우스를 당시 창녀 중 한 명이 가로챘음을 알아내고, 그 창녀로부터 아이코가 '왕언니'의 자식이었으니 그녀를 찾아오면 재산을 나누겠다는 말을 듣는다. 에미의 집에 숨어들었던 아이코를 찾아낸 창녀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아이코에게 알려주어 누카루미 하우스를 상속받길 권하고, 에미를 죽이려고 하던 아이코는 에미에게 이와 같은 얘기를 했다가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된다.

아이코는 '왕언니'의 자식이 아니고 다름아닌 에미 자신의 자식이다. 에미는 과거에 관광가이드로 일했던 적이 있었는데 탈옥범들이 버스를 탈취하고 그녀를 윤간하여 아이코를 임신하게 된다. 모든 걸 자포자기한 에미는 창녀촌에 들어가 아이코를 낳지만 윤간당한 끔찍한 기억과 아이코의 악마와 같은 본성 때문에 자신의 아이라는 걸 밝히지 않는다. 그리고 하얀 구두는 그녀가 가이드로 일할 때 신었던 신발이었다. 평생을 엄마를 찾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의 손으로 그 엄마를 죽인 아이코는 경찰에 쫓기다가 강에 뛰어내려 자살한다.

추리소설이란 딱지를 붙이고는 있지만 추리소설은 아니다. 책 표지의 장황한 찬사와 달리 그다지 매력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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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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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레 케르테스의 첫 소설인 <운명(Sorstalanság)>을 Wikipedia에서 검색하면 '200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임레 케르테스의 소설, Fateless or Fatelessness, 1960년에서 1973년 사이에 쓰여졌으며 1975년 처음 출판, <운명(Sorstalanság)>, <좌절(A Kudarc)>,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Kaddis a meg nem született gyermekért)>의 3부작 중 한 편'으로 나온다. 원제는 <운명없음>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운명>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소설은 작가가 1944년에서 1945년 사이에 실제로 겪은 일을 쓴 것이다. 아버지가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뒤, 주인공도 15세의 나이로 수용소에 끌려간다. 헝가리를 점령한 독일이 유대인과 집시들을 끌어다가 몰살시키기 시작한 시점으로, 7,000여명의 헝가리 유대인과 함께 부다페스트에서 아우슈비츠로, 나흘 뒤 부헨발트(Buchenwald)로 이송되었다가 다시 짜이츠(Zeitz)로 옮겨지고, 이 곳에서 1년을 보내고 전쟁이 끝난 뒤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헝가리 문단에서는 출간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번역자 한경민에 의하면, 홀로코스트가 헝가리인들에게 낯선 주제였고 대학살을 그린 작품에서 사용한 언어가 일상  언어와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너무도 담담하게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고 내용이 너무 초월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출간 당시 헝가리의 사회주의적 체제와 작가의 성향이 맞지 않는 점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독일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고통스럽게 바라보지 않고도 홀로코스트를 그린 문학을 읽을 수 있어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통과 고통을 주는 독일 나치에 대한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고, 수용소 생활을 타인의 눈으로 보듯 담담히 그리고 있다. 그리고 수용소 생활을 하는 중에도 희망과 기쁨을 느끼는 순간마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신문 기자가 독일인의 만행을 함께 고발하고 죄값을 치르도록 하자는 제안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뭘 알리라는 거에요?"라고 질문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돌아온 후 이웃들과의 대화를 하는 중에도 '그러한 일이 단순히 <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리로 갔다>'고 말함으로서 자신이 독일인들의 만행을 '운명'으로만 받아들인 것이 아닌데, 마치 사람들은 모든 것이 그냥 지나간 것처럼, 끝난 것처럼, 변할 수 없는 것처럼,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불분명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소년은 '만일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다. '나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에서조차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끔찍한 일'에 대해서만 묻고 있다...다음번에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서 말할 것' 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책의 내용이 저자의 실제 경험이 아니라면, 이 책은 매우 삐딱하게 받아들여질 소지마저 있다. 강제수용소에서 참혹한 경험을 한 사람이 그곳에서의 행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들었다. 신문기자가 황색언론과 같은 태도로 소년의 아픔을 기사로 써서 함께 독일인의 만행을 고발하자고 하면서 돈을 많이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는 장면, 그리고 옛 이웃들이 소년과 대화하던 중 소년이 그곳에서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이야기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되풀이 이야기하자 우리 역시 피해자일 뿐이라며 화를 내는 모습 등에서 어렴풋이 소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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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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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부쩍 높아진 목소리로 너희를(여성) 충동하고 유혹하는 수상스런 외침'에 우려를 표한다. '수상스런 외침'의 주인공들은 '이혼의 경력을... 훈장처럼 가슴에 걸고... 이혼은 <절반의 성공>...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너희를 충돌질 한다는 것이다.

 

이에 작가는 조선 선조 연간에 태어나 숙종 연간에 이 세상을 떠난 장(張)씨 성을 가진 한 여인의 모범적인 일생을 보여줌으로서, 너희(여성)들을 꾀송이는, '성적 방종을 페미니즘과 동일시하는' 무리들의 가치관과 대비되는 올곧은 가치관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하여 한 편의 '소설의 형식을 띤 정치 팸플릿'이 완성된다. 

우리의 전형, 장씨 성 가진 여인은 어릴적부터 머리가 좋고 학문적 열정이 남달랐다. 하여 어렸을 적부터 시, 서, 화에 두루 능하였으나 장씨 성 가진 여인은 살면서 몇 가지 '선택'을 반복한다. 그 선택이란 것이 무엇인고 하니 여자로 태어났으니 시, 서, 화는 일찌감치 작파하고 시집가서 아이들 쑥쑥 낳아 훌륭한 애들로 키워내고 남편 뒷바라지 잘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진장 의미를 많이 발견해서 자신의 삶이 너무나 알 차 죽을 지경인데, 너희 요새 것들 하는 행태를 보니 기가 차서 말도 안나온다는 것이다.

작가는 페미니즘 자체가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과격 극렬 분자들이 우려된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말 뿐이고, 소설의 전체적 분위기는 '암닭이 우는 것' 자체가 불편해 죽겠는 작가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대해서는 나 역시 비호감이다. 너무나 똑똑한 주인공이 못나 빠진 세상 여자들을 대신해주지 못해 안달인 것 처럼 보이며, 이문열의 지적처럼 남녀 대결이 곧 여성해방의 첫 걸음인 것처럼 호도한다는 비판은 일견 수긍이 간다. 그런데 극과 극은 통하더라고, 이문열의 소설 <선택>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바로 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구부려 놓고 '우려스러워 그랬노라' 하는 식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도 걱정이고, <선택>을 하면서 살아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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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오식당
이명랑 지음 / 뿔(웅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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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어머니가 있는 골목

시장 바닥에서 장사하던 영철의 집안이 알고보니 아버지부터 형제까지 모두 나랏밥 먹는 사람들임을 알게 된 주인공 '나'의 엄마는 신혼집에 천만원짜리 장롱을 들인다. 영등포시장에서 삼오식당이라는 밥집을 하며 지금까지 생계를 꾸려온 엄마의 처지를 뻔히 아는 나는 결혼을 물리고 싶을 지경이다. 술을 먹고 들어온 영철이 장롱에 시큰둥하며 '저딴 거 다 뭐해? 진짜는 하나도 없는데...'라고 하자 나는 꼭지가 돌아 '그럼 뭘 더 해와야 하느냐'고 묻고, 그런 나에게 영철은 '놀고 있다'는 대답을 날린다. 한바탕 싸움 끝에 여관에 든 후 영철이 '손목 한 번 못잡아 보고...'라며 오징어 냄새 풀풀 풍기며 덮쳐오자 나는 등신같이 울다가 영철을 남겨두고 밖으로 나온다.

시집 갔다가 남편에게 맞고 돌아온 정희 집에 들렀다가 정희에게 이혼 수속 얘기를 꺼내자, 정희 엄마 차씨 아줌마는 돈이고 뭐고 간에 몸뚱이 건사만 제대로 했으면 되었다며 정희에게 정력차 한잔 먹고 잊어버리라고 한다. 나도 그 정력차를 얻어마시고 난 후 아줌마 말마따나 남자랑 여자랑 만나 한 집에서 사는데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진짜로 한번 맨살을 비벼보지 않고서는 결혼식이고 나발이고 아무 소용 없을 듯한 생각에 다시 여관으로 돌아가 술이 떡이되어 잠든 영철의 허리띠를 풀어제친다.

 

o 까라마조프가(家)의 딸들

발랑 까진 중학교2년생 현미의 과외를 맡게 된 나는 현미의 엄마이자 0번 가게 아줌마가 자꾸만 과외비 날짜를 어기는 바람에 과외를 때려치우지 못하고 있다. 0번 가게 아줌마의 남편은 술과 도박으로 하루를 보내고 걸핏하면 아줌마를 패고 행패를 부리는 작자라서 0번 가게 아줌마는 가게 인부인 황씨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황씨가 보험아줌마와 좋아 지낸다는 얘기를 듣고 보험아줌마와 한바탕 싸움을 벌인 후 아줌마는 황씨의 월급을 인상하여 황씨의 마음을 잡아두려 하는데, 그 후로 황씨가 모종의 여자와 바람이 나면 월급을 인상하고, 월급이 인상된 그날로 여자관계가 정리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황씨는 배달부에서 경매인으로, 그리고 동업자로 승격되고 가게 수입의 10퍼센트를 가져가는 지위에까지 오른다. 한편 아줌마 남편이 큰 도박빚을 지고, 재산을 간수하기 위해 형식상 이혼한 뒤 아저씨는 종적을 감추었는데 얼마 후 나타난 아저씨가 목돈을 가지고 돌아오자 그냥저냥 집에 다시 받아들여진다.

결국 아저씨와 황씨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인생을 즐기던 0번 가게 아줌마는 황씨의 애를 배어 낳기까지 하고, 아줌마는 딸 셋에 의해 집에서 쫓겨난다. 현미는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작은 언니가 '생활'이라고 했다는데, 나는 어쩐지 아줌마가 가방에 돈을 가득 채워가지고 돌아오면 아저씨와 같이 집에 들어올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o 엄마의 무릎

언니가 셋째로 아들을 낳자 집안에 경사는 틀림없는데 문제는 금지옥엽 왕상이를 누가 맡아 기르느냐이다. 첫째 아라는 삼오식당에 붙어 있는 무궁화마트 여주인 영석이 엄마가 한동안 길러줬는데, 그 후로 영석이 엄마가 무시로 삼오식당을 드나들며 소소한 찬거리며 양념을 자기 것처럼 가져갔기 때문에 이번에 왕상이도 좀 신경써주려니 했건만 서로 셈속이 다르다. 이에 로타리 할머니를 데려다 얼마간 돈을 쥐어주고 왕상이를 보게 하였는데, 문제는 로타리 할머니가 요령만 피울 뿐 왕상이 돌보는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돈은 돈대로 주고, 엄마가 하루종일 왕상이를 업고 일하는 날마저 없지 않았는데 염증이 맺힌 엄마의 무릎이 부어오르고 이를 본 언니 내외가 속상해하며 왕상이를 집으로 데려간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언니 내외의 뒤에다 엄마는 '...내 몸땡이 성할 때, 내가 이거 식당이라도 할 때 니들은 돈 벌라니까 왜들 지랄이여, 지랄이! 내가 시방도 시퍼렇게 멀쩡한디' 라고 외친다.

 

o 보일러실 쟁탈전

매사에 사리를 따져 자신의 권리를 챙기고자 하는 똑소리 나는 은지네와 나는 구둣방 사장이 보일러실 자물쇠를 따고 잡동사니를 들여놓자 이대로 가다간 보일러실이 구둣방 물건으로 가득차버릴거라 생각한다. 이에 자신들이 못쓰는 물건들을 보일러실에 채워놓기로 하지만, 구둣방사장은 보일러실에 살림을 차려 자신보다 열살은 많아 보이는 노랑머리 애인까지 들여놓는다. 이에 보일러실 권리를 노랑머리에게 빼앗긴 것으로 생각하던 어느날 뻔뻔스럽게만 보이던 노랑머리가 구둣방 사장에게 돈을 구해다 주고 온갖 정성을 다 바쳤으나 구둣방 사장 맘이 변한 것임을 알게 된다. 노랑머리는 울면서 '...얼굴만 한번 보고 갈게요...'라고 철문에 기대어 울다가 그날로 사라진다. 그리고 구둣방 주인의 행태에 못참은 은지네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환경과에서 단속을 나오자 구둣방 사장은 저자세로 돌변한다. 그리고 나는 2층 환풍기 전원 코드는 3층에, 3층과 4층 보일러 기계는 2층에, 1층 전기차단기는 4층 거실에... 하는 식으로 제각각 설치되어 있는 것이 어떤 용도의 교묘한 덫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o 잔치

월급쟁이 남편을 두어 장터길 수준에서는 좀 사는 수준이었던 당진상회 할머니는 안하무인에 후안무치한 양반이다. 그런 당진상회에서 잔치가 열리고 있다. 당진상회는 원래 비어있는 가게였고 그 가게 앞에다가 평상을 펴놓고 봉투 아줌마가 봉투 등속을 팔아 생계를 이어왔는데, 당진상회 할머니가 비어있는 가게를 인수하자 봉투 아줌마 처지가 난처하게 됐다. 그동안 빈 가게였기에 추위도 피하고 비도 긋고 하였으나 당진상회 할머니가 오고 눈치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당진상회 할머니가 장사 잘되게 해달라는 굿을 하는 김에, 눈에 가시인 봉투 아줌마도 좀 안보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 다음날 봉투 아줌마가 이제 장사를 접겠다고 한 사정이고 보니 잔치에 가서 흥을 낼 기분들이 아니다.

 

o 결승선에서

할머니들을 모아놓고 행사를 벌여 고가의 의료기기를 팔아먹는 소위 '행사'가 시장에서 연일 열리고 있다. 고물장수 박씨 할머니가 먼저 물꼬를 트더니 열성 신자처럼 행사에 따라 다닌다. 그리고 뇌졸중을 앓고 있는 영석이 엄마와 영선이의 염장을 질러 가며 행사로 몰아댄다. 행사장에서 고물장수 할머니가 고가의 의료기기를 사서 사회자 소개로 단상에 오르게 되고, 고물장수 할머니의 표정에 복수심마저 떠오르자 의료기기를 사는 행위의 저의는 따로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사회자와, 고물장수도 사는 의료기기 하나 못사서야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시장 사람들 덕택에 행사는 성공적이다. 체험을 위해 온 영선이 한걸음 떼기도 힘들어 겨우겨우 의료기기 앞으로 가서 드러눕자, 나는 영선이 의료기기에 눕는 것이 아니라 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o 우리들의 화장실

막내가 화장실에 갖힌 이후로 똥할매는 사람들이 화장실에 들어간 뒤 화장실 문을 걸어잠궈버리는데 재미가 들렸다. 정신이 이상한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는 사람에게 돈을 요구하는데, 그 액수가 만만치 않아 사람들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예전에 화장실을 따로이 낼 의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시장 건물들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길길이 뛰는 바람에 무산이 되었고, 결국 몇십년째 똥할매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시장에 온지 얼마 안된, 꽃뱀이었음이 틀림없다는 의심을 받는 김 여사가 조리를 따져가며 똥할매를 쫓아낼 것을 건의하지만, 엄마는 자신도 불편을 겪으면서 김 여사의 제안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무안을 준다. 나는 학창시절 화장실이 없는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 수챗구멍에 볼 일 보라는 얘기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우정의 정도를 가늠해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저녁때마다 공원으로 운동을 가는 엄마와 시장 아줌마들 뒤를 뒤따라갔다가 그들이 공원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들을 보는 것을 알게 된다. 

 

회사에 가려면 영등포 역에서 내려서 수원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그러니 적어도 일주일에 몇 차례는 영등포 역을 거쳐가게 되는데, 역전에서 보는 풍경이 과거와 사뭇 다르다. 영등포우체국 뒤편으로 신세계백화점과 타임스퀘어빌딩이 들어서서 집창촌을 연상케 하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었다. 뭐 그런 이유로 최근 뉴스에서는 신세계백화점에 그곳 여성들이 난입하여 문제가 된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먹고 살 사람들은 살아야 겠고, 투자한 쪽에선 돈을 뽑아야 되겠고, 당분간 싸움이 계속 되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직접 그곳으로 건너가볼 일은 별로 없었는데, 이번 주 화요일에 영등포에서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과의 모임이 있어 영등포 시장 입구를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명랑의 <삼오식당> 생각이 났다.

<삼오식당>은 <원미동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원미동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시각이 다르다. <원미동 사람들>은 서울에서 밀려난 주인공 내외와 원미동 토박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야기로, 주인공 내외의 시각과 원미동 주민의 시각이 교차되고 조정된다. 하지만 <삼오식당> 주인공 이지선은 글을 쓰는 작가의 신분이고 그 동네에서는 꽤나 많이 배운 축에 들지만 영등포시장 주민의 시선을 유지한다. 따라서 영등포시장 이외의 공간이나 가치관은 나오지 않는다. 때론 영등포가 섬과 같은 느낌마저 든다.

가치관 얘기로 돌아가서, 당진상회 할머니가 삼오식당에 와서 한끼 밥을 시키고 하는 행태를 보면 정말이지 후안무치가 무엇인가 하는 느낌이 들고, 똥할매가 대중목욕탕에 자신의 빨래를 쏟아 붓는 장면에선 짜증마저 일 지경이다. 하지만 <삼오식당>은 이에 대한 어떤 판단기준이 약간 다르다. 영등포시장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40년을 화장실을 지켜온 똥할매를 지켜본 삼오식당 여주인의 판단은 가능하지만 영등포 이외의 사람이 똥할매를 판단할 수는 없고, 소설은 이를 거부하는 느낌마저 든다. 그것이 이 소설의 미덕인지, 아니면 한계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삼오식당>은 작가가 이명랑이기에 쓸 수 있는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좀 다른 얘기지만 이기심과 뻔뻔함은 연원에 있어서 어느 정도 공통분모가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뻔뻔함과 이기심을 곧 생활력과 건강함의 상징으로 비약할 때엔 수긍할 수가 없다. 게다가 그런 속성을 민중의 건강함으로 결부시킬 때에는 욕지기마저 인다. 만약에 당진상회 할머니와 똥할매의 이야기가 그런쪽으로 흘러갔다면 무척 서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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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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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베르베르인 무장함대의 거점이었던 아라에스 협곡에 벼랑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사라센인들의 침입을 알리기 위한 망루가 하나 있고, 그곳에는 종군 사진작가로 활동하다가 은퇴하여 내벽에 벽화를 그리는 파울케스라는 화가가 살고 있다. 어느날 망루로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파울케스에게 자신이 기억나지 않는지 묻지만 파울케스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마르코비치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파울케스가 자신의 사진을 찍어 유명해졌기 때문에 기억할 것이라며, 크로아티아의 부코바르에서 찍은 사진을 떠올려보라고 한다.

당시 세르비아 포병대와 함대의 공격을 받은 크로아티아군은 패주하던 중이었고 파울케스와 올비도는 패잔병들과 조우한다. 파울케스는 병사 한 명을 점찍어 필름에 담는다. 병사의 눈동자는 공허해 보이고 표정에는 극도의 피곤함이 묻어났으며, 얼굴은 땀으로 흥건히 젖은 채 더럽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들러붙어있었다. 그리고 AK-47소총 위로, 온갖 오물이 튀어 누르스름하게 변색된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병사는 피곤한 와중에 '찰칵' 하는 카메라 셔터 소리만을 들었고, 파울케스는 사진을 찍은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던 길을 갔다. 그리고 그 사진은 '유럽 포커스 상'을 수상하였고, 유명해졌다.

병사는 이틀 뒤 보로보 나셸예 고속도로 위에서 다시 한번 파울케스를 보았다고 말한다. 보로보 나셸예 고속도로에서 파울케스의 연인 올비도가 지뢰를 밟아 폭사하였는데, 죽은 올비도의 사진을 찍는 파울케스를 보았다는 것이다.

마르코비치는 파울케스를 찾아다녔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파울케스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도대체 왜 자신을 찾아다녔느냐는 물음에 마르코비치는 태연하게 '당신을 죽이려고요'라는 답변을 내놓고, 다시 찾아오겠다며 망루를 떠난다.

 

다시 찾아온 마르코비치는 한 병사의 이야기를 한다. 아내와 아이을 집에 남겨두고 전장으로 떠난 병사는 세르비아인들의 공세에 밀려 퇴각하는 중이었다. 패잔병들이 집결해 미처 숨도 돌리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사진작가가 병사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이 상을 타고, 병사의 사진이 이곳 저곳에 실려 유명해진다. 병사는 세르비아인들에게 잡혀 3년간 포로 생활을 하게 되고, 세르비아계라서 안전할 수도 있었던 아내와 아이는, 병사가 유명해진 바람에 세르비아군에게 유린당하고 젖가슴이 도려진 후 목이 베이고 만다. 마르코비치는 파울케스에게 묻는다. 나비의 날개짓이 폭풍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나비 효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울케스는 그 사진에 어떤 종류의 책임을 느끼기는 하는지. 왜 사진찍기를 그만 두었는지. 왜 자신의 연인이 지뢰를 밟고 죽었을 때에 그녀의 사진을 찍었는지.

 

마르코비치가 자신을 죽이러 왔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 방법과 시기가 급작스러운 것이 아닐 것임을 파울케스는 알 수 있었고, 자신이 그리고 있는 전쟁화 작업을 하며 파울케스는 묻어두었던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진을 찍는 그 순간 파울케스는 사진의 피사체에 대해 어떠한 책임감도 느끼지 않아왔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최대한 객관적인 상태가 될 때에만 전쟁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올비도는 절대로 사람을 찍지 않았고 버려진 물건 따위만을 찍었다. 올비도가 죽고 난 뒤 파울케스는 사진을 버리고 그림으로 회귀한다. 마르코비치와 만난 후 그는 자신은 객관적인 상태에서 사진을 찍었다하더라도 사진 속에 사람을 찍을 때에 이미 어떤 작용을 가했음을 알고 있었고, 그런 작용 혹은 관계 맺음이 두려워 올비도는 사람을 찍지 않았음도 어렴풋이 느낀다.

 

"난 당신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소."

"...나비의 날개짓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요."

"아니, 그 반대요. 우리 모두의 잘못이니까... 우리 모두가... 괴물의 일부분인 거요."

"그런데, 출구는 없는 겁니까?"

"위안만 있을 뿐이지. 포로의 경우, 총살을 당하는 순간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오..."

 

올비도가 죽은 후 사진을 찍은 이유가 사진을 찍음으로서 올비도를 '대상화' 하여 '그저 평범한 일'로 되돌려 버리려 했었던 것은 아니냐는 마르코비치의 질문에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마르코비치는 처음 찾아왔을 때 살아있는 파울케스를 그의 손으로 살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파울케스 스스로 알아서 할 때 같다며 떠나고, 파울케스는 자살한다.

 

파주의 출판도시에 갈 기회가 생겨 <시공사>를 찾았는데, 지하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레베르테의 <뒤마클럽>,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모두 재밌게 읽었었는데, <남부의 여왕>과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가 눈에 띄어 사왔다.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과 시마다 소지의 책 몇권을 함께 사니 재활용 장바구니 같은데 담아 준다. <보물섬>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가게'는 인터넷의 칭찬들과 달리 볼만한 책이 별로 없거나, 이미 팔려나간 상태였다. 아무래도 기증된 책으로 운영되기 때문인 듯 하다. 셀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로맹 가리의 <유럽의 교육>을 샀다. <숨어있는 책>이라는 이름의 헌책방도 들렀는데 딱히 특이할 만한 서점은 아니었다. 그저 동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 정도라고 하면 될까. 테오도르 폰타네의 <마틸데 뫼링>과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이 새책과 같은 상태라서 샀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3277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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