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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임레 케르테스의 첫 소설인 <운명(Sorstalanság)>을 Wikipedia에서 검색하면 '200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임레 케르테스의 소설, Fateless or Fatelessness, 1960년에서 1973년 사이에 쓰여졌으며 1975년 처음 출판, <운명(Sorstalanság)>, <좌절(A Kudarc)>,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Kaddis a meg nem született gyermekért)>의 3부작 중 한 편'으로 나온다. 원제는 <운명없음>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운명>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소설은 작가가 1944년에서 1945년 사이에 실제로 겪은 일을 쓴 것이다. 아버지가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뒤, 주인공도 15세의 나이로 수용소에 끌려간다. 헝가리를 점령한 독일이 유대인과 집시들을 끌어다가 몰살시키기 시작한 시점으로, 7,000여명의 헝가리 유대인과 함께 부다페스트에서 아우슈비츠로, 나흘 뒤 부헨발트(Buchenwald)로 이송되었다가 다시 짜이츠(Zeitz)로 옮겨지고, 이 곳에서 1년을 보내고 전쟁이 끝난 뒤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헝가리 문단에서는 출간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번역자 한경민에 의하면, 홀로코스트가 헝가리인들에게 낯선 주제였고 대학살을 그린 작품에서 사용한 언어가 일상 언어와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너무도 담담하게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고 내용이 너무 초월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출간 당시 헝가리의 사회주의적 체제와 작가의 성향이 맞지 않는 점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독일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고통스럽게 바라보지 않고도 홀로코스트를 그린 문학을 읽을 수 있어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통과 고통을 주는 독일 나치에 대한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고, 수용소 생활을 타인의 눈으로 보듯 담담히 그리고 있다. 그리고 수용소 생활을 하는 중에도 희망과 기쁨을 느끼는 순간마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신문 기자가 독일인의 만행을 함께 고발하고 죄값을 치르도록 하자는 제안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뭘 알리라는 거에요?"라고 질문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돌아온 후 이웃들과의 대화를 하는 중에도 '그러한 일이 단순히 <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리로 갔다>'고 말함으로서 자신이 독일인들의 만행을 '운명'으로만 받아들인 것이 아닌데, 마치 사람들은 모든 것이 그냥 지나간 것처럼, 끝난 것처럼, 변할 수 없는 것처럼,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불분명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소년은 '만일 운명이 존재한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다. '나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에서조차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끔찍한 일'에 대해서만 묻고 있다...다음번에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서 말할 것' 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책의 내용이 저자의 실제 경험이 아니라면, 이 책은 매우 삐딱하게 받아들여질 소지마저 있다. 강제수용소에서 참혹한 경험을 한 사람이 그곳에서의 행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들었다. 신문기자가 황색언론과 같은 태도로 소년의 아픔을 기사로 써서 함께 독일인의 만행을 고발하자고 하면서 돈을 많이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는 장면, 그리고 옛 이웃들이 소년과 대화하던 중 소년이 그곳에서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이야기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되풀이 이야기하자 우리 역시 피해자일 뿐이라며 화를 내는 모습 등에서 어렴풋이 소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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