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한때 베르베르인 무장함대의 거점이었던 아라에스 협곡에 벼랑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사라센인들의 침입을 알리기 위한 망루가 하나 있고, 그곳에는 종군 사진작가로 활동하다가 은퇴하여 내벽에 벽화를 그리는 파울케스라는 화가가 살고 있다. 어느날 망루로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파울케스에게 자신이 기억나지 않는지 묻지만 파울케스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마르코비치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파울케스가 자신의 사진을 찍어 유명해졌기 때문에 기억할 것이라며, 크로아티아의 부코바르에서 찍은 사진을 떠올려보라고 한다.
당시 세르비아 포병대와 함대의 공격을 받은 크로아티아군은 패주하던 중이었고 파울케스와 올비도는 패잔병들과 조우한다. 파울케스는 병사 한 명을 점찍어 필름에 담는다. 병사의 눈동자는 공허해 보이고 표정에는 극도의 피곤함이 묻어났으며, 얼굴은 땀으로 흥건히 젖은 채 더럽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들러붙어있었다. 그리고 AK-47소총 위로, 온갖 오물이 튀어 누르스름하게 변색된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병사는 피곤한 와중에 '찰칵' 하는 카메라 셔터 소리만을 들었고, 파울케스는 사진을 찍은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던 길을 갔다. 그리고 그 사진은 '유럽 포커스 상'을 수상하였고, 유명해졌다.
병사는 이틀 뒤 보로보 나셸예 고속도로 위에서 다시 한번 파울케스를 보았다고 말한다. 보로보 나셸예 고속도로에서 파울케스의 연인 올비도가 지뢰를 밟아 폭사하였는데, 죽은 올비도의 사진을 찍는 파울케스를 보았다는 것이다.
마르코비치는 파울케스를 찾아다녔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파울케스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도대체 왜 자신을 찾아다녔느냐는 물음에 마르코비치는 태연하게 '당신을 죽이려고요'라는 답변을 내놓고, 다시 찾아오겠다며 망루를 떠난다.
다시 찾아온 마르코비치는 한 병사의 이야기를 한다. 아내와 아이을 집에 남겨두고 전장으로 떠난 병사는 세르비아인들의 공세에 밀려 퇴각하는 중이었다. 패잔병들이 집결해 미처 숨도 돌리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사진작가가 병사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이 상을 타고, 병사의 사진이 이곳 저곳에 실려 유명해진다. 병사는 세르비아인들에게 잡혀 3년간 포로 생활을 하게 되고, 세르비아계라서 안전할 수도 있었던 아내와 아이는, 병사가 유명해진 바람에 세르비아군에게 유린당하고 젖가슴이 도려진 후 목이 베이고 만다. 마르코비치는 파울케스에게 묻는다. 나비의 날개짓이 폭풍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나비 효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울케스는 그 사진에 어떤 종류의 책임을 느끼기는 하는지. 왜 사진찍기를 그만 두었는지. 왜 자신의 연인이 지뢰를 밟고 죽었을 때에 그녀의 사진을 찍었는지.
마르코비치가 자신을 죽이러 왔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 방법과 시기가 급작스러운 것이 아닐 것임을 파울케스는 알 수 있었고, 자신이 그리고 있는 전쟁화 작업을 하며 파울케스는 묻어두었던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진을 찍는 그 순간 파울케스는 사진의 피사체에 대해 어떠한 책임감도 느끼지 않아왔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최대한 객관적인 상태가 될 때에만 전쟁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올비도는 절대로 사람을 찍지 않았고 버려진 물건 따위만을 찍었다. 올비도가 죽고 난 뒤 파울케스는 사진을 버리고 그림으로 회귀한다. 마르코비치와 만난 후 그는 자신은 객관적인 상태에서 사진을 찍었다하더라도 사진 속에 사람을 찍을 때에 이미 어떤 작용을 가했음을 알고 있었고, 그런 작용 혹은 관계 맺음이 두려워 올비도는 사람을 찍지 않았음도 어렴풋이 느낀다.
"난 당신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소."
"...나비의 날개짓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요."
"아니, 그 반대요. 우리 모두의 잘못이니까... 우리 모두가... 괴물의 일부분인 거요."
"그런데, 출구는 없는 겁니까?"
"위안만 있을 뿐이지. 포로의 경우, 총살을 당하는 순간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오..."
올비도가 죽은 후 사진을 찍은 이유가 사진을 찍음으로서 올비도를 '대상화' 하여 '그저 평범한 일'로 되돌려 버리려 했었던 것은 아니냐는 마르코비치의 질문에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마르코비치는 처음 찾아왔을 때 살아있는 파울케스를 그의 손으로 살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파울케스 스스로 알아서 할 때 같다며 떠나고, 파울케스는 자살한다.
파주의 출판도시에 갈 기회가 생겨 <시공사>를 찾았는데, 지하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레베르테의 <뒤마클럽>,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모두 재밌게 읽었었는데, <남부의 여왕>과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가 눈에 띄어 사왔다.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과 시마다 소지의 책 몇권을 함께 사니 재활용 장바구니 같은데 담아 준다. <보물섬>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가게'는 인터넷의 칭찬들과 달리 볼만한 책이 별로 없거나, 이미 팔려나간 상태였다. 아무래도 기증된 책으로 운영되기 때문인 듯 하다. 셀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로맹 가리의 <유럽의 교육>을 샀다. <숨어있는 책>이라는 이름의 헌책방도 들렀는데 딱히 특이할 만한 서점은 아니었다. 그저 동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 정도라고 하면 될까. 테오도르 폰타네의 <마틸데 뫼링>과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이 새책과 같은 상태라서 샀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32773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