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오식당
이명랑 지음 / 뿔(웅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o 어머니가 있는 골목

시장 바닥에서 장사하던 영철의 집안이 알고보니 아버지부터 형제까지 모두 나랏밥 먹는 사람들임을 알게 된 주인공 '나'의 엄마는 신혼집에 천만원짜리 장롱을 들인다. 영등포시장에서 삼오식당이라는 밥집을 하며 지금까지 생계를 꾸려온 엄마의 처지를 뻔히 아는 나는 결혼을 물리고 싶을 지경이다. 술을 먹고 들어온 영철이 장롱에 시큰둥하며 '저딴 거 다 뭐해? 진짜는 하나도 없는데...'라고 하자 나는 꼭지가 돌아 '그럼 뭘 더 해와야 하느냐'고 묻고, 그런 나에게 영철은 '놀고 있다'는 대답을 날린다. 한바탕 싸움 끝에 여관에 든 후 영철이 '손목 한 번 못잡아 보고...'라며 오징어 냄새 풀풀 풍기며 덮쳐오자 나는 등신같이 울다가 영철을 남겨두고 밖으로 나온다.

시집 갔다가 남편에게 맞고 돌아온 정희 집에 들렀다가 정희에게 이혼 수속 얘기를 꺼내자, 정희 엄마 차씨 아줌마는 돈이고 뭐고 간에 몸뚱이 건사만 제대로 했으면 되었다며 정희에게 정력차 한잔 먹고 잊어버리라고 한다. 나도 그 정력차를 얻어마시고 난 후 아줌마 말마따나 남자랑 여자랑 만나 한 집에서 사는데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진짜로 한번 맨살을 비벼보지 않고서는 결혼식이고 나발이고 아무 소용 없을 듯한 생각에 다시 여관으로 돌아가 술이 떡이되어 잠든 영철의 허리띠를 풀어제친다.

 

o 까라마조프가(家)의 딸들

발랑 까진 중학교2년생 현미의 과외를 맡게 된 나는 현미의 엄마이자 0번 가게 아줌마가 자꾸만 과외비 날짜를 어기는 바람에 과외를 때려치우지 못하고 있다. 0번 가게 아줌마의 남편은 술과 도박으로 하루를 보내고 걸핏하면 아줌마를 패고 행패를 부리는 작자라서 0번 가게 아줌마는 가게 인부인 황씨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황씨가 보험아줌마와 좋아 지낸다는 얘기를 듣고 보험아줌마와 한바탕 싸움을 벌인 후 아줌마는 황씨의 월급을 인상하여 황씨의 마음을 잡아두려 하는데, 그 후로 황씨가 모종의 여자와 바람이 나면 월급을 인상하고, 월급이 인상된 그날로 여자관계가 정리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황씨는 배달부에서 경매인으로, 그리고 동업자로 승격되고 가게 수입의 10퍼센트를 가져가는 지위에까지 오른다. 한편 아줌마 남편이 큰 도박빚을 지고, 재산을 간수하기 위해 형식상 이혼한 뒤 아저씨는 종적을 감추었는데 얼마 후 나타난 아저씨가 목돈을 가지고 돌아오자 그냥저냥 집에 다시 받아들여진다.

결국 아저씨와 황씨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인생을 즐기던 0번 가게 아줌마는 황씨의 애를 배어 낳기까지 하고, 아줌마는 딸 셋에 의해 집에서 쫓겨난다. 현미는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작은 언니가 '생활'이라고 했다는데, 나는 어쩐지 아줌마가 가방에 돈을 가득 채워가지고 돌아오면 아저씨와 같이 집에 들어올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o 엄마의 무릎

언니가 셋째로 아들을 낳자 집안에 경사는 틀림없는데 문제는 금지옥엽 왕상이를 누가 맡아 기르느냐이다. 첫째 아라는 삼오식당에 붙어 있는 무궁화마트 여주인 영석이 엄마가 한동안 길러줬는데, 그 후로 영석이 엄마가 무시로 삼오식당을 드나들며 소소한 찬거리며 양념을 자기 것처럼 가져갔기 때문에 이번에 왕상이도 좀 신경써주려니 했건만 서로 셈속이 다르다. 이에 로타리 할머니를 데려다 얼마간 돈을 쥐어주고 왕상이를 보게 하였는데, 문제는 로타리 할머니가 요령만 피울 뿐 왕상이 돌보는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돈은 돈대로 주고, 엄마가 하루종일 왕상이를 업고 일하는 날마저 없지 않았는데 염증이 맺힌 엄마의 무릎이 부어오르고 이를 본 언니 내외가 속상해하며 왕상이를 집으로 데려간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언니 내외의 뒤에다 엄마는 '...내 몸땡이 성할 때, 내가 이거 식당이라도 할 때 니들은 돈 벌라니까 왜들 지랄이여, 지랄이! 내가 시방도 시퍼렇게 멀쩡한디' 라고 외친다.

 

o 보일러실 쟁탈전

매사에 사리를 따져 자신의 권리를 챙기고자 하는 똑소리 나는 은지네와 나는 구둣방 사장이 보일러실 자물쇠를 따고 잡동사니를 들여놓자 이대로 가다간 보일러실이 구둣방 물건으로 가득차버릴거라 생각한다. 이에 자신들이 못쓰는 물건들을 보일러실에 채워놓기로 하지만, 구둣방사장은 보일러실에 살림을 차려 자신보다 열살은 많아 보이는 노랑머리 애인까지 들여놓는다. 이에 보일러실 권리를 노랑머리에게 빼앗긴 것으로 생각하던 어느날 뻔뻔스럽게만 보이던 노랑머리가 구둣방 사장에게 돈을 구해다 주고 온갖 정성을 다 바쳤으나 구둣방 사장 맘이 변한 것임을 알게 된다. 노랑머리는 울면서 '...얼굴만 한번 보고 갈게요...'라고 철문에 기대어 울다가 그날로 사라진다. 그리고 구둣방 주인의 행태에 못참은 은지네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환경과에서 단속을 나오자 구둣방 사장은 저자세로 돌변한다. 그리고 나는 2층 환풍기 전원 코드는 3층에, 3층과 4층 보일러 기계는 2층에, 1층 전기차단기는 4층 거실에... 하는 식으로 제각각 설치되어 있는 것이 어떤 용도의 교묘한 덫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o 잔치

월급쟁이 남편을 두어 장터길 수준에서는 좀 사는 수준이었던 당진상회 할머니는 안하무인에 후안무치한 양반이다. 그런 당진상회에서 잔치가 열리고 있다. 당진상회는 원래 비어있는 가게였고 그 가게 앞에다가 평상을 펴놓고 봉투 아줌마가 봉투 등속을 팔아 생계를 이어왔는데, 당진상회 할머니가 비어있는 가게를 인수하자 봉투 아줌마 처지가 난처하게 됐다. 그동안 빈 가게였기에 추위도 피하고 비도 긋고 하였으나 당진상회 할머니가 오고 눈치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당진상회 할머니가 장사 잘되게 해달라는 굿을 하는 김에, 눈에 가시인 봉투 아줌마도 좀 안보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 다음날 봉투 아줌마가 이제 장사를 접겠다고 한 사정이고 보니 잔치에 가서 흥을 낼 기분들이 아니다.

 

o 결승선에서

할머니들을 모아놓고 행사를 벌여 고가의 의료기기를 팔아먹는 소위 '행사'가 시장에서 연일 열리고 있다. 고물장수 박씨 할머니가 먼저 물꼬를 트더니 열성 신자처럼 행사에 따라 다닌다. 그리고 뇌졸중을 앓고 있는 영석이 엄마와 영선이의 염장을 질러 가며 행사로 몰아댄다. 행사장에서 고물장수 할머니가 고가의 의료기기를 사서 사회자 소개로 단상에 오르게 되고, 고물장수 할머니의 표정에 복수심마저 떠오르자 의료기기를 사는 행위의 저의는 따로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사회자와, 고물장수도 사는 의료기기 하나 못사서야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시장 사람들 덕택에 행사는 성공적이다. 체험을 위해 온 영선이 한걸음 떼기도 힘들어 겨우겨우 의료기기 앞으로 가서 드러눕자, 나는 영선이 의료기기에 눕는 것이 아니라 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o 우리들의 화장실

막내가 화장실에 갖힌 이후로 똥할매는 사람들이 화장실에 들어간 뒤 화장실 문을 걸어잠궈버리는데 재미가 들렸다. 정신이 이상한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는 사람에게 돈을 요구하는데, 그 액수가 만만치 않아 사람들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예전에 화장실을 따로이 낼 의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시장 건물들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길길이 뛰는 바람에 무산이 되었고, 결국 몇십년째 똥할매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시장에 온지 얼마 안된, 꽃뱀이었음이 틀림없다는 의심을 받는 김 여사가 조리를 따져가며 똥할매를 쫓아낼 것을 건의하지만, 엄마는 자신도 불편을 겪으면서 김 여사의 제안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무안을 준다. 나는 학창시절 화장실이 없는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 수챗구멍에 볼 일 보라는 얘기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우정의 정도를 가늠해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저녁때마다 공원으로 운동을 가는 엄마와 시장 아줌마들 뒤를 뒤따라갔다가 그들이 공원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들을 보는 것을 알게 된다. 

 

회사에 가려면 영등포 역에서 내려서 수원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그러니 적어도 일주일에 몇 차례는 영등포 역을 거쳐가게 되는데, 역전에서 보는 풍경이 과거와 사뭇 다르다. 영등포우체국 뒤편으로 신세계백화점과 타임스퀘어빌딩이 들어서서 집창촌을 연상케 하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었다. 뭐 그런 이유로 최근 뉴스에서는 신세계백화점에 그곳 여성들이 난입하여 문제가 된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먹고 살 사람들은 살아야 겠고, 투자한 쪽에선 돈을 뽑아야 되겠고, 당분간 싸움이 계속 되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직접 그곳으로 건너가볼 일은 별로 없었는데, 이번 주 화요일에 영등포에서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과의 모임이 있어 영등포 시장 입구를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명랑의 <삼오식당> 생각이 났다.

<삼오식당>은 <원미동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원미동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시각이 다르다. <원미동 사람들>은 서울에서 밀려난 주인공 내외와 원미동 토박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야기로, 주인공 내외의 시각과 원미동 주민의 시각이 교차되고 조정된다. 하지만 <삼오식당> 주인공 이지선은 글을 쓰는 작가의 신분이고 그 동네에서는 꽤나 많이 배운 축에 들지만 영등포시장 주민의 시선을 유지한다. 따라서 영등포시장 이외의 공간이나 가치관은 나오지 않는다. 때론 영등포가 섬과 같은 느낌마저 든다.

가치관 얘기로 돌아가서, 당진상회 할머니가 삼오식당에 와서 한끼 밥을 시키고 하는 행태를 보면 정말이지 후안무치가 무엇인가 하는 느낌이 들고, 똥할매가 대중목욕탕에 자신의 빨래를 쏟아 붓는 장면에선 짜증마저 일 지경이다. 하지만 <삼오식당>은 이에 대한 어떤 판단기준이 약간 다르다. 영등포시장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40년을 화장실을 지켜온 똥할매를 지켜본 삼오식당 여주인의 판단은 가능하지만 영등포 이외의 사람이 똥할매를 판단할 수는 없고, 소설은 이를 거부하는 느낌마저 든다. 그것이 이 소설의 미덕인지, 아니면 한계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삼오식당>은 작가가 이명랑이기에 쓸 수 있는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좀 다른 얘기지만 이기심과 뻔뻔함은 연원에 있어서 어느 정도 공통분모가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뻔뻔함과 이기심을 곧 생활력과 건강함의 상징으로 비약할 때엔 수긍할 수가 없다. 게다가 그런 속성을 민중의 건강함으로 결부시킬 때에는 욕지기마저 인다. 만약에 당진상회 할머니와 똥할매의 이야기가 그런쪽으로 흘러갔다면 무척 서운했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32783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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