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호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2
외젠 다비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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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다비는 1898년 프랑스 메르레벵에서 태어나 파이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졸업 후 직업 훈련을 받고 기계공으로 일한다. 1919년 포병으로 입대하여 2년간 군복무를 하는데 그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취미를 붙였다고 한다. 

1923년 다비의 부모가 파리 제마프 강변에 있는 값싼 호텔을 구입하여 북(北)호텔 이라 이름 붙이고 운영하였다고 하는데 다비는 이때의 기억을 되살려 글을 써서 1929년에 출간한다. 앙드레 지드와 로제 마르텡 뒤 가르, 게노, 말로, 바르뷔스 등과 교우하였고, 1936년에 지드와 소련 시찰 여행에 동행하였다가 성홍열에 걸려 사망한다.

그가 교우한 작가들은 혁신적이고 좌파적인 작가들이었으나 다비는 포퓰리스트 작가로 분류된다고 한다. 포퓰리즘은 1930년에 르모니에와 테리브에 의해 제창된 유파로 평민과 서민의 풍습을 자연주의적 전통에 기대어 담담히 묘사하였다.

 

<북호텔>은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호텔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여행지에서 하루, 혹은 며칠을 기한으로 묵고 가는 호텔이라기 보다 지금으로 보자면 원룸이나 다세대 주택의 형태를 띤다. 노부부 르쿠브뢰르와 루이즈는 처남에게 돈을 빌려 북호텔을 인수하고 그곳을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애쓴다. 손님들은 기계공, 마부, 오쟁이진 경찰, 폐병 환자, 수문지기, 남자들에게 유린당하는 시골 여자, 좌파 선동가 등으로 어느 순간 북호텔에서 인생의 한 시기를 보낸다. 

작가의 시선은 루이즈를 통해 투영된다. 루이즈는 그곳에 머무는 모든 사람들을 가족처럼 돌본다. 폐병 환자를 간호해주고, 남자에게 번번히 속는 하녀를 딸처럼 살뜰히 보살펴주는가 하면, 요양원에서 외출 나온 노인에게 공짜로 음식을 대접한 후 10프랑을 주머니에 넣어주기까지 한다. 그녀에게서는 특별한 정치적 입장이 엿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북호텔에는 좌파 선동가와 경찰이 함께 입주해서 살아간다. 

외젠 다비는 미술 평론과 그림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데 <N.R.F.누벨 프랑세즈(신프랑스 평론)> 지면을 통해 활약했다고 한다. 그런 성향이 <북호텔>에 반영되어 1920년대 프랑스 서민들의 모습이 삽화처럼 담담히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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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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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종소리(작가세계 2001년 가을호)

 

낯선 새 한 마리가 세면장 창틀에 집을 지었다. '나'와 남편은 새가 놀랄까봐 조심조심한다. 

남편이 다니던 건설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해 월급 조차 나오지 않을 때 남편은 경쟁 회사에 스카우트 된다. 남편에게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안도감이 아닌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남편은 아침이면 전에 다니던 회사에 커피를 마시러 갔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남편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모질지 못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어떤 사람은 남편이 경쟁회사를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온다고 백안시했다. 남편은 '나'에게 이런 사실을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남편이 음식물을 넘기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어 정밀진단을 받는다. '크론키드카나다'라는 희귀병에 걸렸다고 했다. 그 병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증세가 반복되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음식을 먹으면 자연적으로 호전된다고 했다. 정신과 의사는 '나'에게 남편이 제 나이를 살아본 적 없이 책임감에 억눌려 병을 얻었으니 남편의 어머니 역할을 하여 짐을 덜어주길 권한다.

세면장 창틀에 깃들었던 새들이 날아간다. 새벽 여명 속에 앙상한 뼈를 구부린 채 잠들어 있는 남편의 뼈를 '나'는 하나 하나 짚어보며 읖조린다. 그래, 괜찮다......이젠 괜찮다.

 

o 우물을 들여다보다(광장 40주년 헌정 신작소설집 <교실>, 2001, 문학동네)

 

이삿짐을 다 싼 이윤수는 새로 이사올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어느 날 겪었던 기이한 경험에 대해. 

오래된 우물의 덮개를 열어본 날, 한 여자가 추레한 차림으로 내 집에 스며든다. '나'는 그녀를 위해 밥을 짓고, 향을 피운 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나'의 언니도 어디선가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겠지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 여자가 다시 올지도 모른고, '나'의 언니가 그처럼 스며들지도 모르니, 그때는 놓고 간 독경 테이프를 들려주길 바란다며 편지를 마친다.

 

o 물 속의 사원(문학과 사회 2002년 여름호)

 

그녀는 최나영 피부관리 연구소의 피부미용사였다. 그녀는 무척 열심히 일했다. 일이 끝나면 그녀는 피부관리 연구소에서 그냥 잤다. 별도의 거처가 없었다.

어느 날 피부관리 연구소에 다방 여자가 찾아온다. 여자는 다방 한가운데 커다란 수조를 마련해 놓고 거기에 악어를 키우고 있었다. 다방에 찾아온 손님들은 악어에 대해 함구했다. 그저 혼자 다시 와서 보곤했다. 다방 여자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다방 여자는 악어를 굶겨 흉폭하게 만든 후 시신을 악어에게 먹게 한다는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준다. 악어는 하나의 사원이었다.

관리소장의 행패로 건물은 수시로 정전이 되었고, 어느 날인가는 똥이 여기 저기 뿌려져 있기도 했다. 입주민들은 하나 둘 건물을 떠난다. 그녀는 관리소장의 차에 방화를 한다.

최나영 피부관리 연구소도 문을 닫자 그녀는 다방 여자와 함께 살기로 한다. 다방 여자에게는 그녀만한 딸이 있었다. 어렸을 적에 다른 곳에 두고 와 아는 척도 할 수 없는 딸이었다. 

월세 기간이 끝난 후 집주인이 그녀와 다방여자가 살던 방 문을 딴다. 그녀들이 어디로 사라진지는 모른다. 다만 홍수가 날 정도로 비가 쏟아 붓던 날, 그녀가 다방 여자를 업고 지하 다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는 사람이 있었지만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방 여자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다.

그녀들의 집을 보러 왔던 여자가 침대 밑에서 그녀의 이름으로 다방 여자가 부은 적금통장과 도장을 발견한다. 집을 보러 온 여자는 불안한 눈동자로 집을 나간다. 통장과 도장은 그녀의 가방에 들어 있었다.

 

o 달의 물(문학동네 2001년 겨울호)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 의사는 아버지에게 일절 술을 입에 대지 말 것을 명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는 고자질 전화를 해온다. '나'는 그것이 화가 난다.

다니는 약국은 정형외과 원장에게 수익금을 갖다 줘가며 비위를 맞춰 왔건만 최근 원장이 별도의 약국을 새로 개업하고 그쪽으로 손님을 몰아주는 통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나' 역시 아는 선배와 약국을 차려 독립할 심산이었기에 부족한 돈을 변통해 볼 요량으로 고향에 간다. 

막상 고향집에 가니 아버지가 술을 마신다는 어머니의 고자질은 말짱 거짓말 같다. 아버지도 완강히 부인한다. 오빠가 고향집에 내려와 조카 동이를 맡긴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이를 데리고 절집을 구경간다. 아버지는 한사코 절집 구경을 마다한다. 구경을 마치고 온 후 입구에 와보니 아버지가 한결 밝아진 모습이다. 점방에서 막걸리를 사마신 뒤끝이다.

오빠가 이혼한 사실이 밝혀진다. 없어진 동이를 찾다가 옥상 장독대에서 동이와, 아버지가 숨겨 놓은 소주병이 발견된다. 새로 놓는 다리에 대해 어머니는 다리가 넓어져야 사고나 날 뿐이라며 험한 꼴 당하지 않고 사지 멀쩡한 채 죽는 것이 말년의 바램이라고 말한다.

 

o 혼자 간 사람(창작과 비평 2002년 겨울호)

 

'나'는 한때 친하게 지냈지만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간의 소식을 전하며 S 이야기를 한다. 소설가인 S는 한동안 '나'와 이런 저런 우연으로 만남이 겹치던 사람이었다.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돌연 S가 사라졌다. 그리고 월드컵의 열기가 온 나라를 들썩이던 때, S는 홀로 투병하다가 쓸쓸히 죽는다. 

 

o 부석사 - 국도에서(창작과 비평 2000년 겨울호)

 

P와 '나'는 공인된 연인 사이였지만 어느 날 예고 없이 P가 다른이와 약혼하면서 파국을 맞는다. 얼마 후 P는 결혼식을 올린다. '나'는 비참하게 버려졌지만 P는 도리어 '내'가 약혼 소식을 들은 후로도 연락 한 번 안 한 독한사람이라 했다. 그런 P가 뜬금없이 '나'의 생일을 챙기더니 1월 1일에 '나'의 집을 방문한다는 연락을 한다. 잠시나마 흔들리려는 마음을 다잡는 '나'는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그'에게 부석사에 가자는 제안을 한다.

그는 상처입은 수리부엉이가 회복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감동적인 다큐를 만들어 방송국에 팔았는데 누군가의 음해로 큰 상처를 입었다. 그 누군가는 마음을 조금씩 허물던 박PD였다. 박PD는 그가 일부러 수리부엉이를 상처 입혔을지도 모른다는 낭설을 퍼뜨렸다. 그는 방송국을 휴직한다. 박PD가 1월 1일에 그의 집을 방문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그 만남을 원치 않는다. 부석사에 가자는 제안에 응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와 그는 오피스텔의 뒷산을 거닐다가 조그마한 텃밭에서 서리를 하며 안면을 튼 사이다. '내'가 데려가는 개는 사실 그가 박PD로부터 받아다 키우던 개였다. 부석사로 가는 길을 어디서 잘 못 들었는지 모르지만 둘은 길을 잃는다. 창 밖에는 눈이 내려 바깥이 내다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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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외딴방>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남편과 살지만 남편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아내, 이사를 가야하는 번역가, 어릴 적 상처로 방에서는 잠들지 못하고 방화를 일삼는 그녀, 사귀던 애인에게 예고 없이 버림 받은 주인공 등. 타인에게 상처 받고 고독한 그들은 심리적, 혹은 공간적으로 외딴방에 처해 있다. 

그들이 외딴방에 처해 있는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외면적으로 드러난 이유는 이 사회가 강제한 측면이 있다. 신경숙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모성성'을 간간히 제시한다. <종소리>에서는 남편의 어머니가 되어보라는 정신과 의사의 말을 인용하고, <물 속의 사원>의 다방 여자는 잃어버린 딸 대신 그녀를 딸처럼 생각하며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근 20년 만에 신경숙의 소설을 읽는다. 다시 읽는 신경숙의 소설도 최근작은 아니다. 

보일러가 고장난 방에서 전기 스토브 앞에 앉아 이틀 동안 <외딴집>을 읽은 기억이 난다. 돈도 없었고, 딱히 만날 사람도 없었다. <외딴방>은 나를 위로해주는 소설 같았다. 외롭던 시절이었다.

 

다시 읽은 신경숙의 소설은 그때만큼 마음을 건드리지 않는다. 신경숙이 제시하는 모성성이라는 것은 최근 유행한 '엄마 미소'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고, 잇달아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를 떠올리는 연상 작용을 일으킨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터무니 없는 낙관주의도 싫고, '엄마 미소'라는 단어가 표상하는, 아픔 없이 흐뭇함만을 연상시키는 사랑의 형태도 싫다. 모성성도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결과물일 뿐이다. 이미 브레히트는 <코카서스의 백묵원>에서 이를 통찰력 있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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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밀란 쿤데라 전집 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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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탈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잃은 뒤 이혼하고, 현재는 애인 장마르크와 살고 있다. 광고회사에 다녔는데 회사에서는 평상시와 달리 까탈스럽게 굴었다.

어느 날 노르망디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 머물기 위해 갔다가 자신이 이제 더 이상 남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샹탈은 그와 같은 깨달음을 장마르크에게 이야기한다. 장마르크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상한다. 그렇다면 자신은 남자들에게서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있는 여자에 집중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샹탈의 우편함에 익명의 편지가 배달된다. 우표가 붙어 있지 않은 편지에는 한 남자가 샹탈을 스파이처럼 따라다닌다며 연정을 고백하는 내용이 씌여 있었다. 샹탈은 이 편지를 하나의 해프닝으로 취급할 수도 있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옷장의 브래지어 밑에 보관한다. 편지가 또다시 배달된다. 샹탈은 편지에 씌여 있는 내용에 자극 받아 붉은색 잠옷을 사고, 그날밤 장마르크는 다른때보다 성적으로 흥분된다. 샹탈은 집 주변의 몇몇 사람을 편지의 발신인으로 짐작하고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만 몇 번의 테스트로 전혀 오해였음이 밝혀진다. 

그러다가 편지의 필체에서 문득 장마르크의 흔적을 발견한다. 필적 감정 결과는 의심을 사실로 확인해준다. 그날 뜬금 없이 시누이가 아이 셋을 데리고 샹탈의 집을 방문한다. 아이들은 샹탈의 개인적인 공간을 마구 헤집어댔고, 옷장 속에 넣어 놓은 편지도 끄집어낸다. 화가난 샹탈은 시누이를 쫓아내고, 시누이를 집안에 들인 장마르크에게도 자신의 집에 더부살이하는 형편이 아니냐며 면박을 준다. 샹탈은 영국으로 가리라 말한다. 그리고 집을 나선다.

장마르크는 샹탈의 말이 사실이라는 데 생각이 미쳐 아파트 열쇠를 놓아둔 채 떠나기로 결심한다. 장마르크는 자신이 동네에서 구걸하는 거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라고 생각한다. 고민하던 장마르크가 충동적으로 샹탈을 다시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 간다. 과거에 영국인이 샹탈을 유혹한 적이 있었는데 샹탈은 그 노회한 바람둥이를 만나러 간지도 몰랐다. 

샹탈은 영국에 도착한 뒤 바람둥이에게 전화를 걸어 난교에 참가한다. 왠일인지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그곳에서 샹탈은 벌거벗은 채 집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문은 모조리 잠겨 있었고, 어디가 출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문은 계속 못질이 되고 있었다. 샹탈은 창을 열고 장마르크를 애타게 찾는다. 장마르크는 마침 그 집 앞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장마르크가 샹탈을 깨운다. 현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장마르크의 말에 샹탈은 누가 꿈을 꾸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현실 속 삶이 이런 뻔뻔한 환상으로 변형되었을지, 사실이 몽상으로 변했던 정확한 순간은 언제이며 그 경계선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한다.

 

소설은 크게 샹탈이 아이를 잃은 과거의 사건과 장마르크가 익명으로 보낸 현재의 편지 사건을 축으로 진행된다. 

아이를 잃은 샹탈이 아이를 회상하며 슬픔에 잠기리라는 독자의 상식과 달리 샹탈은 아이를 잃음으로 인해 자신이 세계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고 도리어 아이의 부재로 인해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급기야 아이를 잃은 것이 역설적으로 선물이 되었다고까지 느낀다.

한편 편지의 발신인이 익명이었을 때 샹탈은 그 상황을 일견 즐기는 듯 보이나 사실은 장마르크가 보낸 편지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편지의 내용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발신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편지의 영향력이 달라진 것이다. 소설 초입에 장마르크는 샹탈의 외모를 매우 늙은 어떤 여자의 모습과 착각하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 말미에 샹탈과 장마르크가 다시 재회하도록 한 후 편지사건과 그 이후 영국행, 그리고 난교에 참석한 것 중 특정 부분부터는 꿈이라고 암시한다. 그리고 꿈이 어디서부터인지는 알 수 없도록 처리했다. 정체성 자체가 사실은 꿈과 환상, 그리고 현실의 경계 어디쯤인가에 존재하는 모호한 것인지도 모른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013719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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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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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1주기를 맞아 도리고에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모인다. 도리고에 집안의 손자는 모두 다섯인데 모두들 할머니의 '괜찮아 오오라' 덕분에 사춘기를 무사히 넘긴 경험을 갖고 있다. 부모님께 혼이 나면 할머니 집으로 도망을 갔고, 고민이 생겼을 때 그저 할머니 곁에만 있어도 어찌어찌 해결이 되는 기억들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할머니가 최근 의기소침해진 듯 하자 손자들이 할머니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한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영화를 보고 무척 즐거웠다는 얘기에 힌트를 얻어 구민회관을 빌려 그당시 할머니가 보았던 영화 <로마의 휴일>을 상영하기로 한다. 어렵사리 셀룰로이드 35밀리 필름을 구하고, 손으로 직접 포스터를 그려 붙이기도 한다. 동네사람들에게도 개방하였는데 뜻밖에 반응이 좋아 객석이 만원이 된다. 함께 옛날 영화를 보며 웃고, 박수치고 하는 사이 할머니의 '괜찮아 오라'는 완벽하게 부활한다.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제일 마지막에 실린 <사랑의 샘>을 중심으로 서로 간섭하고 교차한다. 

재일교포를 주인공으로 영화감독이 된 현재의 '나'가 용일과의 우정을 반추하는 <태양은 가득히>, 의약품 부작용에 관련되어 자살한 남편을 둔 여주인공이 비디오가게 아르바이트생이 추천해주는 영화를 보며 다시금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된다는 내용의 <정무문>, 왕따당한 짝 이시오카를 좋아해 그녀의 집안 내력을 듣고 난 뒤 이시오카의 아버지를 납치하는데 가담하는 <프랭키와 자니>, 이혼한 부모를 둔 어린 소년과 남편을 조직폭력배에게 잃고 복수를 결심한 아줌마와의 우정을 그린 <페일 라이더> 가 수록되어 있고, 각각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구민회관에서 상영되는 <로마의 휴일>을 관람하러 온다.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마을이야말로 인간이 향수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곳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소설 <영화처럼>을 읽으면서 내내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받았다. 더욱 기쁜 사실은 소설에 차용된 영화들 중 <정무문> 외에는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대감을 갖고 볼 영화 목록이 늘어난 데 대해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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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주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5
토마스 하디 지음, 정종화 옮김 / 민음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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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모두 사망하여 아주머니 집에 맡겨진 주드는 새 쫓는 일 따위로 푼 돈을 벌며 생계를 돕는다. 주드는 자신을 가르친 은사 필롯슨을 존경했는데, 그가 학문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향한 크라이스트민스터의 대학에 자신도 언젠가는 입학하여 학자나 성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의 돌파리 의사로부터 라틴어와 그리스어 독학에 관해 얼핏 들은 주드는 필롯슨에게 도움을 청하는 글을 띄운다.어렵사리 책을 구한 주드는 독학을 시작하지만 그 과정은 눈 뜬 장님이 길을 찾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더디기만 했다.

그러던 중 마을 처녀 아라벨라가 주드에게 눈독을 들인다. 그녀는 천박하고 세속적인 여성이었는데 갖은 계교로 주드를 손아귀에 넣는다. 

아라벨라와 결혼한 주드는 곧 결혼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라벨라 역시 학문에만 관심을 쏟는 주드에게 금세 실증을 느낀다. 둘은 별거에 들어가고, 아라벨라는 가족들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간다.

주드는 잠시 미루어두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크라이스트민스터로 떠난다. 그리고 사촌 수 브라이드헤드를 만난다. 아주머니는 무슨 이유에선지 수를 절대 만나선 안된다고 말했지만 주드는 그녀를 만난 후 아주머니의 경고도 잊고 곧 사랑에 빠진다. 서로의 영혼이 공감하며 차츰 사랑에 빠지는 둘 사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하나는 대학들이 빈털털이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주드의 입학을 불허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절망한 주드가 술을 마시고 수에게 못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수는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필롯슨과 결혼하고 만다.

그러나 수 역시 자신의 결혼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약속에 얽메어 결혼하기는 했지만 필롯슨과 육체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심지어 그를 혐오하는 태도마저 보인다. 몇 달도 견디지 못하고 수는 필롯슨에게 자신을 놓아줄 것을 요청한다. 필롯슨은 결혼이라는 강제적 관습에 그녀를 붙잡아둘 수 없음을 깨닫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를 보내준다.

다시 만난 주드와 수는 함께 살기는 하되 정식 결혼식은 올리지 못한다. 과거 자신들이 벗어난 결혼이라는 관계 속으로 다시 뛰어들 용기가 없었고, 정형화된 틀에 자신들을 가둘 경우 사랑이 죽어버릴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 즈음 아라벨라가 주드에게 난데 없는 편지를 보낸다. 과거 둘이 헤어지기 직전 아라벨라가 임신 중이었는데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 아이를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돌봐왔지만 이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주드에게 보내니 키워 달라는 것이었다. 주드와 수는 아이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아이는 어딘지 애늙은이 같은 면이 있었다. 

그 후로 아이가 둘 더 태어난다. 주드와 수는 이곳 저곳 옮겨가며 생계를 꾸린다. 크라이스트민스터로 가서 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생활고 때문에 가슴 한켠에 묻어둔 채였고, 주변에서는 끊임 없이 둘이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며 쑤군대고 박해했다. 그러던 중 주드가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빈곤한 상태가 계속된다. 새로 집을 구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아이가 많다거나,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거절된다. 아라벨라의 아이가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이 부모에게 짐이 된다고 판단하여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만다. 어린 동생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이 수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하고 만다. 수는 자신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비웃고 교만하게 행동한 탓에 신이 노해 벌을 내린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에 광적으로 메달리던 수는 필롯슨에게 되돌아가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주드의 격렬한 반대와 극심한 고통을 외면한 채 떠나간다. 수는 필롯슨과 두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반송장이 되다시피 한 주드를 아라벨라가 다시 데려가 결혼식을 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골방에서 주드는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이름없는 주드>는 출간 직후 보수주의자들과 종교계의 강한 반발에 직면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능력과 상관 없이 대학 진학의 꿈을 좌절당한다는 설정과, 결혼이라는 제도를 사랑을 압살하는 강제적 계약관계로 묘사하는 부분, 종교적 가르침에 집착하던 수가 필롯슨에게 되돌아가는 상황을 부도덕한 행위로 그린 부분 등이 반발을 일으킨 것이다. 그 결과 평소에도 시를 더 높은 예술적 분야로 여기던 토마스 하디는 이 작품을 끝으로 두 번 다시 소설에 손대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시만 썼다고 한다. 

주드가 석공으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익히고, 크라이스트민스터의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토마스 하디의 젊은 시절과 흡사하다고 하는데, 실제 토마스 하디의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다. 

 

소설 속에서 수가 필롯슨에게 떠나기 직전 히스테리 상태에서 주드에게 내뱉는 대사는 매우 섬뜩하다. 

 

"......고삐 풀린 정열보다 더 일부 여성의 도덕심을 무너뜨리는 내면의 욕구가, 남자에게 끼칠 수 있는 해를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관심을 끌고 그를 사로잡으려는 욕구가, 발동한 것뿐이었어요. 오빠를 손아귀에 넣은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두려웠어요......"

 

그저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주드가 선뜻 딸려들어와 오히려 두려웠고 상황에 의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고백이다. 마치 유부남을 유혹했던 아가씨가 유부남이 이혼하고 자신이 유부남의 행동에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오자 한 발 빼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결혼이라는 인습 때문에 주드와 수가 고통받고 괴로워하는데, 주드는 수의 변덕과 불가해한 행동들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받는다. 주드는 수에게 못된 여자,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라고 토로하고 때로 부도덕한 짓을 하고 있다고 질책하기도 한다. 그녀는 주드와 함께 살면서도 사랑에 대해서는 자기만의 환상을 쫓는다. 그녀의 신경증을 남자인 주드로서는 이해할 도리가 없다. 

필롯슨에게 떠나기 전 횡설수설하는 대목이 어쩌면 그녀가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아라벨라보다 더한 악녀다. 그녀는 필롯슨에게 떠난 후에도 주드가 찾아오자 키스를 허락한다. 그래놓고도 금새 키스를 중지시키면서 자신이 설정한 역할로 돌아간다. 그녀는 스스로 정한 배역을 연기할 뿐인 것처럼 느껴지고, 그녀가 주드와 함께 살았던 시기의 모든 행동도 거짓처럼 느껴찐다. D.H.로렌스는 "수는 우리 문명이 빚어낸 최상의 산물로, 그녀는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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