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ㅇ 종소리(작가세계 2001년 가을호)

 

낯선 새 한 마리가 세면장 창틀에 집을 지었다. '나'와 남편은 새가 놀랄까봐 조심조심한다. 

남편이 다니던 건설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해 월급 조차 나오지 않을 때 남편은 경쟁 회사에 스카우트 된다. 남편에게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안도감이 아닌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남편은 아침이면 전에 다니던 회사에 커피를 마시러 갔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남편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모질지 못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어떤 사람은 남편이 경쟁회사를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온다고 백안시했다. 남편은 '나'에게 이런 사실을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남편이 음식물을 넘기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어 정밀진단을 받는다. '크론키드카나다'라는 희귀병에 걸렸다고 했다. 그 병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증세가 반복되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음식을 먹으면 자연적으로 호전된다고 했다. 정신과 의사는 '나'에게 남편이 제 나이를 살아본 적 없이 책임감에 억눌려 병을 얻었으니 남편의 어머니 역할을 하여 짐을 덜어주길 권한다.

세면장 창틀에 깃들었던 새들이 날아간다. 새벽 여명 속에 앙상한 뼈를 구부린 채 잠들어 있는 남편의 뼈를 '나'는 하나 하나 짚어보며 읖조린다. 그래, 괜찮다......이젠 괜찮다.

 

o 우물을 들여다보다(광장 40주년 헌정 신작소설집 <교실>, 2001, 문학동네)

 

이삿짐을 다 싼 이윤수는 새로 이사올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어느 날 겪었던 기이한 경험에 대해. 

오래된 우물의 덮개를 열어본 날, 한 여자가 추레한 차림으로 내 집에 스며든다. '나'는 그녀를 위해 밥을 짓고, 향을 피운 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나'의 언니도 어디선가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겠지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 여자가 다시 올지도 모른고, '나'의 언니가 그처럼 스며들지도 모르니, 그때는 놓고 간 독경 테이프를 들려주길 바란다며 편지를 마친다.

 

o 물 속의 사원(문학과 사회 2002년 여름호)

 

그녀는 최나영 피부관리 연구소의 피부미용사였다. 그녀는 무척 열심히 일했다. 일이 끝나면 그녀는 피부관리 연구소에서 그냥 잤다. 별도의 거처가 없었다.

어느 날 피부관리 연구소에 다방 여자가 찾아온다. 여자는 다방 한가운데 커다란 수조를 마련해 놓고 거기에 악어를 키우고 있었다. 다방에 찾아온 손님들은 악어에 대해 함구했다. 그저 혼자 다시 와서 보곤했다. 다방 여자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다방 여자는 악어를 굶겨 흉폭하게 만든 후 시신을 악어에게 먹게 한다는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준다. 악어는 하나의 사원이었다.

관리소장의 행패로 건물은 수시로 정전이 되었고, 어느 날인가는 똥이 여기 저기 뿌려져 있기도 했다. 입주민들은 하나 둘 건물을 떠난다. 그녀는 관리소장의 차에 방화를 한다.

최나영 피부관리 연구소도 문을 닫자 그녀는 다방 여자와 함께 살기로 한다. 다방 여자에게는 그녀만한 딸이 있었다. 어렸을 적에 다른 곳에 두고 와 아는 척도 할 수 없는 딸이었다. 

월세 기간이 끝난 후 집주인이 그녀와 다방여자가 살던 방 문을 딴다. 그녀들이 어디로 사라진지는 모른다. 다만 홍수가 날 정도로 비가 쏟아 붓던 날, 그녀가 다방 여자를 업고 지하 다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는 사람이 있었지만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방 여자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다.

그녀들의 집을 보러 왔던 여자가 침대 밑에서 그녀의 이름으로 다방 여자가 부은 적금통장과 도장을 발견한다. 집을 보러 온 여자는 불안한 눈동자로 집을 나간다. 통장과 도장은 그녀의 가방에 들어 있었다.

 

o 달의 물(문학동네 2001년 겨울호)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 의사는 아버지에게 일절 술을 입에 대지 말 것을 명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는 고자질 전화를 해온다. '나'는 그것이 화가 난다.

다니는 약국은 정형외과 원장에게 수익금을 갖다 줘가며 비위를 맞춰 왔건만 최근 원장이 별도의 약국을 새로 개업하고 그쪽으로 손님을 몰아주는 통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나' 역시 아는 선배와 약국을 차려 독립할 심산이었기에 부족한 돈을 변통해 볼 요량으로 고향에 간다. 

막상 고향집에 가니 아버지가 술을 마신다는 어머니의 고자질은 말짱 거짓말 같다. 아버지도 완강히 부인한다. 오빠가 고향집에 내려와 조카 동이를 맡긴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이를 데리고 절집을 구경간다. 아버지는 한사코 절집 구경을 마다한다. 구경을 마치고 온 후 입구에 와보니 아버지가 한결 밝아진 모습이다. 점방에서 막걸리를 사마신 뒤끝이다.

오빠가 이혼한 사실이 밝혀진다. 없어진 동이를 찾다가 옥상 장독대에서 동이와, 아버지가 숨겨 놓은 소주병이 발견된다. 새로 놓는 다리에 대해 어머니는 다리가 넓어져야 사고나 날 뿐이라며 험한 꼴 당하지 않고 사지 멀쩡한 채 죽는 것이 말년의 바램이라고 말한다.

 

o 혼자 간 사람(창작과 비평 2002년 겨울호)

 

'나'는 한때 친하게 지냈지만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간의 소식을 전하며 S 이야기를 한다. 소설가인 S는 한동안 '나'와 이런 저런 우연으로 만남이 겹치던 사람이었다.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돌연 S가 사라졌다. 그리고 월드컵의 열기가 온 나라를 들썩이던 때, S는 홀로 투병하다가 쓸쓸히 죽는다. 

 

o 부석사 - 국도에서(창작과 비평 2000년 겨울호)

 

P와 '나'는 공인된 연인 사이였지만 어느 날 예고 없이 P가 다른이와 약혼하면서 파국을 맞는다. 얼마 후 P는 결혼식을 올린다. '나'는 비참하게 버려졌지만 P는 도리어 '내'가 약혼 소식을 들은 후로도 연락 한 번 안 한 독한사람이라 했다. 그런 P가 뜬금없이 '나'의 생일을 챙기더니 1월 1일에 '나'의 집을 방문한다는 연락을 한다. 잠시나마 흔들리려는 마음을 다잡는 '나'는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그'에게 부석사에 가자는 제안을 한다.

그는 상처입은 수리부엉이가 회복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감동적인 다큐를 만들어 방송국에 팔았는데 누군가의 음해로 큰 상처를 입었다. 그 누군가는 마음을 조금씩 허물던 박PD였다. 박PD는 그가 일부러 수리부엉이를 상처 입혔을지도 모른다는 낭설을 퍼뜨렸다. 그는 방송국을 휴직한다. 박PD가 1월 1일에 그의 집을 방문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그 만남을 원치 않는다. 부석사에 가자는 제안에 응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와 그는 오피스텔의 뒷산을 거닐다가 조그마한 텃밭에서 서리를 하며 안면을 튼 사이다. '내'가 데려가는 개는 사실 그가 박PD로부터 받아다 키우던 개였다. 부석사로 가는 길을 어디서 잘 못 들었는지 모르지만 둘은 길을 잃는다. 창 밖에는 눈이 내려 바깥이 내다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

 

<종소리>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외딴방>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남편과 살지만 남편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아내, 이사를 가야하는 번역가, 어릴 적 상처로 방에서는 잠들지 못하고 방화를 일삼는 그녀, 사귀던 애인에게 예고 없이 버림 받은 주인공 등. 타인에게 상처 받고 고독한 그들은 심리적, 혹은 공간적으로 외딴방에 처해 있다. 

그들이 외딴방에 처해 있는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외면적으로 드러난 이유는 이 사회가 강제한 측면이 있다. 신경숙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모성성'을 간간히 제시한다. <종소리>에서는 남편의 어머니가 되어보라는 정신과 의사의 말을 인용하고, <물 속의 사원>의 다방 여자는 잃어버린 딸 대신 그녀를 딸처럼 생각하며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근 20년 만에 신경숙의 소설을 읽는다. 다시 읽는 신경숙의 소설도 최근작은 아니다. 

보일러가 고장난 방에서 전기 스토브 앞에 앉아 이틀 동안 <외딴집>을 읽은 기억이 난다. 돈도 없었고, 딱히 만날 사람도 없었다. <외딴방>은 나를 위로해주는 소설 같았다. 외롭던 시절이었다.

 

다시 읽은 신경숙의 소설은 그때만큼 마음을 건드리지 않는다. 신경숙이 제시하는 모성성이라는 것은 최근 유행한 '엄마 미소'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고, 잇달아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를 떠올리는 연상 작용을 일으킨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터무니 없는 낙관주의도 싫고, '엄마 미소'라는 단어가 표상하는, 아픔 없이 흐뭇함만을 연상시키는 사랑의 형태도 싫다. 모성성도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결과물일 뿐이다. 이미 브레히트는 <코카서스의 백묵원>에서 이를 통찰력 있게 그려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