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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주드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5
토마스 하디 지음, 정종화 옮김 / 민음사 / 2007년 5월
평점 :
부모가 모두 사망하여 아주머니 집에 맡겨진 주드는 새 쫓는 일 따위로 푼 돈을 벌며 생계를 돕는다. 주드는 자신을 가르친 은사 필롯슨을 존경했는데, 그가 학문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향한 크라이스트민스터의 대학에 자신도 언젠가는 입학하여 학자나 성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의 돌파리 의사로부터 라틴어와 그리스어 독학에 관해 얼핏 들은 주드는 필롯슨에게 도움을 청하는 글을 띄운다.어렵사리 책을 구한 주드는 독학을 시작하지만 그 과정은 눈 뜬 장님이 길을 찾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더디기만 했다.
그러던 중 마을 처녀 아라벨라가 주드에게 눈독을 들인다. 그녀는 천박하고 세속적인 여성이었는데 갖은 계교로 주드를 손아귀에 넣는다.
아라벨라와 결혼한 주드는 곧 결혼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라벨라 역시 학문에만 관심을 쏟는 주드에게 금세 실증을 느낀다. 둘은 별거에 들어가고, 아라벨라는 가족들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간다.
주드는 잠시 미루어두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크라이스트민스터로 떠난다. 그리고 사촌 수 브라이드헤드를 만난다. 아주머니는 무슨 이유에선지 수를 절대 만나선 안된다고 말했지만 주드는 그녀를 만난 후 아주머니의 경고도 잊고 곧 사랑에 빠진다. 서로의 영혼이 공감하며 차츰 사랑에 빠지는 둘 사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하나는 대학들이 빈털털이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주드의 입학을 불허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절망한 주드가 술을 마시고 수에게 못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수는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필롯슨과 결혼하고 만다.
그러나 수 역시 자신의 결혼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약속에 얽메어 결혼하기는 했지만 필롯슨과 육체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심지어 그를 혐오하는 태도마저 보인다. 몇 달도 견디지 못하고 수는 필롯슨에게 자신을 놓아줄 것을 요청한다. 필롯슨은 결혼이라는 강제적 관습에 그녀를 붙잡아둘 수 없음을 깨닫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를 보내준다.
다시 만난 주드와 수는 함께 살기는 하되 정식 결혼식은 올리지 못한다. 과거 자신들이 벗어난 결혼이라는 관계 속으로 다시 뛰어들 용기가 없었고, 정형화된 틀에 자신들을 가둘 경우 사랑이 죽어버릴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 즈음 아라벨라가 주드에게 난데 없는 편지를 보낸다. 과거 둘이 헤어지기 직전 아라벨라가 임신 중이었는데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 아이를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돌봐왔지만 이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주드에게 보내니 키워 달라는 것이었다. 주드와 수는 아이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아이는 어딘지 애늙은이 같은 면이 있었다.
그 후로 아이가 둘 더 태어난다. 주드와 수는 이곳 저곳 옮겨가며 생계를 꾸린다. 크라이스트민스터로 가서 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생활고 때문에 가슴 한켠에 묻어둔 채였고, 주변에서는 끊임 없이 둘이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며 쑤군대고 박해했다. 그러던 중 주드가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빈곤한 상태가 계속된다. 새로 집을 구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아이가 많다거나,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거절된다. 아라벨라의 아이가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이 부모에게 짐이 된다고 판단하여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만다. 어린 동생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이 수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하고 만다. 수는 자신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비웃고 교만하게 행동한 탓에 신이 노해 벌을 내린 것이라 생각한다. 종교에 광적으로 메달리던 수는 필롯슨에게 되돌아가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주드의 격렬한 반대와 극심한 고통을 외면한 채 떠나간다. 수는 필롯슨과 두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반송장이 되다시피 한 주드를 아라벨라가 다시 데려가 결혼식을 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골방에서 주드는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이름없는 주드>는 출간 직후 보수주의자들과 종교계의 강한 반발에 직면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능력과 상관 없이 대학 진학의 꿈을 좌절당한다는 설정과, 결혼이라는 제도를 사랑을 압살하는 강제적 계약관계로 묘사하는 부분, 종교적 가르침에 집착하던 수가 필롯슨에게 되돌아가는 상황을 부도덕한 행위로 그린 부분 등이 반발을 일으킨 것이다. 그 결과 평소에도 시를 더 높은 예술적 분야로 여기던 토마스 하디는 이 작품을 끝으로 두 번 다시 소설에 손대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시만 썼다고 한다.
주드가 석공으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익히고, 크라이스트민스터의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토마스 하디의 젊은 시절과 흡사하다고 하는데, 실제 토마스 하디의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다.
소설 속에서 수가 필롯슨에게 떠나기 직전 히스테리 상태에서 주드에게 내뱉는 대사는 매우 섬뜩하다.
"......고삐 풀린 정열보다 더 일부 여성의 도덕심을 무너뜨리는 내면의 욕구가, 남자에게 끼칠 수 있는 해를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관심을 끌고 그를 사로잡으려는 욕구가, 발동한 것뿐이었어요. 오빠를 손아귀에 넣은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두려웠어요......"
그저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주드가 선뜻 딸려들어와 오히려 두려웠고 상황에 의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고백이다. 마치 유부남을 유혹했던 아가씨가 유부남이 이혼하고 자신이 유부남의 행동에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오자 한 발 빼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결혼이라는 인습 때문에 주드와 수가 고통받고 괴로워하는데, 주드는 수의 변덕과 불가해한 행동들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받는다. 주드는 수에게 못된 여자,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라고 토로하고 때로 부도덕한 짓을 하고 있다고 질책하기도 한다. 그녀는 주드와 함께 살면서도 사랑에 대해서는 자기만의 환상을 쫓는다. 그녀의 신경증을 남자인 주드로서는 이해할 도리가 없다.
필롯슨에게 떠나기 전 횡설수설하는 대목이 어쩌면 그녀가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아라벨라보다 더한 악녀다. 그녀는 필롯슨에게 떠난 후에도 주드가 찾아오자 키스를 허락한다. 그래놓고도 금새 키스를 중지시키면서 자신이 설정한 역할로 돌아간다. 그녀는 스스로 정한 배역을 연기할 뿐인 것처럼 느껴지고, 그녀가 주드와 함께 살았던 시기의 모든 행동도 거짓처럼 느껴찐다. D.H.로렌스는 "수는 우리 문명이 빚어낸 최상의 산물로, 그녀는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