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아래 봄에 죽기를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은 '가나리야'라는 주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안락의자 탐정으로 분류될 수 있는 구도 데쓰야가 주점의 마스터이다. 10석 정도의 L자형 바와 2인용 탁자 2개의 단촐한 식당에서 4종류의 맥주와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음식을 내놓는 구도는 상당부분 <심야식당>의 마스터와 오버랩 된다.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은 자유율 하이쿠 모임의 회원 가타오카 쇼고가 사망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때 그와 교분을 나눴던 프리랜서 작가 이지마 나나오는 쇼고의 쓸쓸한 죽음이 애닯아서 그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난다. 40년 전의 대화재로 고향과 이름을 버린 하이쿠 시인은 죽기 전까지 매일 먹은 음식들을 담담하게 적어 놓는다. 간소한 식사들을 적어놓았을 뿐인데,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니 슬픈 정조를 자아낸다.


<가족사진>은 이혼 경력이 있는 샐러리맨과 지하철역 대출 서가에 꽂혀있는 가족사진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족사진이 왜 책들 사이에 끼어 있었는지에 대해 가나리야의 단골들이 이런저런 추리를 쏟아낸다. '이혼'과 '가족'이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어울리면서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마지막 거처>는 다마 강변에 사는 노부부와 카메라맨 쓰마키 오부히코의 이야기이다. 포스터를 뜯어간 노파가 보낸 '가지 겨자절임'이 메인 테마이다.


<살인자의 빨간 손>은 어렸을 적 강렬한 기억이 만들어낸 괴담에 대해 가나리야의 마스터와 손님들이 각자의 추리를 내놓는 이야기이고, <일곱 접시는 너무 많다>는 회전초밥집에서 참치만 일곱 접시를 먹은 손님이 왜 그랬을까 추리하는 에피소드이다. <물고기의 교제>는 <꽃 아래 봄에 죽기를>과 연관되는 스토리로 가타오카 쇼고와 기누에라는 여인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1961년 야마구치 현에서 태어나 고마자와 대학 문학부 역사학과를 졸업한 기타모리 고는 1995년 <광란의 사계절>로 제6회 아유카와 데쓰야 상을 받고 데뷔하였다. 뒤이어 발표한 <아누비스신의 산성(97)>, <여우 덫(97)> 역시 좋은 평을 받았으며, 1999년에 발표한 본작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은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의 단편 및 연작단편집상을 수상하였다. (에도가와 란포상이 신인의 장편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은 기성작가를 대상으로 한 연간 최우수상으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권위있는 상이다) 일본 추리소설이 장편 위주로 흘러갔기 때문에 3년 만의 단편 수상이라고 한다.


"번개가 어둠을 찢고 모습을 드러내듯, 카메라의 플래시가 모델의 모공까지 놓치지 않듯이, 단편은 인생의 진실을 한순간에 보여 준다. 짧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고 강렬하며, 허무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소설 형식이 단편이다." 권말에 해설을 쓴 고하라 히로시가 헨리 슬레서의 말, '단편은 섬광의 인생' 을 인용하며 부연설명한 대목인데 참으로 맞는 말이다.


기타모리 고의 소설은 구성과 기교가 뛰어나고 독특한 정조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때문에 장르소설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 미덕을 갖추고 있는데, 2010년 48세의 젊은 나이에 심부전으로 사망해서 독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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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마징가 담쟁이 문고
이승현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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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꼴통 공고에 다니는 '나' 와 친구들이 W금속공업에 취업을 나간다. 시급 1,170원, 30일 기준 기본급 280,800원. 여기에 2교대 야간근무를 더하면 60~70만원에다가, 보너스가 600%니까 두달에 한번씩 30만원이 더 나온다. '나'는 100만원 가까운 월급에 매력을 느껴 공장에 정을 붙이기로 한다.

공장은 H자동차의 협력업체로 '나'와 친구들은 밴딩기와 프레스기 따위를 다루거나, 오피탈 그라인더로 빼빠를 치는 작업을 맡게 된다. 굉음과 쇳가루 때문에 귀마개와 마스크를 쓰고 익숙치 않은 기계를 다루는 육체노동에 몸은 고되고, 학교와 다를 바 없는 규율과 반복에 넌더리가 나면서도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를 '나'와 친구들은 제법 견뎌낸다.

그 와중에 영양사 유경이 누나를 사모하다 닭 쫓던 개 신세도 되보고, 노노갈등도 경험하고, 한직이처럼 일에 신명을 바치는 친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혼란도 겪는다.

공장에서 잔뼈가 굵은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나' 역시 그 사람들 중 누군가를 닮은 어른이 되어가리라 생각하던 어느 날 걱실걱실 일 잘하던 강조장의 팔이 프레스에 잘리고, 그 충격 때문에 '나'는 공장을 그만둔다. 


다분히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성장소설인데, 풋풋한 맛은 있으나 소설적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다.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의 일관된 철학이 희미하다 보니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방관자적 태도를 취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인물들은 에피소드에 필요한 소도구로 취급된다. 인물들 간의 대립 상황도 긴장고조의 수단으로는 어느정도 기능을 하나, '내'가 심판으로 참여하길 거부하면서 매번 흐지부지 되고 만다. 

결국 에피소드와 재담으로 졸가리를 끌고 가지만 한계가 드러나고, 강조장의 팔이 절단되는 파국적 결말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34796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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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남자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지세현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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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미카도 언니가 사는 카페 건너편에는 빌라가 있다. 그 빌라 2층에는 방이 세 개 있다. 2층 왼쪽 방에는 중국인이 산다. 간혹 여자와 중국말로 다투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창문이나 커튼을 닫는 일이 없다. 오른쪽 방에는 '내'가 대학에 다닐 때 같은 학과 동기였던 얌전한 남학생이 산다. 그는 간혹 창문을 열고 난간에 이불을 말리긴 하지만 항상 파란색 커튼을 쳐놓는다. 서로 안면이 있으면서도 인사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방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2층의 가운데 방은 비어 있었는데, 6월말 남자가 이사왔다. 한 달 전의 일이다.


남자가 이사 오고 며칠이 지나 창가에 작은 화분이 놓인다. 방에 화분을 놓아두는 것으로 보아 나쁜 사람은 아닌 듯하다. 말 못하는 식물을 공들여 키우는 사람은 여유 있고 대범하며, 적어도 '나'보다 순수할 것이다.

며칠 후 남자의 방에서 들리는 유쾌한 웃음소리에 커튼을 젖혀 보니 예상대로 젊은 여자가 있다. 늘 그렇듯 레이스 커튼만 쳐져 있다.


미카도 언니는 빼어난 미인은 아니다. 하지만 생활에 지친 남자들은 어두침침한 카페 안에서 언니의 손짓 하나, 눈길 한번에도 묘한 신비감을 갖고 반응한다. 언니는 항상 솜씨 좋게 마실 음료를 준비하거나 절묘한 타이밍에 웃어주고 때로 알 수 없는 소리를 할 뿐이다. 언니는 남자가 마음에 들면 방으로 불러들이고 내키지 않을 때는 혼자 자거나 '나'를 붙잡고 수다를 떤다.


'내'가 1년도 채 다니지 않은 대학을 그만두고 살 집조차 잃을 위험한 시기에, 미카도 언니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와 엘러리 퀸 등 어린아이들도 읽을 수 있을 만큼 한자가 적은 문고판 책에 빠져 카페가 끝날 때까지 있었지만 사람들의 잡담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씩 언니의 매력적인 웃음소리가 들려오면 문득 고개를 들어 카운터에 있는 언니를 바라보곤 했다. '나'도 모르게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든 어느 날, 언니가 "여기서 일하지 않을래요?"라고 물어봐 주었다. 그날 언니와 새우튀김을 먹고, 가게 열쇠를 받았다. 그날부터 '나'는 언니의 카페 2층 방에서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언니가 '나'에게 "마리모! 선생님이 오셔"라고 말했다. 언니는 가게를 청소했고, 예쁘게 옷을 차려입은 다음 선생님을 기다렸다. 선생님은 갈색 체크부츠를 신은 중년의 남자였고, 언니를 대학교 때 가르쳤다고 했다. 그와 언니는 어딘가 닮아 있다. 타인에게 무심하고 담담하다. '나'는 그에게 마음이 끌린다.


'나'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훔쳐본다. '나'는 "인간이란 생각하는 만큼 움직여요. 모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움직이면 움직이는 만큼 인간이 되고......"라고 그에게 말한다.


그와 언니의 앞에서 '나'는 악다구니를 쓴다. 언니는 교활하다고, 이 남자 저 남자를 방으로 끌어들이면서, 매일 밤 창녀처럼 생활한다고 지탄한다. 그런 '나'를 보고 언니는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선생님에게 미소를 짓는다. "그것봐요, 이상한 애죠" 언니는 눙치듯 말하고는 화제를 돌린다. 그날 밤, 아름다운 미카도 언니와 선생님이 벽 건너편에 함께 있는 소리가 들린다. 건너편 남자의 방 커튼 너머로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남자는 언니의 방을 들여다보고 있다.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푹 빠져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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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나나에는 1983년 사이타마에서 태어나 도서관정보대학 도서정보학부를 졸업한 뒤 여행사에 취직해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혼자있기 좋은 날>과 마찬가지로 <이웃집 남자> 역시 사건이라 할 만한 것은 없다. 아름다운 미카도 언니에 대한 막연한 동경,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선생님에 대한 질투와 호감의 복잡미묘한 감정, 이웃집에 이사온 젊은 남자에 대한 호기심 등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낼 뿐이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더불어 문장의 청결미가 돋보이는, 관능미가 녹아들어간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제42회 가와데쇼보 문예상을 수상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338327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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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속삭임 - 합본개정판
기시 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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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원에서 터미널 케어를 담당한 의사 기타지마 사나에에게 이메일이 도착한다. 아마존으로부터 전송된 이메일이다. 발신자는 사나에의 애인 다카나시로, 그의 본래 직업은 작가였다. 그러나 최근 다카나시는 죽음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된 작품을 쓰지 못하는 고통을 겪다가 신문사가 주최하는 아마존 탐사대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메일은 몇 차례 전송되었는데, 그 중 가장 기묘한 내용은 다카나시 일행이 아마존에서 길을 잃고 헤맨 내용이었다. 니나가와 교수, 아카마쓰 조교수, 모리 조수, 카메라맨 시라이 씨와 다카나시로 이뤄진 탐험대 일행이 길을 잘 못 들어서 불을 피우고 야영을 할 때였다. 식량이 거의 바닥나 곤란해 하는 그들 옆으로 우아카리 원숭이가 다가왔다. 그 원숭이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 같은 태도로 일행을 물끄러미 관찰했는데, 일행은 주저없이 원숭이를 살해해 고기를 나눠 먹었다. 그런데 그 뒤로 탐험대에게 우호적이던 아마존 원주민 카미나와족의 태도가 돌변한다.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모험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돌아온 다카나시는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 식욕과 성욕이 엄청나게 강해져서 보이는 것은 아무거나 먹어치웠고, 사나에의 몸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마존에 가기 전엔 죽음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을 갖고 있던 그가, 돌아온 뒤로는 죽음을 찬미하고 동경하는 등 전과는 완전히 다른 행동패턴을 보였다. 그리고 얼마 뒤, 다카나시는 자살한다.


이상한 죽음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고양이과 짐승을 두려워했던 교수는 사파리파크를 찾아가 호랑이 앞에 드러누워 자신의 몸을 내맡겼고,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고통스러워했던 카메라맨은 딸을 기차 선로에 던져 살해한 뒤 자신도 자살한다. 마치 자신이 가장 공포스러워했던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거기에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들 같았다. 그런데 그들이 죽기 전 공통적으로 진술한 내용은 "천사의 속삭임이 머릿속에서 들려온다"는 것이었는데...


그 뒤로도 수상한 종교집회에 다녀온 젊은이들의 죽음이 이어진다. 결벽증을 앓았던 소녀는 오폐수로 오염되어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물로 투신했고, 거미를 두려워했던 젊은이는 자신의 집을 온통 거미로 채워넣은 뒤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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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나온 내용인데, 편형동물문 흡충강에 속하는 디크로코엘륨 덴트리티쿰의 중간 숙주는 달팽이와 개미, 종숙주는 양으로 반드시 순서대로 그 삼자의 체내를 지나지 않으면 성숙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달팽이에서 개미로 옮아가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개미의 몸에서 양으로 옮아가는 것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이 흡충은 개미 뇌의 식도하신경절에 구멍을 내어 개미의 행동을 제어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흡충에 감염된 개미는 풀 끝까지 기어올라가서 줄기를 베어 물고 그대로 잠든 듯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로써 양이 풀을 먹을 때 같이 먹힐 가능성이 생긴다.

또, 광견병에 감염된 개는 쓸데없이 헤매며 돌아다니고 상대가 누구든 상관 않고 물어뜯는다. 이것은 우연치고는 광견병 바이러스에게 너무 좋은 조건의 행동이다.


1998년 6월에 출간된 <천사의 속삭임>은 기시 유스케의 세번째 장편소설로, <아웃브레이크>, <링> 등과 같은 바이오 스릴러가 집중된 시기에 간행되었는데 발상과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이 박력있어 주위에 추천해줄만 하다. 


지난 7월 22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작년에 갔던 해운대수련원에 다시 갔는데,  우타노 쇼고의 <시체를 사는 남자>와 기시 유스케의 <천사의 속삭임>을 읽었다. 에어컨 바람을 쏘이면서! 에어컨이 없는 여름을 3년째 나고 있는데 올해는 정말 힘들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334566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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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사는 남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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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9월 14일 기슈 지방의 시라하마로 내려간 에도가와 란포는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은 절망에 빠져 투신을 결심한다. 하지만 결행 직전, 즈카모토 다다시라는 청년이 란포를 저지하여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 다음 날, 란포의 목숨을 구해준 즈카모토 다다시가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시 <달에 울부짖다> 내용을 모방한 기묘한 자세로 목숨을 끊는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자세로 목을 메단 것이다. 이 광경은 포장마차를 하는 남자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는 자신의 포장마차를 묶어놓은 끈을 누군가 가져간 것 같아 언덕을 오르다 시체를 보게 된 것이다. 남자가 허겁지겁 순사를 데리고 오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다다시의 시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경찰은 때마침 불어온 강풍에 시체가 바다로 빠졌다고 판단하여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에도가와 란포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목숨을 구해준 다음 날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관 종업원의 말에 따르면 청년은 월애병(月愛病)을 앓는 것 같다고 했는데,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하고 여자 가발을 쓴 뒤 기모노를 입고 달을 쳐다보곤 해서 섬뜩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청년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시의원인 다다시의 아버지 다이조와 동생이 왔는데, 동생 즈카모토 히토시는 죽은 다다시와 얼굴이 꼭 닮은 쌍둥이었다.


한때는 추리소설계의 거장으로 군림했으나 현재는 창작력 고갈로 절필한 호소미 다쓰토키가 <백골귀> 라는 이름으로 잡지에 연재되기 시작한 소설을 읽고 호기심을 느낀다.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의 미발표작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구성과 내용이었다. 호소미는 작품이 발표된 잡지의 편집자에게 연락해 작가와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만남은 곧 성사되는데, 뜻밖에도 니시자키 가즈야라는 이름의 신예작가는 호소미 다쓰토키의 진지한 독자이자 팬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호소미가 대뜸 니시자키 가즈야를 호통치며 진짜 작가가 누군지 대라고 윽박지른 것이다. 묘하게도 니시자키는 순순히 자신은 진짜 작가가 아니라고 고백한 뒤, 도작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다만 경찰이었던 자신의 할아버지가 쓴 사건기록노트를 참고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백골귀>의 2회에는 시인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등장한다. 이때부터 실제 추리는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도맡아 하고, 추리소설계의 거장 에도가와 란포는 왓슨 박사 역할 정도로 머물게 된다. 사건의 변수가 되는 새로운 인물도 등장하는데 기타가와 유키에라는 이름의 여성이다. 이 여성은 죽은 다다시의 동생 히토시의 약혼녀였는데, 그다지 지조가 없는 여자로 다다시에게도 매력을 느껴 따로 고백까지 한 것 같다. 

그렇다면 다다시는 동생의 약혼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하여 자살하게 된 것일까? 죽기 직전 입었다는 기모노도 알고보니 유키에의 것이라지 않는가?

하지만 사쿠타로는 죽을 사람이 우연히 포장마차를 발견하고 거기에 묶인 줄을 사용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도하는 자세로 있었던 것은 겨드랑이 사이에 고무공 같은것을 끼워넣어 맥이 잡히지 않게 하려는 자세였다고도 했다. 사쿠타로는 확신에 차 다다시의 생존설을 주장했고, 그를 찾아 모든 비밀을 밝혀내겠다고 공언한다.


이상이 <백골귀>의 2부이다. 그런데 이 시점부터 호소미 다쓰토키는 니시자키 가즈야에게 <백골귀>의 최종편 원고를 자신에게 팔아넘기라고 집요하게 설득하기 시작한다. 잡지사가 에도가와 란포의 미발표 작품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 판매부수를 올리려는 전략을 취했으므로, 작가의 정체나 이름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호소미는 니시자키와 같은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백골귀>를 단행본으로 펴내면 인세수입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지만, 자신과 같은 중견작가가 <백골귀> 작가였다고 밝힌 뒤 단행본을 내면 판매 규모가 꽤나 클 것이라며 니시자키 가즈야를 설득했다. 게다가 자신은 인세에 일체 손을 대지 않겠다고까지 선언한다. 

하지만 니시자키는 자신이 존경하던 작가가 추접스러운 논리로 자신의 작품을 취하려하는 데 진절머리를 내며 혐오감을 표시한다. 그러자 호소미는 사실 자신이 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필사적으로 메달리는데, 그가 이토록 <백골귀>를 자신의 작품으로 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연 명예욕 외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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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생인 우타노 쇼고는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도쿄농공대학 농학부를 졸업한 뒤 1988년에 시마다 소지의 추천으로 <긴 집의 살인>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작가는 아비코 다케마루, 아야츠지 유키토 등과 함께 신본격 미스터리 계열로 분류되는데 서술 트릭을 잘 활용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제5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과 제4대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독자의 편견을 날카롭게 꿰뚫는 트릭도 일품이지만, 삶에서 아름다운 때가 반드시 젊은 시절만은 아니라는, 당연하면서도 잊기 쉬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다시 본 작품으로 돌아와서 <백골귀> 3회에서 사쿠타로는 트릭을 파해하여 사건을 해결한다. 시의원인 아버지 다이조가 분김에 히토시를 죽게한 뒤, 다이조와 다다시는 사건을 은폐하기로 계획한다. 그 결과 2년간 다다시는 히토시 행세를 하며 1인 2역을 했고, 자살사건을 일으켜 죄를 숨기려 했던 것이다.

다다시는 자전거 사고로 손가락이 골절된 적이 있는데 시신은 그런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쿠타로 등은 다다시 생존을 믿고 끝까지 추리해낸 것이다.


그런데 책의 말미에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호소미 다쓰토키가 <백골귀> 원고를 자기것으로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이유가 적혀있다. <백골귀> 이야기는 바로 그의 이야기였던 것. 

뒷이야기로 미루어보건데, 그가 사실은 히토시였던 것 같다. 애초에 죽었던 것이 히토시가 아니라 다다시였고, 히토시가 다다시 행세를 했던 거라는 암시가 곳곳에 적혀 있는데...그렇다면 <백골귀> 3회에서 둘만 있는 공간에서 자살한 것으로 그려진 아버지 다이조도 사실은 히토시가 형을 살해한 아버지가 미워 죽인것이 아닐까? 

그것은 호소미 다쓰토키가 저 세상으로 가져갈 그만의 진실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골귀> 3부의 말미에 적힌 것처럼... 꿈같은 이야기면 어떠하리. 꿈같은 이야기면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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