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를 사는 남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1933년 9월 14일 기슈 지방의 시라하마로 내려간 에도가와 란포는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은 절망에 빠져 투신을 결심한다. 하지만 결행 직전, 즈카모토 다다시라는 청년이 란포를 저지하여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 다음 날, 란포의 목숨을 구해준 즈카모토 다다시가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시 <달에 울부짖다> 내용을 모방한 기묘한 자세로 목숨을 끊는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자세로 목을 메단 것이다. 이 광경은 포장마차를 하는 남자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는 자신의 포장마차를 묶어놓은 끈을 누군가 가져간 것 같아 언덕을 오르다 시체를 보게 된 것이다. 남자가 허겁지겁 순사를 데리고 오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다다시의 시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경찰은 때마침 불어온 강풍에 시체가 바다로 빠졌다고 판단하여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에도가와 란포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목숨을 구해준 다음 날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관 종업원의 말에 따르면 청년은 월애병(月愛病)을 앓는 것 같다고 했는데,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하고 여자 가발을 쓴 뒤 기모노를 입고 달을 쳐다보곤 해서 섬뜩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청년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시의원인 다다시의 아버지 다이조와 동생이 왔는데, 동생 즈카모토 히토시는 죽은 다다시와 얼굴이 꼭 닮은 쌍둥이었다.


한때는 추리소설계의 거장으로 군림했으나 현재는 창작력 고갈로 절필한 호소미 다쓰토키가 <백골귀> 라는 이름으로 잡지에 연재되기 시작한 소설을 읽고 호기심을 느낀다.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의 미발표작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구성과 내용이었다. 호소미는 작품이 발표된 잡지의 편집자에게 연락해 작가와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만남은 곧 성사되는데, 뜻밖에도 니시자키 가즈야라는 이름의 신예작가는 호소미 다쓰토키의 진지한 독자이자 팬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호소미가 대뜸 니시자키 가즈야를 호통치며 진짜 작가가 누군지 대라고 윽박지른 것이다. 묘하게도 니시자키는 순순히 자신은 진짜 작가가 아니라고 고백한 뒤, 도작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다만 경찰이었던 자신의 할아버지가 쓴 사건기록노트를 참고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백골귀>의 2회에는 시인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등장한다. 이때부터 실제 추리는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도맡아 하고, 추리소설계의 거장 에도가와 란포는 왓슨 박사 역할 정도로 머물게 된다. 사건의 변수가 되는 새로운 인물도 등장하는데 기타가와 유키에라는 이름의 여성이다. 이 여성은 죽은 다다시의 동생 히토시의 약혼녀였는데, 그다지 지조가 없는 여자로 다다시에게도 매력을 느껴 따로 고백까지 한 것 같다. 

그렇다면 다다시는 동생의 약혼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하여 자살하게 된 것일까? 죽기 직전 입었다는 기모노도 알고보니 유키에의 것이라지 않는가?

하지만 사쿠타로는 죽을 사람이 우연히 포장마차를 발견하고 거기에 묶인 줄을 사용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도하는 자세로 있었던 것은 겨드랑이 사이에 고무공 같은것을 끼워넣어 맥이 잡히지 않게 하려는 자세였다고도 했다. 사쿠타로는 확신에 차 다다시의 생존설을 주장했고, 그를 찾아 모든 비밀을 밝혀내겠다고 공언한다.


이상이 <백골귀>의 2부이다. 그런데 이 시점부터 호소미 다쓰토키는 니시자키 가즈야에게 <백골귀>의 최종편 원고를 자신에게 팔아넘기라고 집요하게 설득하기 시작한다. 잡지사가 에도가와 란포의 미발표 작품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 판매부수를 올리려는 전략을 취했으므로, 작가의 정체나 이름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호소미는 니시자키와 같은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백골귀>를 단행본으로 펴내면 인세수입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지만, 자신과 같은 중견작가가 <백골귀> 작가였다고 밝힌 뒤 단행본을 내면 판매 규모가 꽤나 클 것이라며 니시자키 가즈야를 설득했다. 게다가 자신은 인세에 일체 손을 대지 않겠다고까지 선언한다. 

하지만 니시자키는 자신이 존경하던 작가가 추접스러운 논리로 자신의 작품을 취하려하는 데 진절머리를 내며 혐오감을 표시한다. 그러자 호소미는 사실 자신이 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필사적으로 메달리는데, 그가 이토록 <백골귀>를 자신의 작품으로 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연 명예욕 외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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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생인 우타노 쇼고는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도쿄농공대학 농학부를 졸업한 뒤 1988년에 시마다 소지의 추천으로 <긴 집의 살인>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작가는 아비코 다케마루, 아야츠지 유키토 등과 함께 신본격 미스터리 계열로 분류되는데 서술 트릭을 잘 활용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제5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과 제4대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독자의 편견을 날카롭게 꿰뚫는 트릭도 일품이지만, 삶에서 아름다운 때가 반드시 젊은 시절만은 아니라는, 당연하면서도 잊기 쉬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다시 본 작품으로 돌아와서 <백골귀> 3회에서 사쿠타로는 트릭을 파해하여 사건을 해결한다. 시의원인 아버지 다이조가 분김에 히토시를 죽게한 뒤, 다이조와 다다시는 사건을 은폐하기로 계획한다. 그 결과 2년간 다다시는 히토시 행세를 하며 1인 2역을 했고, 자살사건을 일으켜 죄를 숨기려 했던 것이다.

다다시는 자전거 사고로 손가락이 골절된 적이 있는데 시신은 그런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쿠타로 등은 다다시 생존을 믿고 끝까지 추리해낸 것이다.


그런데 책의 말미에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호소미 다쓰토키가 <백골귀> 원고를 자기것으로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이유가 적혀있다. <백골귀> 이야기는 바로 그의 이야기였던 것. 

뒷이야기로 미루어보건데, 그가 사실은 히토시였던 것 같다. 애초에 죽었던 것이 히토시가 아니라 다다시였고, 히토시가 다다시 행세를 했던 거라는 암시가 곳곳에 적혀 있는데...그렇다면 <백골귀> 3회에서 둘만 있는 공간에서 자살한 것으로 그려진 아버지 다이조도 사실은 히토시가 형을 살해한 아버지가 미워 죽인것이 아닐까? 

그것은 호소미 다쓰토키가 저 세상으로 가져갈 그만의 진실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골귀> 3부의 말미에 적힌 것처럼... 꿈같은 이야기면 어떠하리. 꿈같은 이야기면 어떠하리.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33387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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