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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래 봄에 죽기를 ㅣ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은 '가나리야'라는 주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안락의자 탐정으로 분류될 수 있는 구도 데쓰야가 주점의 마스터이다. 10석 정도의 L자형 바와 2인용 탁자 2개의 단촐한 식당에서 4종류의 맥주와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음식을 내놓는 구도는 상당부분 <심야식당>의 마스터와 오버랩 된다.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은 자유율 하이쿠 모임의 회원 가타오카 쇼고가 사망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때 그와 교분을 나눴던 프리랜서 작가 이지마 나나오는 쇼고의 쓸쓸한 죽음이 애닯아서 그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난다. 40년 전의 대화재로 고향과 이름을 버린 하이쿠 시인은 죽기 전까지 매일 먹은 음식들을 담담하게 적어 놓는다. 간소한 식사들을 적어놓았을 뿐인데,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니 슬픈 정조를 자아낸다.
<가족사진>은 이혼 경력이 있는 샐러리맨과 지하철역 대출 서가에 꽂혀있는 가족사진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족사진이 왜 책들 사이에 끼어 있었는지에 대해 가나리야의 단골들이 이런저런 추리를 쏟아낸다. '이혼'과 '가족'이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어울리면서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마지막 거처>는 다마 강변에 사는 노부부와 카메라맨 쓰마키 오부히코의 이야기이다. 포스터를 뜯어간 노파가 보낸 '가지 겨자절임'이 메인 테마이다.
<살인자의 빨간 손>은 어렸을 적 강렬한 기억이 만들어낸 괴담에 대해 가나리야의 마스터와 손님들이 각자의 추리를 내놓는 이야기이고, <일곱 접시는 너무 많다>는 회전초밥집에서 참치만 일곱 접시를 먹은 손님이 왜 그랬을까 추리하는 에피소드이다. <물고기의 교제>는 <꽃 아래 봄에 죽기를>과 연관되는 스토리로 가타오카 쇼고와 기누에라는 여인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1961년 야마구치 현에서 태어나 고마자와 대학 문학부 역사학과를 졸업한 기타모리 고는 1995년 <광란의 사계절>로 제6회 아유카와 데쓰야 상을 받고 데뷔하였다. 뒤이어 발표한 <아누비스신의 산성(97)>, <여우 덫(97)> 역시 좋은 평을 받았으며, 1999년에 발표한 본작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은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의 단편 및 연작단편집상을 수상하였다. (에도가와 란포상이 신인의 장편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은 기성작가를 대상으로 한 연간 최우수상으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권위있는 상이다) 일본 추리소설이 장편 위주로 흘러갔기 때문에 3년 만의 단편 수상이라고 한다.
"번개가 어둠을 찢고 모습을 드러내듯, 카메라의 플래시가 모델의 모공까지 놓치지 않듯이, 단편은 인생의 진실을 한순간에 보여 준다. 짧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고 강렬하며, 허무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소설 형식이 단편이다." 권말에 해설을 쓴 고하라 히로시가 헨리 슬레서의 말, '단편은 섬광의 인생' 을 인용하며 부연설명한 대목인데 참으로 맞는 말이다.
기타모리 고의 소설은 구성과 기교가 뛰어나고 독특한 정조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때문에 장르소설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 미덕을 갖추고 있는데, 2010년 48세의 젊은 나이에 심부전으로 사망해서 독자들을 안타깝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