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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남자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지세현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평점 :
'나'와 미카도 언니가 사는 카페 건너편에는 빌라가 있다. 그 빌라 2층에는 방이 세 개 있다. 2층 왼쪽 방에는 중국인이 산다. 간혹 여자와 중국말로 다투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창문이나 커튼을 닫는 일이 없다. 오른쪽 방에는 '내'가 대학에 다닐 때 같은 학과 동기였던 얌전한 남학생이 산다. 그는 간혹 창문을 열고 난간에 이불을 말리긴 하지만 항상 파란색 커튼을 쳐놓는다. 서로 안면이 있으면서도 인사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방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2층의 가운데 방은 비어 있었는데, 6월말 남자가 이사왔다. 한 달 전의 일이다.
남자가 이사 오고 며칠이 지나 창가에 작은 화분이 놓인다. 방에 화분을 놓아두는 것으로 보아 나쁜 사람은 아닌 듯하다. 말 못하는 식물을 공들여 키우는 사람은 여유 있고 대범하며, 적어도 '나'보다 순수할 것이다.
며칠 후 남자의 방에서 들리는 유쾌한 웃음소리에 커튼을 젖혀 보니 예상대로 젊은 여자가 있다. 늘 그렇듯 레이스 커튼만 쳐져 있다.
미카도 언니는 빼어난 미인은 아니다. 하지만 생활에 지친 남자들은 어두침침한 카페 안에서 언니의 손짓 하나, 눈길 한번에도 묘한 신비감을 갖고 반응한다. 언니는 항상 솜씨 좋게 마실 음료를 준비하거나 절묘한 타이밍에 웃어주고 때로 알 수 없는 소리를 할 뿐이다. 언니는 남자가 마음에 들면 방으로 불러들이고 내키지 않을 때는 혼자 자거나 '나'를 붙잡고 수다를 떤다.
'내'가 1년도 채 다니지 않은 대학을 그만두고 살 집조차 잃을 위험한 시기에, 미카도 언니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와 엘러리 퀸 등 어린아이들도 읽을 수 있을 만큼 한자가 적은 문고판 책에 빠져 카페가 끝날 때까지 있었지만 사람들의 잡담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씩 언니의 매력적인 웃음소리가 들려오면 문득 고개를 들어 카운터에 있는 언니를 바라보곤 했다. '나'도 모르게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든 어느 날, 언니가 "여기서 일하지 않을래요?"라고 물어봐 주었다. 그날 언니와 새우튀김을 먹고, 가게 열쇠를 받았다. 그날부터 '나'는 언니의 카페 2층 방에서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언니가 '나'에게 "마리모! 선생님이 오셔"라고 말했다. 언니는 가게를 청소했고, 예쁘게 옷을 차려입은 다음 선생님을 기다렸다. 선생님은 갈색 체크부츠를 신은 중년의 남자였고, 언니를 대학교 때 가르쳤다고 했다. 그와 언니는 어딘가 닮아 있다. 타인에게 무심하고 담담하다. '나'는 그에게 마음이 끌린다.
'나'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훔쳐본다. '나'는 "인간이란 생각하는 만큼 움직여요. 모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움직이면 움직이는 만큼 인간이 되고......"라고 그에게 말한다.
그와 언니의 앞에서 '나'는 악다구니를 쓴다. 언니는 교활하다고, 이 남자 저 남자를 방으로 끌어들이면서, 매일 밤 창녀처럼 생활한다고 지탄한다. 그런 '나'를 보고 언니는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선생님에게 미소를 짓는다. "그것봐요, 이상한 애죠" 언니는 눙치듯 말하고는 화제를 돌린다. 그날 밤, 아름다운 미카도 언니와 선생님이 벽 건너편에 함께 있는 소리가 들린다. 건너편 남자의 방 커튼 너머로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남자는 언니의 방을 들여다보고 있다.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푹 빠져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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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나나에는 1983년 사이타마에서 태어나 도서관정보대학 도서정보학부를 졸업한 뒤 여행사에 취직해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혼자있기 좋은 날>과 마찬가지로 <이웃집 남자> 역시 사건이라 할 만한 것은 없다. 아름다운 미카도 언니에 대한 막연한 동경,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선생님에 대한 질투와 호감의 복잡미묘한 감정, 이웃집에 이사온 젊은 남자에 대한 호기심 등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낼 뿐이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더불어 문장의 청결미가 돋보이는, 관능미가 녹아들어간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제42회 가와데쇼보 문예상을 수상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338327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