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교회 잔혹사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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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교회를 개척한 정지만 담임목사가 은퇴를 선언하며 후임자로 김건축 목사를 지명한다. 김건축목사는 신학대학 교수로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한인교회를 운영했는데, 이 모습이 정지만 목사에게는 신실하게 비춰졌던 것 같다. 박정식 목사와 같이 신심 깊은 일부 목사들이 김건축 목사가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인물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정지만 목사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김건축 목사는 취임과 동시에 정지만 목사의 영향력을 최소화 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자기 식대로 교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먼저 목사를 충성도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누어 차별을 두었다. 글로벌 선교를 기치로 내걸어 영어를 잘하는 목사를 우대하고, 특히 원어민 목사는 요직에 앉혔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 장교 출신 목사를 우대했는데, 그들은 충성과 복종이 무엇인지 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언론홍보 전담 부서를 두어 신문과 방송에 서초교회를 PR하기 시작했다.


한편 주인공 장세기 목사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딛는 기분이었다. 그는 평신도에서 간사직을 거쳐 뒤늦은 나이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청년부 담당 교역자를 맡은 인물이었다. 영어는 젬병이었고, 군출신도 아닌데다가 박정식 목사 등과 각별한 친분까지 있었으니 언제 짤려도 이상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건축 목사가 립싱크로 영어 설교를 한 것과 대필로 영어교재를 출판한 것, 그리고 당회의 결정 없이 화천 땅을 매입한 사실 등이 들통 나자 장세기 목사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김건축 목사는 장세기 목사가 정지만 원로 목사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므로 그를 활용하면 원로 목사를 따르는 부류의 불만을 잠재울 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화천 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세기 목사가 원로 목사의 수첩을 훔쳐 내 날조하고, 땅 매입과 관련한 이권이 결부된 교인들이 원로 목사의 집을 찾아가 집회를 벌인다. 원로 목사는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사망하고, 김건축 목사는 원로 목사의 사망을 어떻게 활용할까 골몰한다. 장세기 목사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김건축 목사에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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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랑의 교회> 초대 목사 옥한음의 장남이다. 옥한음 목사가 소설 속 정지만 목사처럼 정년을 5년 앞두고 오정현 목사를 지목한 뒤 은퇴했기에 서초교회는 다분히 <사랑의 교회>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소설 내용이 지극히 평이한 인상비평에 머물고 있어 개신교에 대한 탐구를 겸한 목적으로 책을 구입했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사실 '원로 목사가 있던 시절의 사랑의 교회는 좋은 교회, 김건축 목사가 온 뒤로는 나쁜 교회' 식의 논리 구조는 개신교 자체가 가진 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개신교가 당초 구교로 부터 분리될 때의 문제의식은 성직자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천국행 열차표를 파는 부패한 성직자를 예수님과의 연결고리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뛰쳐나온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 논리 대로라면 목사 역시 일체의 권위를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개신교는 당초의 문제의식은 고이 접어 두고 '목사교'로 거듭 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말대로 목사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교회가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된다는 말은 전부 틀린 말은 아니다.

개신교 자체는 건드리지 않고 교회 문제만 이야기 하려다 보니 '좋은 목사/나쁜 목사' 얘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평면적인 인물과 밋밋한 구성은 작가의 소설쓰기 연습이 충분치 않은 결과인 듯 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07634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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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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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되는 과정에서 이소룡은 수음과 더불어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이었던 시절, 서출로 태어난 자의 이야기. 

아류는 아무리 잘해도 주류나 본류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짝퉁과 진품의 차이는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큰 법인데, 어쩌면 자신이 끝내 이소룡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기나긴 과정진술이었을지도 모를 이야기.

비록 짝퉁으로 출발했으나 긴 세월을 거쳐 스스로 인생유전의 고유한 스토리를 완성한 자의 이야기. 

표절과 모방, 추종과 이미테이션, 나중에 태어난 자 에피고넨에 대한 이야기이며 끝내 저 높은 곳에 이르지 못했던 한 짝퉁 인생에 대한 이야기.


작가가 권두에 소개하는 말이다. 


'소설을 읽는 자들이 오리지널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궁금증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벌써 오리지널이 되기 위한 중요한 덕목 하나를 포기한 셈이다. 


<고령화 가족>을 영화로 보고 포복절도 했던 기억이 나서 산 책인데 그럭저럭 읽힌다. 이소룡의 영화 <정무문>, <맹룡과강>, <사망유희>, <당산대형>, <용쟁호투>를 소제목으로 달아 짝퉁이지만 진퉁이 되고 싶었던 자의 인생유전을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 놓는데, 만담에 가까운 이 말투가 박민규, 성석제, 이문구 등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같이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걸터듬으며 사건을 전개시켜 가는데, 사건과 인생유전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시대정신이라 할 만한 것들을 붙들고 가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기꺼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볼 용의가 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04033751


이상하게 줄거리를 함께 올리면 작성실패가 뜬다. 줄거리도 궁금한 분은 위 주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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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나이트 클럽
이명행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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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놈'의 본명은 성호경이다. 특별국(Special Branch)에서 K2 정보분석관(Intelligence Officer)으로 일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대경물산 자재부장이다. 신문을 읽고, 주요국가들의 TV방송을 모니터링하여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놈'의 임무다. 차단의 법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소통은 오직 결재라인만 허용 된다. 

그런 '그놈'이 집으로 돌아오면 골몰하는 작은 일탈 행위가 있으니 바로 사이버 세계에서 '동고(銅鼓)' 라는 아이디로 논객 행세를 하는 것과, '댄싱 울프' 라는 아이디로 음악방송(이라는 이름의 카바레)을 이끄는 것이다. 

정보분석관쯤 되는 자가 일반인을 상대로 논객 노릇을 하니 사뭇 왕이나 된 듯 도취감을 맛볼 수 있었고, 타고난 달변으로 여자들을 후리니 제비 노릇도 제법 성취가 있었다.


'그년'의 본명은 민지수이다. 일간지 경찰 출입기자이고, 사이버 세계에서는 '명월'과 '묘랑'이라는 두 개의 아이디를 쓰고 있다. 본래는 '명월'이라는 아이디로 '댄싱 울프'의 음악방송에 들락거리다 그와 채팅 혹은 폰을 매개로 섹스하는 사이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동고'와 '댄싱 울프'의 IP 주소가 같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 '동고'에 대응하는 '묘랑'이라는 아이디를 만들어 그의 정체를 까발려주겠다고 벼르는 중이다.


그러던 중, 우면동에서 전직 정보분석관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실종사건을 조사하던 박형사는 민지수에게 금고에서 SB 마크가 찍힌 문건이 나왔는데, 특별국 감찰관이 경찰서까지 들어와서 훔쳐갔다는 정보를 흘린다. 박형사는 감찰관이 훔쳐가기 전 만든 복사본을 민지수에게 넘기며 '꼭 터뜨리라'고 독려한다.

한편, 그 SB 문건은 성호경이 분실한 문건이었다. 어느 날, 인터넷 친구 리자드가 주관한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했다가 전직 정보분석관과 술자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날 문건이 든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다. 국장은 문건 분실에 대해 질책하지 않고 단지 함구령을 내렸을 뿐이었고, 감찰관 역시 성호경에게 잃어버린 가방을 들고 와서 '문건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진술을 순순히 받아들여 주었기에 성호경은 홀린 기분이었다. 찜찜한 점은 감찰관이 성호경과 전직 정보분석관의 만남은 국장의 주선이었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성호경은 민지수가 SB 문건을 입수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 기사를 내지 말라는 협조 공문을 보내지만 기사는 예정대로 신문지상에 '터지고' 만다. 이 사건으로 국장이 딥 스로트로 판명되어 경질된다. 감찰관은 과장으로 승진한다. 

감찰관의 인터넷 아이디가 리자드 라는 것은 나중에 밝혀진다. 

민지수와 성호경은 감찰관, 그리고 그와 뒷배를 맞춘 박형사에게 속아 장기말 노릇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문건은 국장을 축출하기 위해 감찰관 측에서 흘린 것이었다. 


사이버 상에서는 '명월'과 '묘랑' 이 '동고'와 '댄싱 울프'에게 물을 먹인다. '명월'과 '묘랑' 이 동일인물이었다는 사실에 경악한 '그놈'은 자신의 아이디를 오더 소더버그로 고친 뒤 '명월'과 '묘랑'의 주인을 반드시 독살하겠다고 결의를 다진다. 

얼마 뒤 성호경은 오프모임 '모티프'에 새로 참가한 여자 맴버가 '명월' 또는 '묘랑' 이라는 사실, 그리고 나아가 진짜 이름은 '민지수'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성호경의 기억은 민지수가 독살되어 자신의 방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민지수의 기억은 성호경의 시체를 서해대교에 빠뜨리는 것이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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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행은 한반도를 둘러 싼 열강들의 속내와 그들의 욕망이 빚어낸 비극적인 국내정치에 관심을 갖는 작가로 1957년 나주 출생이고, 데뷔작은 1993년에 발표한 장편 <황색 새의 발톱>이다. 

2004년도에 발표된 이 작품 역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배경으로 깔린다. 왜 프랑스 라팔 전투기가 값이 싸고 운용도 쉬운데 F15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지, 서해교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등...

하지만 중요한 모티프는 역시 현실과 사이버의 경계, 그리고 진실과 거짓이다. 


소설에서 '그놈(성호경)'이 골몰하는 것은 ' 개연성이 있는가?' 이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편, 민지수가 중요시 하는 것은 '확실한 것인가' 이다. 그런데 이 경우 역시 '확실한' 이란, '거짓으로 밝혀졌을 경우에도 누군가 책임을 질 수 있어  면피 할 수 있는가' 이지 '진실인가?'의 의미는 아니다. 

정보를 분석하는 자(성호경)와, 정보를 까발리는 자(민지수)는 '개연성'과 '확실함'으로 자신이 가진 정보를 가공하고 승부수를 던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둘 모두 장기판의 말 처럼 이용되고 버려질 뿐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결말이 서로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이상하면서도 당연한 것 같다. 진실과 무관한 다툼으로 누가 희생되는가 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장기말끼리 백날 싸워봐야 죽어나는 것은 장기말일 뿐이다. 한반도 주변의 열강들이 한반도를 장기말처럼 이용하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해선 안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0218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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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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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음울한 미스터리나 서스펜스를 쓰는 작가 안자이 도모야는 아내이자 그림책 작가인 유메코와 야쓰가타케 남쪽 기슭 산장에서 신작 <어둠의 여인>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와인을 마시고 잠이 든다.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아내 유메코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바깥은 가루눈이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기묘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안자이는 순간 온 몸이 굳고 만다. 소리를 내는 정체가 바로 말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 말벌에 쏘인 적이 있었는데, 의사는 안자이가 벌 독 알레르기 반응이 있으므로 한 차례 더 쏘이면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생명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말했었다. 도대체 눈보라가 몰아치는 11월 하순에, 그것도 해발 고도 1,000미터가 넘는 산에 위치한 산장 안에 말벌이 돌아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사라진 아내, 전화와 컴퓨터 등 통신수단의 단절, 환풍구를 통해 이동하는 노랑말벌과 지하실에 둥지를 틀었음에 분명한 장수말벌! 안자이는 변변한 옷도 입지 못한 상태에서 말벌의 생태에 관해 서술된 책 한권에 의지하여 말벌의 개체수를 줄여가며 사투를 벌인다. 그러면서도 끊이지 않는 의문은 '도대체 왜 아내가 나를 살해하기 위해 이런 함정을 판 것일까' 였다. 

그때 안자이의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언제였던가, 안자이는 아내가 쓴 동화의 후속편을 자신이 멋대로 써서 출판사에 기고한 적이 있었다. 아내의 동화에서 천진난만하게 그려졌던 주인공들이 안자이가 쓴 후속편에서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여 먹고 먹히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아내는 안자이의 그런 만행에 대해 당시엔 가타부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시리즈는 더 이상 씌여지지 않았었다. 그런 증오심과, 안자이가 사고사했을 때 받게 될 막대한 보험금이 결합 되어 살해욕구를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내와 불륜이 의심되는 곤충학자 미사와가 말벌 살해를 제안했다면 안자이는 파리목숨이나 마찬가지다. 

집 안에는 살인 말벌이, 바깥에는 살을 에는 칼바람이 기다리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안자이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요행 목숨을 건진다 하더라도 자신의 시체를 수거하러 올 유메코와 미사와에 맞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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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포함되어 있음)


 작품 중 <크림슨의 미궁>을 연상케 하는 소설에 대해 언급하는데, '정보를 획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는 느낌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여기에 서술트릭과 다중인격을 가미하여 화자가 사실은 자신을 안자이라고 착각하는 70대 노인이라는 설정의 결말을 제시한하는데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으므로 반전으로 기능하기엔 미흡한 면이 있다. 

속도감 있게 읽히지만 작가의 여타 작품에 비해 다소 실망스럽다. 박력도 떨어지고, 구성도 엉성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497325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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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자 1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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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1월 23일. 교도소장 알폰소 베린저가 지방검사 사무실로 편지를 보낸다. 편지의 내용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수감자에 관해서였다. 그는 RK-357/9 라는 죄수번호로 불렸는데, 신분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10월 22일 한밤중 알몸으로 시골을 배회하다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지문조회를 해봤지만 전력이 없었고 판사에게도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4개월 18일의 구류형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복역 중인 이 자의 행동이 교도소장의 주의를 끌었다. 그는 펠트 소재 헝겊으로 자신이 만지는 모든 물건을 닦았는데 수도꼭지나 변기를 가리지 않았다. 이것만 본다면 결벽증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는 자신의 체모도 주워 담았다. 이는 명백히 생체정보를 유출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였다. 따라서 교도소장은 그가 모종의 중범죄를 저지를 자가 틀림 없다고 생각하여 긴급영장을 통해 DNA 테스트를 강제 집행하도록 허가해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제 그가 풀려나기 까지는 불과 109일 밖에 남지 않았다.


숲 속 빈터에서 아홉살에서 열 세살 먹은 백인 여자 아이들의 신체 일부, 정확히는 팔이 발견된다. 데비, 에닉, 세이바인, 멀리사, 캐럴라인. 최근 실종된 여자아이들의 이름이다. 데비는 열두살로 사립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었다. 에닉은 열살이었고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되었다. 세이바인은 일곱살로 회전목마를 타다 실종되었고, 멀리사는 열 세살로 생일 날 외출했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섯번째 캐럴라인은 자신신의 방 침대에서 자다가 실종된다. 그런데 경찰이 발견한 팔은 모두 여섯 개이다. 알려지지 않은 실종자가 한 명 더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여섯번째 아이의 부모는 실종신고를 하지 않은 것일까.


로시 경감이 이끄는 강력범죄 전담반 행동과학 수사팀이 사건을 맡게 되는데, 실질적인 팀 리더는 프로파일러 고란 게블러 박사이다. 그리고 실종아동 전문 수사관 밀라가 수사에 참여하게 되고, 수사관들은 연쇄살인범에게 '앨버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추적을 시작한다. 범인을 '괴물' 이라 부르며 우리와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법의학자의 검사 결과 밝혀진 끔찍한 사실은 범인이 팔을 잘라내면서 항부정맥제와 ACE억제제, 그리고 베타차단제 등을 투여하여 아이를 살려두고 있다다는 사실. 남은 시간은 20여일에 불과하다.  

그러던 중 용의자 알렉산더 버먼이 잡히고 그의 차에서 첫번째 희생자로 추정되는 데비의 시체가 발견된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협박당해 지시된 행동을 하고 잡혔을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버먼은 유치장에서 자살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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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포함되어 있음)


수사가 진전될수록 전체적인 범죄의 윤곽이 그려지지 않고 일부분만 언뜻언뜻 확인된다. 그리고 섬뜩한 사실이 드러나는데, 바로 범죄 현장에 언제나 제 3자가 있었다는 것.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책 도입부에 이미 강력한 떡밥을 투척해 놓은 상태이니 당연히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RK-357/9 가 진범일 터. 작가는 RK-357/9가 살인을 교사한 범인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독자는 '속삭이는 자'가 무엇을 뜻하는 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건 어딘지 익숙하다. 어디서였더라... 생각났다.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가 스탈링 수사관에게 수음한 결과물을 뿌렸던 믹스에게 '속삭임'으로 자살을 유도한 바 있다.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이미 다른 거장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후발 주자를 초라하게 만든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실종아동의 어머니가 밀라에게 사사건건 반기를 들던 수사팀 내 로사였다는 반전은 그렇다 쳐도 고란 게블러 박사가 정신이 붕괴된 살인자라는 설정은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또, 서술트릭을 사용하여 밀라와 실종 소녀를 착각하게 만드는 부분도 다소 진부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48122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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