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나이트 클럽
이명행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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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놈'의 본명은 성호경이다. 특별국(Special Branch)에서 K2 정보분석관(Intelligence Officer)으로 일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대경물산 자재부장이다. 신문을 읽고, 주요국가들의 TV방송을 모니터링하여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놈'의 임무다. 차단의 법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소통은 오직 결재라인만 허용 된다. 

그런 '그놈'이 집으로 돌아오면 골몰하는 작은 일탈 행위가 있으니 바로 사이버 세계에서 '동고(銅鼓)' 라는 아이디로 논객 행세를 하는 것과, '댄싱 울프' 라는 아이디로 음악방송(이라는 이름의 카바레)을 이끄는 것이다. 

정보분석관쯤 되는 자가 일반인을 상대로 논객 노릇을 하니 사뭇 왕이나 된 듯 도취감을 맛볼 수 있었고, 타고난 달변으로 여자들을 후리니 제비 노릇도 제법 성취가 있었다.


'그년'의 본명은 민지수이다. 일간지 경찰 출입기자이고, 사이버 세계에서는 '명월'과 '묘랑'이라는 두 개의 아이디를 쓰고 있다. 본래는 '명월'이라는 아이디로 '댄싱 울프'의 음악방송에 들락거리다 그와 채팅 혹은 폰을 매개로 섹스하는 사이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동고'와 '댄싱 울프'의 IP 주소가 같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 '동고'에 대응하는 '묘랑'이라는 아이디를 만들어 그의 정체를 까발려주겠다고 벼르는 중이다.


그러던 중, 우면동에서 전직 정보분석관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실종사건을 조사하던 박형사는 민지수에게 금고에서 SB 마크가 찍힌 문건이 나왔는데, 특별국 감찰관이 경찰서까지 들어와서 훔쳐갔다는 정보를 흘린다. 박형사는 감찰관이 훔쳐가기 전 만든 복사본을 민지수에게 넘기며 '꼭 터뜨리라'고 독려한다.

한편, 그 SB 문건은 성호경이 분실한 문건이었다. 어느 날, 인터넷 친구 리자드가 주관한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했다가 전직 정보분석관과 술자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날 문건이 든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다. 국장은 문건 분실에 대해 질책하지 않고 단지 함구령을 내렸을 뿐이었고, 감찰관 역시 성호경에게 잃어버린 가방을 들고 와서 '문건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진술을 순순히 받아들여 주었기에 성호경은 홀린 기분이었다. 찜찜한 점은 감찰관이 성호경과 전직 정보분석관의 만남은 국장의 주선이었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성호경은 민지수가 SB 문건을 입수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 기사를 내지 말라는 협조 공문을 보내지만 기사는 예정대로 신문지상에 '터지고' 만다. 이 사건으로 국장이 딥 스로트로 판명되어 경질된다. 감찰관은 과장으로 승진한다. 

감찰관의 인터넷 아이디가 리자드 라는 것은 나중에 밝혀진다. 

민지수와 성호경은 감찰관, 그리고 그와 뒷배를 맞춘 박형사에게 속아 장기말 노릇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문건은 국장을 축출하기 위해 감찰관 측에서 흘린 것이었다. 


사이버 상에서는 '명월'과 '묘랑' 이 '동고'와 '댄싱 울프'에게 물을 먹인다. '명월'과 '묘랑' 이 동일인물이었다는 사실에 경악한 '그놈'은 자신의 아이디를 오더 소더버그로 고친 뒤 '명월'과 '묘랑'의 주인을 반드시 독살하겠다고 결의를 다진다. 

얼마 뒤 성호경은 오프모임 '모티프'에 새로 참가한 여자 맴버가 '명월' 또는 '묘랑' 이라는 사실, 그리고 나아가 진짜 이름은 '민지수'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성호경의 기억은 민지수가 독살되어 자신의 방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민지수의 기억은 성호경의 시체를 서해대교에 빠뜨리는 것이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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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행은 한반도를 둘러 싼 열강들의 속내와 그들의 욕망이 빚어낸 비극적인 국내정치에 관심을 갖는 작가로 1957년 나주 출생이고, 데뷔작은 1993년에 발표한 장편 <황색 새의 발톱>이다. 

2004년도에 발표된 이 작품 역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배경으로 깔린다. 왜 프랑스 라팔 전투기가 값이 싸고 운용도 쉬운데 F15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지, 서해교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등...

하지만 중요한 모티프는 역시 현실과 사이버의 경계, 그리고 진실과 거짓이다. 


소설에서 '그놈(성호경)'이 골몰하는 것은 ' 개연성이 있는가?' 이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편, 민지수가 중요시 하는 것은 '확실한 것인가' 이다. 그런데 이 경우 역시 '확실한' 이란, '거짓으로 밝혀졌을 경우에도 누군가 책임을 질 수 있어  면피 할 수 있는가' 이지 '진실인가?'의 의미는 아니다. 

정보를 분석하는 자(성호경)와, 정보를 까발리는 자(민지수)는 '개연성'과 '확실함'으로 자신이 가진 정보를 가공하고 승부수를 던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둘 모두 장기판의 말 처럼 이용되고 버려질 뿐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결말이 서로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이상하면서도 당연한 것 같다. 진실과 무관한 다툼으로 누가 희생되는가 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장기말끼리 백날 싸워봐야 죽어나는 것은 장기말일 뿐이다. 한반도 주변의 열강들이 한반도를 장기말처럼 이용하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해선 안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0218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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