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펭귄클래식 7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진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화가 바질 홀워드를 방문한 헨리 워튼 경(해리)은 젊은 남자의 전신 초상화를 보고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며 경탄한다. 하지만 바질은 그 작품에 자기 자신을 너무 많이 투영시켰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출품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바질은 그림의 모델인 도리언 그레이로부터 새로운 스타일을 떠올렸고, 사물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되는 등 예술의 한 이데아를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해리는 도리언 그레이에게 비상한 흥미를 나타내는데, 바질은 해리가 도리언 그레이에게 영향을 주어 그를 변화시키고 결국 자신에게서 앗아갈 것을 염려한다. 도리언 그레이는 해리를 만나 몇 마디 나누자마자 그의 역설적인 견해와 철학에 매료당한다. 해리의 견해에 영향을 받은 도리언 그레이는 젊음이야말로 간직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라며 만약 자신이 늙어 변하는 대신 초상화가 변한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날 도리언 그레이가 3류 극장에서 연극을 보던 중 시빌 베인이라는 여배우를 알게 된다. 그녀는 세익스피어의 여러가지 작품에서 주인공 역할을 해냈는데, 각각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그녀에게 도리언 그레이는 천재성을 발견하고 반하고 만다. 그녀 역시 도리언 그레이의 외모와 기품에 반해 결혼할 꿈에 부풀게 되는데, 그녀의 동생 제임스 베인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누이가 들떠 있는 것을 보고 불안해 한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불행하게 한다면 죽이겠다는 말을 남기고 선원이 되어 호주로 떠난다.

바질과 해리에게 그녀를 보여주기로 한 날, 도리언 그레이와의 입맞춤으로 그녀는 연극 속의 그녀가 아닌 진짜 인생을 알게 되었고, 같은 이유로 그녀의 연기는 형편없어지고 만다. 지금까지는 연극에 몰입할 수 있었지만, 현실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연극 속 상대편 배우가 형편없는 중년 사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형편없는 연기는 도리언 그레이의 사랑을 싸늘하게 식게 만들었고, 울면서 애원하는 시빌 베인을 무대 뒤에 버려둔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밤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초상화가 미묘하게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입가에 잔인한 기색의 주름살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는 불안한 감각이 빚어낸 환영일 뿐이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시빌 베인에게 사죄하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해리가 방문하여 시빌 베인이 전날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해리는 시빌 베인이 진실로 살았던 적이 없으니 진실로 죽은 것도 아니라면서 오페라에 가자고 말하고 도리언 그레이는 그 말에 응한다.

도리언 그레이는 초상화가 자신의 악행을 반영하여 추악해지고 자기 대신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확실해지자 쓰지 않는 공부방으로 초상화를 이동시켜 가림막을 쳐놓는다. 그리고 해리로부터 한 권의 책을 선물 받는다. 그 책은 마치 도리언 그레이 자신이 아직 다 살기도 전에 쓰여진,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만 같았는데 그는 퇴폐적인 책의 영향력으로부터 결코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도리언 그레이는 괴상한 취미에 몰두했고, 창녀굴에 드나드는 등 온갖 악행을 일삼았지만 그의 외모만은 결코 변하지 않았고 대신 초상화만 갈수록 추악해졌다.

도리언 그레이가 서른여덟 번째 생일을 맞기 전날, 바질 홀워드가 그를 찾아 온다. 바질은 파리로 떠날 예정인데 그의 초상화를 전시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최근에 들려 오는 바질 홀워드에 대한 안 좋은 평판에 대해 염려하는 말을 한다. 흥분한 도리언 그레이는 바질에게 자신의 추악한 초상화를 보여준다. 바질은 경악하며 도리언에게 기도하라고 말하지만 도리언은 이미 늦었다며 바질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만다. 도리언은 예전 친구 캠벨의 약점을 이용하여 바질의 시체를 처리한다.

그러던 어느날 밤 도리언은 아편굴로 가는데 그곳에서 예전에 영국을 떠난 것으로 알았던 친구 에이드리언을 만난다. 친구가 없는 곳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자신을 예전 시빌 베인이 부르던 '매력적인 왕자님'으로 어떤 여자가 부르고 이 말을 들은 한 남자가 도리언 그레이를 살해하려 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제임스 베인으로 도리언 그레이를 추적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변하지 않은 외모를 이용하여 18년 전에 누이를 망쳤던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 젊을 수 있겠느냐며 위기를 탈출한다.

죽음이 한발짝씩 다가오는 공포에 사로잡힌 도리언 그레이는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다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가는데 사냥터에서 몰이꾼 한 명이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몰이꾼이 제임스 베인으로 밝혀진다.

전과 다르게 살아보기 위해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을 숨기고 순결한 처녀에게 선행을 베풀지만 해리는 그마저도 그녀에게는 불행한 결과를 낼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 도리언 그레이는 살인의 죄책감에 짓눌리다가 초상화 외에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 그는 바질 홀워드를 찔렀던 칼로 초상화를 찌른다. 비명과 함께 쿵하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하인들이 방 안에 들어서자 그곳에는 훌륭한 젊은이의 초상화와 추악하고 역겨운 용모의 사내가 가슴에 칼이 찔린 채 숨져 있었다.

 

185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오스카 와일드는 1891년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통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작품 때문에 외설죄로 1895년 2년 징역형을 선고 받는다. 팽귄 클래식에 수록된 판본은 1891년 워드 록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펴낸 판본인데, 이 판본과 1890년 판본은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1891년 판본은 외설 시비를 의식하여 '사랑'을 '예술에 대한 사랑' 으로 바꾸었고 13장이던 원작을 20장으로 추가하여 조상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심리적 붕괴 과정, 아편 소굴로 향하는 여정 등을 구체화 하였다고 한다. 또 제임스 베인의 사망과 헨리 경의 현란한 말솜씨를 더한 것도 다른 점이다.

 

로버트 미갤의 서문에 따르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출판되었을 때 비평가들에 대한 와일드의 응답이나 이후 출간된 많은 비평들, 그리고 그의 재판에서 주된 논란거리가 된 것은 예술의 역할, 예술과 도덕의 관계, 그리고 실제 작가의 생활과의 연관성이었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체면을 유지하면서, 혹은 적어도 자신의 평판에 신경을 쓰면서, 다른 한편으로 은밀하게 사회의 도덕규범을 위배하는 이중적인 삶이야 말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중심된 주제이다. 도리언은 초상화의 역할 덕분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쾌락적인 삶에 탐닉한다.

와일드는 비밀과 불가사의에 열광했다고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도리언'이라는 이름 자체에서 '그리스인의 사랑', 즉 동성애적 관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하여, 책에서는 역사적 인물 중에 유명한 동성애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 "자네와의 우정은 젊은이들에게 그토록 치명적인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도 동성애를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오스카 와일드는 1886년 친구인 로버트 로스에 이끌려 동성애 행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일드는 가족의 초상화에 대한 장에서 도리언의 행동이 유전적인 요소임을 드러낸다. 한편 부도덕한 행위는 그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다는 관상학적 믿음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작가 서문은 본문과 와일드의 예술관을 이해하고 난 연후에 좀더 명확히 다가온다. 작가 서문은 어찌 보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전체를 통해 오스카 와일드가 나타내고자 하는 예술관의 요약이다. 특히 예술을 위한 예술을 드러낸 대목은 현재도 여전히 논쟁거리가 될 만한다.

 

아름다운 사물에서 추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아무런 매력 없이 타락한 인물이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아름다운 사물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교양이 있다. 이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아름다운 사물을 오직 '아름다움'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선택된 사람들이다.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잘 썼든지, 잘못 썼든지 둘 중 하나다. 단지 그 뿐이다.

 

바로 이 구절이야 말로 오스카 와일드 예술관의 요체가 아닐까 한다. 즉 예술작품 자체에 어떠한 가치판단도 있을 수 없고 작품 자체만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에 대한 답시인 박목월의 <나그네> 中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이라는 구절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시 자체로 온전히 평가받아야 한다는 견해와, 일제 강점기 하에 끼니가 바쁜 마당에 술까지 담궈 먹을 마을이 어디 있었겠느냐는 논리로 시를 그 시대와 분리하여 평가할 수 없다는 견해가 대립된 논쟁이 기억난다. 또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낙엽 타는 냄새가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는 구절을 들어 일제 강점기에 갓 볶아 낸 커피 냄새를 맡으며 완상에 잠기는 것이 과연 문학에서 다루어야 할 주제인가 하는 논쟁도 떠오른다.

나로 말하자면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허구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예술에 삶의 추저분한 면모가 담기지 않는다 해서 그 예술이 고고한 예술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시대를 담아냈다고 해서 예술적 완성도는 전혀 없는, 조잡하기 짝이 없는 작품 역시 거부감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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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시간을 달리는 소녀>

과학실험실에서 우연히 수상한 인물을 만나고 약품 냄새를 맡은 가즈코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갖게 되어 불안해진 가즈코는 예전으로 되돌아가려 하고, 자신의 친구 가즈오가 사실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고 약품은 시간을 여행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가즈오는 가즈코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 후 미래로 돌아 간다. 가즈오와 함께 했던 기억 역시 사라졌지만 가즈코는 그리운 누군가를 언젠가는 분명히 만날 것이고 서로 잘 알고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는다.

 

<악몽>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과 다리를 건너는 것, 그리고 반야 가면에 과도하게 무서워 하는 주인공 마사코와 귀신을 무서워하는 울보 동생 요시오가 겁내는 이유를 찾아내고 용기를 갖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요시오는 부모님이 무심코 하는 말들에서 귀신 형상을 떠올려 무서워했던 것이고, 마사코는 어릴 적 친구 에츠를 만나서 반야 가면과 다리를 건너는 것을 무서워했던 이유를 기억해 낸다.

 

<The Other World>

불량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노부코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주변 세계가 조금씩 변해 자신이 원하는 세계가 되어버린 것을 발견한다. 다원우주와 동시존재를 알고 있는 또 다른 세계의 노부코가 실험 중 실수를 해서 다른 세계로 이동해버린 것이다. 다른 세계의 노부코는 다시 장치를 작동시키는데, 주인공 노부코는 이번엔 유명한 탤런트가 되어버리고 만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대해서 나쁘게 얘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언젠가는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드디스크에 잘 보관해 놓던 중 이번엔 영화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영화도 구해서 고이 모셔 놨다. OST 중 變わらない物 도 듣고 꼭 보고싶다고 여러번 생각했지만 정작 처음 접한 버전은 츠츠이 야스타카의 원작 소설이었고, 생각과 너무 다른 내용에 당황했다.

나는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미루고 미루는, 나 자신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습벽이 있다. 시간은 흘러가게 마련이고, 하고 싶은 일들만 하고 살아도 부족할 판에 말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애니메이션에 대한 극찬을 여러번 들었지만 정작 애니메이션은 아껴두고 OST와 소설로 조금 맛만 보는 나 자신이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늘 점심을 먹다가 TV에서 우현히 Nazim Hikmet이 쓴 시에 대해 들었다.

 

A true travel - Nazim Hikmet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항상 먼 길로만 돌아 돌아가지만 결국 진짜 무엇이 좋은지는 영원히 발견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왜냐하면 언제나 그걸 찾아가는 과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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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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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인죄로 기소되어 수감된 주인공이 자신의 변호사 피아르테스에게 범행 동기에 관해 편지를 쓴다.

 

주인공 나는 1932년 8월 오늘날의 폴란드령인 슈테틴에서 사탕공장 사장의 아들로 태어난다. 어머니는 사교계의 화려함을 좋아했지만, 아버지는 사탕공장의 경영과 이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아주 어린애라고만 볼 수는 없는 나이임에도 공장의 여직공과 나는 이를 외면한 채, 어린애를 껴안는다는 설정으로 성적 유희를 주 1회 즐긴다. 나는 이 연극을 통해 인생의 아슬아슬한 쾌락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독일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며 피난을 가게 되었고 사장 아들로서 누리던 이점들은 사라졌으며 어머니가 사망한다.

아버지가 우표판매점을 하는 과부와 살게 되자 나는 이복동생 '후레자식'을 제어할 필요성을 느낀다. 아버지 넥타이를 나의 소행으로 보이도록 잘라놓는 도박이 이복동생의 음험한 모함으로 비추도록 만드는데 성공한 이후 나는 놀이(spiel)의 재미에 심취한다. 우표판매점에서 우표를 몰래 훔쳐다 팔면서 이복동생에게 이권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발을 빼서 불미스러운 사태는 맞지 않았는데, 이복동생은 적발 당해 우표 절도 혐의가 뒤집어 쓰게 된다.

서독에서 미군 구호물자를 빼돌려가며 법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까지 취득할 즈음 아버지와 과부가 가진 재산을 몰수당했다는 증명서와 함께 서독으로 탈출하자 교묘히 아버지와 과부의 법적 혼인을 방해해 유산의 유일한 상속자가 된다. 시골 변호사사무소에서 경력을 쌓은 후에 정치판에 뛰어들어 놀이를 이어 나간다.

나는 나폴레옹에 대해 자주 생각하며 자신과 비교한다. 혹자는 나폴레옹의 가장 큰 실수가 러시아를 침공한 것이라고 하는데 나폴레옹은 유럽에서 더 이상 놀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의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결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놀이꾼은 놀이 이후 주어지는 상급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놀이 과정 자체에서 느끼는 충족감을 즐길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베를린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고 놀이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어느날, 자신이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만다. 놀이의 결과로 주어지는 상급은 쌓였지만, 놀이 자체는 지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구를 치면서 다음 놀이를 구상하고 결국 정치를 택한다. 정치는 20년간을 놀이터로 기능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너무나 뻔한 전개로 나는 따분함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를 살해하는 놀이를 생각해낸다. 나는 현대의 재판정에서는 살인의 동기, 살인으로부터 주어지는 이득 등이 설명되지 않을 때 형을 집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무나 평범하여 나와 어떤 연관도 짓지 못할 인물 찾기에 골몰하고 마침내 그를 살해한다. 그리고 감옥에 갖힌 나는 변호사에게 편지를 보내 법정에서 어떤 도식화된 틀에 자신의 범죄를 짜맞추고 그 결과로 형을 선고하지 못하도록 편지를 쓰는 것이다.

마침내 법정은 나의 무죄를 선고하고, 풀려난 나는 변호사에게 또 다른 놀이의 상대가 되어 줄 것을 제안한다.

 

만약 KOEI 사의 삼국지나 신장의야망을 플레이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주인공의 놀이에 대한 태도를 100% 이해할 것이 틀림 없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KOEI 사의 삼국지2를 접한 후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나는 매번 열광했다. 하지만 엔딩을 보기 위해 노력한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삼국지 시리즈가 가장 재미있는 순간은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주변의 땅들을 이제 하나 둘 정복해 가는 그 시점이다. 특히나 휘하 장수와 돈이 부족하여 전쟁과 내정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마침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재미 있다. 전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전략과 전술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오히려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땅이 서너개를 넘어서고 전쟁에서 패배가 거의 불가능한 시점까지 가면 기계적인 플레이로 변하고, 흥미는 반감되며, 엔딩을 보겠다는 욕구 보다는 좀 더 어려운 상황에서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고자 하는 생각이 더 매력적으로 나를 유혹한다.

 

주인공은 놀이의 결과보다는 승산이 없는 놀이에 뛰어드는 그 상황에 열광하고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과 예측할 수 있도록 자신이 상황을 조정해가는 노력 사이의 긴장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일반 대중과 분리시키는데, 자신은 시간과 자아를 주체적으로 활용하고 운명을 끊임없이 재조정해가는 '주체'로서의 놀이꾼으로, 대중은 주어진 여가와 자유시간마저 레저산업에 고스란히 반납하고 마는 '객체'로서의 노예로 구분한다. 게다가 법질서 역시 경제적 토대의 바람직한 반영으로서의 상부구조이므로, 상식을 벗어난 의미 없는 범죄행위에 대해서 법정이 처벌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놀이로서 이용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블랙 유머를 통해 작가는 현대인이 노예제사회의 노예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 신봉하는 법과 질서 역시 허구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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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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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후 일본의 도쿄,  잡지에 잡문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3류 소설가 세키구치가 기괴한 이야기를 듣는다. 유서깊은 산부인과 가문의 데릴사위가 어느날 연기처럼 증발해 버리고, 그의 아내는 20개월째 출산을 하지 못한 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세키구치가 고서점을 하는 친구 교고쿠도에게 이 기괴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는 사변을 늘어 놓으며 논평을 한다. 인간의 뇌와 마음, 그리고 이를 중계하는 인식이 있는데 인간의 감각이 뇌에 인식되는 과정에서 취사 선택이 일어나기 때문에 왜곡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양자역학의 예를 들면서 관찰자가 사물에 개입하는 순간 그 사물의 운동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타자의 존재 없는 실재'란 없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취재해서 잡지사에 기고하려던 세키구치의 애초 계획은, 기사가 게재된 후 그 집안이 풍문에 시달리고 진실이 곡해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중단되고 만다. 그런데 그의 친구이자 탐정인 에노키즈에게 구온지 료코라는 여성이 사건을 의뢰해 온다. 에노키즈는 유산을 물려받아 한량과 같이 살고 있는 인물로 취미 삼아 탐정 간판을 내걸고 있는데, 뜻밖에도 몇 건의 사건을 별다른 수고도 없이 해결한 전력이 있다. 그 이유는 에노키즈가 타인의 기억을 읽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료코는 에노키즈가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온 것이다.

료코는 자신이 교코라는 여성의 언니라고 밝히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녀의 집은 유서깊은 산부인과인 구온지 집안으로 다름 아닌 괴소문의 발원지이다. 어느 날 동생 교코와 그녀의 남편 후지마키가 심한 다툼을 벌인 뒤 후지마키가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는데, 다름 날이 되어도 그가 밖으로 나오지 않자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교코가 산기를 느꼈는데 20개월이 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고 배는 산처럼 불러만 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에노키즈는 료코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두 가지 질문을 하는데, '사건을 의뢰할 생각을 한 것이 누구인지', 그리고 '세키구치와 구면이 아닌지' 였다. 질문의 의도가 짐작이 가지 않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구온지 저택을 방문한 에노키즈는 문제의 방을 조사하더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따윈 아무것도 없고 경찰을 부르라는 엉뚱한 말을 하더니 돌아가버린다.

료코에게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낀 세키구치는 자신만이라도 도움을 주겠다면서 여러가지 조사를 하는데 조사 과정에서 여러가지 사실들을 알게 된다.

사라져버린 후지마키는 세키구치의 1년 선배로 의학을 지망하는 조용한 청년이었다. 후지마키는 학창 시절 교코를 보고 한 눈에 반해 세키구치를 통해 연애편지를 전달했고, 답장을 받은 후지마키는 교코와 몇 차례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교코에게 청혼을 하려고 구온지가를 찾아 갔으나 거절 당하고, 대신 의사면허라도 따가지고 온다면 혼인을 승락해주겠다는 말을 듣는다.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후지마키는 의사면허를 땄고 참전을 하였으며 종전 후에 다시 구온지가를 찾아가서 마침내 승락을 받고 결혼을 한다. 하지만 결혼 이후 교코과 후지마키는 격렬한 다툼을 거듭하한다. 후지마키가 10년 전의 연애편지 이야기를 꺼내면 교코는 그 따위 것은 알지 못한다며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한편 구온지가에는 나이토라는 젊은 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교코의 배우자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번번히 의사면허에서 낙제 하고 때마침 후지마키가 나타나자 밀려난 것이다. 교코는 나이토와 불륜 관계였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구온지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사라지고, 구온지가의 집안 내력이 빙의계였던 것이 알려지자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그리고 세키구치는 잊었던 옛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것은 자신이 교코에게 연애편지를 전해주던 날, 교코가 자신을 유혹하여 관계를 맺었던 기억이다. 아이 실종 사건으로 경찰 개입이 임박하자, 세키구치는 구온지가의 저주를 풀어달라며 교고쿠도를 설득한다.

마지못해 승락한 교고쿠도는 다음 날 사건 현장인 방으로 가서 저주를 풀어주는 듯한 주문을 왼다. 그리고 교코의 배가 찢어지고 그 속에서 증발했던 후지마키가 태어난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넋을 잃은 세키구치에게 교고쿠도의 설명이 이어진다. 후지마키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방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그의 시체는 오직 교코, 료코, 그리고 세키구치의 눈에만 보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 시체를 보았으면서도 의식의 한 부분은 거부를 했기 때문에 못 본 것으로 가상현실을 재구한 것이다.

구온지가는 대대로 무두아를 출산하는 유전적인 결함을 가진 집안이다. 불구의 아이가 태어나면 태아를 돌로 쳐 죽이는 것이 관습이었는데 료코의 어머니 역시 무두아를 출산하고 돌로 죽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료코는 다행히 무두아는 아니었지만 선천적으로 허약한 체질로 태어났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반면에 교코는 괘활하고 건강한 아이었다. 료코는 때때로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있었는데 집안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던 변태성욕의 의사가 흰독말풀을 이용하여 료코를 능욕했기 때문이었다. 료코는 자신의 인격을 동생인 교코로 분리하였고 세키구치에게서 편지를 받을 때 교코의 인격이었던 것이다. 료코는 교코로서 세키구치를 유혹하고 후지마키와 관계를 가졌으며 임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는 무두아였고, 집안의 관습대로 료코의 어머니는 무두아를 돌로 내리쳐 죽이고 만다. 그리고 료코에게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해 무두아 시체를 포르말린에 담아 침대 머리맡에 두기까지 했던 것이다. 료코는 자신의 인격을 다시 한번 분리하여 어머니 인격을 창조하였고 병원에서 아이를 훔치고 돌로 내리쳐 죽인다.

한편 료코와 관계 맺었던 사실을 몰랐던 후지마키는 전쟁 중 부상으로 성불구가 되었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만 있다면 모든 관계가 정상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연구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교코는 욕구불만으로 나이토와 관계를 맺으면서 후지마키의 마음을 돌리려는 비뚤어진 행동까지 하게 된다. 어느날 교코와 나이토가 정사 중일 때 후지마키가 연구 완성을 알리러 들어왔고, 다툼 끝에 교코가 나이프로 후지마키를 찌르고 만다. 의식이 멀어지는 가운데 기모노를 입은 료코는 후지마키의 눈에 어머니로 보였고, 어머니라는 말에 료코의 인격은 아이를 돌로 쳐 죽이는 역할로 변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무두아를 침대 맡에 놓았던 것처럼, 교코의 침대 맡에 후지마키의 시체를 놓아두었고, 시체는 시랍되어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것이다.

 

1994년 교고쿠 나츠히고 자신이 직접 출판사로 들고 간 작품으로 장편 처녀작이다. 그리고 처녀작으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치밀한 구성과 다방면의 고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은 우부메의 전설을 모티프로 하여 인식론, 양자역학 등을 차용하는데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데는 취사선택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이유로 사물 자체를 완전히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기억에 남지 않고 무의식의 영역으로 밀려날 수도 있고, 겪었던 일이라도 잊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필경 인간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만약 이러한 취사선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은 어쩌면 지옥으로 변할 지도 모른다. 양자역학 이론 역시 이런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수단이다. 양자와 같이 작은 것은 운동량을 관측하면 위치가, 위치를 관측하면 운동량이 확실치 않게 되어 불확정성의 원리가 도출된다. 이로써 사물은 관찰자가 개입하는 순간 관계를 맺게 되고, 관찰되기 이전의 상태와는 다른 형태와 운동을 지닌다는 이론이 가능해 진다.

이처럼 인식론과 불확정성의 원리, 혹은 타자 개념을 이용하여 교고쿠 나츠히코는 자신이 풀어나갈 허무맹랑한 이야기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체가 몇몇의 눈에만 보이지 않았다거나, 상상만으로 임신을 20개월째 하고 있다거나 하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읽고도 작가가 미리 마련해 놓은 게임의 법칙 내에서 사고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사변적인 전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면 무척 조잡한 소설에 그쳤을 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藤本進治 가 쓴 <인식의 발전구조> 생각나서 다시 펴 본다. 본문에 밑줄도 있고, 메모도 되어 있는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서문의 "인식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철학에서 가장 개척되지 못한 분야의 하나이다... 진실되게 사색하기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현실로부터 생각하라는 것이다" 하는 당부만은 기억이 난다. 미래와 과거를 널뛰기 하면서 현실은 외면하는 요즘의 나에게 필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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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바라다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오지가 좋아하는 마을>

형사 센도 타카시는 범인 추격 중 겪은 끔찍한 일로 억울성 감정불안 판정을 받고 휴직 중이다. 지인 사토미가 전화를 걸어와 용의자로 지목받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인 친구를 도와달라고 하자 센도는 눈 덮인 홋카이도 마을로 간다.

그 마을은 오스트레일리아 자본과 관광객으로 발전했지만, 그들의 활개치는 모습이 경찰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살해 사건이 발생하고 살해된 요시노 쿠미의 최초 발견자가 마침 아서라는 오스트레일리아인임이 알려지자 경찰은 그를 용의자로 점찍는다. 게다가 살해되기 전 둘이 대판 싸웠다는 목격자 진술까지 더해지자  경찰은 요시노 쿠미를 가정이 있는 아서가 데리고 놀다 차버렸다는 치정 관계로 몰아가는 수사를 진행한다.

센도는 요시노 쿠미의 관계를 더듬어 가던 중 사건 현장인 별장 때문에 부동산업자들이 골머리를 썩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던 시각, 사토미와 아서가 함께 있었기에 아서의 알리바이는 확실하다는 것, 하지만 섣불리 얘기할 수 없는 불륜관계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폐허에 바라다>

한때 같이 근무했던 야마기시 카츠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은 센도는 13년 전 담당했던 매춘부 살해 사건을 떠올린다. 범인은 후루카와 유키오, 오래 전에 탄광으로 번창했다가 현저히 쇠퇴해 버린 마을 출신으로 당시 신참이던 센도는 후루카와 유키오의 진술서를 끝내 받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공판에 참석했다. 후루카와의 공판장에서 변호인들은 그의 성장과정에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음을 호소하고 상해치사로 이끌어내기 위해 성장사를 얘기한다. 그 와중에 후루카와의 어머니가 동생 미유키를 댐에서 밀어 떨어뜨린 후 동반자살 하려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후루카와는 극형에 처해지는 것보다 자신의 불행한 과거가 밝혀지는 것이 더 괴로운 눈치였다. 후루카와는 센도가 공판에 참석해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시점, 그가 만기출소한 지금 동일 수법의 살인이 발생한다. 그리고 센도에게 후루카와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오빠 마음>

어촌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이시마루 코이치라는 젊은이, 살해당한 사람은 타케우치 카츠지라는 어협 간부이다. 마을에서는 토(統)라는 것을 결성하여 정치망 어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시마루는 타케우치의 토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망 없는 타케우치로부터 벗어나 다른 토로 이시마루가 옮겨가자 둘 사이에 격렬한 다툼이 있었다. 게다가 타케우치가 마을 야쿠자들까지 끌어들이자 그 대립 양상은 더욱 심해졌었다. 하지만 중재 속에서 배상금이 오간 후 그 사건은 끝이 났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시마루가 타케우치에게 주먹을 날린 사건이 벌어지고, 급기야 타케우치가 칼에 찔려 숨진다. 그 칼이 이시마루의 것인지, 준비해간 것인지가 살인 동기를 말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그런데 이시마루의 어머니는 배에 놓고 다니기 마련인 마키리라는 칼을 일별하더니 아들 것이 맞다고 단정한다. 이시마루의 막내 동생이 보이지 않는 것을 수상히 여긴 센도는 조사 중 뜻 밖의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사라진 딸>

센도에게 40대 후반의 미야우치라는 남성이 찾아온다. 그는 자신의 딸이 살해당한 것 같고 시체라도 찾아 성불을 시켜주고 싶다고 한다. 내용인 경찰이 폭행범 용의자의 집을 습격하였는데 그곳에서 실종되었던 딸의 핸드백이 발견된다. 용의자는 도로로 도망치다 공교롭게 트럭에 치여 숨지고 말았는데 경찰에서는 시체가 없기 때문에 살인 사건으로 단정짓지 못하고 사건성이 없다고 판단, 수사를 중단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미해결 수사본부가 벌써 몇 개나 되는 상황에서 드러내놓고 미해결이 될지도 모르는 사건본부를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에, 휴직중인 센도의 활동력이라면 어느 정도 사건을 파해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경찰의 속마음이었던 것이다.

용의자의 좌절된 꿈을 찾아가는 길이 바로 시체를 찾는 길이다.

 

<바쿠로자와의 살인>

경주마 생산 목장 주인인 오하타 타케시가 둔기로 두개골을 가격당해 죽는다. 그는 17년전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당했으나 증거가 없어 사건은 미결이 되고 말았다.

유력한 용의자는 아들들로 큰아들은 사귀던 여자와 헤어지라는 내용으로 다투다가 사냥총을 발사한 사건을 일으킨 과격한 성격이다. 반면 작은 아들은 조용한 성격이지만 아버지가 도끼로 피아노를 박살내 꿈을 접어야 했던 과거가 있다. 그들의 증오와 17년전 진실이 만나 살인이 벌어진다.

 

<복귀하는 아침>

센도는 나카무라 유미코라는 여성으로부터 살인혐의에 처한 동생을 도와달라는 말을 듣는다. 살해당한 여자는 30세의 미인으로 소사체로 발견되었다. 매스컴이 유미코의 동생 하루카 역시 자산가의 딸이고 미인이라는 것에 주목하여 스캔들성 취재를 위해 집안에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찾아간 집 앞에 매스컴은 없었고, 센도는 우연히 유미코의 손에 약혼 반지가 없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하루카의 결백을 증명해 줄 것이라며 소개해준 마담은 뜻밖의 사건을 이야기해 준다. 하루카와 마담이 한 남자로 엮였는데 대판 싸우고 난 다음에 마담의 고양이가 불에 탄 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제 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휴직중인 형사 센도는 추리가 뛰어난 형사도, 그렇다고 과격한 행동파 형사도 아니다. 과거 끔찍한 사건으로 현장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휴직을 명 받은 센도는 경찰수첩을 가지고 다니지 못하고 체포권도 물론 없다. 대신에 담당 구역을 벗어날 수 있고, 경찰이면서도 외부인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가 있다. 

소설은 사건 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인간군상들의 욕망과 본성에 주목하여 전개된다. 때로 센도는 사건 해결의 단초가 될만한 아이디어만을 떠올리기도 하고, 실제 해결은 지역 경찰의 공으로 돌리고 조용히 사라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사건을 파해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그리고 센도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023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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