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전우치전.임진록 범우 사르비아 총서 214
허균 외 지음, 전규태 옮김 / 범우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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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홍길동전(洪吉童傳) - 허균

 

조선 세종 시절 재상 홍모(洪某)가 용몽(龍夢)을 꾼 후 부인 유씨와 친압(親狎)코자 하였으나 유씨가 거절하자 시비(侍婢) 춘섬과 친압하여 낳은 서자가 홍길동이다. 길동이 총명하나 서자로 태어난 까닭으로 호부호형하지 못하였으며 이로 인해 슬퍼하였다. 그러던 중 기생 출신 곡산모 초란(楚蘭)이 무녀와 자객 특재(特才)를 끼고 길동을 해하려 한다. 길동이 잠깐 팔괘를 벌여보고 운수 불길함을 알아차려 도리어 무녀와 특재를 죽인 후 아비에게 작별을 고한다. 아비가 슬퍼하며 호부호형을 허락한다.

부모를 이별하고 표박하다 의적에 들어 괴수(魁首)가 된다. 이후로 길동이 자호(自號)를 활빈당(活貧黨)이라 하여 조선 팔도를 돌며 각읍 수령의 불의한 재물이 있으면 탈취하여 가난한 백성을 도왔다. 이에 상(上)이 근심하며 길동을 잡고자 길동의 배다른 형 홍인형(洪仁衡)으로 하여금 길동을 달래는 방을 붙이도록 한다. 팔도에서 길동의 분신들이 잡혀 왔으나 진짜 길동은 잡히지 않았다. 상이 정 길동을 잡기를 다시 행관(行關)하여 팔도에 내리니 길동이 스스로 병조판서 교지(敎指)를 내리면 스스로 잡히리라는 방을 붙인다. 이에 상이 길동에게 병조판서 교지를 내리니 스스로 상 앞에 나와 병조판서가 되어 일시 조정에 거한다. 그러나 천비 소생으로 문(文)으로 옥당(玉堂)에 막히고 무(武)로 선전(宣傳)에 막힘을 한탄하며 무리를 이끌고 남경 땅 저도로 간다. 이 즈음 아버지 홍판서가 앓다가 사망하니 길동이 길지(吉地)를 택해 아비를 장사지낸다. 다시 저도로 돌아온 길동은 영웅을 모아 무예를 익히며 농업에 힘써 병정 양족한지라, 남해 중에 율도국(硉島國)을 침범하여 평정한 후 왕이 되어 대대로 계계승승하여 태평성대를 누린다. 

 

한글로 씌여진 최초의 소설로 작자(허균)와 시대(광해군)가 분명할 뿐 아니라 우리 나라를 무대로 삼고 있어 국문학사상 큰 의의를 지닌다. 

허균(1569~1618)은 조선조 선조·광해군 때 사람으로 호는 교산(蛟山)이다. 서경덕의 수제자였던 허엽(許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26세에 문과 장원 급제한 후 삼척 부사, 형조 정랑, 형조 판서 등을 거쳐 좌참찬에 이른다. 서류(庶類)를 차별 대우하는 제도에 반발하여 서류 출신 문인들과 친교를 맺었으며 조정의 부패상과 광해군의 폭정에 대항한 혁명을 획책하다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게 된다.

 

o 전우치전(田禹治傳) - 작자미상

 

시대적 배경 설정은 명확하지 않고 작자 또한 미상이다. <홍길동전>과 흡사한 대목이 많고 일부는 본딴 흔적도 많다. 다만 <홍길동전>에 비해 스토리가 일관되지 못하다.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고도 전해지는데 선조(宣祖)때 전라도 담양 사람으로 지방에서 대수롭지 않은 벼슬아치 노릇을 하다가 송도로 올라와 숨어 살았으며, 도술에 제법 능했다고 한다. 

갖은 조화를 부려 탐관오리를 벌하고 조정의 실정을 비웃던 전우치가 도술이 능한 화담 서경덕과 함께 태백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는다는 줄거리이다. 

 

o 임진록(壬辰錄) - 작자미상

 

임진왜란 이후 겨레의 자존감을 세우고 왜군에 대한 정신적 보복을 목적으로 지어진 거짓 문학으로 여러 가지 한계가 많은 작품이다. 순 한글로 적힌 소설로 작가는 알려져 있지 않고 겨레의 울분을 푸는 것이 목적이었던 탓에 실제 사실과는 전혀 맞지 않거나 허황된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일례로 김응서가 일본의 항복을 받으러 갔다가 함께 간 장수 강홍엽의 배신으로 결국 사망하고 만다는 임진록의 내용은 날조에 가까운 내용으로 실제 김응서와 강홍엽은 일본에 간 적이 없고 명나라의 요청을 받고 후금군과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후금에 투항한 인물들이다.

마찬가지로 사명당을 서산대사의 제자로 설정한 후 그가 일본으로 가 생불을 자처하며 뜨거운 구리방에 들어가 도술로 견디고 삼백육십간 병풍에 쓰인 글자를 천리마를 타고 지나가며 왼다든가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제일 윗길로 치고, 삼국지의 장비가 환생하여 조선왕이 되었다는 등의 사대사상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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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만세발가락 - 마음으로 보는 그림 같은 이야기
리타 페르스휘르 지음, 유혜자 옮김 / 두레아이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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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초, 네델란드의 한 초등학교에서 '해방 후 2년 동안의 평화'를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리게 된다. 주인공 리타 페르스휘르는 도로에 사람들이 가득 찬 모습을 그리기로 마음 먹는다. 낡은 옷을 입고 있는 빼빼 마른 사람들, 무기를 손에 들고 있는 구인들, 자전거를 향해 총을 겨눈 독일병사 등을 그린 후에 리타는 아빠가 무거운 나뭇짐을 등에 지고 잔뜩 구부린 채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 넣는다. 아빠의 발가락을 리타는 '만세발가락' 이라고 불렀는데 아빠의 엄지발가락이 언제나 하늘로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리타는 그림을 제출한 후 미술대회 수상작이 어떤 기준으로 선발되는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리타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기준들이 있는 것 같고 그 기준들이 적당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예를 들어 새엄마는 피카소의 그림이 훌륭하다고 말했지만 리타가 보기에는 형편 없는 것 같았다. 칼라는 무엇을 그려야할지 몰랐기 때문에 리타의 말대로 그렸는데도 후보작에 뽑혔다. 그리는 과정에 대해서 심사위원들은 전혀 모르는데도 평가를 하는 것이다. 또 누군가가 유명화가를 흉내내서 그림을 그렸는데 처음에는 그 그림을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칭찬하다가 시간이 흘러 그 작품이 모방작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그림이 형편없다고 비난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림은 바뀐게 없는데 왜 평가가 달라지는지 궁금해한다. 

 

1935년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태어난 리타 페르스휘르의 처녀작으로 1993년에 발표되었고, 1999년 황금부엉이상을 수상한다. 이 작품은 예술에 대한 다양한 평가 방법들이 어린아이의 눈에는 얼마나 이상하게 여겨지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예술에 대한 어른들의 평가가 사실은 허위의식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지 질문한다. 

                                 

 

 

엄마의 책상 위에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의 그림(피카소가 1942년에 그린 '물고기 모자를 쓴 여인')이 걸려 있다.

그림 속의 여자는 양손을 포갠 채 앉아 있다. 그런데 손이 어찌나 커 보이는지 꼭 권투장갑을 끼고 있는 것 같다.

몸은 사방이 모가 나고 각이 져 있다. 그렇지만 그 정도는 얼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눈 한쪽은 앞을 쳐다보고, 다른 한쪽은 옆을 쳐다본다. 입은 앞에서 본 모양이고, 코는 옆에서 그린 모습이다. 단순한 모양이 아니라 얼굴의 왼쪽 부분에 갈퀴처럼 튀어나와 있다. 화가가 그림을 아주 쉽게 그린 것 같다. 코가 큰 사람을 앞에서 보고 그렸을 때 코를 어떻게 그리지? 그 방법을 모르던 화가는 코를 옆으로 불룩 튀어나오게 그렸고, 그것으로 작업을 끝냈다. 아기들이 발을 그리는 것과 똑같은 방법이다.

얼굴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자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하기 위해 화가는 여자의 머리 위에 물고기를 한 마리 그려 놓았다. 접시처럼 사용한 물고기 위에 포크와 나이프가 놓여 있고, 반으로 자른 레몬도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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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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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영원한 희망(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

 

앤디 듀프레인은 1947년 아내와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앤디는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했지만 불리한 증거들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술이 너무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재판 과정중에 보여준 앤디의 차분한 태도 역시 배심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수감된 된 앤디는 '시스터'라 불리는 남색가들에게 강간을 당했지만 언제나 저항했고, 교도소 운동장에 굴러다니는 돌들을 조각하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 했다. 교도소에서 물품을 공급하는 레드는 앤디를 위해 수석용망치를 구해다 주고 리타 헤이워드의 대형 포스터와 같은 것도 조달해준다.

어느 날인가  교도소 옥상에 타르를 칠하는 작업에 앤디와 레드 등이 차출되어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악질적인 간수 하들리가 세금 문제에 관해 동료들에게 투덜대는 것을 들은 앤디는 하들리에게 난데없이 '부인을 신뢰하는지'를 묻는다. 레드는 앤디의 돌발행동에 경악했고, 하들리는 어처구니 없어 하며 앤디를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앤디는 태연하게 하들리에게 '아내를 신뢰한다면 6만달러 이하를 그녀에게 증여하여 세금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앤디는 동료들에게 맥주를 먹게 해 준다면 서류 작업을 대신 해줄 수도 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레드는 앤디와 하들리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흐르다가 마침내 앤디쪽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정을 바라본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그 후로 앤디는 간수들의 세금신고를 대신 해 주었고, 교도소장이 돈을 빼돌릴 수 있도록 이중장부를 만들어 주었다. 상대급부로 얻은 것은 독방과 도서관, 시스터들로부터의 자유였다.

앤디가 수감된지 15년이 지난 어느 날, 토미라는 수감자가 앤디 사건의 진범에 관한 단서를 제공한다.  토미는 과거 블래치라는 자와 같은 감방에 수감된 적이 있는데 블래치는 자신이 벌이고도 처벌받지 않은 강도살인에 관해 떠벌린 적이 있었다. 블래치가 이야기한 내용은 앤디의 아내와 정부가 살해된 사건과 꼭 들어맞았다. 앤디는 자신이 항소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교도소장을 찾아가지만 교도소장은 앤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부정한 돈 외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앤디의 의견을 미친 소리라며 묵살하고 만다.

앤디는 레드에게 자신이 바깥에서 벌어들인 돈과, 그 돈을 불려준 친구, 그리고 위조신분증과 은행 개인 금고를 열 수 있는 열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남미의 따뜻한 지후아타네조라는 곳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앤디는 그 모든 것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준비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수감생활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아침 점호 시간에 한 명이 부족한 것을 안 교도소측이 비상을 내리고 앤디를 찾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저녁에서야 앤디의 방 포스터가 치워지면서 커다랗게 입을 벌린 구멍이 발견된다. 27년이 걸린 일이었다.

레드는 가석방 된 후에 앤디가 금고 열쇠를 숨겨두었다고 말한 장소에 찾아간다. 그곳에는 앤디가 써놓은 다정한 편지와 지후아타네조까지 올 수 있는 돈이 있었다. 

 

o 여름·타락(Apt Pupil)


열세살의 토드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성적도 우수했다. 어느 날 친구집에서 나치에 관한 잡지를 본 토드는 그 내용에 매료되었는데, 자신의 이웃에 사는 커크라는 사람이 나치친위대 장교 모습과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토드는 시간을 들여 커크를 조사한 끝에 그가 나치친위대 장교 듀샌더가 틀림 없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토드는 듀샌더를 찾아가 대뜸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부인하던 듀샌더는 토드가 빈틈없이 조사했다는 것을 알고 체념한다. 토드는 듀선더의 비밀을 적은 편지를 친한 친구에게 맡겨 놓았고, 자신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면 편지가 공개될 것이라며 협박했다. 

토드는 듀샌더에게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과 기억하는 모든 것들을 말해 달라고 한다. 듀샌더는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과 끔찍한 기억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토드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어가 어느날인가는 나치제복을 사다가 듀샌더에게 선물하기까지 한다. 일상 생활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형편 없는 성적을 받는다. 토드는 성적표를 위조하여 부모를 속인다.

하지만 겉잡을 수 없이 떨어져버린 성적 때문에 상담 선생이 부모님과의 면담을 요청하자 토드는 머리를 싸쥔채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때 듀샌더가 자신이 토드의 할아버지인 것 처럼 상담 선생을 찾아간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상담 선생은 듀샌더에게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다음 번 시험에서 또다시 낙제한다면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했다. 듀샌더는 토드에게 공부할 것을 명령하고 토드는 듀샌더를 저주하면서도 공부에 매진한다. 그 결과 우수한 성적을 회복한다.

듀샌더는 어느 순간 자신이 토드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아이는 듀샌더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듀샌더와 똑같은 악마가 된지 오래였다. 듀샌더는 이제 토드가 자신을 살해하길 열망하는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하여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듀샌더는 토드에게 자신이 편지 한 통을 써서 개인금고에 넣어 두었는데, 자신이 죽으면 공개될 것이라 했다. 그 편지의 내용은 토드가 자신이 나치전범자라는 것을 알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채 끔찍한 이야기를 흥미 깊게 들어왔다는 것과 부모님과 학교를 속였던 일들이 적혀 있다고 했다. 

토드와 듀샌더는 그즈음부터 부랑자와 거지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듀샌더가 거지 한 명을 꾀어 집으로 데려가 살해한 후 시체를 처리하던 중 심장 발작이 일어난다. 듀샌더는 토드에게 전화를 걸어 처리를 부탁한다. 병원에 입원한 듀샌더를 과거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살아 남은 유태인 환자가 알아본다. 즉각 모사드에서 사람이 파견되어 듀샌더를 찾아와 음울하게 듀샌더가 겪게 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날 밤 듀샌더는 약을 훔쳐 자살한다.

토드를 찾아간 경찰은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토드는 처음에는 자신이 썩 대답을 잘했다고 느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질문 속에 경찰이 쳐놓은 함정이 곳곳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집에 찾아온 상담 교사를 살해한 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토드 역시 경찰에 체포된다.

 

스티븐 킹의 중편 연작소설집 <Dirrerent Season>에 수록된 이야기 중 봄에 해당하는 <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과 여름에 해당하는 <apt pupil>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다른 사람이 산 책을 읽는 것은 흥미롭다. 특히나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른 뒤에 읽는 것은 더욱 그렇다. 원래 책 주인의 과거 모습을 상상하며 책을 읽을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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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 - 개정판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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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보고 당혹감을 느낀 기억이 난다. 당시 유행했기에 드라마에 나온 것이 분명한 책들이나 영화, 패션들이 같은 94학번인 나에게는 무척 낯설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속해 있던 동아리는 좋게 말하면 사회 문제 이외에는 큰 관심을 쏟지 않던 분위기가 잔존해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운 곳이었다. 내가 드라마의 배경이 낯설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동아리에서 처음 읽었던 책이 위기철이 쓴 <노동자 이야기 주머니>였다. 서른 네개의 진보적인 꽁트와 '이런 부모를 갖게 하소서'라는 글로 구성된 이 책이 첫 세미나 교재로 쓰였기 때문이다. <노동자 이야기 주머니>는 <자본론>의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 참교육, 노동조합과 파업, 법의 속성, 통일, 위정자들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열거식으로 늘어놓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알기 쉽고 명쾌하게 쓰여진 책이었다. 다소 감상적인 '이런 부모를 갖게 하소서'라는 글도 지극히 정의로운 글이었기에 선배들은 이 책을 우리 학번의 의식화를 위해 새로 채택하는 모험을 감행했는지도 모른다. (그 전에는 <껍데기를 벗고서>라는 책이 쓰였다)

하여간 위기철은 소설가가 아니라 진보적인 성향의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아홉살 인생>이라는 소설책이 나왔을 때 같은 사람일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아홉살 인생>은 산꼭대기 무허가 판자촌으로 이사 간 아홉살 여민의 눈으로 본 세상을 작가 위기철이  나직한 어투로 풀어낸 소설이다. 

깡패 노릇을 하다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온 여민의 아버지와 잉크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그만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된 여민의 어머니, 그리고 여민이와 동생이 산꼭대기 동네로 이사를 가서 그곳 이웃들과 일년을 지내며 겪게되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작가의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자 교양소설이다. 

매양 허풍을 떨지만 삶의 진실에 맞닿아 있는 직관적인 이야기를 하는 신기종, 골방에 틀어박혀 공부하고 고민하지만 이를 세상에 풀어내지 못해 끝내 자살하고 마는 골방철학자,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하다가 정작 아버지가 죽자 공장에 일하러 나가 삶의 고단함에 짓눌리고 마는 검은 제비, 가난함을 자존심으로 가리려다 도도한 외톨이가 되고 마는 우림이, 그리고 노란네모 여민이 등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사실 <노동자 이야기 주머니>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의 소설 버전이다. 소설적 형상화에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지만, 위기철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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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꽃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6
노발리스 지음, 김재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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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발리스의 본명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필립 폰 하르덴베르크이다. '노발리스'라는 필명은 라틴어로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푸른 꽃>의 원제는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Heinrich von Ofterdingen)>이다. 노발리스가 이 소설을 구상하면서 중세 후기의 성담(聖譚) 전설들을 참조하였는데 하인리히는 이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로 13세기 초엽에 기사 시인인 볼프람 폰 에셴바하, 발터 폰 포겔바이데와 함께 발트부르크에서 노래 시합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푸른 꽃>이라는 제목은 시인 하이네가 자신의 평론 <낭만파>에서 "이 작품 곳곳에서 푸른 꽃이 번쩍이고 드높은 향기를 풍긴다"고 말한 것으로 부터 유래하여 부제가 '푸른 꽃'인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작품은 1부 <기대>, 2부 <실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노발리스가 2부 초반을 쓰다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이 작품은 미완의 유고작이다. 

 

1부 1장~8장은 하인리히가 낯선 세계와 접촉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시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튀링겐 지방의 아이제나흐라는 도시에서 유복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하인리히는 어느 날 낯선 나그네가 들려준 이야기에 매혹당한다. 낯선 나그네는 보물들과 푸른 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하인리히는 이 푸른 꽃 이야기에 매혹당한다. 2장은 어머니와 하인리히가 상인들을 따라서 어머니 고향인 아우크스부르크를 향해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하인리히는 상인들로부터 아리온의 전설과 아틀란티스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시인이 얼마나 특별한지에 대해 하인리히에게 들려준다. 4장에서 하인리히는 동방의 여인 출리마를 만나 류트와 노래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5장에서는 보헤미아 출신의 늙은 광부와 은둔자 호엔촐레른 백작 이야기를 듣고 6장에서 아우크스부르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하인리히는 새로운 시의 스승 클링스오르와 그의 딸 마틸데를 만난다. 마틸데는 곧 하인리히의 뮤즈가 되고, 그녀가 곧 푸른 꽃이 된다. 7장은 클링스오르의 가르침이, 8장은 시의 목표와 임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1부 9장은 클링스오르가 들려주는 동화이다. 줄거리는 복잡하고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있다. 해설을 쓴 김재혁의 글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9장의 동화는 에로스와 파벨에 대한 알레고리적인 동화인데, 아르크투르스의 별의 세계는 얼음으로 굳어 있고, 프라이아(평화의 정신)는 영원한 잠에 빠져 있다. 이 동화에서 아버지(감각)와 어머니(마음)는 아이를 하나 두고 있는데, 그것은 에로스(사랑)이다. 기니스탄(상상력)도 딸을 하나 두고 있는데 바로 파벨이다. 기니스탄은 에로스와 함께 자기 아버지가 있는 달로 여행한다. 바로 그때 서기(이성)가 모반을 일으켜 어머니를 사로잡아 화형에 처한다. 파벨만이 지하 세계로 도망쳐 운명의 여신들을 제압한다. 소피(지혜)가 희생당한 어머니의 재를 물그릇에 담아 모두에게 마시라고 하자 곧 모두의 가슴속에서 어머니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파벨이 마침내 아르크투르스의 왕국에 도착하여 얼음을 녹게 하고 에로스를 프라이아에게 데리고 가 그녀와 결합시켜 준다. 그녀는 그와 힘을 합쳐 여왕으로서 새로운 황금시대를 다스린다. 에로스의 방랑은 인간의 타락과 구원을 상징하는 일종의 순례이자 정화의 과정이다. 

이 동화에서 태양은 계몽주의를, 서기와 그 일당은 합리주의 정신을 상징한다. 반면 파벨은 시에 대한 환유이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합리주의가 시적인 자발성과 보편적 사랑 앞에 길을 양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 동화는 결국 낭만주의의의 승리를 그린 노발리스의 알레고리적인 동화인 것이다.

 

2부는 하인리히와 마틸데의 첫 키스로 태어난 아스트랄리스의 이야기이다. 2부에서 마틸데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인리히가 실제 사랑했던 소피 폰 퀸 역시 노발리스와 알게 된지 3년이 못 되어 폐병으로 죽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인리히는 마틸데의 죽음에 괴로워하며 방랑하다가 노인을 만나 양심의 본질에 대해 토론하고 황금시대의 도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1801년 3월 소피가 죽은지 거의 사 년째 되던 날 노발리스 역시 폐병으로 세상을 뜨게 된다. 

 

노발리스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에 대한 일종의 도전적인 작품으로 <푸른 꽃>을 썼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클링스오르의 모델은 괴테에서 찾았으며 시에 있어서 질서와 절제를 강조하는 면 역시 괴테를 따랐다고 한다. 

노발리스는 소설 속에서 시인을 단지 시를 읊는 자가 아니라, 미래를 예언하고 세상에 균형과 조화를 가져오며 인간의 마음에 불꽃을 일으키는가 하면 하느님과 보이지 않는 교류를 통해 지상에 하늘나라의 지혜를 알릴 수 있는 비밀스러운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하여 영웅들보다 더 훌륭하고 한 나라의 국왕보다 알고 지낼 가치가 있는 것이 바로 시인이라고 노발리스는 이야기한다. 노발리스가 말하는 시인(詩人)은 철인(哲人)과 같은 이상적인 인간이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매문(賣文)을 일삼고, 정작 제대로된 글은 쓰지도 못하면서 SNS에 일기나 써대며 작가연하는 가짜들이 판치는 지금, 노발리스가 이야기하는 시인은 얼마나 낯선가?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982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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