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에 갇힌 여자 스토리콜렉터 63
로버트 브린자 지음, 서지희 옮김 / 북로드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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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악천후로 폐장된 호니먼 박물관의 얼어붙은 호수에서 젊은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녀의 이름은 앤드리아 더글러스-브라운, 정부의 군수 책임자이자 내각 각료 더글러스-브라운 경의 둘째 딸이었다. 마쉬 총경은 사건 해결을 위해 맨체스터 경찰국의 에리카 포스터 경감을 소환한다.

에리카 포스터는 얼마 전 마약 제조업자 습격 과정에서 동료이자 남편인 마크를 잃었다. 문제는 습격 책임자가 에리카였다는 점이었다. 에리카는 직무에서 배제된 뒤 강도높은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조사와는 별개로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쨌든 현업으로 복귀한 에리카는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해 나간다. 하지만 더글라스-브라운 경 부부는 그녀가 슬로바키아 출신에 여자라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가 들쑤시는 장소들, 이를테면 템즈강 이남의 더러운 펍과, 그곳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나 창부의 목격 증언들이 자신의 가문에 먹칠을 한다고 여겼다.

그러다 유력한 목격자인 창부 아이비가 앤드리아와 유사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거기에 더해 과거 동유럽 출신의 창부 세 명이 유사한 수법으로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수사는 반짝 활기를 띤다.

하지만 에리카를 시기하는 스팍스 경감, 그녀를 믿지만 최상부의 압박 때문에 그녀를 차츰 부담스러워하는 마쉬 총경, 자녀의 살인범을 잡는 것 보다 집안의 명예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더 많아 보이는 더글라스-브라운 부부 등으로 인해 에리카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고, 급기야 수사 지휘권을 스팍스에게 넘겨주기까지 한다.

아무리 봐도 앤드리아와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약혼자 자일스 오스본, 정신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앤드리아를 시기질투해 폭력을 휘두른 이력이 있는 언니 린다, 매사에 심드렁한 그녀의 남동생 데이비드, 앤드리아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한 점남친 마르코 프로스트, 동유럽 여성들의 포주로 보이는 이고르 쿠체로프. 이들 모두가 앤드리아의 사망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였지만 이를 한 줄로 꿰내지 못해 애를 먹는다. 그러던 차, 실마리는 엉뚱한 데서 풀린다. 고양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린다가 수사관의 질문에 뜻밖의 대답을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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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출신 여성 수사관 에리카를 흑인 형사와 레즈비언 형사가 보좌한다. 법의학자는 게이이고, 유력한 목격자는 창부이며, 그녀의 손자는 HIV 바이러스 보균자이다. 피해자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영국에 입국한 동유럽 출신 여성들이며, 최초로 시신을 발견하는 사람 역시 실업급여로 생활하는 청년이다.

정치적 올바름과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종교처럼 번지던 시기에 타깃 독자층을 명확히 하여 쓰여진 이 소설의 작가 로버트 브린자는 잉글랜드 동부 로스토프트 출신으로 명문 뮤지컬 학교 길퍼드 연기학교 출신이다. 작가의 의도가 맞아 떨어졌는지 에리카 경감 시리즈의 1편인 이 작품은 2016년 아마존 킨들 베스트셀러 1위, 영국 종합 베스트셀러 2위를 기록했다.

범인은 데이비드이다. 데이비드의 넘치는 성욕을 아버지 더글라스-브라운이 돈으로 해결해 주었고, 여자를 대주는 포주가 이고르 쿠체로프였다. 문제는 데이비드의 욕망이 살인까지 포함하는 패키지였다는 점이었다.

앤드리아는 이 비밀을 알게 되었기에 살해한 것이고, 더글라스-브라운은 모든 정황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미 사망한 딸보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집안의 허울뿐인 명예를 지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범인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장녀 린다 소행으로 몰아간 뒤 정신병원에서 몇 년간 생활하는 것으로 퉁치려 했던 계획은 린다의 엉뚱한 고백으로 산통이 깨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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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의 밤 (한국어판) - 1934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소와다리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미야자와 겐지 지음,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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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는 고기 잡이를 나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아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반 아이들은 그런 조반니를 놀려댔고, 외톨이가 된 조반니는 공상에 빠져들곤 했다.

켄타우로스 축제의 밤, 반 아이들은 쥐참외 등불을 강물에 띄우기 위해 몰려갔지만 조반니는 어머니를 돌봐야 해 그럴 수 없었다. 우유를 받으러 갔다 동산에 올라간 조반니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공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조반니는 은하철도에 탑승해 있었다. 그리고 반 아이들 중 유일하게 자신을 놀리지 않고 동정해 준 캄파넬라도 있었다.

둘은 밤하늘의 별자리를 돌아다니며 공룡을 발굴하는 사람, 새를 잡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배가 침몰해서 죽은 청년과 어린 남매, 그리고 인디언을 만난다.

어느덧 여행이 끝나갈 무렵, 캄파넬라가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라고 물으며 눈물 짓는다. 캄파넬라는 어쩐 일인지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했다.

얼마 뒤 정신을 차린 조반니는 피곤에 지쳐 언덕에서 깜빡 잠들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언덕을 내려가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조반니는 캄파넬라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이 죽어 슬픔에 잠겨있을 것이 분명한 캄파넬라의 아버지는 조반니를 보더니 '아버지가 곧 돌아오실 것'이라고 도리어 위로한다. 조반니는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해주기 위해 마을로 뛰어간다.

1896년 이와테 현 하나마키 시에서에 태어난 미야자와 겐지는 소설가, 시인, 아동문학 작가였고 농업과학 교사, 채식주의자, 첼리스트, 법화종신자, 그리고 공상적 사회주의였다.

그는 부유한 전당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불교를 믿었기에 자연스럽게 어렸을 적 불교적인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법화경을 읽은 뒤 법화종(니치렌교) 으로 개종하는데, 이 때문에 아버지와 갈등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와의 불화, 가업에 대한 불만으로 1921년 도쿄로 간 미야자와 겐지는 법화종 단체인 국중회에 가입한 뒤 신앙생활과 어린이 이야기 쓰기에 골몰했다.

하지만 여동생 미야자와 토시의 병이 악화되자 고향인 하나마키로 돌아가 농업학교 교사가 된다. 동생은 다음 해 24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미야자와 겐지는 동생의 죽음으로 극심한 상실감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고향에서 농업기술, 음악, 문학을 보급하고 에스페란토어, 독일어, 영어를 공부하는 한편 글을 쓰던 미야자와 겐지는 1928년 여름 폐렴에 걸린 후 건강이 악화되었고, 이후로도 폐렴의 재발, 흉막염으로 고생하다 1933년 9월 21일 사망한다. 그는 아버지에게 법화경 1,000부를 인쇄하여 배포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원고는 동생이 보관하다 사후에 출판된다.

소설은 이탈리아로 추정되는 작은 마을이 배경이다. 조반니가 어느 날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 은하철도를 타고 여행을 한다. 기차에서 기이한 사람도 만나고, 죽어서 천국에 가기 직전의 여행객도 만난다. 함께 여행하던 캄파넬라도 사실은 죽어서 그 열차에 타고 있었다는 것을 깨어난 조반니는 깨닫는다.

다소 음울한 이야기인데 이야기의 설정이 이후 <은하철도 999>에 차용되기도 하면서 일부 사특한 출판사에서 <은하철도 999>의 원작이라고 사기를 치기도 했다.

추석인데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고 체감온도는 그보다 높은 33도였다고 한다. 이제 남한도 아열대 기후로 변하나 보다. 아주 오래 전에 사놓고 읽지 않았는데 책장 정리하다 눈에 띄여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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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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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한유진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피투성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방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다. 어머니의 방까지 핏자국이 이어져 있었고, 방 안에는 어머니의 시체가 있있다. 얼굴은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있었고 가슴에는 손이 모아져 있었다. 살인자는 죄책감을 느꼈던 것일까...

의붓형제 김해진이 곧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전화로 알려왔으므로 한유진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경찰에 신고할 것인지. 시체를 치울 것인지. 그리고 그 대답은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었다.

재킷과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어머니 쪽으로 돌아섰다. 피 웅덩이에 반듯하게 누운 어머니가 나를 맞았다. 잠든 것처럼 보이는...... 비로소 간과해버린 사실 하나가 눈앞에 떠올랐다. 어머니의 자세는 살해당한 시신으로서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목을 베이고 피를 쏟아내며 쓰러진 사람이 스스로 머리채를 풀어 얼굴을 가리고, 손을 가슴에 모은 다음, 반듯하게 누워 죽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48p)

소설은 게임 Doom 이나 Resident Evil의 첫 장면처럼 시작한다. 잠에서 깨어난 주인공이 정리되지 않은 기억들로 혼란을 느끼다가, 기억의 편린들이 하나 둘 떠오르자 차츰 상황 인식에 이르는 도입부.

게임의 배경과 법칙을 소개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플레이어(독자)가 맞닥뜨릴 범상치 않은 전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안배하는 이 도입부. 도입부에서 제시된 몇 가지 의문들에 대한 단서를 잘 배치한 뒤, 종반부에서 성공적으로 긴장을 해소시킬 수 있다면 게임(소설)은 성공할 것이다.

정유정은 이러한 구성과 진행에 매우 능수능란한 작가임이므로 이제 작가가 인도하는 대로 '우물'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약물중독자들은 대부분 환상을 좇느라 약을 먹는다. 내 경우는 반대다. 환상을 얻으려면 약을 끊어야 한다. 끊은 지 얼마 후면 마법의 시간이 열린다...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기민하게 돌아가고, 생각 대신 직관으로 세상을 읽어들인다. 내가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낀다. 인간이 만만해진다.(16p)

한유진은 약을 먹고 있다. 그 약은 주치의이자 저명한 정신의학자, 미래아동청소년 병원 원장인 이모가 처방한 약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 약을 먹는가? 작가는 사건 해결의 단서를 조금씩 독자와 공유한다.

비로소, 어머니가 영화관 안에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 이유가 이해됐다. 내겐 신나고 짜릿했던 영화가 사실은 찜찜하고 무섭고 슬픈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어느 지점에서 무서워하고 슬퍼해야 했는지는 여전히 짐작조차 되지 않았지만.(67p)

네 형과 아빠가 바다에 빠져서 죽었어. 그것도 내 눈앞에서. 나는 그날 울산에서 너까지 그런 식으로 잃어버리는 줄 알았다. 하나 남은 아들마저 기어코......(142p)

어머니가 그토록 빨리 선수 교체를 해버릴 줄은 몰랐다. 입양 이야기를 꺼낸 지 단 이틀 만에 모든 게 준비될 줄도 몰랐다. 어머니의 영원한 에이스일 줄 알았던 유민 형의 자리는 고스란히 해진에게 넘어간 걸로 보였다.(106p)

한유진은 사이코패스로 '리모트' 라는 간질, 조울증, 행동장애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다. 아버지와 형은 사망했고, 김해진은 어머니가 입양한 의붓형제다. 16세 까지만 해도 한유진은 수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약을 끊으면 경기력이 향상되었기에 그렇게 했다가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발작을 일으킨다. 한유진은 현재 운동을 포기하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준비중이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그런 평온한 일상과 무관한 단서들이 문제다.

매끈한 진주 표면에 불거진 작은 돌기의 감촉이 신경에 거슬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감촉의 기시감이 거슬렸다...... 언제, 어디서 이런 걸 만져봤을까.(152p)

근데 모양이고 나발이고 설명할 것이 없는 게, 달랑 진주만 있는 귀걸이였거든(167p) 나는 겁먹은 것에 끌렸다.(188p)

그렇다. 한유진은 약으로 통제되는 것을 거부하고 이미 사냥에 나서고 있었다. 약을 끊었을 때 느끼는 해방감, 인간을 살해할 때 느끼는 신이 된 것 같은 충족감.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259p)

어머니, 이모, 의붓형제를 모두 해치운 새로운 종(種) 한유진은 이제 가볍고, 자유롭게 살아갈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채워 놓은 감정이라는 족쇄를 훨훨 벗어 던지고.

감정을 없애면 선택의 무게는 신발을 사는 일만큼 가벼워진다. 목적과 비용의 상관관계만 따지면 될 테니까.(347p)

성서에 따르면 여호와가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고, 둘이 한자리에 들어 낳은 아들이 카인이다. 그런데 카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한 인류 최초의 살인자다.

창조되지 않고 잉태되어 태어난 최초의 인간이 '신이 되는 느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행위로 '살인'을 택한다는 이 이야기는 언제 읽어봐도 흥미롭다.

여호와가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한다. 여호와는 카인에게 벌을 내리는데, 카인은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라고 용서를 빈다.

그러자 여호와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주고 카인을 죽이려 하는 사람에게는 일곱 갑절로 벌을 내리겠다고 선언한다.

<종의 기원>은 사실 <카인과 아벨> 이야기의 현대적 변형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문학이란 혼의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혼의 문제를 다룬다 함은 외로움이 전제 조건입니다. 혼이란 깊은 우물이나 구멍 같은 것으로 성격적으로 파탄이 난 사람들이 그 구멍을 들여다 봅니다. 문제는 그 구멍의 어느 정도 깊이까지 내려갈 수 있는가인데, 중요한 것은 반드시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정유정은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데 능수능란하다. 그 깊이 또한 상당히 깊어서 소설은 꽤 완성도가 느껴진다.

문제는 그 우물들이 이미 발견된 우물이라는 점과, 다시 올라오는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발견한 우물을 공유하고 있는 <네 심장을 쏴라>, 고유정 사건을 능숙한 필치로 그려낸 <완전한 행복>, 그리고 고전적인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원형으로 <크리미널 마인드>의 아무 에피소드에서나 나올법한 사이코패스를 버무린 <종의 기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이 약점들 탓에 정유정을 최고의 작가들 반열에 올리기가 어렵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582586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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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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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수록된 열 여덟 편의 단편은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는 것들을 비틀어 보거나, 익숙해진 일상을 다르게 보도록 권유한다. 이야기 자체로도 재미있고, 그 이야기들을 신화나 종교적인 우의로 해석해보는 것도 흥미롭니다.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조리도구, 가구, TV 등이 인간의 언어를 말하고 공감하는 세계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그런 현실에 염증을 느껴 과거로 회귀를 꿈꾸지만, 자신 역시 인공심장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구상에 진정으로 살아있는 유기체가 없어진 근미래의 풍경.

<바캉스>는 타임머신 테마를 주조로 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루이 14세 시대로 바캉스를 떠나는데 시간여행 보험은 경제적 이유로 생략한다. 과거로 떠난 주인공은 강도를 당한 뒤 마법사로 몰려 사형에 처해질 위기를 맞는데, 그때 보험을 권유하는 또 다른 시간여행자를 만나게 된다.

<투명피부>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피부를 투명하게 만든 뒤 곤란에 처한 사나이가 등장한다. 구경거리로 전락한 그가 진정한 사랑을 만나는데 그녀는 '변화는 두렵지 않아요. 정체와 거짓이 훨씬 더 나쁘죠'라며 사나이를 포용한다.

<냄새>는 작가의 다른 작품 <파피용>과 같이 별과 별 사이의 이야기다. 어느 날 뤽상부르 공원에 별똥돌이 하나 떨어진다. 그런데 이 별똥돌은 너무 악취가 심해서 사람들은 시멘트를 부어 냄새를 막고자 했다. 하지만 다공질 구조였기 때문에 냄새가 가라앉지 않자 유리를 부어 굳힌다. 꽤 그럴싸한 모양이 되자 우주의 또 다른 차원에서 보석 장사를 하고 있는 외계인 글라프나우에트가 별똥돌을 회수해간다. 그는 진주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황혼의 반란>은 P.D.제임스의 <콰이터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버전이다.경제적 이유로 노인들이 잉여 생명체 취급을 받아 사회로부터 제거된다.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은하계 차원에서는 애완동물로 취급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풀어놓은 이야기다.

<조종>은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를 모티브로 쓰여진 소설 같다. 어느 날 부터 왼손이 뇌의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적인 행동을 시작한다.

<가능성의 나무>는 인간 역사의 긍정적인 방향성 제시를 위해 가능한 모든 경우를 계산할 수 있는 일종의 생체 컴퓨터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고, <수의 신비>는 20까지 밖에 샐 수 없는 사람들이 지식을 독점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세계 속에 사람들을 가둬놓는 이야기다.

<완전한 은둔자>는 은둔이라는 것에 매료된 한 사내가 뇌만 남기고 모든 신체를 포기함으로서 완전한 은둔 상태에 돌입하는 이야기이다. 나중엔 자손들이 뇌에 포도당을 주입해 가면서 일종의 수조 같은 곳에 넣어 보존하다가 결국 장난감처럼 취급하는데 다소 엽기적이다.

<취급주의: 부서지기 쉬움>를 읽노라면 <삼체> 1부에 나오는 칠면조 얘기가 생각난다. 농장주가 칠면조에게 매일 오전 11시에 먹이를 주자 칠면조 과학자는 '매일 오전 11시에는 먹이가 있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한다. 추수감사절 새벽에 이 법칙이 발표되고, 그들은 요리되기 위해 살해된다.

<달착지근한 전체주의>에는 자식의 클론을 만드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일까? 한 시대를 유행하는 가치관에 모두가 몰려다니는 아이러니에 관한 이야기.

<허깨비의 세계>의 주인공 가브리엘 넴로드는 어느 날부터인가 사물들 대신 괄호와 낱말을 보게 된다. 언어를 통해 사고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짧은 단상.

<사람을 찾습니다>는 조건의 집합체를 곧 사람으로 오인하는 세태를 풍자하는 내용이다. 누트라는 여인은 구인광고를 내는데 3천cc 이상의 차와 넉넉한 은행잔고가 갖춰진다면 다른 것은 부차적라고 말한다.

<암흑>의 주인공은 원자폭탄으로 인해 태양이 파괴되어버린 암흑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다. 안과 의사와 주변 사람들은 그가 장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해 노련한다.

<그 주인에 그 사자>는 유전자를 조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애완용으로 기르기에 적절하지 않은 사자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이 사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당히 값 싸고, 치명적 독으로 사자도 해치울 수 있는 애완용 전갈을 키우게 된다

<말 없는 친구>는 식물 역시 일정한 조건 하에서 의사소통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살인을 목격한 나무가 범인을 폭로하는 내용이다.

<어린 신들의 학교>는 천사들이 인간 세계를 건설하고 흥망성쇠를 지켜보는 내용인데, 마치 <삼국지>나 <문명>같은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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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절 범우문고 67
헤르만 헤세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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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

주인공 '나'는 어릴 적 우정을 나누었던 이웃 소년 부로지가 병으로 사망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꽃들이 만발하고 화초가 싱그러운 생명력을 피워 올리는 소년 시절의 밝은 이미지와 친구의 죽음이라는 우울한 이미지가 겹쳐진 짧은 이야기. 어딘지 모르게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라틴어 학교 선생>

주인공 카알은 우연히 어여쁜 하녀 티네에게 반하게 된다. 카알은 티네에게 구애하지만 티네는 카알과 자신의 처지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티네는 목수 청년과 다른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카알은 그때문에 몹시 괴로워했지만 차츰 상처를 극복한다. 그리고 그 즈음, 티네의 약혼자가 사고로 크게 다쳐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카알은 티네와 청년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

<대리석 공장>

대학생인 주인공이 사촌의 시골 마을을 방문했다가 대리석 공장을 운영하는 람파르트의 딸 헬레네에게 반한다. 하지만 헬레네는 아버지가 정해준 구스타프 베커라는 약혼자가 있었고, 이를 거역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나'는 헬레네에게 끈질기게 구애한다.

아버지의 지배적인 태도와 사회적 인습을 거역하지 못한 헬레네는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한 그 날 자살하고 만다.

<폭풍우>

소설은 '내'가 1890년대 중반에 고향을 영원히 등지게 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시작한다. 그해는 그가 살던 도시에 전무후무한 규모의 폭풍이 불어온 해였다. '나'는 열 여덟 살로 청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 시기에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베르타에게 사랑을 고백받게 된다. 베르타는 '나'의 친구도 남몰래 사모하는 여자였고, 꽤나 예뻤기에 '나' 역시 그녀를 다소간 열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을이 폭풍우에 완전히 파괴된 모습을 본 뒤 고향을 떠난다.

헤르만 헤세가 1907년에 발표한 <이 세상 풍경(Diesseits)>에 수록된 작품 <소년 시절>, <라틴어 학교 학생>, <대리석 공장>과 1916년에 발표한 <폭풍우>가 수록된 단편소설 선집이다.

헤르만 헤세는 주로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옮기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여기 수록된 소설들도 그가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 느꼈던 혼란과 방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헤세 작품의 정수를 드러내는 작품이라기 보다 <수레바퀴 아레서> 시절의 전, 또는 후에 일어난 에피소드 정도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첫사랑이 불러 일으키는 엄청난 감정의 폭풍에 대한 주인공들의 치기어린 행동과, 그런 첫사랑이 깨어졌을 때 느꼈을 법한 고통과 우울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높은 세계로의 열망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헤세의 삶과 오버랩 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58008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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