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키의 해체 원인 ㅣ 스토리콜렉터 31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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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엽기적인 토막살인의 진범이 누군가를 두고 야스히코와 타쿠미 치아키가 토론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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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희생자는 마츠우라 야스에라는 38세 여성. 그녀는 둔기로 머리를 가격 당한 뒤 스타킹으로 교살 당해 죽었는데, 특이한 점은 기둥을 껴안는 자세로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발견되었다. 시체는 여섯 토막 나 있었다.

두 번째 피해자는 도이 도시코라는 여성. 그녀 역시 마츠우라 야스에와 동일한 자세로 기둥에 수갑을 찬 채 묶여 있었지만 다행히 생존한 채 발견되었다. 대신 그녀 옆에 남자친구 츠보이 준야가 식칼에 찔려 사망해 있었다.

경찰은 범인이 도이 도시코를 죽이려던 순간 남자친구가 나타나자 당황한 나머지 그를 찔러 죽이고 시간이 걸리는 토막 의식은 생략한 채 도망쳤다고 추리했다. 그리고 도이 도시코의 목격 증언에 따라 마츠우라 야스에를 쫓아 다니던 우에다 하야토라는 31세 남성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하지만 타쿠미 치아키는 사건의 진범은 다른 사람이라고 추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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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절단한다는 내용의 소설에 매료되어 '해체'를 주조로 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고, 극단적인 트릭과 기교를 구사한 이 작품은 훗날 '닷쿠-다카치'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는 첫 작품이자 작가의 정식 데뷔작이다. 원제는 <해체제인 解体諸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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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해체와 관련하여 언급한 작가와 작품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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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 맹수

도모나리 준이치 - 수의식

아야츠지 유키토 - 살인귀

아유카와 테츠야 - 붉은 밀실

모토카 루이 - 하얀 숲의 유령 살인

카사이 키요시 - 바이바이 에인절

시마다 소지 - 점성술 살인 사건

조이스 포터 - 도버4/절단 (해체물 베스트 1로 꼽음)

기시다 슈 - 질투의 시대 (참고)

이와카와 다카시 - 살인전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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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치아키는 왜 범인은 머리를 가격당해 항거 불능이나 다름 없는 피해자들에게 수갑을 채웠을까, 그리고 왜 시체를 토막 냈을까, 라는 의문으로부터 추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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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 도시코는 과거 자동차로 자전거를 탄 츠보이 준야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다. 가해자라는 약점을 잡힌 도이 도시코는 츠보이 준야와 원치 않는 교제를 하게 되었고 그를 증오했다.

그러다 또 다시 마츠우라 야스에를 차로 치게 되자 그녀를 죽인 뒤 자신도 살해 당할 뻔 한다는 스토리의 연쇄살인을 기획한다. 먼저 마츠우라 야스에를 토막 살인한 도시코는 츠보이 준야를 집으로 불러 들여 식칼로 찔러 죽인 뒤 스스로 두부에 상처를 내고 기둥을 껴안는 자세로 수갑을 찬다. 경찰은 범인이 갑자기 나타난 츠보이 준야를 죽인 뒤 도시코는 처리하지 못하고 도주했다고 추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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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 일주 - 개정판 ㅣ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4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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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는 좀처럼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침착한 사람이다. 1872년 어느 날, 필리어스 포그는 여느 때와 같이 혁신클럽에서 카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 대화 주제는 '과연 80일 안에 세계일주를 할 수 있는가' 였다. 과학과 이성의 신봉자 필리어스 포그는 당연히 가능하다는 입장이었고, 클럽 회원들과 갑론을박 끝에 2만 파운드를 걸고 내기를 한다.

필리어스 포그는 즉시 그날 고용한 프랑스 출신 하인 파스파르투와 함께 런던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그가 출발한 뒤 필리어스 포그의 '세계일주 문제'는 런던 주식 시장을 흔들어 놓았는데, 그가 세계일주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벌어진 도박이 약정서 형태가 되고 마침내 실물과 선물로 활발히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필리어스 포그가 출발하기 직전 런던 은행이 5만 5천 파운드를 괴한으로부터 도둑 맞는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범인에 대한 인상서가 하필 필리어스 포그의 외모와 딱 들어 맞았다. 런던 경시청 소속 픽스 형사는 즉시 필리어스 포그와 파스파르투를 뒤쫓기 시작한다.

필리어스 포그가 골몰하는 것은 오로지 다음 기차, 다음 배편에 시간 내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값비싼 코끼리를 이동수단으로 선택하는가 하면 배를 전세 내기도 했다.

형사 픽스는 필리어스 포그가 여행 중 그다지 돈을 아끼지 않는 점, 런던으로 부터 멀어지려고 애쓰는 점 등이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라 생각하여 한층 영장 발부와 체포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번번히 영장 도착 전 필리어스 포그가 다음 여행지로 출발해 버려 픽스는 애를 태우는 수밖에 없었다.

픽스는 끊임 없이 함정을 놓았지만 필리어스 포그는 잘 비껴 갔고, 도중에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불태워 죽이는 '서티' 장면을 목격하고 힌두교도 들로부터 아우다 부인을 구해내기도 했다.

어느덧 필리어스 포그는 파리, 이집트, 예멘, 인도를 거쳐 싱가포르와 홍콩, 그리고 일본을 거쳐 미국을 경유, 영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몇 번의 불운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필리어스 포그는 대담한 용기와 재력의 힘으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성공시키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를 뒤쫓던 형사 픽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 리버풀에서 하선하여 런던으로 가려는 필리어스 포그의 체포에 성공한 것이다.

뒤늦게 진범이 잡혀 풀려났지만 필리어스 포그는 약속 시간 보다 5분 늦어 내기에 지고 만다. 가진 돈 모두를 내기돈으로 물어낸 필리어스 포그는 이제 파산 상태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아우다 부인이 그런 필리어스 포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둘은 결혼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행복한 결심 이후 더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지구를 동쪽으로 돌았기 땜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루를 벌었던 것이다. 즉 그들은 내기 시간에 늦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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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은 과학과 이성의 힘을 믿고 합리적인 가정과 추론으로 미래 세계를 소설로 그려 냈는데, 꽤나 많은 부분이 현실화 되었다. 또한 코스모폴리탄적 시각으로 당시 인식 수준에서는 꽤 진보적인 생각들을 다양하게 소설에 풀어냈다. 바로 이런 점이 쥘 베른 소설을 현대인이 읽어도 고리타분하게 느끼지 않고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찾게 되는 이유인 것 같다.

어렸을 적 축약본이나 동화책으로 읽었던 책들을 장성한 뒤 완역본으로 읽고 나면 어쩐지 뿌듯한 기분이 든다. 마침내 어른이 된 기분이랄까, 밀린 숙제를 한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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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어른이니 회사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이리로 가라 하면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라 하면 저리로 가야 한다.

7.1.자로 갑작스럽게 발령이 났다. 진급을 하고 연차가 늘었는데도 나는 부하직원 복이 없다. 부하직원의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사이가 안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예 부하직원이 없다. 조직도에 무슨무슨 담당 나 혼자 덩그러니 있고, 그 밑에 아무도 없다. 그래서 기안이나 보고서도 내가 쓰고, 실무도 내가 해야 한다. 자연 퇴근이 늦어지고 책 읽을 시간도 줄어 들었다. 그 점이 가장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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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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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잭슨 폴록의 작품 제목을 차용한 열 여덟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의 그림 안에 내재된 폭력과 악의의 에너지는 '흩뿌림'으로 잠재워져 작품으로 재탄생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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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을 포기하고 부사관학교를 나온 뒤 보험영업 전선에 뛰어든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회식이 있었고 그는 만취했다. 만취한 그는 입과 항문으로 토사물과 변을 쏟아내고 기절하고 만다. 바지를 끌어 내린 채 대형 빌딩 앞에 널부러진 그의 모습을 누군가 찍어 인터넷에 올렸고, 누리꾼들은 수사망을 좁혀갔다. 마침내 그의 졸업 앨범 사진이 돌기 시작한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외면받은 뒤 끝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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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대한민국에서 이마에 두 개의 탄환이 뚫고 들어간 시체가 속속 발견된다. 그 시체에 대해 유의미한 해석을 내놓는 사이트가 생겨났는데 운영자는 스스로를 저스티스맨이라고 했다.

저스티스맨은 '오물충'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오물충'을 사회적으로 인격 살인한 동창, 기자 들이 이마에 두 개의 탄환을 맞은 채 사망한 피해자들이라 했다.

저스티스맨의 해석이 점점 현실과 맞아 떨어지자 그는 강력한 권력을 획득한다. 100만에 육박하는 회원이 모여 들었고, 회원들은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신탁이나 되는 듯 기다렸다.

그 후로도 회원을 교묘하게 매장시킨 인터넷 카페 운영자, 원조교제 후 동영상을 유포한 학교 교사 등이 차례로 사망자 명단의 꼬리에 따라 붙었다. 누군가는 혹시 저스티스맨이 연쇄살인범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경찰은 시민들로부터 온갖 비아냥과 조롱을 당했고, 저스티스맨의 입에서 나오는 말 만이 유일하게 현실과 부합했다.

하지만, 어느 날 새로운 피해자 명단이 발표되고 사람들은 경악하고 만다. 이번 피해자는 바로 저스티스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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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작가는 상당한 달변인데, 이 달변이 오랜 훈련을 통해 정제된 그것이 아니라 되는 대로 주워 섬기는 식이다. 해득이 어려울 정도의 고급 단어는 또 없어서 복문과 장문이 술술 읽히기는 하는데, 다시 읽어 보면 별 내용이 없거나 어딘가 살짝 틀린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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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워낙 기상천외한 범죄들이 봇물 넘치듯 넘쳐나니까 위폐 따윈 등수에도 못 든다는 얘기에요. .. 여하튼 간에 사정이 그러니까 뒷돈 받고 밀수품 눈감아주는 건 애들이 기저귀 차고 돌아다니는 것만큼이나 흔한 일이라는 게 모르긴 몰라도 맞는 얘기일 거라는 거죠, 제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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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읽으면 그냥 쑥 지나가지만, 가만 있어봐... 봇물 넘치다? 봇물 터지다? 라던가 '애들이 기저귀 차고 돌아다니는 것만큼이나 흔한 일'이라...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비유들이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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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만연체와 복문으로 구성된 문장과 그다지 공을 들여 생각해낸 것 같지 않은 비유들은 시종 일관 계속되는데 플로베르가 보았다면 다소 언짢았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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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을 예비하는 단계도 미숙한데, 굳이 팬션의 젊은 여주인을 '그'라고 반복적으로 지칭해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데, '오물충'이 여자라는 것을 숨기기 위한 어색한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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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르소설 마니아로서 그쪽 설정 역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은 이마에 뚫린 두 개의 탄흔이다. 권총을 이마에 쏴서 맞추는 것도 어렵지만 맞는 순간 피격자는 멀리 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두 개의 탄환을 만들려면 뭉그러져 뇌수가 터져버린 머리를 다시 벽이든 어디든 잘 고정 시킨 뒤 다시 발사 해야 하는데, 작가는 이런 부분을 몰랐던 것 같다.

그것 말고도 경찰관 직무집행법 따윈 개나 줘버리고 지나가는 사람들 소지품 검사를 하는 대목이나(이는 90년대 후반에도 불가능했었다), 경찰 총기 전수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대목 등은 충분한 취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짐작으로 쓴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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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독스 중국 우화
루쉰 외 / 정신세계사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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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정신세계사>가 펴낸 책들이 유행했다. <정신세계사>는 스스로 밝히길 '과학 만능과 물질 위주'의 시대에 '정신세계의 광활함과 고귀함을 일깨우고, 인간 내면의 잠재력을 계발함으로써, 현실 생활

고등학교 시절 <정신세계사>가 펴낸 책들이 유행했다. <정신세계사>는 스스로 밝히길 '과학 만능과 물질 위주'의 시대에 '정신세계의 광활함과 고귀함을 일깨우고, 인간 내면의 잠재력을 계발함으로써, 현실 생활에서의 여유와 조화를 가능케 하며, 미래 창조의 지혜와 힘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출판사였다.

어쨌든 온갖 수상쩍은 종교, 유사과학 및 유사역사, 깨달음으로 포장된 개똥철학, 멀쩡한 과학서적 등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때 유행했던 책들이 <성자가 된 청소부>, <한단고기>, <단> 같은 것들이었고, 류시화는 초대 편집자이자 옮긴이로 활약했다.

이 <정신세계사>에서 펴낸, 그나마 정상 범주에 드는, <파라독스 중국 우화>는 <파라독스 이솝 우화>와 한 쌍을 이루었다. <파라독스 이솝 우화>가 기존 이솝 우화를 살짝 비틀고 교훈을 각주에 달아 놓은 식이었다면, <파라독스 중국 우화>는 루쉰, 궈모러, 펑쉐펑 등 22명의 작가가 쓴 오리지널 우화를 수록한 책이다. 우화 말미에는 교훈을 한 줄로 축약해 두었는데 이 한 줄이 촌철살인인 경우가 많거나 뜻밖의 내용이어서 스포일러 보듯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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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을 읽고 나서 본문을 다시 보게 된 우화 중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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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산 속의 옛 성 - 루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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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곳을 평지라고 여기는가? 그렇지 않다. 그곳은 모래산이다. 모래산 속에는 옛 성이 있다. 전에 세 사람이 그 옛 성에서 살았다. 옛 성은 크지 않았지만 매우 높았다. 문이라고는 갑문 하나뿐이었다.

옛날 짙은 안개가 모래를 휘감아 안고 그 성으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모래가 밀려온다. 큰일이다! 얘야, 어서 빠져나가!" 소년이 어린애에게 말했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 괜찮어." 노인이 말했다.

이렇게 3년하고도 열두 달, 또 여드레가 지나갔다.

"모래가 많이 쌓여 여기선 살 수가 없어. 얘야, 어서 빠져나가!"

소년이 말했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 괜찮어." 노인이 말했다.

소년은 갑문을 밀어올리려 했으나 무거워서 밀어올릴 수가 없었다.

모래가 너무 많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소년이 죽을 힘을 다하여 간신히 갑문을 올려 열긴 했으나 겨우 두 자 정도밖에는 열리지 않았다. 소년은 온몸으로 갑문을 받치며 버텼다.

"빨리 나가!" 소년이 어린애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괜찮다니까!" 노인이 어린애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빨리 나가야 한다니까요! 이건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란 말이에요!"

짙은 잿빛 안개가 모래를 휘감아 안고 파도처럼 흘러들었다. 그후의 일을 나는 모른다. 알고 싶다면 당신이 직접 저 모래산을 파헤치고 옛 성에 가 보라. 아마 갑문 밑에 주검이 하나 있을 것이고, 그리고 갑문 옆에는 주검이... 글쎄, 하나가 있을지, 둘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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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파와 싸우면서 세월을 보내는 진보파는 보수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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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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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신이여,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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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신이 있는데 어째서 '당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우연히 물려받은 신앙'만이 옳다고 주장하는가.

기독교인들은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성경> 자체를 근거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가 죽은 뒤 최소 35~40년 후에 쓰이기 시작했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수백명이 목격했고, 9.11 테러 공격이 일어난 지 불과 20여 년이 흘렀을 뿐인데도 사람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끊임 없이 변화 해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호해져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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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여러 가지 복음서의 조합 버전이 존재한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인정하는 복음서의 종류도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복음서는 진짜이고, 어떤 복음서는 가짜인가? 그 기준을 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또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의 유사한 버전들이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들이 <성경>에 녹아들어간 이야기가 아니라 오리지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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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선한 책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노아 이야기는 좀 예외인가? 하느님은 노아가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그를 빼고 남자, 여자, 아이, 그리고 모든 종류의 동물을 한 쌍만 빼고 모조리 지구상에서 멸절시켜버린다.

욥은 어떤가. 하느님과 사탄이 내기를 한다. 하느님은 악마가 욥을 시험하는 것을 승인했고, 악마는 욥의 소와 양, 낙타와 하인을 빼앗고 10명의 자식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집도 없애버렸지만 욥은 하느님을 탓하지 않고 하느님은 내기에서 이긴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탄에게 더 시험해 봐도 좋다고 한다. 사탄이 욥의 온 몸을 종기로 뒤덮었지만 욥은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결국 하느님은 욥을 칭찬하고 더 많은 재산을 주고 그의 아내는 더 많은 아이를 낳았다. 어째 이야기가 이상하지 않나? 사탄 보다 도리어 하느님이 마조히스트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 같지 않나?

아브라함과 이삭 사건은 어떤가. 아들을 번제 제물로 바치라고 하자 아버지가 아들을 주저 없이 죽여 없애려 한다. 천사가 그 직전에 막긴 하지만 말이다.

<민수기>는 더 심하다. 하느님이 가나안 땅을 주었으니 거기는 너희 땅이니 마음대로 처결하라 이르고(전쟁), <신명기>에서는 햇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은 전멸시키라고 이른다(인종청소) <사무엘상>에서는 아말렉을 치고 재산을 모조리 뺏고 남자,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 떼와 양 떼, 낙타와 나귀를 모조리 죽이라고 한다.(인종청소) <민수기> 또 다른 구절은 사내와 남자와 동침한 여자를 모조리 죽이라고 하면서도 남자와 동침한 처녀는 너희를 위해 살려 두라고 한다.(인종청소와 전쟁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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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해지기 위한 경전으로 <성경>을 믿기에는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한 구석이 많다. 게다가 <성서>는 복수와 질투가 일상적으로 다루어진다. <레위기>와 <신명기>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신을 철저히 당부하고 있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용서와 화해의 구절도 있다. 그럼 어떤 것은 진짜고, 어떤 것은 가짜인가? 같은 <성서> 안에서도 어떤 것은 글자 그대로 따르고, 어떤 것은 상징인가? 상징인지 아닌지 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어쩌면 도덕률이라는 것은 인류 전체가 생존하고 진화하는 데 유리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바뀌는 것은 아닐까? <성서>가 쓰여졌던 바로 그 시기에는 일반적인 도덕률에 부합했을 지 모르지만 지금 읽어보면 섬뜩한 전쟁충동, 인종청소, 성폭력을 충동질하는 구절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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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진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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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페일리 목사가 1802년 저서 <자연신학>에서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라고 권한다. 어느 날 당신이 길을 걷다가 무언가를 발로 찼는데 무엇인지 봤더니 바로 시계였다. 시계는 톱니바퀴, 스프링, 섬세한 작은 나사들로 이루어져 시간을 알려주는 복잡한 기계다. 이러한 시계가 자연 발생했을리가 있는가? 그러므로 분명 제작자가 있었을 것이다. 이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세계는 신이 제작한 거대한 체계이다. Q.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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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충분히 오랫동안 진화한다면 이보다 더한 복잡성도 자연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눈이 물체를 보는 방식이 과연 태엽으로 돌아가는 시계 보다 덜 복잡하다고 생각하는가? 얼핏 설명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들도 한 단계 한 단계 진화해 온 과정을 살펴보면 납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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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설마 그럴 리가!' 라는 태도로 불가지론이나 다름 없는 신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과학으로 부터 용기를 얻어 진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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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케냐 나이로비가 영국령이었던 1941년에 태어났다. 공전의 히트작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작가는 진화생물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데, <신, 만들어진 위험>에서 자신의 무신론적 견해를 차분한 어조로 논증해 나간다. 1부는 종교 자체의 검증을 통해 신이 과연 존재하는지 묻고, 2부에서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정교하게 조직되어 왔음을 논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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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리처드 도킨스가 간과한 것이 있다. 그들은 '믿는다'는 점이다. 이치에 맞고 진실된 것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즉 부조리하니까 그들은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믿는' 것일까?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최정점에 있는 목사들은 '믿지도 않는'다. 왜냐면 '신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헌금을 거둬 들여 치부하고, 교육비가 지원되므로 자식들을 가장 비싼 종목으로 유학 보내고(음악, 미술), 교회법을 어겨 가며 자식에게 교회와 신도 일체를 물려준다. 이런 행동은 신이 있다고 '믿는' 자의 행동이 아니라, 신이 없음을 너무도 잘 아는 '사기꾼'의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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