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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독스 중국 우화
루쉰 외 / 정신세계사 / 1992년 4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시절 <정신세계사>가 펴낸 책들이 유행했다. <정신세계사>는 스스로 밝히길 '과학 만능과 물질 위주'의 시대에 '정신세계의 광활함과 고귀함을 일깨우고, 인간 내면의 잠재력을 계발함으로써, 현실 생활
고등학교
시절 <정신세계사>가 펴낸 책들이 유행했다. <정신세계사>는 스스로 밝히길 '과학 만능과 물질 위주'의
시대에 '정신세계의 광활함과 고귀함을 일깨우고, 인간 내면의 잠재력을 계발함으로써, 현실 생활에서의 여유와 조화를 가능케 하며,
미래 창조의 지혜와 힘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출판사였다.
어쨌든
온갖 수상쩍은 종교, 유사과학 및 유사역사, 깨달음으로 포장된 개똥철학, 멀쩡한 과학서적 등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때 유행했던
책들이 <성자가 된 청소부>, <한단고기>, <단> 같은 것들이었고, 류시화는 초대 편집자이자
옮긴이로 활약했다.
이
<정신세계사>에서 펴낸, 그나마 정상 범주에 드는, <파라독스 중국 우화>는 <파라독스 이솝
우화>와 한 쌍을 이루었다. <파라독스 이솝 우화>가 기존 이솝 우화를 살짝 비틀고 교훈을 각주에 달아 놓은
식이었다면, <파라독스 중국 우화>는 루쉰, 궈모러, 펑쉐펑 등 22명의 작가가 쓴 오리지널 우화를 수록한 책이다.
우화 말미에는 교훈을 한 줄로 축약해 두었는데 이 한 줄이 촌철살인인 경우가 많거나 뜻밖의 내용이어서 스포일러 보듯 읽게 된다.
교훈을 읽고 나서 본문을 다시 보게 된 우화 중 한 편
< 모래산 속의 옛 성 - 루쉰 >
당신은 그곳을 평지라고 여기는가? 그렇지 않다. 그곳은 모래산이다. 모래산 속에는 옛 성이 있다. 전에 세 사람이 그 옛 성에서 살았다. 옛 성은 크지 않았지만 매우 높았다. 문이라고는 갑문 하나뿐이었다.
옛날 짙은 안개가 모래를 휘감아 안고 그 성으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모래가 밀려온다. 큰일이다! 얘야, 어서 빠져나가!" 소년이 어린애에게 말했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 괜찮어." 노인이 말했다.
이렇게 3년하고도 열두 달, 또 여드레가 지나갔다.
"모래가 많이 쌓여 여기선 살 수가 없어. 얘야, 어서 빠져나가!"
소년이 말했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 괜찮어." 노인이 말했다.
소년은 갑문을 밀어올리려 했으나 무거워서 밀어올릴 수가 없었다.
모래가 너무 많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소년이 죽을 힘을 다하여 간신히 갑문을 올려 열긴 했으나 겨우 두 자 정도밖에는 열리지 않았다. 소년은 온몸으로 갑문을 받치며 버텼다.
"빨리 나가!" 소년이 어린애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괜찮다니까!" 노인이 어린애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빨리 나가야 한다니까요! 이건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란 말이에요!"
짙은
잿빛 안개가 모래를 휘감아 안고 파도처럼 흘러들었다. 그후의 일을 나는 모른다. 알고 싶다면 당신이 직접 저 모래산을 파헤치고 옛
성에 가 보라. 아마 갑문 밑에 주검이 하나 있을 것이고, 그리고 갑문 옆에는 주검이... 글쎄, 하나가 있을지, 둘이 있을지?
보수파와 싸우면서 세월을 보내는 진보파는 보수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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