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설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 - 교과서 문학으로 떠나는 스토리 기행
정명섭.이가희.김효찬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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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국어교과서를 받으면 제일 먼저 소설을 찾아 읽었다. 당시엔 소설이 좋았다기 보다 지루한 학교에서 시간 때울 무언가가 필요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소설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고, 시사영어사에서 나온 영한대역문고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엔 영어, 한쪽엔 한글이 나온 그 책은 자율학습 시간에 떳떳하게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방편이 되어 주었다. 그때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이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축약본,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 같은 것들을 매일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 가서 책 한 권씩 읽고 집에 돌아오는 삶도 나쁘지 않다고 느꼈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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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설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교과서 문학으로 떠나는 스토리 기행'이라는 테마로 소설 줄거리를 요약하고, 배경이 된 곳을 답사하는 형식으로 꾸며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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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나목>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교과서에 실린 것은 몰랐다. 내가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책이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두 권 모두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별로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은 라디오에 소개되는 사연들처럼 자연스럽고 소박한 맛은 있지만 그 이면에 '배운 작가'의 자의식이 느껴져서 싫었다. 물론 박완서 보다 한 술 더 뜨는 공지영도 있긴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서울이 배경이다. <나목>의 주인공 이경이 다녔던 미군PX는 미쓰코시 백화점이었다가 현재는 신세계 본점이다. 나는 2007년 부터 4년간 신세계 본점 바로 옆에 위치한 중앙우체국 6층에서 근무했는데 당시엔 매일 관광가는 기분으로 회사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서대문 뒤편의 달동네로 추정되는데 이곳도 나와 약간의 인연이 있다. 그 달동네 위쪽에 예전 사직사라 부르던 곳이 있었다. 우체국 공무원들의 숙사로 사용 되다가 후에 우체국공익재단이 인수하여 현재는 암환자 숙소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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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금보라가 영희로 분하는 그 영화를 보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던 나는 대학 1학년 때 조세희의 작품집을 사서 읽었다. 사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외에는 다소 난해한 작품들이 많아 읽는 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서울 중림동으로 일제 시대 때부터 유명한 빈촌이었으며 현재는 성요셉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다 한다.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소개되어 있는데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작가가 훗날 <난쏘공>의 조세희 작가와 만난 일이 있다고 한다. 조세희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김중미 작가가 읽고 빈민운동에 투신하였다는 말을 듣고 "제가 몹쓸 짓을 하였네요"라고 말했다 한다. 자신의 작품이 오랜 기간 읽히고 공감 받는 사회 현실이 안타까웠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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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자전거 도둑> 배경은 세운상가다. 세운상가에서 크래프트 어쿠스틱 기타를 사고 인터넷 보다 싸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악기는 인터넷 보다 오프라인이 쌌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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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은 나에게 충격과 전율을 안겨줬던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이다. 작품의 배경은 세브란스 병원과 그 인근에 난립하던 포장마차로 짐작된다. <무진기행>을 필사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1990년대 초중반의 분위기가 작품의 배경과 함께 오롯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역사>는 동대문과 창신동 일대가 배경이라고 하는데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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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의 <미스터 방>은 전광용의 <꺼삐딴 리>를 연상케 하는 소설이다. 채만식은 일제 말기에 깨끗한 이름을 더럽혔는데 이를 부끄러워 했다고 전해진다. 소설의 배경은 피난민들이 모여들던 현저동과 서촌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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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광주대단지 사태, 즉 1971년 8월 10일 현재 성남시 수정구 일대에서 벌어진 봉기사건이 배경이다. 작가 윤흥길은 1973년 성남 숭신여자중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사건 2년 뒤 부임한 터라 학생들의 얼굴이 어둡고 소심했다 한다. 그러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광주대단지사건을 겪은 청년을 우연히 만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뒤 학교를 그만 두고 소설을 썼는데 바로 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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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랑했던 작가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가 뒤를 잇는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1990년대만 해도 지금과 같이 정비된 곳이 아니었다. 2000년 들어서 인천시가 대대적으로 손을 보아 지금과 같은 외형이 되었다. 월미도와 자유공원, 북성포구, 화도진 공원... 1990년대 초중반 까지 인천의 중심은 동인천이었고, 시위도 동인천 백화점 앞에서 벌어지던 시기였다. 그때의 추억이 아직도 생각 나 인천에 가면 꼭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한 바퀴 휘 돌아보지만 쇠락한 도시 이미지는 감출 수가 없어 아쉬울 뿐이다. 오정희는 박근혜 정부 최악의 블랙리스트 사태에 관여하여 스스로 자신의 명성을 흙탕물에 버린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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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은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다. 이문구의 <관촌수필>과 더불어 가장 많이 사고, 많이 선물하고, 읽었던 작품이다.

부천에서 3년간 근무할 때 가끔 원미동을 가보았다. 부천 내에서도 1기 신도시인 신중동과 그 이후 건설된 상동 일대에 밀려 상대적으로 낙후된 있는 곳. 지금도 전철역이 멀고 단독/다가구 주택이 밀집해 있어 개발이 더딘 탓에 과거 모습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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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은 인천 만석동이다. 대학 다닐 때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봉사 동아리에서 매년 여름이면 만석동으로 빈활을 갔다. 주거환경이 낙후되고 철거 위협이 있는 곳으로 봉사활동을 가는 것이다. 당시 나는 등에 들통을 짊어지고 재래식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소독하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중학교 2학년 어름의 여자아이가 자기집 화장실을 안내한 뒤 매우 창피해 하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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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작품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이다. 황석영 작품 중 유독 손이 안 가서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인데 서울역과 용산 일대가 배경이라고 한다. 기회가 되면 일독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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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집어든 책인데 소설의 배경들이 대학시절 돌아다녔던 곳이거나 직장과 연관이 있는 곳이어서 꽤 재미있게 읽었다. 인천과 서울 뿐 아니라 다른 곳을 배경으로 한 2편이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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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나이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윤경 옮김 / 반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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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위장의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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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마트를 운영하여 재벌급 부를 축적한 마사키 도지로의 희수 축하연이 그의 저택에서 개최된다. 파티 도중 주인공인 도지로가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뒤 서재로 도지로를 부르러 갔던 사람들은 그가 천장에 메달린 채 대롱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세번째 부인 에리코는 아직 정식 혼인을 못 했기 때문에 유산을 못 받을까봐, 부사장이자 사위인 마사키 다카아키는 지분 상속 결과 후계에서 밀려날까봐, 그의 사망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않기로 결정한다.

시체를 산으로 옮겨 한달 쯤 후에 발견되게 만들되, 그 사이 이혼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혼인관계를 만들려는 속셈이다. 그런데 갑자기 시체가 사라져 버린다. 범인은 왜 도지로의 시체를 숨겼을까? 현장은 어떻게 밀실이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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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덫의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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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업자이자 사채업자인 야마가미 고조가 욕조에 몸을 담근 상태에서 사망한다. 아내 미치요는 고조의 평소 행동거지와 너무 다르다며 그가 타살당했다고 주장한다. 정황을 보니 그는 감전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범인은 어떤 계획을 세워 그를 죽이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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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뢰인의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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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키가 집에 와보니 경찰이 와 있다. 2층에는 엄마 다에코가 심장을 칼에 찔려 사망한 채였다. 경찰은 사망 추정 시각 아버지 요스케가 처제 오쓰카 노리코를 만난 사실을 확인하고 용의자에서 제외시켰다. 그런데 다에코의 최근 행적을 조사하다 보니 문화센터의 나카노 오사무라는 남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그가 집 주변을 서성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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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 활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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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코라는 여성이 남편 아베 사치오의 뒷조사를 의뢰한다. 탐정이 남편과 불륜 관계로 추정되는 여자의 사진을 찍어서 가져다주자 후미코는 흠칫 놀라더니 조사 중단을 요청한다.

얼마 뒤 후미코의 20년 지기 마나베 부부와 후미코의 남편 아베 사치오가 한 호텔에 묵는다. 마나베는 아내 아키코에게 후미코도 온다고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오지 않았다.

마나베와 아베가 맥주를 마셨는데 둘 다 죽고 만다. 마나베의 아내인 아키코는 남편이 따라준 맥주가 잔을 넘치려 해 남편 잔에 따랐다고 진술한다.

경찰은 아베 사치오의 불륜 상대가 마나베 아키코였고 이를 알게된 마나베가 둘을 독살하려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마나베가 안주를 가지러 간 사이 아내가 맥주를 먹지 않고 자신에게 따라주는 바람에 모르고 이를 마신 마나베가 어이없이 죽게 되었다는 것이 경찰의 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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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와 나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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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에이 대학 교수이자 이공학부 학부장인 오하라 다이조 교수는 둘째 딸 유리코가 임신한 것 같다는 주치의 하야마의 말에 분개한다. 딸에게 아이 아빠를 대라고 겁박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다이조 교수는 조교들 중 한 녀석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탐정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그런데 얼마 뒤 큰 딸 나오코가 술에 취해 유리코의 침대에서 자다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정황상 그 날 알리바이가 없었던 조교 간자키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간자키도 자살하고 만다.

이것으로 사건은 끝나는가 싶었지만 탐정들은 전혀 다른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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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발매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백야행>, <유성의 인연>과 같은 공전의 히트작들이 소진되자 다소 재미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초기 작품들까지 번역 발간하여 그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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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나이프>에 등장하는 탐정클럽은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이름이나 특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남녀 한쌍이 등장한다. 이들은 독자에게 수수께끼 풀이를 대신 알려줄 뿐 추리 과정을 공유하지 않는다. 개성 없는 무색무취의 인물들이 소설 진행을 도와주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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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의 밤>의 범인은 다카아키다. 그는 횡령을 추궁하는 마사키 도지로를 충동적으로 살해한 뒤 자살로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시체를 발견한 사람 중 하나가 '요새 경찰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금방 알아낸다'는 말에 타살이 드러날까봐 부랴부랴 시신을 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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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의 내부>는 채무관계를 해결하지 못한 자들이 작당하여 야마가미 고조를 살해한 것이다. 이들은 일부러 싸움을 일으켜 세탁기에 부딪혔고 나중에 야마가미 고조가 누전된 세탁기에 감전된 것으로 처리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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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의 딸>의 노리코는 살해된 것이 아니라 자살한 것이다. 남편은 이를 알면서도 미유키에게 '엄마가 바람 피우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자살했다'고 사실대로 알려줄 수 없었다. 바람 상대에 대한 원한까지 겹친 남편은 처제를 설득해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언니인척 전화를 걸어 내연남을 집으로 유인하여 그가 범인인 것처럼 몰아가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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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활용법>은 이중 트릭이다. 범인은 친구 사이인 아키코와 후미코. 아키코는 남편에게 바람 피우는 것을 들켜 이혼을 강요 당하고 있었고, 후미코는 주식에 손을 댔다가 폭락하여 수습해야 할 상황이었다. 후미코는 자신의 친구 아키코와 남편 아베 사치오가 불륜인 것처럼 정황을 만든 뒤 아키코의 남편 마나베가 둘을 죽이려다 아키코만 극적으로 살아난 것처럼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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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나이프>의 범인은 유리코다. 유리코는 다이조 교수의 친딸이 아니라 혼전에 교제하던 기쿠이 교수의 딸이었다. 기쿠이의 조교 간자키가 이를 알고 유리코를 협박하자 유리코는 평소 미워하던 배다른 언니 나오코와 기쿠이를 한 번에 제거한 것이다. 임신중이라는 것은 거짓말이었고 공범은 주치의인 하야마였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297409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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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다스리면 인생이 변한다
알루보물레 스마나사라 지음, 강성욱 옮김, 장운갑 편역 / 경성라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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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에서 일할 때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발견하여 구입했다.

책날개에 적혀 있는 바에 따르면 지은이 알루모룰레 스마나사라는 1945년 생으로 스리랑카 상좌 불교 장로라고 하는데, 13세에 출가해서 '득도 했다'고 쓰여있다.

내가 아는 '득도' 뜻이 여기 쓰인 것과 다른 건가 싶은 마음은 잠시 접어 두고, 그는 1980년 일본으로 건너가 '득도는 했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것인지' 고마자와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일본 테라바다불교협회에서 초기불교 전도와 명상지도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지은이 소개를 읽다보니 어쩐지 책을 읽고 싶지 않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래도 돈이 아까워 꾸역꾸역 끝까지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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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기본 아이디어는 철저히 이분법적인데 '화를 내는 것은 나쁜 것이고, 화를 참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책 앞부분에 나오고, 이후로는 지리한 부연설명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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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화를 내지 않고 참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알루모룰레 스마나사라는 '극단적인 관념론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남이 나에게 화를 내게 만드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라'는 것이 그 비법이다. 이는 어떤 비유적인 말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인데, 남이 때리면 맞고 누가 내 목을 치려 하면 그대로 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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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는 '예컨대 무서운 도둑들이 들어와 아무것도 나쁜 일을 하지 않은 자신을 붙잡고서 '이놈을 베어버리자. 재미있을거야' 하고 생각하여 단지 그 이유만으로 톱으로 자르려고 한다고 합시다. 그때조차 '싫다'라고 화를 내서는 안된다. 조금이라도 화를 내면 당신들은 부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불제자가 되고 싶다면 그 정도의 각오로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죽임을 당하는 순간조차도 만약 화를 내면 마음은 흐트러지고 지금까지 쌓은 덕은 모두 무효가 되어버리며 지옥에 가게 된다. 그러니 죽임을 당하는 사람은 손해를 보게 된다.(1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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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조언인가. 누가 내 목을 치는 순간 화를 내면 지옥행 확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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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지은이는 일본에 오래 살아서인지 몰라도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벌하는 방법으로 친절하게 '이지매'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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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신자들의 경우 절에서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어떻게 할까요? 모른 체해서 소외시키고 무시합니다.(114p)

'당신은 나에게 손해를 줬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무시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1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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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를 때리고 죽이려고 해도 화를 내지 말고 참으라고 하더니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는 이지매를 권한다고? 물론 뭐 행동 변화를 촉구한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부연설명은 있지만 통상 위와 같은 방법을 이지매라고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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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지은이가 득도한 사람은 커녕 불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행한 사람이 맞나 하는 의문도 여러 곳에서 불쑥 불쑥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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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괴롭히면 저는 화를 내지 않고 '그 사람은 머리가 나빠서 사람을 괴롭히려고 하고 있다' 라는 것을 안다...그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느낄 수 있도록 반쯤 놀리는 기분으로 어떤 일을 해보는 것입니다.(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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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은 머리가 나빠서 괴롭히는 것인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얘기이긴 한데, 그럼 지은이가 권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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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방법은 가르쳐 드리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제가 가르쳐준 방법을 쓰기라도 한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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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고, 나머지 30여 페이지를 훌훌 넘기며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말았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29615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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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 관한 역설 ㅣ 문지 스펙트럼
드니 디드로 지음, 주미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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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요약

드니 디드로는 1713년 프랑스에서 출생했다. 예수회 계통 학교를 마친 뒤 1745년 출판인 앙드레 르브레통의 외뢰를 계기로 <백과전서> 작업에 착수한다.

디드로는 생애 대부분을 이 작업에 몰두하는데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등 당대 계몽 사상가들을 총동원하여 1751년 1권을 시작으로 21년이 지난 1772년에야 전서를 완성시킨다.

철학 저서로 <달랑베르의 꿈>(1749), <부갱빌 여행기 부록>(1772), 소설로 <수녀>(1760), <라모의 조카>(1761~63), <운명론자 자크>(1771~74), 희곡 및 연극론, 전람회 비평으로 <살롱>(1759~81), <회화론>(1776), 그리고 본서 <배우에 관한 역설>(177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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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 관한 역설

디드로는 사람에게 천부적 자질과 용모, 목소리, 판단력, 섬세함 등을 주는 것이 자연이라면, 자연이 준 재능을 완성시키는 것은 위대한 전범(典範)들에 대한 연구, 인간의 마음과 사회 관례에 대한 지식, 꾸준한 노력, 경험, 연극에의 익숙함 등이라고 말한다.

훌륭한 배우라면 판단력이 좋아야 하며 냉정하고 침착한 관찰자여야 한다. 통찰력은 필요하지만 감성은 전혀 요구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모방할 수 있는 기술, 모든 종류의 성격과 역할들에 대한 똑같은 적응 능력이 요구된다.

배우가 감성적이면 같은 역할을 매번 똑같이 열정적이고 성공적으로 연기할 수 있을까? 배우가 주의 깊은 모방자이고 사려 깊은 자연의 사도일 때, 그 자신이나 자기 연구의 엄격한 모사가일 때 감각의 지속적인 관찰자가 된다.

마음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고르지 못한 연기를 펼친다. 반면 인간 본성에 대한 사색과 연구, 그 어떤 이상적 모델에 따른 지속적인 모방, 상상력과 기억력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모든 공연에서 한결같으며, 늘 고르게 완벽할 것이다.

순전히 연습과 기억에 의존하여 열심히 공부할 때, 배우는 자신을 싸고 있는 거대한 마네킹의 영혼이 된다. 노력은 그 마네킹을 배우에게 고정시킨다. 천재적인 사람들은 관찰하고 공부하고 다듬는다.

훌륭한 배우의 모든 재능은 느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면밀하게 감정의 외부적 기호들을 토해낸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순전히 모방이며, 반복 학습되는 교훈이자 엄숙한 위장이고, 기억의 탁월한 모방이다. 배우가 펼쳐 보이는 극적 환영이란 오로지 관객을 위할 뿐이며, 배우는 자신이 그 환영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대에서의 진실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시인이 상상해내고 배우가 종종 과장하는 어떤 이상적 모델과 행동, 말, 표정, 목소리, 움직임, 동작들과의 일치다. 바로 그곳에 기적적인 것이 있다.

숭고한 순간들을 전유하는 것은 순수한 자연이 아니다. 숭고함을 확실히 포착하고 유지하는 어떤 사람, 상상력이나 천재적 능력으로 그것들을 예감하고, 냉정하게 극것들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그 순간을 전유하는 것이다.

거리 무대와 연극 무대의 차이는 마치 원시인들의 군집 상태와 문명인들의 의회가 갖는 차이와도 같다. 여러 번 연습을 반복하는 이유는 하나로 통일되는 보편적 행동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 배우들이 가진 다양한 재능들 사이의 어떤 균형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배우란 위대한 야바위꾼이다.

우리는 친구나 정부가 죽자마자 그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쓸 수 있을 때는 커다란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고 극단적인 감정이 가라앉고 재난의 순간에서 멀리 떨어져 영혼이 잔잔해진 다음, 지나가버린 행복을 기억해내고 잃어버린 것을 감상할 수 있게 될 때, 기억이 추억과 만나, 하나는 그것을 반추하고 하나는 지나간 시간의 달콤함을 과장하게 될 때, 바로 사람들이 자신을 제어하고 말을 잘할 수 있게 될 때이다. 사랑은 그것을 품은 사람에게선 재기를 빼앗아가고, 사랑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겐 재기를 준다. 감정적인 인간은 자연의 충동에 복종하고 정확히 심장의 외침 소리만을 낼 수 있을 뿐이다. 그가 이 마음의 외침을 완화시키거나 강화시키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그 자신이 아니라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된다.

가면을 벗었다 다시 쓸 수 있는 사람, 스스로를 제어하는 사람이 드물게 뛰어난 배우다.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지만 탁월하게 감정을 나타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자연 속에 결코 있은 적이 없었던 어떤 형상, 일종의 전범에 도달하는 사람이다.

자연은 그 자신의 얼굴말고는 준 것이 없으며 그는 예술로써 다른 얼굴들을 지니게 된 것이다. 모든 자연들을 알고 모방하는 데 있어서의 수월함, 그것이 배우의 자질이다. 위대한 환영을 상상해내고 천재를 본뜰 줄 아는 재능, 움직임과 행동과 동작과 한마디 말로 배우 자신보다 한참 더 위에 있는 존재의 그 모든 표상들을 모방해내는 사람이 훌륭한 배우다. 아무 특성도 없지만 모든 것들을 연기하는 데 뛰어난 것이다. 훌륭한 배우는 자연이 부여한 성격을 잃기 때문에 모든 성격을 연기하기에 적절해진다.

사람들이 진실을 좋아하는 때는 특히 모든 것이 가짜일 때이고, 연극이 가장 순수해지는 때는 특히 모든 것이 타락했을 때이다.

연극에서 열정의 이미지들은 그 진정한 이미지들이 아니라 과장된 초상화의 그것들일 뿐이고, 인습적 규칙들에 예속되어 큼직큼직 그려진 캐리커처들일 뿐이다.

배우의 진정한 재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빌려온 영혼의 외적 증상들을 잘 인지하고, 우리의 말을 듣고,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느낌에 호소할 줄 알고, 그런 모든 증상들의 모방, 머릿속에서 모든 것을 키우면서 자신들의 판단의 규칙이 되는 모방에 의해 그것들을 속일 줄 아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배우란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인식된 이상적 모델에 따라 가장 완벽하게 외적 기호들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원래 갖고 있지도 않은 과장되고 거대한 영혼의 외적 신호들을 연결하는 일을 한다. 반면 감정적인 사람은 너무나도 횡격막의 움직임대로 나가기 때문에 자연의 숭고한 모방자가 될 수 없다.

무대에서는 모든 것이 변한다. 거기서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커졌기 때문(과장)이다. 그것은 다른 세계다. 거기서 배우는 완벽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숱한 반복 연습을 하고, 지쳐 빠져 소위 마비 상태가 될 때 놀랍게 진전되어 자신의 인물에 일치하게 된다.

감성적인 것과 지각한다는 것은 같지 않다. 하나는 영혼에 속하는 일이고, 다른 것은 판단에 속하는 일이다. 강하게 느낀다고 해서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것도 아니다.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것은 차가운 머리와 깊은 판단력과 섬세한 취향과 각고의 연구와 오랜 경험과 보기 드문 기억력의 작업이다. 배우는 감성이 없을 경우 오히려 자신과 분리될 필요가 없을 것이고, 한번 도약하는 걸로 단번에 이상적 모델의 높이로 상승할 것이다. 열정 그 자체가 만들 수 없었던 것을, 잘 모방된 열정이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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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드로의 주장을 따라 가노라니 어렸을 적에 읽은 <대중선동론>이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선동을 할 때에는 절대로 청중보다 먼저 흥분해서는 안된다'는 구절이었다.

옮긴이 주미사가 언급한 바와 같이 배우들은 인터뷰에서 '배역에 푹 빠져 그와 함께 살았다' 따위의 말들을 많이 한다. 디드로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이다.

디드로는 배우가 감정에서 멀어져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기술과 기교를 습득하고, 자신의 본성과 전혀 다른 가면을 쓸 때 비로소 위대한 배우가 된다고 주장한다. 감정이 풍부한 배우는 그 감정을 나타내는 배역을 어느 정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자기가 가진 감정의 총량 내에서이다. 그의 감정에 걸맞는 배역일지라도 그 감정의 '전범'이 될만한 연기는 펼칠 수 없다. 반면 자신의 감정을 꺼버리고 백지 상태에서 기술과 기교에 집중하여 배역을 소화해낸 배우는 일종의 '전범'을 나타내주고, 연기의 수준을 매 공연마다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디드로가 말하는 배우의 역설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29285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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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ㅣ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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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보령 '창세기 비디오' 집 막내 딸이었던 손열매는 <마크스>의 주인공 스탠리 입키스의 대사를 할아버지에게 읽어주며 기예를 갈고 닦은 결과 성우가 되었다.

그런 손열매가 지금 정신과 의사를 찾아와 발성 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의사는 우울증의 신체화 결과로, 단기기억력 손상도 심각하다며 약물을 복용하는 한편 외출을 하고 고립을 피하라 했다.

그럼 손열매가 왜 우울증에 빠져들게 되었나? 그것은 함께 살던 선배 고수미가 피같은 돈 천삼백만원을 들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연락이 없는 고수미가 손열매는 미우면서도 걱정 됐다.

손열매는 성우 일도 못하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게 생긴 판이므로 고수미의 명품 가방을 팔아 얼마간 돈이라도 마련해보려 했다. 하지만 죄다 짝퉁 판정을 받은 탓에 재미를 보지 못한다. 결국 손열매는 고수미의 본가를 찾아가 보기로 하고 완평으로 방향을 잡는다.

완평에서 내려 완주 가는 1600번 버스를 타니 기사가 어디 가냐고 묻는다. 좁은 동네라 죄다 누가 누군지 아는 눈치였고, 손열매가 목적지를 대니 대뜸 유자씨네 가게 가는구나 한다.

우울증약의 부작용은 잠이 쉽게 들고, 잠이 들면 잠꼬대를 한다는 것인데 손열매는 주로 욕을 해댔다. 버스에서 잠꼬대로 욕을 해대니 뒤에 앉은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흠칫하며 손열매를 깨운다. 손열매는 창피했다. 버스를 내리니 비가 내렸고, 남자는 우산을 건내주고 사라진다. 훤칠한 키 탓에 '어저귀'라고 불리는 남자와의 첫만남이었다.

고수미네 집에 가니 고수미 엄마가 심드렁하게 '얼마 물렸냐'고 묻는다. 천삼백이라고 하니 갚아줄 돈은 없다며, 갈 데 없으면 보증금 없이 60만원씩 빚에서 제하며 지내라 한다. 손열매는 시늉뿐인 저항을 하다 냉혹한 현실에 무릎 꿇고 고수미네 쓰던 방에 주저 앉고 만다.

손열매는 완주에 머물게 된 것이 돈을 받기 위해선지, 고수미가 걱정 되어선지, 갈데가 없어선지, 그도저도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확실히 알지 못했지다. 확실한 건 우물쭈물 하다 눌러 앉은 김에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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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는 서울가는 기차도 있고, 두물머리에 가깝다고 하니 양평쯤이 아닐까 상상하며 읽었다. '바쁘면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라'는 안내가 수시로 나오는 경의중앙선 전철역에서 내려 면단위로 버스를 갈아 타면 그 어딘가 완주같은 마을이 나타나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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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면 물난리로 자식 잃은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주민들이 있고, 외로움을 타면서도 반항하는 것 외 달리 표현 못하는 양미가 있고, 그런 양미를 학폭으로 찌른다면서도 매일 학교 가자며 데리러 오는 파드마(간디)와 율리아(푸틴)가 있다.

마을 사람들의 아픔을 뭐든지 알기에 뭐든지 발설할 수 있는 이장과, 골프장 건립으로 한몫 보려하는데도 어딘지 미워할 수만은 없는 구회장이 있으며, 투수가 입스에 걸린 것처럼 영화 관련 일을 할 수 없게된 배우 정애라가 있다.

그리고 40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며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계속 존재하는 것 같은 '어저귀'가 있다. 어저귀는 어쩌면 우리 인생의 기준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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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의 <우리 동네>와 박영한의 <우묵배미의 사랑>과 같은 동네 이야기가 나는 좋다. 동네는 우리 삶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치유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동네에 관한 기억이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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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다 읽고 나서 김금희가 인하대 국문과를 나온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여러가지 옛날 생각이 났다.

나는 꽤 오래 학교를 다녔는데, 입학 후 졸업 까지 10년이 걸렸다. 다카노 히데유키의 <와세다 1.5평 청춘기> 주인공처럼 자취방에서 창을 열고 학교 시계탑을 일별한 뒤(그러면 꼭 수업 갔다 온 느낌이 든다) 동아리방에 가서 이런 저런 일을 했다.

90년대 후반, 동아리에 문예특기생인가로 입학한 새내기가 문을 두드렸다. 그 다음 해에 또 문예특기생이 동아리 가입을 희망했다. 이 둘이 처음 만나서 한 말이 '어? 언니?' 였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 했다.

그때 나는 '아... 문예특기생이라는 것도 있구나' 했고, 그런데 '왜 인하문학회나 샘동인회에 가지 않고 사회과학 동아리에 왔지?' 했다. 둘 다 특기는 그쪽인가 본데 글을 쓰는 것을 본 적은 없고 데모만 하러 다녔다. 둘 중 먼저 들어온 축이 김금희와 같은 과 같은 학번이었다. 그리고 나도 5호관에 상시 기거했으니 어쩌면 한 두번쯤 마주친 적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인하대 출신 소설가는 (전업은 아니지만) 조혁신 선배 밖에 몰랐는데, 목록에 한 명 늘었다. 챙겨볼 작가도 한 명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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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rainsky94/22428584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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