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 관한 역설 문지 스펙트럼
드니 디드로 지음, 주미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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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요약

드니 디드로는 1713년 프랑스에서 출생했다. 예수회 계통 학교를 마친 뒤 1745년 출판인 앙드레 르브레통의 외뢰를 계기로 <백과전서> 작업에 착수한다.

디드로는 생애 대부분을 이 작업에 몰두하는데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등 당대 계몽 사상가들을 총동원하여 1751년 1권을 시작으로 21년이 지난 1772년에야 전서를 완성시킨다.

철학 저서로 <달랑베르의 꿈>(1749), <부갱빌 여행기 부록>(1772), 소설로 <수녀>(1760), <라모의 조카>(1761~63), <운명론자 자크>(1771~74), 희곡 및 연극론, 전람회 비평으로 <살롱>(1759~81), <회화론>(1776), 그리고 본서 <배우에 관한 역설>(1773)이 있다.

배우에 관한 역설

디드로는 사람에게 천부적 자질과 용모, 목소리, 판단력, 섬세함 등을 주는 것이 자연이라면, 자연이 준 재능을 완성시키는 것은 위대한 전범(典範)들에 대한 연구, 인간의 마음과 사회 관례에 대한 지식, 꾸준한 노력, 경험, 연극에의 익숙함 등이라고 말한다.

훌륭한 배우라면 판단력이 좋아야 하며 냉정하고 침착한 관찰자여야 한다. 통찰력은 필요하지만 감성은 전혀 요구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모방할 수 있는 기술, 모든 종류의 성격과 역할들에 대한 똑같은 적응 능력이 요구된다.

배우가 감성적이면 같은 역할을 매번 똑같이 열정적이고 성공적으로 연기할 수 있을까? 배우가 주의 깊은 모방자이고 사려 깊은 자연의 사도일 때, 그 자신이나 자기 연구의 엄격한 모사가일 때 감각의 지속적인 관찰자가 된다.

마음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고르지 못한 연기를 펼친다. 반면 인간 본성에 대한 사색과 연구, 그 어떤 이상적 모델에 따른 지속적인 모방, 상상력과 기억력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모든 공연에서 한결같으며, 늘 고르게 완벽할 것이다.

순전히 연습과 기억에 의존하여 열심히 공부할 때, 배우는 자신을 싸고 있는 거대한 마네킹의 영혼이 된다. 노력은 그 마네킹을 배우에게 고정시킨다. 천재적인 사람들은 관찰하고 공부하고 다듬는다.

훌륭한 배우의 모든 재능은 느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면밀하게 감정의 외부적 기호들을 토해낸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순전히 모방이며, 반복 학습되는 교훈이자 엄숙한 위장이고, 기억의 탁월한 모방이다. 배우가 펼쳐 보이는 극적 환영이란 오로지 관객을 위할 뿐이며, 배우는 자신이 그 환영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대에서의 진실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시인이 상상해내고 배우가 종종 과장하는 어떤 이상적 모델과 행동, 말, 표정, 목소리, 움직임, 동작들과의 일치다. 바로 그곳에 기적적인 것이 있다.

숭고한 순간들을 전유하는 것은 순수한 자연이 아니다. 숭고함을 확실히 포착하고 유지하는 어떤 사람, 상상력이나 천재적 능력으로 그것들을 예감하고, 냉정하게 극것들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그 순간을 전유하는 것이다.

거리 무대와 연극 무대의 차이는 마치 원시인들의 군집 상태와 문명인들의 의회가 갖는 차이와도 같다. 여러 번 연습을 반복하는 이유는 하나로 통일되는 보편적 행동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 배우들이 가진 다양한 재능들 사이의 어떤 균형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배우란 위대한 야바위꾼이다.

우리는 친구나 정부가 죽자마자 그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쓸 수 있을 때는 커다란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고 극단적인 감정이 가라앉고 재난의 순간에서 멀리 떨어져 영혼이 잔잔해진 다음, 지나가버린 행복을 기억해내고 잃어버린 것을 감상할 수 있게 될 때, 기억이 추억과 만나, 하나는 그것을 반추하고 하나는 지나간 시간의 달콤함을 과장하게 될 때, 바로 사람들이 자신을 제어하고 말을 잘할 수 있게 될 때이다. 사랑은 그것을 품은 사람에게선 재기를 빼앗아가고, 사랑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겐 재기를 준다. 감정적인 인간은 자연의 충동에 복종하고 정확히 심장의 외침 소리만을 낼 수 있을 뿐이다. 그가 이 마음의 외침을 완화시키거나 강화시키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그 자신이 아니라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된다.

가면을 벗었다 다시 쓸 수 있는 사람, 스스로를 제어하는 사람이 드물게 뛰어난 배우다.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지만 탁월하게 감정을 나타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자연 속에 결코 있은 적이 없었던 어떤 형상, 일종의 전범에 도달하는 사람이다.

자연은 그 자신의 얼굴말고는 준 것이 없으며 그는 예술로써 다른 얼굴들을 지니게 된 것이다. 모든 자연들을 알고 모방하는 데 있어서의 수월함, 그것이 배우의 자질이다. 위대한 환영을 상상해내고 천재를 본뜰 줄 아는 재능, 움직임과 행동과 동작과 한마디 말로 배우 자신보다 한참 더 위에 있는 존재의 그 모든 표상들을 모방해내는 사람이 훌륭한 배우다. 아무 특성도 없지만 모든 것들을 연기하는 데 뛰어난 것이다. 훌륭한 배우는 자연이 부여한 성격을 잃기 때문에 모든 성격을 연기하기에 적절해진다.

사람들이 진실을 좋아하는 때는 특히 모든 것이 가짜일 때이고, 연극이 가장 순수해지는 때는 특히 모든 것이 타락했을 때이다.

연극에서 열정의 이미지들은 그 진정한 이미지들이 아니라 과장된 초상화의 그것들일 뿐이고, 인습적 규칙들에 예속되어 큼직큼직 그려진 캐리커처들일 뿐이다.

배우의 진정한 재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빌려온 영혼의 외적 증상들을 잘 인지하고, 우리의 말을 듣고,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느낌에 호소할 줄 알고, 그런 모든 증상들의 모방, 머릿속에서 모든 것을 키우면서 자신들의 판단의 규칙이 되는 모방에 의해 그것들을 속일 줄 아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배우란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인식된 이상적 모델에 따라 가장 완벽하게 외적 기호들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원래 갖고 있지도 않은 과장되고 거대한 영혼의 외적 신호들을 연결하는 일을 한다. 반면 감정적인 사람은 너무나도 횡격막의 움직임대로 나가기 때문에 자연의 숭고한 모방자가 될 수 없다.

무대에서는 모든 것이 변한다. 거기서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커졌기 때문(과장)이다. 그것은 다른 세계다. 거기서 배우는 완벽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숱한 반복 연습을 하고, 지쳐 빠져 소위 마비 상태가 될 때 놀랍게 진전되어 자신의 인물에 일치하게 된다.

감성적인 것과 지각한다는 것은 같지 않다. 하나는 영혼에 속하는 일이고, 다른 것은 판단에 속하는 일이다. 강하게 느낀다고 해서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것도 아니다.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것은 차가운 머리와 깊은 판단력과 섬세한 취향과 각고의 연구와 오랜 경험과 보기 드문 기억력의 작업이다. 배우는 감성이 없을 경우 오히려 자신과 분리될 필요가 없을 것이고, 한번 도약하는 걸로 단번에 이상적 모델의 높이로 상승할 것이다. 열정 그 자체가 만들 수 없었던 것을, 잘 모방된 열정이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다.

디드로의 주장을 따라 가노라니 어렸을 적에 읽은 <대중선동론>이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선동을 할 때에는 절대로 청중보다 먼저 흥분해서는 안된다'는 구절이었다.

옮긴이 주미사가 언급한 바와 같이 배우들은 인터뷰에서 '배역에 푹 빠져 그와 함께 살았다' 따위의 말들을 많이 한다. 디드로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이다.

디드로는 배우가 감정에서 멀어져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기술과 기교를 습득하고, 자신의 본성과 전혀 다른 가면을 쓸 때 비로소 위대한 배우가 된다고 주장한다. 감정이 풍부한 배우는 그 감정을 나타내는 배역을 어느 정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자기가 가진 감정의 총량 내에서이다. 그의 감정에 걸맞는 배역일지라도 그 감정의 '전범'이 될만한 연기는 펼칠 수 없다. 반면 자신의 감정을 꺼버리고 백지 상태에서 기술과 기교에 집중하여 배역을 소화해낸 배우는 일종의 '전범'을 나타내주고, 연기의 수준을 매 공연마다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디드로가 말하는 배우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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