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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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보령 '창세기 비디오' 집 막내 딸이었던 손열매는 <마크스>의 주인공 스탠리 입키스의 대사를 할아버지에게 읽어주며 기예를 갈고 닦은 결과 성우가 되었다.

그런 손열매가 지금 정신과 의사를 찾아와 발성 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의사는 우울증의 신체화 결과로, 단기기억력 손상도 심각하다며 약물을 복용하는 한편 외출을 하고 고립을 피하라 했다.

그럼 손열매가 왜 우울증에 빠져들게 되었나? 그것은 함께 살던 선배 고수미가 피같은 돈 천삼백만원을 들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연락이 없는 고수미가 손열매는 미우면서도 걱정 됐다.

손열매는 성우 일도 못하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게 생긴 판이므로 고수미의 명품 가방을 팔아 얼마간 돈이라도 마련해보려 했다. 하지만 죄다 짝퉁 판정을 받은 탓에 재미를 보지 못한다. 결국 손열매는 고수미의 본가를 찾아가 보기로 하고 완평으로 방향을 잡는다.

완평에서 내려 완주 가는 1600번 버스를 타니 기사가 어디 가냐고 묻는다. 좁은 동네라 죄다 누가 누군지 아는 눈치였고, 손열매가 목적지를 대니 대뜸 유자씨네 가게 가는구나 한다.

우울증약의 부작용은 잠이 쉽게 들고, 잠이 들면 잠꼬대를 한다는 것인데 손열매는 주로 욕을 해댔다. 버스에서 잠꼬대로 욕을 해대니 뒤에 앉은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흠칫하며 손열매를 깨운다. 손열매는 창피했다. 버스를 내리니 비가 내렸고, 남자는 우산을 건내주고 사라진다. 훤칠한 키 탓에 '어저귀'라고 불리는 남자와의 첫만남이었다.

고수미네 집에 가니 고수미 엄마가 심드렁하게 '얼마 물렸냐'고 묻는다. 천삼백이라고 하니 갚아줄 돈은 없다며, 갈 데 없으면 보증금 없이 60만원씩 빚에서 제하며 지내라 한다. 손열매는 시늉뿐인 저항을 하다 냉혹한 현실에 무릎 꿇고 고수미네 쓰던 방에 주저 앉고 만다.

손열매는 완주에 머물게 된 것이 돈을 받기 위해선지, 고수미가 걱정 되어선지, 갈데가 없어선지, 그도저도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확실히 알지 못했지다. 확실한 건 우물쭈물 하다 눌러 앉은 김에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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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는 서울가는 기차도 있고, 두물머리에 가깝다고 하니 양평쯤이 아닐까 상상하며 읽었다. '바쁘면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라'는 안내가 수시로 나오는 경의중앙선 전철역에서 내려 면단위로 버스를 갈아 타면 그 어딘가 완주같은 마을이 나타나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거기 가면 물난리로 자식 잃은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주민들이 있고, 외로움을 타면서도 반항하는 것 외 달리 표현 못하는 양미가 있고, 그런 양미를 학폭으로 찌른다면서도 매일 학교 가자며 데리러 오는 파드마(간디)와 율리아(푸틴)가 있다.

마을 사람들의 아픔을 뭐든지 알기에 뭐든지 발설할 수 있는 이장과, 골프장 건립으로 한몫 보려하는데도 어딘지 미워할 수만은 없는 구회장이 있으며, 투수가 입스에 걸린 것처럼 영화 관련 일을 할 수 없게된 배우 정애라가 있다.

그리고 40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며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계속 존재하는 것 같은 '어저귀'가 있다. 어저귀는 어쩌면 우리 인생의 기준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문구의 <우리 동네>와 박영한의 <우묵배미의 사랑>과 같은 동네 이야기가 나는 좋다. 동네는 우리 삶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치유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동네에 관한 기억이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김금희가 인하대 국문과를 나온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여러가지 옛날 생각이 났다.

나는 꽤 오래 학교를 다녔는데, 입학 후 졸업 까지 10년이 걸렸다. 다카노 히데유키의 <와세다 1.5평 청춘기> 주인공처럼 자취방에서 창을 열고 학교 시계탑을 일별한 뒤(그러면 꼭 수업 갔다 온 느낌이 든다) 동아리방에 가서 이런 저런 일을 했다.

90년대 후반, 동아리에 문예특기생인가로 입학한 새내기가 문을 두드렸다. 그 다음 해에 또 문예특기생이 동아리 가입을 희망했다. 이 둘이 처음 만나서 한 말이 '어? 언니?' 였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 했다.

그때 나는 '아... 문예특기생이라는 것도 있구나' 했고, 그런데 '왜 인하문학회나 샘동인회에 가지 않고 사회과학 동아리에 왔지?' 했다. 둘 다 특기는 그쪽인가 본데 글을 쓰는 것을 본 적은 없고 데모만 하러 다녔다. 둘 중 먼저 들어온 축이 김금희와 같은 과 같은 학번이었다. 그리고 나도 5호관에 상시 기거했으니 어쩌면 한 두번쯤 마주친 적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인하대 출신 소설가는 (전업은 아니지만) 조혁신 선배 밖에 몰랐는데, 목록에 한 명 늘었다. 챙겨볼 작가도 한 명 늘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28584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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