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설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 - 교과서 문학으로 떠나는 스토리 기행
정명섭.이가희.김효찬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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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국어교과서를 받으면 제일 먼저 소설을 찾아 읽었다. 당시엔 소설이 좋았다기 보다 지루한 학교에서 시간 때울 무언가가 필요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소설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고, 시사영어사에서 나온 영한대역문고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엔 영어, 한쪽엔 한글이 나온 그 책은 자율학습 시간에 떳떳하게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방편이 되어 주었다. 그때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이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축약본,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 같은 것들을 매일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 가서 책 한 권씩 읽고 집에 돌아오는 삶도 나쁘지 않다고 느꼈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그 소설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교과서 문학으로 떠나는 스토리 기행'이라는 테마로 소설 줄거리를 요약하고, 배경이 된 곳을 답사하는 형식으로 꾸며진 책이다.

박완서의 <나목>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교과서에 실린 것은 몰랐다. 내가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책이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두 권 모두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별로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은 라디오에 소개되는 사연들처럼 자연스럽고 소박한 맛은 있지만 그 이면에 '배운 작가'의 자의식이 느껴져서 싫었다. 물론 박완서 보다 한 술 더 뜨는 공지영도 있긴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서울이 배경이다. <나목>의 주인공 이경이 다녔던 미군PX는 미쓰코시 백화점이었다가 현재는 신세계 본점이다. 나는 2007년 부터 4년간 신세계 본점 바로 옆에 위치한 중앙우체국 6층에서 근무했는데 당시엔 매일 관광가는 기분으로 회사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서대문 뒤편의 달동네로 추정되는데 이곳도 나와 약간의 인연이 있다. 그 달동네 위쪽에 예전 사직사라 부르던 곳이 있었다. 우체국 공무원들의 숙사로 사용 되다가 후에 우체국공익재단이 인수하여 현재는 암환자 숙소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음으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금보라가 영희로 분하는 그 영화를 보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던 나는 대학 1학년 때 조세희의 작품집을 사서 읽었다. 사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외에는 다소 난해한 작품들이 많아 읽는 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서울 중림동으로 일제 시대 때부터 유명한 빈촌이었으며 현재는 성요셉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다 한다.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소개되어 있는데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작가가 훗날 <난쏘공>의 조세희 작가와 만난 일이 있다고 한다. 조세희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김중미 작가가 읽고 빈민운동에 투신하였다는 말을 듣고 "제가 몹쓸 짓을 하였네요"라고 말했다 한다. 자신의 작품이 오랜 기간 읽히고 공감 받는 사회 현실이 안타까웠던 것이리라.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 배경은 세운상가다. 세운상가에서 크래프트 어쿠스틱 기타를 사고 인터넷 보다 싸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악기는 인터넷 보다 오프라인이 쌌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다음 작품은 나에게 충격과 전율을 안겨줬던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이다. 작품의 배경은 세브란스 병원과 그 인근에 난립하던 포장마차로 짐작된다. <무진기행>을 필사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1990년대 초중반의 분위기가 작품의 배경과 함께 오롯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역사>는 동대문과 창신동 일대가 배경이라고 하는데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채만식의 <미스터 방>은 전광용의 <꺼삐딴 리>를 연상케 하는 소설이다. 채만식은 일제 말기에 깨끗한 이름을 더럽혔는데 이를 부끄러워 했다고 전해진다. 소설의 배경은 피난민들이 모여들던 현저동과 서촌 일대이다.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광주대단지 사태, 즉 1971년 8월 10일 현재 성남시 수정구 일대에서 벌어진 봉기사건이 배경이다. 작가 윤흥길은 1973년 성남 숭신여자중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사건 2년 뒤 부임한 터라 학생들의 얼굴이 어둡고 소심했다 한다. 그러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광주대단지사건을 겪은 청년을 우연히 만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뒤 학교를 그만 두고 소설을 썼는데 바로 이 작품이다.

한때 사랑했던 작가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가 뒤를 잇는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1990년대만 해도 지금과 같이 정비된 곳이 아니었다. 2000년 들어서 인천시가 대대적으로 손을 보아 지금과 같은 외형이 되었다. 월미도와 자유공원, 북성포구, 화도진 공원... 1990년대 초중반 까지 인천의 중심은 동인천이었고, 시위도 동인천 백화점 앞에서 벌어지던 시기였다. 그때의 추억이 아직도 생각 나 인천에 가면 꼭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한 바퀴 휘 돌아보지만 쇠락한 도시 이미지는 감출 수가 없어 아쉬울 뿐이다. 오정희는 박근혜 정부 최악의 블랙리스트 사태에 관여하여 스스로 자신의 명성을 흙탕물에 버린 작가이다.

다음 작품은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다. 이문구의 <관촌수필>과 더불어 가장 많이 사고, 많이 선물하고, 읽었던 작품이다.

부천에서 3년간 근무할 때 가끔 원미동을 가보았다. 부천 내에서도 1기 신도시인 신중동과 그 이후 건설된 상동 일대에 밀려 상대적으로 낙후된 있는 곳. 지금도 전철역이 멀고 단독/다가구 주택이 밀집해 있어 개발이 더딘 탓에 과거 모습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은 인천 만석동이다. 대학 다닐 때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봉사 동아리에서 매년 여름이면 만석동으로 빈활을 갔다. 주거환경이 낙후되고 철거 위협이 있는 곳으로 봉사활동을 가는 것이다. 당시 나는 등에 들통을 짊어지고 재래식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소독하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중학교 2학년 어름의 여자아이가 자기집 화장실을 안내한 뒤 매우 창피해 하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지막 작품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이다. 황석영 작품 중 유독 손이 안 가서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인데 서울역과 용산 일대가 배경이라고 한다. 기회가 되면 일독해봐야 겠다.

어쩌다 집어든 책인데 소설의 배경들이 대학시절 돌아다녔던 곳이거나 직장과 연관이 있는 곳이어서 꽤 재미있게 읽었다. 인천과 서울 뿐 아니라 다른 곳을 배경으로 한 2편이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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