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라 - 와세다 대학 탐험부 특명 프로젝트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강병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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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은이 다카노 히데유키는 와세다 대학교 탐험부 소속으로, 아프리카 콩고의 텔레호에 무벰베를 찾으러 간 경험을 이 책에 담았다. 무벰베는 네스호의 괴수처럼 목격자는 많지만 실제 존재가 증명된 적은 없는 환상의 괴수다.

다카노 히데유키는 아마추어 탐험가로서 그저 '가고 싶다',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사람들을 모집한 뒤,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 40일간 탐험 일정을 소화한다.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걸려 픽픽 쓰러졌고, 마을 주민의 농간으로 식량이 부족했으며, 추장과 촌장의 대립과 인습 때문에 수시로 탐험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콩고는 사회주의 공화국이므로 땅은 모두의 것이라는 조력자 아냐냐 박사의 주장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고릴라와 침팬지, 그리고 수달을 잡아먹고 부족한 식량과 싸우던 탐험대원들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벰베의 존재 증명은 실패한다. 하지만 일본으로 돌아온 대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탐험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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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을 쓴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의 최종학력이 고졸이라고 밝힌 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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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동아리'란 어떤 거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그곳에서 모두 정말 멋진 체험을 했나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졸업하고 몇 년, 아니 몇십 년이나 지나고도 동아리 친구들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당시의 추억을 즐겁게 얘기할 수 있겠어요? 대학의 '동창회'나 '동아리'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클럽 활동과는 완전히 다른, 뭔가 운명공동체 같은 게 느껴집니다. 거기서 공유한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청춘' 그 자체였다는 찬란함이 있습니다. '정말 부럽다!'고 계속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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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닌 대학은 전국에서 동아리가 가장 많은 학교였다. 학생 수 1만 8천명, 동아리연합회 소속 동아리가 150개 남짓. 과 내 소규모 동아리나 동호회 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수가 많았을 것이다.

새학기가 다가오면 각 동아리에서는 어떻게 하면 신입생들을 더 많이 모집할까 골몰했다. OT에 따라가서 친분과 지연을 활용해 피라미드 회원 모집하듯 하는 동아리가 있는가 하면, 먹으로 일필휘지 휘갈긴 모집 대자보를 성의없이 붙여대는 무도 동아리도 있었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온통 대자보가 휘날리던 그 시기의 학교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초중고 12년 간의 구속과 속박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갖게 된 '자유의지'로 선택한 최초의 모임인 동아리. 그곳에서의 강렬한 경험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무려 10년간 동아리라는 공간에서 웃고, 울고, 뒹굴었고 그 때 배운 세계관과 태도가 나의 나머지 인생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아리'란 어떤 거죠? 라는 미야베 미유키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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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학교입니다.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다면, 이미 등록금을 낸 값어치를 한 것입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0609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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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ㅣ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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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모큐멘터리 장르로 분류되는데, Mock과 Documentary의 합성어인 Mockumentary는 허구의 사건을 다큐멘터리처럼 만든 일종의 Fake Documentary다.

작품은 세스지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에 의해 2023년 소설 투고 사이트 '가쿠요무'에 34화 까지 투고된 작품으로, 회를 거듭할 수록 인기가 높아져 2023년 8월 단행본이 출간되었고, 2025년 8월에 영화판도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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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배경은 긴키 지방인데, 긴키라 함은 과거 수도권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현재는 오사카부, 교토부, 효고현, 나라현, 와카야마현의 2부 5현을 가리킨다고 한다.

내용은 상당히 난잡한데 오컬트 출판물 담당자 오자와(행방불명)와 그의 친구인 세스지의 증언과 회상, 그리고 여러가지 괴담 등이 대중 없이 제시된다. 빨간 옷을 입은 여자, 목이 꺾인 아이, 점프하는 여자, 그리고 산으로 가자고 꾀는 괴상한 사람들이 모두 한 지방으로 연결되는데 그곳이 바로 긴키이다.

그리고 이 개별적인 사건들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이름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수렴되는데, 마사루라는 장가 못간 지능 낮은 청년의 살인과 죽음, 그리고 그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세운 신사에서 기인한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마사루의 이름은 '마사라사마', '맛시로상' 등으로 바뀌고 그의 정체도 흰 원숭이 따위로 변경된다. 게다가 신흥종교 단체 등이 이러한 괴담을 교묘하게 바꾸어 포교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괴담이 현실과 이종교배되어 영향력이 증폭된다.

괴담은 현재의 사건과 얽혀들며 더욱 광범위하게 전파된다. 2000년에 아키라라는 아이가 맛시로상 놀이 때문에 목메달려 죽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어머니가 신흥종교에 빠져들면서 빨간 여자 귀신까지 등장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로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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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나름 다큐멘터리의 외양을 갖추기 위해 그림자료, 투고문, 흑백 사진 따위를 곁들어 놓았는데 상당히 난잡하다. 2024년 <이 호러가 대단하다> 국내편 1위를 차지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0433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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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 - 모르는 영역
권여선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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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영역 - 권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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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덕이 딸 다영에게 전화하니 '도자 비엔날레 때문에 여주에 있다'고 한다. 명덕은 잠깐 들러 밥을 사겠다고 했다. 다영은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며 명덕의 갑작스런 방문을 시쁘게 여겼다.

둘의 대화는 자꾸 엇나간다. 명덕이 '팀원 모두 고기 한 번 사주고 싶다' 하니, '그렇게 하는 게 괜히 멋있어 보일 것 같아 그러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식당 주인이 밥값 더 받은 것을 두고 명덕이 '한 번이니까 괜찮다, 그냥 넘어가자'고 하니, 다영이 '왜 해도 됩니까? 한 번은' 이라고 따져 묻는다. 그 질문은 어쩐지 전처와의 일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언젠가 낮달이 찍힌 걸 전처는 UFO라고 했는데 다영은 그게 낮달이었을 거라고 했다. 명덕은 그건 모르는 영역이라고 했었다. 다영이는 이제 명덕에게 모르는 영역이다.

엇나간 둘의 대화가 빚어낸 어색한 분위기가 저녁까지 이어졌다. 명덕은 다영의 날 선 태도가 섭섭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다영은 그것도 모르고 먹을거리를 사왔다.

다음 날 명덕이 출발하려 할 때 다영이 낮달 좀 보라고 말한다. 명덕이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다영이 한바탕 지청구를 쏟아낸다. 명덕은 왜 낮달은 아침달 낮달 저녁달이 아니고 죄다 낮달인가 생각하다, 해 입장에서는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니 낮달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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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갱이의 맛 - 권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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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고 삼 년 만에 만난 그는 성대낭종 수술 때문에 한동안 말을 못했다고 했다. 나는 어쩐지 '말 못하는 시기'를 건너온 그가 달라진 것 같아 그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고 했다.

그는 지금 강의도 하지 않고, 박사 논문을 포기했으며, 사서 준비를 한다고 했다. 말을 '하지 못해서' 겪는 불편함이 아니라 말을 '하지 말아야' 해서 겪는 불편함을 견디는 과정에서 예민한 감각이 생겨났다고 했다. 타인의 표정에서 수많은 스펙트럼을 구분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신 자폐감이 엄습해 왔다. 눈과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그렇게 감각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통해서' 나에게 알려주지 못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화를 배웠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나만의 말'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말을 하는 시스템이 망가지고 나니 자신 속의 자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전갱이를 먹고 나서 천천히 입꼬리를 늘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나는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나눈 첫 대화' 였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 역시 나만의 말들의 목록을 가지게 되었고 때때로 묵언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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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특집 - 김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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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한 때 김영미 선배의 자취방에서 두어 달 신세 진 적이 있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김영미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다. 짜리몽땅한 몸매의 그녀는 조심성 없이 자위 했고, 겨털 뽑기 같은 내밀한 일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원어민 강사 윌리엄과의 관계도 과장하기 일쑤였던 그녀를 과 사람들은 뒤에서 놀려댔다.

그런 그녀가 집안이 어려워지고 자신이 왕따라는 사실을 깨닫자 휴학한 뒤 종적을 감추었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남도 산속 빈집에서 무연고자로 발견 된다. 그녀는 자신을 발견한 시사고발 프로그램 기자에게 '대학 동료들이 자신의 소식을 들으면 찾으러 올 것' 이라 말했다. 하지만 다들 그녀를 외면했고, 선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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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지 포크 - 김봉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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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와 헤어진 뒤로도 이 년 넘게 함께 살았다. 지금은 교토조형예술대학에 적을 두고 있지만, 역시 그의 집은 나의 집이다. 그런데 올해 초 그에게 애인이 생겼다.

'나'는 에하라 교수의 창작 수업을 신청하고 이번 학기 목표를 책을 만든다, 소설을 읽고 쓴다, 라고 정했다. 에하라 교수와는 말이 잘 통했다.

7월 첫 월요일, 에하라 교수의 방에 갔다가 교수의 외설스러운 사진이 문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발기한 성기를 내놓은 채 양각으로 찍힌 사진, 항문까지 드러내놓은 외설스러운 사진. 누군가 그를 조롱할 목적으로 붙여 놓은 사진이었고, '나'는 그 사진들을 모두 떼어냈다. 얼마 뒤 '나'는 그와 자게 되고, '안온'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와 헤어진 뒤 <컬리지 포크>라는 제목의 소설을 과제로 제출할 것이고, 에하라 교수는 가을이 시작되기 전에 pass or fail로 답신해올 것이었다. 포스트잇에 나는 모르겠다. 나는 알고 싶다. 두 줄 단순하고 자명한 문장을 썼다. 창문을 닫고 눈을 감자 그와 함께했던 봄과 여름이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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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과 마음 -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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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白石의 본명)은 기차를 타고 가면서 자신이 번역한 <이사콥스키 시집>을 다시 보고 있다. 1949년 초판, 1954년 재출간. 당은 이 시집을 다시 출간한다고 했다. 번역자는 다른 사람. 원고를 살펴보니 기행이 본래 번역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저 기행의 이름을 지워 없애고 싶은 것 뿐이리라.

작가동맹은 1959년 1월 1일부터 기행에게 삼수군 관평리 관평협동조합으로 출근하라고 했다. 찾아가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막막해 하는 기행 앞에 이십대 초반의 젊은 여자가 싹싹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인민학교 교원이고, 말하지 않아도 왜 삼수까지 왔는지 알만 하다고 했다. 그리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며 시를 낭송해보였다.

삼수에서도 조금 떨어진 독골에서 모진 추위를 견디며 지내던 기행은 평양의 친구 준에게 자살한 백계 러시아인들이야 말로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우울한 편지를 보낸다.

사무실에서 기행은 '가즈랑집', '祭古夜', '女僧', '伊豆國太街道', '銃營'을 쓰고 또 썼다. 예전에 썼던 시들을 쓰다가, '館坪의 羊'을 썼다. 한 번도 쓴 일이 없는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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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기원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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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에 군함이 들어오고 영국 수병이 가지고 놀던 공이 한 소년에게 굴러갔다. 소년은 빠른 속도로 공 다루는 기술을 배웠고 수병들은 공을 선물로 주고 떠났다.

훗날 굿맨 앤드 박 볼 컴퍼니의 박흥수는 어떤 사진 앞에서 '토마스 굿맨R'이라는 상표가 씌여진 공을 들고 찍은 겉늙은 청년을 가르키며 자신의 증조부임에 틀림없다고 단언했다.

토마스 굿맨은 1872년 남아도는 소가죽과 천연고무를 이용해 현재와 유사한 축구공을 만들어냈다. 유명인사가 되어 돈도 많이 번 굿맨은 그러나 정치에 뛰어들어 재산을 탕진했고, 앤더슨이란 이름의 기자가 그의 공장에서 자행되는 참혹한 아동노동 현장을 고발하는 통해 파국을 맞고 만다.

그 앤더슨이 상선에 승선해 향한 곳이 제물포였다. 그리고 공과 혼연일체가 된 박흥수의 증조부를 발견하여 사진을 찍게 된다. 물론 축구공의 제작도면이 흘러들어간 경위라든가 여러가지 다른 버전의 이야기도 있는데, 어쨌든 박흥수는 자신의 자동화된 공장으로 안내하며 최고의 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자부심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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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 - 최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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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의 싸움에서 끝내 패배하리라는 결말을 예감한 그는 자신의 대표작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를 생각한다. 그녀와 헤어지기 위해 그녀를 만나러 가야 하지만 몸을 움직이기 어렵다.

그는 오랫동안 의자에 집착했다. 자신의 몸을 얹을 수 있는 우주 하나를 창조하는 기분이었다. 4년 전 에디슨이 사형수를 위한 전기의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업 연수가 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무와 돌과 쇠 같은 고전재료에 흥미를 잃고 에이포용지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 죽는 순간의 고독을 줄이기 위해 의자 두개를 붙여서 제작했다. 온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만 상대를 전부 다 볼 수 있는 건 아닌 자세로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

죽음은 기정사실이다. 암세포가 뇌나 뼈나 림프선 같은 치료가 곤란한 부위에 전이되는 것이 두렵다. 몸이 감옥이라는 사실, 무엇을 해도 이 몸 안에서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프게 깨달아진다.

앉을 수 없는 의자, 그것은 의자의 유령이다. 기능할 수 없는 의자를 만듦으로써 의자에게서 생명을 빼앗았다. 그때부터 그에게서도 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그는 다음 생의 첫 장면으로 동반을 꿈꾸었음을 스스로 고백한다. 이인용 의자의 수수께끼가 이제야 풀린다. 오늘 아침 그의 몸을 꼼짝 못하게 쓰러뜨린 것은 평생 자신의 삶을 사보타주했다는 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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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디에서 -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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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레인과의 짧은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나'는 아일랜드로 무턱대고 비행기를 타고 갔다. 일레인과 이야기가 잘 되지 않아 '나'는 브라질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 화산 폭발로 더블린 공항이 폐쇄되었다. 스물여섯 대학 중퇴생으로 엄마에게 얹혀 살고 있던 '나'는 엄마와 누나가 내 대책없음에 넌덜머리를 내 카드를 정지시키는 바람에 아치디라는 마을의 사과 과수원에서 일하는 신세가 된다.

그곳에서 하민을 만났다. 하민은 키가 크고 무뚝뚝했다. 그녀는 말을 돌봤다.

영어 말하기 모임 따위에서 하민과 마주치는 일이 잦아지자 점차 말을 트게 되었고 어느 정도 내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하민은 어떤 간호사 이야기를 해주었다. 손이 빠르고 실수도 거의 하지 않아 업무 평가를 좋게 받던 간호사. 하지만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감정적인 요구를 하면 등을 돌려버리던 간호사. 그 간호사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삼 교대를 하고 많은 일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마음 속에서 작은 블록 하나가 빠져 버렸다고 했다. 환자와 감정을 섞지 않게 되고, 환자들 앞에서 벽이 되어버린 간호사. 하민은 그 간호사가 자신이었다고 고백했다. 하민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선배가 자신을 간호사로 보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지막 끈이 끊어져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아치디에서 헤어진 뒤로 '나'와 하민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때로 한국인을 보거나 한국 드라마 방송에서 하민이 노트에 쓰곤 하던 그림 같은 글자를 볼 때, '나'는 내가 이제 어떤 감정의 짓눌림도 없이 하민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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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부_이후 - 강영숙

9월의 산동성 제남 공항은 몸시 더웠다. 정 대리가 이곳에서 실종되자 회사에서는 진석을 출장 보내 그를 찾아 오라고 했다. 현지 보험업체는 열악했고, 이틀이 지나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 아닌지 걱정 되었다.

정 대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정 대리는 과장인 진석이 성공했다면서 자기는 회사만 가면 겁이 나고 회사 사람들이 좀 무섭다고 했다. 술 먹고 같은 집에서 자고, 피자를 시켜 먹고 했지만 마음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런 건 불필요한 일이고 소통의 피로만 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진석과 정 대리가 친하다고 생각했다.

곡부는 공자의 생로병사와 연관된 도시였다. 공자의 묘를 돌아보고 온 그 밤에 진석은 정 대리의 말을 떠올렸다. "당신들은 그렇게 힘들게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뭘 하는지 알아야 해요. 우리를 몰아세우는 거 말고 뭘 하나요. 겨우 먹고 죽지 않을 만큼의 급여를 주면서 매일 우리를 몰아붙여요", "난 그냥 여기 내던져진 것 같아요 과장님".

정 대리는 끝내 찾지 못했다. 진석은 정 대리가 길을 찾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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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작품들 중 권여선의 <모르는 영역>이 단연 돋보인다. 해 입장에서는 낮에만 보이는 낮달, 그리고 '모르는 영역'을 부녀 관계에 투영하여 매끄럽게 써냈다. <전갱이의 맛>도 좋다. '자신만의 말'을 하고 싶다면 침묵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진부한 테제이지만 권여선이 다루니 괜찮은 소설이 되었다.

<연말 특집>은 어딘지 모르게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를 연상 시킨다. 익숙한 도덕적 결말이 편안하면서도 아쉽다.

<컬리지 포크>는 불편한 소설이다. 좋은 소설은 불편하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인데 <컬리지 포크>는 불편하기만 하다.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누군가의 성기와 항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사진을 먼저 본 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일반적인가? 그것이 이성애든 동성애든 말이다. 잘 모르는 영역이다.

<그 밤과 마음>은 백석이 죽음으로 경도되던 한 시기의 절망과 좌절, 그리고 '관평의 양'이라는 시를 쓰게 된 사연을 음울한 필치로 그려낸 소설이다. 기존의 김연수 소설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공의 기원>은 재기발랄한 소설이지만 그에 걸맞는 유머와 짜임새가 뒷받침 되지 않다 보니 밋밋한 느낌만 준다.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의 작가 최옥정은 이 소설을 마무리 한 뒤 영면에 들어갔다.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의 이 소설은 삶의 마지막 순간의 고통과 공포, 그리고 체념과 수용에서 오는 삶에 대한 자각 등이 담겨 있다.

<아치디에서>는 최은영표 소설이다. <몫>의 또 다른 버전을 읽는 기분.

<곡부_이후>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과장급에게 경영진을 대하듯 해대는 정 대리의 절망도 잘 와닿지 않고, 정 대리의 실종(또는 죽음) 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전망의 모색으로 치환하는 과정도 억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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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방동네 사람들 ㅣ 한국시나리오걸작선 42
배창호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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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방동네에 해가 조용히 솟아오르면, 공중변소 앞에 장사진을 치고 줄을 선 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과 함께 아침이 시작된다.

이곳에 언제나 한쪽 손에 '검은장갑'을 낀 아낙 명숙이 열 살 난 아들 준일, 그리고 정식 혼례를 치르진 않았지만 사실상 남편이라 생각하고 함께 지내는 태섭이 살고 있다. 태섭은 명숙의 두 번째 남편이 되는 셈이다.

명숙은 살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썼지만 태섭은 도박으로 허송세월하며 '한달만' 타령을 했다. '한달만' 지나면 정식 혼례도 치르고 돈도 많이 벌어온다는 것이다. 명숙은 속이 타들어갔지만 꾹 참고 가게를 얻어 삶을 꾸려가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택시 기사가 명숙과 눈이 마주친다. 기사는 명숙을 알은 체 한다. 그는 주석이었다.

주석은 명숙의 첫번째 남편이었고, 준일의 친부였다. 주석은 배운 것 없이 가난하게 살다 소매치기로 호를 날렸다. 경찰에 첫번째로 달려갔을 때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 명숙은 번번히 감옥에 가는 주석을 기다리며 하세월할 수 없어 그와 헤어졌다. 그리고 검은 장갑은 그와 살 때 준일이를 홀로 키우다 뜨거운 물을 쏟아 생긴 상처를 감추기 위해서 꼈던 것이다.

준일이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엇나가다 급기야 도둑질을 일삼기 시작한다. 주석은 준일이를 자기가 제대로 키우겠다면서 명숙이도 다시 돌아와주었으면 한다. 한편 태섭 역시 명숙이 없인 못 산다며 속울음을 운다.

준일에게 친부의 존재를 알린 명숙이 주석을 떠나 새 삶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태섭이 명숙에게 '자신이 과거에 누구를 죽인 뒤 도망자의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한 뒤 경찰에 자수한다. 한달 뒤면 공소시효가 만료되는데도 불구하고 태섭은 과거 자신이 죽인 자의 아내가 자신을 알아보고도 용서하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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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은 이동철의 소설이다. 이동철은 필명인데 본명은 이철용이다. 그는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13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후엔 신한국당 지역구위원장을 지낸 다소 오락가락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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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배창호가 원작을 시나리오로 각색하고 연출했는데 김보연(검은장갑), 안성기(주석), 김희라(태석), 공목사(송재호) 등 상당히 화려한 배우들이 함께했다. 데뷔작인데도 1982년 대종상, 여우주연상(김보연), 남우주연상(김희라), 특별상 신인부문 감독(배창호)을 휩쓸어 상 복도 적지 않았다.

배창호는 이후 고래사냥(1984),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깊고 푸른 밤(1985),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 시대를 풍미한 작품들을 연출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0320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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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퍼링 룸 ㅣ 스토리콜렉터 80
딘 쿤츠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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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교사상을 받을 정도로 능력과 열정을 인정받은 교사 코라가 다량의 휘발유를 실은 차량을 호텔로 돌진시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다. 동료들과 이웃은 그녀가 그런 짓을 벌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했다.

마을 보안관 루서 틸먼은 코라의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오랫동안 써 온 소설을 발견하고 수사에 참고하기 위해 집으로 옮겨 놓는다. 한편, 그날 밤 코라의 집에 누군가 불을 질러 증거들이 깡그리 사라져버린다.

겨우 건진 소설을 조사하던 보안관은 그녀가 발작적으로 적어내려간 문장들을 통해 그녀가 최근 교사상을 받았던 장소에서 무언가 일이 있었음을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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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노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인류의 뇌를 통제하고자 하는 소시오패스 집단은 매년 위험인물 8천 4백명만 제거하면 평화로운 세계가 유지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유일한 골칫덩이는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전직 FBI 요원 제인 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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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서 틸먼과 제인 호크는 각자의 사건을 따라 가다 '아이언 퍼니스'라는 곳에서 만나게 된다. 둘은 의기투합하여 사건 해결을 함께 하기로 하는데, 문제는 이 마을 주민 전체가 소시오패스 집단에게 뇌를 지배당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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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딘 쿤츠는 초기에는 여러 필명으로 SF소설과 스릴러를 발표했으나 1986년 부터 본명인 '딘 쿤츠'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간해오고 있다.

딘 쿤츠는 종종 스티븐 킹과 비교되곤 하는데 플레이보이지에서 "스티븐 킹이 소설계의 롤링 스톤스라면, 딘 쿤츠는 비틀스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두 작가 모두 공포와 스릴러 계통 소설을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점, 딘 쿤츠가 공화당 지지자인데 반해 스티븐 킹이 민주당 지지자라는 점 등 대중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점을 잡지가 포착하여 언급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딘 쿤츠의 소설은 스티븐 킹의 그것에 한참 못 미친다. 원만한 플롯과 안전한 전개, 예측 가능한 복선과 튀지 않는 결말 등이 진부한 느낌을 주는데 <위스퍼링 룸>도 <맨츄리안 캔디데이트>의 세뇌("입후보자(만주 Manchu)놀이 하지")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미래 범죄 가능성 측정 아이디어를 적당히 버무려 만든 그저그런 서스펜스 소설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0193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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