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 - 모르는 영역
권여선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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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영역 - 권여선

명덕이 딸 다영에게 전화하니 '도자 비엔날레 때문에 여주에 있다'고 한다. 명덕은 잠깐 들러 밥을 사겠다고 했다. 다영은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며 명덕의 갑작스런 방문을 시쁘게 여겼다.

둘의 대화는 자꾸 엇나간다. 명덕이 '팀원 모두 고기 한 번 사주고 싶다' 하니, '그렇게 하는 게 괜히 멋있어 보일 것 같아 그러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식당 주인이 밥값 더 받은 것을 두고 명덕이 '한 번이니까 괜찮다, 그냥 넘어가자'고 하니, 다영이 '왜 해도 됩니까? 한 번은' 이라고 따져 묻는다. 그 질문은 어쩐지 전처와의 일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언젠가 낮달이 찍힌 걸 전처는 UFO라고 했는데 다영은 그게 낮달이었을 거라고 했다. 명덕은 그건 모르는 영역이라고 했었다. 다영이는 이제 명덕에게 모르는 영역이다.

엇나간 둘의 대화가 빚어낸 어색한 분위기가 저녁까지 이어졌다. 명덕은 다영의 날 선 태도가 섭섭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다영은 그것도 모르고 먹을거리를 사왔다.

다음 날 명덕이 출발하려 할 때 다영이 낮달 좀 보라고 말한다. 명덕이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다영이 한바탕 지청구를 쏟아낸다. 명덕은 왜 낮달은 아침달 낮달 저녁달이 아니고 죄다 낮달인가 생각하다, 해 입장에서는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니 낮달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전갱이의 맛 - 권여선

이혼하고 삼 년 만에 만난 그는 성대낭종 수술 때문에 한동안 말을 못했다고 했다. 나는 어쩐지 '말 못하는 시기'를 건너온 그가 달라진 것 같아 그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고 했다.

그는 지금 강의도 하지 않고, 박사 논문을 포기했으며, 사서 준비를 한다고 했다. 말을 '하지 못해서' 겪는 불편함이 아니라 말을 '하지 말아야' 해서 겪는 불편함을 견디는 과정에서 예민한 감각이 생겨났다고 했다. 타인의 표정에서 수많은 스펙트럼을 구분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신 자폐감이 엄습해 왔다. 눈과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그렇게 감각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통해서' 나에게 알려주지 못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화를 배웠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나만의 말'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말을 하는 시스템이 망가지고 나니 자신 속의 자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전갱이를 먹고 나서 천천히 입꼬리를 늘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나는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나눈 첫 대화' 였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 역시 나만의 말들의 목록을 가지게 되었고 때때로 묵언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연말 특집 - 김미월

선은 한 때 김영미 선배의 자취방에서 두어 달 신세 진 적이 있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김영미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다. 짜리몽땅한 몸매의 그녀는 조심성 없이 자위 했고, 겨털 뽑기 같은 내밀한 일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원어민 강사 윌리엄과의 관계도 과장하기 일쑤였던 그녀를 과 사람들은 뒤에서 놀려댔다.

그런 그녀가 집안이 어려워지고 자신이 왕따라는 사실을 깨닫자 휴학한 뒤 종적을 감추었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남도 산속 빈집에서 무연고자로 발견 된다. 그녀는 자신을 발견한 시사고발 프로그램 기자에게 '대학 동료들이 자신의 소식을 들으면 찾으러 올 것' 이라 말했다. 하지만 다들 그녀를 외면했고, 선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컬리지 포크 - 김봉곤

'나'는 그와 헤어진 뒤로도 이 년 넘게 함께 살았다. 지금은 교토조형예술대학에 적을 두고 있지만, 역시 그의 집은 나의 집이다. 그런데 올해 초 그에게 애인이 생겼다.

'나'는 에하라 교수의 창작 수업을 신청하고 이번 학기 목표를 책을 만든다, 소설을 읽고 쓴다, 라고 정했다. 에하라 교수와는 말이 잘 통했다.

7월 첫 월요일, 에하라 교수의 방에 갔다가 교수의 외설스러운 사진이 문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발기한 성기를 내놓은 채 양각으로 찍힌 사진, 항문까지 드러내놓은 외설스러운 사진. 누군가 그를 조롱할 목적으로 붙여 놓은 사진이었고, '나'는 그 사진들을 모두 떼어냈다. 얼마 뒤 '나'는 그와 자게 되고, '안온'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와 헤어진 뒤 <컬리지 포크>라는 제목의 소설을 과제로 제출할 것이고, 에하라 교수는 가을이 시작되기 전에 pass or fail로 답신해올 것이었다. 포스트잇에 나는 모르겠다. 나는 알고 싶다. 두 줄 단순하고 자명한 문장을 썼다. 창문을 닫고 눈을 감자 그와 함께했던 봄과 여름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밤과 마음 - 김연수

기행(白石의 본명)은 기차를 타고 가면서 자신이 번역한 <이사콥스키 시집>을 다시 보고 있다. 1949년 초판, 1954년 재출간. 당은 이 시집을 다시 출간한다고 했다. 번역자는 다른 사람. 원고를 살펴보니 기행이 본래 번역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저 기행의 이름을 지워 없애고 싶은 것 뿐이리라.

작가동맹은 1959년 1월 1일부터 기행에게 삼수군 관평리 관평협동조합으로 출근하라고 했다. 찾아가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막막해 하는 기행 앞에 이십대 초반의 젊은 여자가 싹싹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인민학교 교원이고, 말하지 않아도 왜 삼수까지 왔는지 알만 하다고 했다. 그리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며 시를 낭송해보였다.

삼수에서도 조금 떨어진 독골에서 모진 추위를 견디며 지내던 기행은 평양의 친구 준에게 자살한 백계 러시아인들이야 말로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우울한 편지를 보낸다.

사무실에서 기행은 '가즈랑집', '祭古夜', '女僧', '伊豆國太街道', '銃營'을 쓰고 또 썼다. 예전에 썼던 시들을 쓰다가, '館坪의 羊'을 썼다. 한 번도 쓴 일이 없는 시였다.

공의 기원 - 김희선

제물포에 군함이 들어오고 영국 수병이 가지고 놀던 공이 한 소년에게 굴러갔다. 소년은 빠른 속도로 공 다루는 기술을 배웠고 수병들은 공을 선물로 주고 떠났다.

훗날 굿맨 앤드 박 볼 컴퍼니의 박흥수는 어떤 사진 앞에서 '토마스 굿맨R'이라는 상표가 씌여진 공을 들고 찍은 겉늙은 청년을 가르키며 자신의 증조부임에 틀림없다고 단언했다.

토마스 굿맨은 1872년 남아도는 소가죽과 천연고무를 이용해 현재와 유사한 축구공을 만들어냈다. 유명인사가 되어 돈도 많이 번 굿맨은 그러나 정치에 뛰어들어 재산을 탕진했고, 앤더슨이란 이름의 기자가 그의 공장에서 자행되는 참혹한 아동노동 현장을 고발하는 통해 파국을 맞고 만다.

그 앤더슨이 상선에 승선해 향한 곳이 제물포였다. 그리고 공과 혼연일체가 된 박흥수의 증조부를 발견하여 사진을 찍게 된다. 물론 축구공의 제작도면이 흘러들어간 경위라든가 여러가지 다른 버전의 이야기도 있는데, 어쨌든 박흥수는 자신의 자동화된 공장으로 안내하며 최고의 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자부심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 - 최옥정

암과의 싸움에서 끝내 패배하리라는 결말을 예감한 그는 자신의 대표작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를 생각한다. 그녀와 헤어지기 위해 그녀를 만나러 가야 하지만 몸을 움직이기 어렵다.

그는 오랫동안 의자에 집착했다. 자신의 몸을 얹을 수 있는 우주 하나를 창조하는 기분이었다. 4년 전 에디슨이 사형수를 위한 전기의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업 연수가 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무와 돌과 쇠 같은 고전재료에 흥미를 잃고 에이포용지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 죽는 순간의 고독을 줄이기 위해 의자 두개를 붙여서 제작했다. 온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만 상대를 전부 다 볼 수 있는 건 아닌 자세로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

죽음은 기정사실이다. 암세포가 뇌나 뼈나 림프선 같은 치료가 곤란한 부위에 전이되는 것이 두렵다. 몸이 감옥이라는 사실, 무엇을 해도 이 몸 안에서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프게 깨달아진다.

앉을 수 없는 의자, 그것은 의자의 유령이다. 기능할 수 없는 의자를 만듦으로써 의자에게서 생명을 빼앗았다. 그때부터 그에게서도 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그는 다음 생의 첫 장면으로 동반을 꿈꾸었음을 스스로 고백한다. 이인용 의자의 수수께끼가 이제야 풀린다. 오늘 아침 그의 몸을 꼼짝 못하게 쓰러뜨린 것은 평생 자신의 삶을 사보타주했다는 자각이었다.

아치디에서 - 최은영

일레인과의 짧은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나'는 아일랜드로 무턱대고 비행기를 타고 갔다. 일레인과 이야기가 잘 되지 않아 '나'는 브라질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 화산 폭발로 더블린 공항이 폐쇄되었다. 스물여섯 대학 중퇴생으로 엄마에게 얹혀 살고 있던 '나'는 엄마와 누나가 내 대책없음에 넌덜머리를 내 카드를 정지시키는 바람에 아치디라는 마을의 사과 과수원에서 일하는 신세가 된다.

그곳에서 하민을 만났다. 하민은 키가 크고 무뚝뚝했다. 그녀는 말을 돌봤다.

영어 말하기 모임 따위에서 하민과 마주치는 일이 잦아지자 점차 말을 트게 되었고 어느 정도 내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하민은 어떤 간호사 이야기를 해주었다. 손이 빠르고 실수도 거의 하지 않아 업무 평가를 좋게 받던 간호사. 하지만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감정적인 요구를 하면 등을 돌려버리던 간호사. 그 간호사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삼 교대를 하고 많은 일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마음 속에서 작은 블록 하나가 빠져 버렸다고 했다. 환자와 감정을 섞지 않게 되고, 환자들 앞에서 벽이 되어버린 간호사. 하민은 그 간호사가 자신이었다고 고백했다. 하민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선배가 자신을 간호사로 보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지막 끈이 끊어져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아치디에서 헤어진 뒤로 '나'와 하민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때로 한국인을 보거나 한국 드라마 방송에서 하민이 노트에 쓰곤 하던 그림 같은 글자를 볼 때, '나'는 내가 이제 어떤 감정의 짓눌림도 없이 하민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곡부_이후 - 강영숙

9월의 산동성 제남 공항은 몸시 더웠다. 정 대리가 이곳에서 실종되자 회사에서는 진석을 출장 보내 그를 찾아 오라고 했다. 현지 보험업체는 열악했고, 이틀이 지나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 아닌지 걱정 되었다.

정 대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정 대리는 과장인 진석이 성공했다면서 자기는 회사만 가면 겁이 나고 회사 사람들이 좀 무섭다고 했다. 술 먹고 같은 집에서 자고, 피자를 시켜 먹고 했지만 마음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런 건 불필요한 일이고 소통의 피로만 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진석과 정 대리가 친하다고 생각했다.

곡부는 공자의 생로병사와 연관된 도시였다. 공자의 묘를 돌아보고 온 그 밤에 진석은 정 대리의 말을 떠올렸다. "당신들은 그렇게 힘들게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뭘 하는지 알아야 해요. 우리를 몰아세우는 거 말고 뭘 하나요. 겨우 먹고 죽지 않을 만큼의 급여를 주면서 매일 우리를 몰아붙여요", "난 그냥 여기 내던져진 것 같아요 과장님".

정 대리는 끝내 찾지 못했다. 진석은 정 대리가 길을 찾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수록된 작품들 중 권여선의 <모르는 영역>이 단연 돋보인다. 해 입장에서는 낮에만 보이는 낮달, 그리고 '모르는 영역'을 부녀 관계에 투영하여 매끄럽게 써냈다. <전갱이의 맛>도 좋다. '자신만의 말'을 하고 싶다면 침묵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진부한 테제이지만 권여선이 다루니 괜찮은 소설이 되었다.

<연말 특집>은 어딘지 모르게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를 연상 시킨다. 익숙한 도덕적 결말이 편안하면서도 아쉽다.

<컬리지 포크>는 불편한 소설이다. 좋은 소설은 불편하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인데 <컬리지 포크>는 불편하기만 하다.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누군가의 성기와 항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사진을 먼저 본 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일반적인가? 그것이 이성애든 동성애든 말이다. 잘 모르는 영역이다.

<그 밤과 마음>은 백석이 죽음으로 경도되던 한 시기의 절망과 좌절, 그리고 '관평의 양'이라는 시를 쓰게 된 사연을 음울한 필치로 그려낸 소설이다. 기존의 김연수 소설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공의 기원>은 재기발랄한 소설이지만 그에 걸맞는 유머와 짜임새가 뒷받침 되지 않다 보니 밋밋한 느낌만 준다.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의 작가 최옥정은 이 소설을 마무리 한 뒤 영면에 들어갔다.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의 이 소설은 삶의 마지막 순간의 고통과 공포, 그리고 체념과 수용에서 오는 삶에 대한 자각 등이 담겨 있다.

<아치디에서>는 최은영표 소설이다. <몫>의 또 다른 버전을 읽는 기분.

<곡부_이후>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과장급에게 경영진을 대하듯 해대는 정 대리의 절망도 잘 와닿지 않고, 정 대리의 실종(또는 죽음) 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전망의 모색으로 치환하는 과정도 억지스럽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0430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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