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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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신이여,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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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신이 있는데 어째서 '당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우연히 물려받은 신앙'만이 옳다고 주장하는가.

기독교인들은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성경> 자체를 근거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가 죽은 뒤 최소 35~40년 후에 쓰이기 시작했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수백명이 목격했고, 9.11 테러 공격이 일어난 지 불과 20여 년이 흘렀을 뿐인데도 사람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끊임 없이 변화 해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호해져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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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여러 가지 복음서의 조합 버전이 존재한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인정하는 복음서의 종류도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복음서는 진짜이고, 어떤 복음서는 가짜인가? 그 기준을 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또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의 유사한 버전들이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들이 <성경>에 녹아들어간 이야기가 아니라 오리지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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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선한 책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노아 이야기는 좀 예외인가? 하느님은 노아가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그를 빼고 남자, 여자, 아이, 그리고 모든 종류의 동물을 한 쌍만 빼고 모조리 지구상에서 멸절시켜버린다.

욥은 어떤가. 하느님과 사탄이 내기를 한다. 하느님은 악마가 욥을 시험하는 것을 승인했고, 악마는 욥의 소와 양, 낙타와 하인을 빼앗고 10명의 자식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집도 없애버렸지만 욥은 하느님을 탓하지 않고 하느님은 내기에서 이긴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탄에게 더 시험해 봐도 좋다고 한다. 사탄이 욥의 온 몸을 종기로 뒤덮었지만 욥은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결국 하느님은 욥을 칭찬하고 더 많은 재산을 주고 그의 아내는 더 많은 아이를 낳았다. 어째 이야기가 이상하지 않나? 사탄 보다 도리어 하느님이 마조히스트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 같지 않나?

아브라함과 이삭 사건은 어떤가. 아들을 번제 제물로 바치라고 하자 아버지가 아들을 주저 없이 죽여 없애려 한다. 천사가 그 직전에 막긴 하지만 말이다.

<민수기>는 더 심하다. 하느님이 가나안 땅을 주었으니 거기는 너희 땅이니 마음대로 처결하라 이르고(전쟁), <신명기>에서는 햇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은 전멸시키라고 이른다(인종청소) <사무엘상>에서는 아말렉을 치고 재산을 모조리 뺏고 남자,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 떼와 양 떼, 낙타와 나귀를 모조리 죽이라고 한다.(인종청소) <민수기> 또 다른 구절은 사내와 남자와 동침한 여자를 모조리 죽이라고 하면서도 남자와 동침한 처녀는 너희를 위해 살려 두라고 한다.(인종청소와 전쟁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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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해지기 위한 경전으로 <성경>을 믿기에는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한 구석이 많다. 게다가 <성서>는 복수와 질투가 일상적으로 다루어진다. <레위기>와 <신명기>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신을 철저히 당부하고 있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용서와 화해의 구절도 있다. 그럼 어떤 것은 진짜고, 어떤 것은 가짜인가? 같은 <성서> 안에서도 어떤 것은 글자 그대로 따르고, 어떤 것은 상징인가? 상징인지 아닌지 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어쩌면 도덕률이라는 것은 인류 전체가 생존하고 진화하는 데 유리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바뀌는 것은 아닐까? <성서>가 쓰여졌던 바로 그 시기에는 일반적인 도덕률에 부합했을 지 모르지만 지금 읽어보면 섬뜩한 전쟁충동, 인종청소, 성폭력을 충동질하는 구절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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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진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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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페일리 목사가 1802년 저서 <자연신학>에서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라고 권한다. 어느 날 당신이 길을 걷다가 무언가를 발로 찼는데 무엇인지 봤더니 바로 시계였다. 시계는 톱니바퀴, 스프링, 섬세한 작은 나사들로 이루어져 시간을 알려주는 복잡한 기계다. 이러한 시계가 자연 발생했을리가 있는가? 그러므로 분명 제작자가 있었을 것이다. 이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세계는 신이 제작한 거대한 체계이다. Q.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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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충분히 오랫동안 진화한다면 이보다 더한 복잡성도 자연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눈이 물체를 보는 방식이 과연 태엽으로 돌아가는 시계 보다 덜 복잡하다고 생각하는가? 얼핏 설명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들도 한 단계 한 단계 진화해 온 과정을 살펴보면 납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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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설마 그럴 리가!' 라는 태도로 불가지론이나 다름 없는 신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과학으로 부터 용기를 얻어 진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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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케냐 나이로비가 영국령이었던 1941년에 태어났다. 공전의 히트작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작가는 진화생물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데, <신, 만들어진 위험>에서 자신의 무신론적 견해를 차분한 어조로 논증해 나간다. 1부는 종교 자체의 검증을 통해 신이 과연 존재하는지 묻고, 2부에서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정교하게 조직되어 왔음을 논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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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리처드 도킨스가 간과한 것이 있다. 그들은 '믿는다'는 점이다. 이치에 맞고 진실된 것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즉 부조리하니까 그들은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믿는' 것일까?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최정점에 있는 목사들은 '믿지도 않는'다. 왜냐면 '신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헌금을 거둬 들여 치부하고, 교육비가 지원되므로 자식들을 가장 비싼 종목으로 유학 보내고(음악, 미술), 교회법을 어겨 가며 자식에게 교회와 신도 일체를 물려준다. 이런 행동은 신이 있다고 '믿는' 자의 행동이 아니라, 신이 없음을 너무도 잘 아는 '사기꾼'의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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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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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남편의 세심한 보살핌 아래 교외에서 <델러웨이 부인>을 집필하고 있다. 편안한 잠은 드물고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두통은 그 빈도와 강도에 대한 예측 불가능함 때문에 그녀를 불안으로 몰아 넣는다. 그리고 런던에 대한 향수. 그녀는 한적한 교외의 드넓은 공간에서 오히려 답답함을 느끼고 남편의 사랑에 고마워하면서도 그것이 그녀 삶의 본질적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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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브라운은 남편 그리고 아이와 살고 있다. 뱃 속에는 또 다른 아이가 자라고 있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다. 그녀의 남편은 임신한 그녀를 배려하는 자상한 사람이다. 그래서 로라 역시 남편을 위해 케이크를 굽고 장식을 하려 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케이크는 뜻대로 되지 않고, 옆집에 사는 키티와 우애의 표시로 입맞춤을 한 뒤 달 뜬 기분을 어쩌지 못한다. 그녀는 도망치듯 집을 나와 두어 시간에 불과할지라도 자기만의 방(비록 변두리 모텔에 불과할지라도)으로 가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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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클라리사 보건은 친구 리처드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파티를 준비중이다. 리처드는 지금 에이즈와 치매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그는 클라리사의 연인이었지만 동성애인에게 더 마음이 끌려 헤어진 뒤 다정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는 언제나 클라리사를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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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시작되기 전, 리처드는 자신의 5층 집에서 미끄러지듯 투신한다. 파티는 취소되고, 그와 친구들을 위해 준비했던 음식들만 남겨져 있다. 한때 자살충동에 시달렸고 집을 떠나 어디가로 가려했던, 로라 브라운이 소식을 듣고 리처드의 집으로 온다. 그녀가 리처드의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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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1923년, 1949년, 그리고 1990년대를 살아가는 세 명의 여인이 하룻동안 겪는 일을 섬세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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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가 런던으로 떠나기 전 자신의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내용은 70년 뒤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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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사는 어무도 쓸쓸하게 사람들을 잃게 되겠지만 결코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삶과, 런던과 너무도 깊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버지니아는 다른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래, 맞아, 육체는 강하되 정신이 나약한 누군가를, 천재 기질과 시심(詩心)을 지녔고...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통하는 누군가를. 그래, 그런 누군가를 말이다. 클라리사, 정신이 멀쩡한 클라리사는 런던을 사랑하면서 자기 삶의 평범한 즐거움을 계속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어느 미치광이 시인은, 한 몽상가는,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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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남녀의 차이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는다. 클라리사도, 리처드도 동성애인과 살고 있으며 양성애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구분이 있다면 삶을 사랑하고 지금 이곳에 뿌리를 내린 사람과, 삶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한 세대 지나 브라운 부인이 읽으면서 해방감을 맛 보았고, 또 다시 한 세대 지나니 댈러웨이 부인(클라리사)이 현실을 살고 있다. 그리고 이번엔 그런 해방감을 맛보지 못한 남성(리처드)이 시인의 역할을 떠맡아 자살하고 만다.

'가장 일상적인' 일들이지만 그것이 미래에 대한 통찰과 맛닿아 있다면 소설의 내용은 일종의 예언이 된다. 다만 '세월, the years? the hours?, 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클라리사의 열 아홉살 난 아이. 그 아이의 아버지는 시험관 번호 외에 어떤 정보도 없고, 어머니는 동성애인과 살고 있다. 댈러웨이 부인의 시대도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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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는 정명진인데 번역을 업으로 하여 먹고 사는 게 신기할 정도로 엉터리다. 한 문장 내에서 주어가 바뀌는 비문이 난무하여 한글로 쓰여 있는데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번역 품질이 한 30년 전 학원강사가 문제 풀이를 위해 직독직해 하는 수준이다. <마리 퀴리의 지독한 사랑>을 번역한 임정희와 막상막하의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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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문장 몇 개를 가져와 봤다. 순서는 정명진 번역, 원문, AI번역 순이다. 나는 정명진 번역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AI번역을 읽고 나서야 문장의 맥락이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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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지니아는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찮은 일로 자신의 목숨을 끊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파티가 실패하든지 아니면 그녀가 자기 자신이나 가정에 기울인 약간의 노력을 남편이 알아주지 않는다든지. 여기서 핵심은 그 사소한 일의 중대함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매우 절박한 자포자기를 담아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독자들에게 가정의 아주 사소한 좌절도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장군의 패배한 전투처럼 매우 통렬하게 와 닿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확신시키는 것이다.(정명진 역 1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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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issa Dalloway, she thinks, will kill herself over something that seems, on the surface, like very little. Her party will fail, or her husband will once again refuse to notice some effort she’s made about her person or their home. The trick will be to render intact the magnitude of Clarissa’s miniature but very real desperation; to fully convince the reader that, for her, domestic defeats are every bit as devastating as are lost battles to a general.(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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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사 댈러웨이는 표면적으로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일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가 연 파티가 엉망이 되거나, 남편이 그녀의 외모나 집안 가꾸기에 들인 노력을 이번에도 알아채지 못하는 그런 일 말이다. 관건은 클라리사의 아주 작지만 너무나도 생생한 그 절망의 크기를 온전하게 표현해내는 것, 그리고 독자들에게 그녀에게는 가녀린 가정 내에서의 좌절이 장군에게 패전만큼이나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납득시키는 것이다.(제미나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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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루이스의 젊었을 적 얼굴에서는 언제나 중년의 얼굴 모습이 엿보였었다. 매부리코와 희미하고 놀란 듯한 두 눈, 뻣뻣한 눈썹, 넓고 억센 턱 밑으로 핏줄이 울룩불룩하는 목. 그는 잡초처럼 질기고, 세월의 풍화에 찌든 농부가 될 운명이었는데, 쟁기질과 추수 일이었다면 그 반의 세월이면 충분히 해치웠을 것(늙게 만드는 것-옮긴이)을 나이는 어쨌든 50년이나 걸려 해오고 있다.(정명진 역 1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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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s middle-aged face has always been incipient in his younger face: the beaky nose and pale, astonished eyes; the wiry brows; the neck powerfully veined under a broad, bony chin. He was meant to be a farmer, strong as a weed, ravaged by weather, and age has done in fifty years what plowing and harvesting would have in half the time.(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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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의 중년의 얼굴은 그의 젊은 시절 얼굴에 늘 초기 단계(조짐)로 존재해 있었다. 부리부리한 코와 하얗고 (언제나) 깜짝 놀란 듯한 눈, 뻣뻣한 눈썹, 그리고 넓고 뼈가 도드라진 턱 아래로 힘차게 드러난 목줄기까지. 그는 잡초처럼 강인하고 날씨에 그을린 농부가 될 운명이었는데, 쟁기질과 수확이 반밖에 안 걸릴 시간 동안 해냈을 일을, 세월은 50년 만에 그 얼굴에 다 해놓았다.(제미나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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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록 그대가 자신의 삶을 무시해 왔다 하더라도, 만약에 그대가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최대한으로 장하게 딸을 키웠다 하더라도, 그것도 여자들만의 집에서(아버지는 번호가 매겨져 있는 유리병일 뿐이야. 미안해, 줄리아, 그를 찾을 길은 전혀 없어), 그대는 어느 날 페르시아 융단 위에서 서서 모성애가 담긴 불만과 쓰리고 상처 받은 감정에 몸을 떨면서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아 갔다는 이유로 그대를 경멸하는 한 소녀를(그 소녀의 입장에서는 아직 경멸해야만 하겠지, 그렇지 않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 (정명진 역 2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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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if you’ve been defiant all your life; if you’ve raised a daughter as honorably as you knew how, in a house of women (the father no more than a numbered vial, sorry, Julia, no way of finding him)—even with all that, it seems you find yourself standing one day on a Persian rug, full of motherly disapproval and sour, wounded feelings, facing a girl who despises you (she still must, mustn’t she?) for depriving her of a father.(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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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당신이 평생을 반항적으로 살아왔다 해도, (아버지는 그저 일련번호가 적힌 시약병에 불과한—미안하다 줄리아, 그를 찾을 방법은 없단다—) 여자들만 사는 집에서 당신이 아는 가장 명예로운 방법으로 딸을 키워냈다 해도,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어느 날 페르시아 양탄자 위에 서서 어머니로서의 불만과 씁쓸하고 상처받은 감정으로 가득 찬 채,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아 갔다는 이유로 당신을 경멸하는(아이에게는 여전히 그런 마음이 남아 있겠지, 안 그러겠는가?) 딸과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제미나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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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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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9월 2일 금요일, 시마다 앞으로 책 한 권이 배달된다. 작자는 시시도 가도미, 제목은 <미로관의 살인>.

작자는 '미로관의 살인사건'의 충격적인 진상이 이 책에 담겨 있는 바, 자신은 1987년 4월 실제 그 사건을 목격한 관계자 중 1인이라고 하였다. 작품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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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가키 요타로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원로로 1987년 4월1일 소설가와 편집자, 비평가 등 8명을 자신의 별장 '미로관'에 초대한다. 미로관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괴상한 건축가가 지은 집으로, 방과 방 사이가 미로로 되어 있는 기묘한 집이었다.

초대된 8명은 미야가키 요타로가 발굴한 신인 소설가 기요무라 준이치(30), 스자키 쇼스케(41), 후나오카 마도카(30), 하야시 히로야(27), 그리고 평론가 사메지마 도모오(38), 편집자인 우타야마 히데유키(40)와 그의 아내이자 의사인 우타야마 게이코(33), 그리고 추리소설 마니아 시마다 기요시(3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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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문도 모르고 초대된 이들에게 미야가키의 비서 이노 미쓰오가 황당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미야가키는 이미 사망하여 진단서까지 받은 상태라는 것이다.

비서는 미야가키가 유언을 남겼다면서 그의 음성이 담긴 테이프를 들려준다. 유언을 간추리면 '추리소설을 써서 1등한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유산을 물려준다'는 것이었고,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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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자살은 닷새 뒤인 4월 6일 경찰에 알린다. 둘째, 일동은 저택에서 한 발짝도 나가서는 안된다. 셋째, 소설가 넷은 4월 5일 오후 10시까지 소설 한 편을 완성하고 평론가, 편집자, 추리소설 마니아가 작품을 심사한다. 넷째, 작품은 원고지 1백 매로 한다. 다섯째, 작품 무대는 미로관, 등장인물은 여기 모인 사람, 일어나는 사건은 살인사건이며 피해자는 자기 자신으로 한다. 다섯째, 소설가는 배정받은 방에서 지급받은 워드프로세서로 소설을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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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기묘한 경합은 바로 다음 날부터 피로 물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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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희생자는 스자키 쇼스케. 그는 응접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다. 머리는 몸으로부터 거의 떨어져 나가 있었고, 대신 뿔이 난 검은 물소의 머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조사 결과 스자키 쇼스케가 쓰다 만 소설 <미노타우로스의 머리> 도입부가 그의 죽음과 유사한 설정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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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는 범인이 스자키를 살해할 때 자신도 몸에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린 게 아니냐는 가정을 내놓는다. 자신의 혈흔을 스자키의 피로 가리기 위해 목을 자른 것이라는 추리였다. (G.K.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전집-결백>에 나온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

그러나 누구도 드러난 부위에 상처가 없었기에 코피를 흘린 것이라 가정하고 의사인 우타야마 게이코가 모든 사람의 콧속을 조사한다. 그러나 이상이 발견된 사람은 없었다.

이로서 물건을 사러 나간 비서 이노가 범인이 아닐까 하는 찜찜한 가능성을 남겨둔 채 나머지 사람들은 유언이 약속한 막대한 상금에 눈이 멀어 각자의 방으로 소설을 쓰기 위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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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희생자는 기요무라 준이치. 그가 쓰던 소설은 <어둠 속의 독니>라는 제목이었는데 자신이 독을 마시고 살해당하는 내용이었다. 현실의 기요무라는 캄캄한 방 불을 켜기 위해 조명 스위치를 더듬다 설치된 독침에 찔려 사망했다.

그런데 그의 셔츠 주머니에서 쪽지가 발견된다. 거기에는 밤 1시에 콘테스트 문제로 상의를 하고 싶으니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나오라는 후나오카 마도카의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과연 이 쪽지는 후나오카 마도카가 쓴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그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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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희생자는 하야시 히로야. 그는 등에 칼이 꽂힌 채 사망했다. 그가 쓴 소설의 제목은 <유리판의 메시지>. 그런데 죽은 그의 모습을 묘사한 끝에 wwh라는 다잉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당장은 wwh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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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희생자는 후나오카 마도카. 그녀는 잠을 자다 습격 당한 듯 했고 오른손 끝에는 노란색 하트 모양 펜던트가 떨어져 있었다. 그 펜던트는 경보음을 내고 있었다. 후나오카는 소설을 착수하지 않았고, 일기 비슷한 글을 썼는데 거기에는 '범인은 소설을 모방해 살인을 하고 있으므로 소설을 쓰지 않는다면 살해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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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유산을 받을 수 있는 소설가 넷 모두 사망해 사건은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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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기요시가 추리를 시작한다.

먼저 첫번째 살인에서 범인도 피를 흘렸을 것이라는 설은 유보하기로 한다.

두번째 살인은 캄캄한 방을 더듬어 불을 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방을 다른 방과 바꿔치기하여 빈방을 만들 필요가 있다. 범인은 미로 속에서 사람들이 길을 찾을 때 길 찾기 표식을 이용한다는 점에 착안, 벽에 걸린 석고 가면 위치를 바꿔 기요무라 준이치를 헤깔리게 했을 것이다.

세번째 살인은 다잉메시지를 푸는 것과 범인이 어떻게 출입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네번째 살인에서 범인은 후나오카가 경보기를 켜는 바람에 그녀가 사망한 것을 확인하지 못한 채 방을 밀실로 만들고 떠남으로서 비밀 통로의 존재를 들키고 만다.

이로서 세번째 살인에서 범인의 출몰 경로가 비밀 통로로 밝혀진다.

그렇다면 다잉메시지 wwh는 무엇인가? 그것은 워드프로세서의 글쇠 차이로 해결된다. '문호' 글쇠가 아닌 '오아시스' 글쇠에 익숙했던 하야시의 버릇대로 타자를 치면 wwh는 카가미, 즉 거울이다. 범인이 들어온 비밀 통로는 거울이었던 것이다.

비밀 통로를 연 일행은 거기서 플로피 디스크를 발견하는데 안에는 후나오카가 남긴 <기형의 날개>라는 소설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소설을 쓴 시각을 역산한 결과 범인은 소설가들이 쓴 소설을 모방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살인 후에 작품을 배치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마지막 퍼즐. <미노타우로스의 머리>, <어둠 속의 독니>, <유리판의 메시지>, 그리고 <기형의 날개>의 앞글자를 모으니 미야가키라는 이름이 완성 되었다.

(미노타우로스의 미, 어둠을 뜻하는 야미의 야, 유리를 뜻하는 가라스의 가, 기형을 뜻하는 키케이의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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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가키가 남긴 메시지를 따라 가니 거기에 진짜 유서가 있었다. 유서에는 미야가키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사람을 죽여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다는 것과, 유산은 피를 나눈 후계자에게 남기겠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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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마지막으로 시시야 가도미는 관계자 중 누구일까 하는 물음으로 작품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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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반전은 작품 바깥에 있다. 시마다를 찾아온 소설가는 SHISHIYA-KADOMI의 철자를 바꾼 SHIMADA-KIYOSHI.

진범은 소설 내내 남성인 것처럼 그려지는 편집자 사메지마 도모오이다. 첫번째 살인에서 감추고 싶었던 핏자국은 코피가 아니라 생리혈. 사메지마 도모오는 미야가키 요타로와 정을 나누어 사메지마 요지라는 아들을 두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지체장애를 안고 있었다. 미야가키 요타로는 사메지마 요지를 아들로 인지하길 거부했고 유산도 나누어줄 생각이 없었다.

사메지마 도모오는 미야가키 요타로가 폐암에 걸린 뒤에도 모든 재산을 미야가키상을 제정하고 상금으로 쓸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위와 같은 복잡한 살인극을 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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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사메지마 도모오가 범인임을 알고 있다는 무언의 압박으로 그녀의 행동변화를 촉구하는 작품이다. 실제 그녀가 경찰에 자수를 했는지 여부는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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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본격의 기수 아야츠지 유키토가 1988년 발표한 세 번째 작품으로 첫 번째 작품인 <십각관의 살인>이 '섬'과 '본토'의 이원중계, 두 번째 작품인 <수차관의 살인>이 '현재'와 '과거'의 이원중계였으니, 세 번째 소설인 <미로관의 살인>은 '작품 속 작품'을 테마로 써보자고 결심하고 액자소설 형식으로 구성했다 한다.

사회파로 넘어간 미스터리 소설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한 신본격의 기수 아야츠지 유키토의 이 작품은 '미스터리 소설을 통해 극한의 지적 유희를 추구한다'는 신본격의 신념이 강하게 읽히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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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 마광수 소설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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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청춘>은 '내'가 열아홉 살,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2학년에 다닐 당시 겪었던 일을 기록한 소설이다.

당시 국문학과 2학년생 30명 중 여학생은 단 한 명밖에 되지 않아 적막했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은 이화여대 국문학과 여학생 다섯 명을 꼬드겨 문학 동인회를 결성했다. 그 동인회 회원 중 하나가 다미였는데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하얘서 마치 귀부인 같은 모습이었다.

한 눈에 다미에게 반한 '나'는 새삼 사랑은 '관능적 욕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미적(唯美的) 경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나'는 관능주의자 겸 유미주의자였기 때문에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으며 오로지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그때까지 사귀었던 C와 결별을 선언하고, 시를 끼적이는 한편, 사랑에 관한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곤 하였다.

당시 배운 철학 개론에서는 사랑을 에로스(Eros)', 필리아(Philia), 그리고 아가페(Agepe)로 나누고 있었는데 '나'는 에로스가 지닌 원래의 뜻을 다시 한 번 재음미해 볼 때 에로스 안에 이미 필리아나 아가페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육체적 아름다움에 바탕한 '미적(美的) 숭경(崇敬)'이 바로 동성간이든 이성간이든 신과 인간 사이에서든 다 똑같이 적용되는 사랑의 본질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명동을 돌며 동호회 모임이 거듭되던 어느 날, 다미로부터 보들레르나 에드거 앨런 포의 문학이 연상되는, '그로테스크'의 미학을 극대화 한 시가 적힌 편지가 도착한다. 나는 즉시 답시를 지어내 보냈다.

다미의 제안에 따라 '나'와 다미는 따로 만나기 시작했다. 이태원에 가서 춤을 추거나, 북한산에 올라 고기를 구워 소주를 마시거나, 아무도 찾지 않는 계곡에서 서로의 몸을 탐하거나 하면서 시를 교환하고 서로의 몸이 주는 아름다움에 경탄을 보냈다.(성관계 까지는 가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던 둘의 탐미적 만남은 어느 날 다미의 자살로 끝이 난다. 재벌 첩의 자식이었던 다미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나' 사이의 사랑이 관능적이고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다시 말해서 그녀와 육체관계까지 갔었더라면 그녀가 자살까지는 안 갔을 거라는 후회를 해보게 되었다. 다미와 '나'의 관계는 섹스도 없이 그저 내 쪽에서 칭얼칭얼 보채대기만 하는 사랑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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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나 이데올로기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관능주의와 유미주의에 탐닉하던 마광수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발표했을 때, 박노해는 수배를 피해 도망다니고 있었다. 잡히면 사형을 당할 처지였다.

그때 박노해가 다방에서 '야한 여자'를 보고 지은 글이 <나도 야한 여자가 좋다>였다. '자신의 노동과 시간만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과 시간을 뜯어다가 야해진 여자'

와 '원단을 누르누라 손톱이 뭉툭하다 닳아지고 얼마 전엔 검지손가락에 미싱바늘이 뚫고 들어가 마이신을 먹고 끙끙대던 순이의 모습'을 대비시킨 그 글에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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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는 스스로 정치에 관심이 없다며 자본주의가 빚어낸 '야함'에 천착했지만 정작 자신은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필화사건을 겪었다. 강단의 보수주의자들은 그를 철저히 왕따 시켰고 그 자신이 소설 속 다미와 같은 우울한 시간을 보내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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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다미의 첫 편지에 답하는 '나'의 시가 유치하면서도 폭소를 자아내는 면이 있어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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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님은 맨살 위에

보디 메이크 업(body make up) 하는 걸 좋아했지

그래서 벌거벗은 몸뚱어리가 더 현란하게 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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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녀는 젖가슴 언저리에 피아노 건반을 그렸어

흑과 백의 콘트라스트가 그 어떤 브래지어보다 멋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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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열심히 피아노를 쳤지

내 긴 손가락으로, 내 긴 혓바닥으로.

​

내가 건반을 칠 때마다

내가 건반을 누를 때마다

피아노는 음울한 신음소리를 냈어

​

딩동댕 아아악

딩동댕 흐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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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그녀의 입술을 내 입술로 덮어버렸지

영원히 영원히 덮어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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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미의 <자살자(自殺者)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마지막 시. 어쩐지 작가 자신의 자살을 예비하는 시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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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마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마라

​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마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마라

​

바람이 부는 것은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닷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마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마라

그는 가장 솔직한 자

그는 가장 용기 있는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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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에 걸린 전화기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13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발터 트리어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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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계몽사 문고본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내 독서의 시작이다.

그때 읽었던 책 중 하나가 캐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이었다. 시간이 흘러 시공사 문고를 아이에게 전집으로 사주었는데 중학교에 간 후 방치되고 있어 내가 가끔 한 권씩 꺼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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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동시들로 이루어진 <마법에 걸린 전화기>에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등장한다. 시장님과 세무서장님에게 장난전화를 거는 그레테,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다가 권투를 배운 당찬 아이에게 호되게 당하는 아돌프, 진공청소기로 주변 사물을 모두 빨아들이고 망가뜨리는 페르디난트, 약혼녀만 태우는 형이 야속해서 오토바이를 잘라 놨다가 본인이 골탕먹는 막스, 허풍을 떨다 떡먹기 내기로 혼쭐나는 페터, 기린에게 돌을 던지며 괴롭히다 귀를 물린 클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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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소설가인 캐스트너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반전과 평화를 외치고 반(反) 나치운동에도 관여하여 여러 고초를 당했다. 전쟁 중에는 드레스덴 대규모 공습으로 집이 불타버리는 피해를 입었고, 전후에는 서독에서 살며 독일통일을 주장하고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등 평화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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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1379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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