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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의 세심한 보살핌 아래 교외에서 <델러웨이 부인>을 집필하고 있다. 편안한 잠은 드물고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두통은 그 빈도와 강도에 대한 예측 불가능함 때문에 그녀를 불안으로 몰아 넣는다. 그리고 런던에 대한 향수. 그녀는 한적한 교외의 드넓은 공간에서 오히려 답답함을 느끼고 남편의 사랑에 고마워하면서도 그것이 그녀 삶의 본질적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라 브라운은 남편 그리고 아이와 살고 있다. 뱃 속에는 또 다른 아이가 자라고 있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다. 그녀의 남편은 임신한 그녀를 배려하는 자상한 사람이다. 그래서 로라 역시 남편을 위해 케이크를 굽고 장식을 하려 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케이크는 뜻대로 되지 않고, 옆집에 사는 키티와 우애의 표시로 입맞춤을 한 뒤 달 뜬 기분을 어쩌지 못한다. 그녀는 도망치듯 집을 나와 두어 시간에 불과할지라도 자기만의 방(비록 변두리 모텔에 불과할지라도)으로 가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려 한다.
뉴욕의 클라리사 보건은 친구 리처드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파티를 준비중이다. 리처드는 지금 에이즈와 치매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그는 클라리사의 연인이었지만 동성애인에게 더 마음이 끌려 헤어진 뒤 다정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는 언제나 클라리사를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렀다.
파티가 시작되기 전, 리처드는 자신의 5층 집에서 미끄러지듯 투신한다. 파티는 취소되고, 그와 친구들을 위해 준비했던 음식들만 남겨져 있다. 한때 자살충동에 시달렸고 집을 떠나 어디가로 가려했던, 로라 브라운이 소식을 듣고 리처드의 집으로 온다. 그녀가 리처드의 어머니이다.
작품은 1923년, 1949년, 그리고 1990년대를 살아가는 세 명의 여인이 하룻동안 겪는 일을 섬세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런던으로 떠나기 전 자신의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내용은 70년 뒤 현실이 된다.
클라리사는 어무도 쓸쓸하게 사람들을 잃게 되겠지만 결코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삶과, 런던과 너무도 깊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버지니아는 다른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래, 맞아, 육체는 강하되 정신이 나약한 누군가를, 천재 기질과 시심(詩心)을 지녔고...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통하는 누군가를. 그래, 그런 누군가를 말이다. 클라리사, 정신이 멀쩡한 클라리사는 런던을 사랑하면서 자기 삶의 평범한 즐거움을 계속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어느 미치광이 시인은, 한 몽상가는,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소설에서 남녀의 차이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는다. 클라리사도, 리처드도 동성애인과 살고 있으며 양성애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구분이 있다면 삶을 사랑하고 지금 이곳에 뿌리를 내린 사람과, 삶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한 세대 지나 브라운 부인이 읽으면서 해방감을 맛 보았고, 또 다시 한 세대 지나니 댈러웨이 부인(클라리사)이 현실을 살고 있다. 그리고 이번엔 그런 해방감을 맛보지 못한 남성(리처드)이 시인의 역할을 떠맡아 자살하고 만다.
'가장 일상적인' 일들이지만 그것이 미래에 대한 통찰과 맛닿아 있다면 소설의 내용은 일종의 예언이 된다. 다만 '세월, the years? the hours?, 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클라리사의 열 아홉살 난 아이. 그 아이의 아버지는 시험관 번호 외에 어떤 정보도 없고, 어머니는 동성애인과 살고 있다. 댈러웨이 부인의 시대도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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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는 정명진인데 번역을 업으로 하여 먹고 사는 게 신기할 정도로 엉터리다. 한 문장 내에서 주어가 바뀌는 비문이 난무하여 한글로 쓰여 있는데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번역 품질이 한 30년 전 학원강사가 문제 풀이를 위해 직독직해 하는 수준이다. <마리 퀴리의 지독한 사랑>을 번역한 임정희와 막상막하의 실력이다.
소설 속 문장 몇 개를 가져와 봤다. 순서는 정명진 번역, 원문, AI번역 순이다. 나는 정명진 번역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AI번역을 읽고 나서야 문장의 맥락이 이해가 되었다.
1.
버지니아는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찮은 일로 자신의 목숨을 끊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파티가 실패하든지 아니면 그녀가 자기 자신이나 가정에 기울인 약간의 노력을 남편이 알아주지 않는다든지. 여기서 핵심은 그 사소한 일의 중대함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매우 절박한 자포자기를 담아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독자들에게 가정의 아주 사소한 좌절도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장군의 패배한 전투처럼 매우 통렬하게 와 닿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확신시키는 것이다.(정명진 역 131p)
Clarissa Dalloway, she thinks, will kill herself over something that seems, on the surface, like very little. Her party will fail, or her husband will once again refuse to notice some effort she’s made about her person or their home. The trick will be to render intact the magnitude of Clarissa’s miniature but very real desperation; to fully convince the reader that, for her, domestic defeats are every bit as devastating as are lost battles to a general.(원문)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표면적으로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일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가 연 파티가 엉망이 되거나, 남편이 그녀의 외모나 집안 가꾸기에 들인 노력을 이번에도 알아채지 못하는 그런 일 말이다. 관건은 클라리사의 아주 작지만 너무나도 생생한 그 절망의 크기를 온전하게 표현해내는 것, 그리고 독자들에게 그녀에게는 가녀린 가정 내에서의 좌절이 장군에게 패전만큼이나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납득시키는 것이다.(제미나이 번역)
2.
루이스의 젊었을 적 얼굴에서는 언제나 중년의 얼굴 모습이 엿보였었다. 매부리코와 희미하고 놀란 듯한 두 눈, 뻣뻣한 눈썹, 넓고 억센 턱 밑으로 핏줄이 울룩불룩하는 목. 그는 잡초처럼 질기고, 세월의 풍화에 찌든 농부가 될 운명이었는데, 쟁기질과 추수 일이었다면 그 반의 세월이면 충분히 해치웠을 것(늙게 만드는 것-옮긴이)을 나이는 어쨌든 50년이나 걸려 해오고 있다.(정명진 역 197p)
Louis’s middle-aged face has always been incipient in his younger face: the beaky nose and pale, astonished eyes; the wiry brows; the neck powerfully veined under a broad, bony chin. He was meant to be a farmer, strong as a weed, ravaged by weather, and age has done in fifty years what plowing and harvesting would have in half the time.(원문)
루이스의 중년의 얼굴은 그의 젊은 시절 얼굴에 늘 초기 단계(조짐)로 존재해 있었다. 부리부리한 코와 하얗고 (언제나) 깜짝 놀란 듯한 눈, 뻣뻣한 눈썹, 그리고 넓고 뼈가 도드라진 턱 아래로 힘차게 드러난 목줄기까지. 그는 잡초처럼 강인하고 날씨에 그을린 농부가 될 운명이었는데, 쟁기질과 수확이 반밖에 안 걸릴 시간 동안 해냈을 일을, 세월은 50년 만에 그 얼굴에 다 해놓았다.(제미나이 번역)
3.
비록 그대가 자신의 삶을 무시해 왔다 하더라도, 만약에 그대가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최대한으로 장하게 딸을 키웠다 하더라도, 그것도 여자들만의 집에서(아버지는 번호가 매겨져 있는 유리병일 뿐이야. 미안해, 줄리아, 그를 찾을 길은 전혀 없어), 그대는 어느 날 페르시아 융단 위에서 서서 모성애가 담긴 불만과 쓰리고 상처 받은 감정에 몸을 떨면서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아 갔다는 이유로 그대를 경멸하는 한 소녀를(그 소녀의 입장에서는 아직 경멸해야만 하겠지, 그렇지 않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 (정명진 역 243p)
Even if you’ve been defiant all your life; if you’ve raised a daughter as honorably as you knew how, in a house of women (the father no more than a numbered vial, sorry, Julia, no way of finding him)—even with all that, it seems you find yourself standing one day on a Persian rug, full of motherly disapproval and sour, wounded feelings, facing a girl who despises you (she still must, mustn’t she?) for depriving her of a father.(원문)
설령 당신이 평생을 반항적으로 살아왔다 해도, (아버지는 그저 일련번호가 적힌 시약병에 불과한—미안하다 줄리아, 그를 찾을 방법은 없단다—) 여자들만 사는 집에서 당신이 아는 가장 명예로운 방법으로 딸을 키워냈다 해도,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어느 날 페르시아 양탄자 위에 서서 어머니로서의 불만과 씁쓸하고 상처받은 감정으로 가득 찬 채,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아 갔다는 이유로 당신을 경멸하는(아이에게는 여전히 그런 마음이 남아 있겠지, 안 그러겠는가?) 딸과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제미나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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