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 마광수 소설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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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청춘>은 '내'가 열아홉 살,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2학년에 다닐 당시 겪었던 일을 기록한 소설이다.

당시 국문학과 2학년생 30명 중 여학생은 단 한 명밖에 되지 않아 적막했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은 이화여대 국문학과 여학생 다섯 명을 꼬드겨 문학 동인회를 결성했다. 그 동인회 회원 중 하나가 다미였는데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하얘서 마치 귀부인 같은 모습이었다.

한 눈에 다미에게 반한 '나'는 새삼 사랑은 '관능적 욕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미적(唯美的) 경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나'는 관능주의자 겸 유미주의자였기 때문에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으며 오로지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그때까지 사귀었던 C와 결별을 선언하고, 시를 끼적이는 한편, 사랑에 관한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곤 하였다.

당시 배운 철학 개론에서는 사랑을 에로스(Eros)', 필리아(Philia), 그리고 아가페(Agepe)로 나누고 있었는데 '나'는 에로스가 지닌 원래의 뜻을 다시 한 번 재음미해 볼 때 에로스 안에 이미 필리아나 아가페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육체적 아름다움에 바탕한 '미적(美的) 숭경(崇敬)'이 바로 동성간이든 이성간이든 신과 인간 사이에서든 다 똑같이 적용되는 사랑의 본질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명동을 돌며 동호회 모임이 거듭되던 어느 날, 다미로부터 보들레르나 에드거 앨런 포의 문학이 연상되는, '그로테스크'의 미학을 극대화 한 시가 적힌 편지가 도착한다. 나는 즉시 답시를 지어내 보냈다.

다미의 제안에 따라 '나'와 다미는 따로 만나기 시작했다. 이태원에 가서 춤을 추거나, 북한산에 올라 고기를 구워 소주를 마시거나, 아무도 찾지 않는 계곡에서 서로의 몸을 탐하거나 하면서 시를 교환하고 서로의 몸이 주는 아름다움에 경탄을 보냈다.(성관계 까지는 가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던 둘의 탐미적 만남은 어느 날 다미의 자살로 끝이 난다. 재벌 첩의 자식이었던 다미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나' 사이의 사랑이 관능적이고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다시 말해서 그녀와 육체관계까지 갔었더라면 그녀가 자살까지는 안 갔을 거라는 후회를 해보게 되었다. 다미와 '나'의 관계는 섹스도 없이 그저 내 쪽에서 칭얼칭얼 보채대기만 하는 사랑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정치나 이데올로기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관능주의와 유미주의에 탐닉하던 마광수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발표했을 때, 박노해는 수배를 피해 도망다니고 있었다. 잡히면 사형을 당할 처지였다.

그때 박노해가 다방에서 '야한 여자'를 보고 지은 글이 <나도 야한 여자가 좋다>였다. '자신의 노동과 시간만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과 시간을 뜯어다가 야해진 여자'

와 '원단을 누르누라 손톱이 뭉툭하다 닳아지고 얼마 전엔 검지손가락에 미싱바늘이 뚫고 들어가 마이신을 먹고 끙끙대던 순이의 모습'을 대비시킨 그 글에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

마광수는 스스로 정치에 관심이 없다며 자본주의가 빚어낸 '야함'에 천착했지만 정작 자신은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필화사건을 겪었다. 강단의 보수주의자들은 그를 철저히 왕따 시켰고 그 자신이 소설 속 다미와 같은 우울한 시간을 보내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설 속에 다미의 첫 편지에 답하는 '나'의 시가 유치하면서도 폭소를 자아내는 면이 있어 적어본다.

나의 님은 맨살 위에

보디 메이크 업(body make up) 하는 걸 좋아했지

그래서 벌거벗은 몸뚱어리가 더 현란하게 보였지

어느 날 그녀는 젖가슴 언저리에 피아노 건반을 그렸어

흑과 백의 콘트라스트가 그 어떤 브래지어보다 멋있었어

그래서 나는 열심히 피아노를 쳤지

내 긴 손가락으로, 내 긴 혓바닥으로.

내가 건반을 칠 때마다

내가 건반을 누를 때마다

피아노는 음울한 신음소리를 냈어

딩동댕 아아악

딩동댕 흐흐흑

왠지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그녀의 입술을 내 입술로 덮어버렸지

영원히 영원히 덮어버렸지

그리고 다미의 <자살자(自殺者)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마지막 시. 어쩐지 작가 자신의 자살을 예비하는 시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마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마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마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마라

바람이 부는 것은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닷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마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마라

그는 가장 솔직한 자

그는 가장 용기 있는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314628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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