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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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주인공 조나단 노엘은 나치에 의해 부모를 잃고 누이동생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렸으며, 아저씨가 정해준 결혼상대는 4개월만에 사내아이를 낳은 후 튀니지에서 온 과일장수와 눈이 맞아 줄행랑 친다. 이런 불상사를 겪은 후 사람들은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멀리 해야만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서 은행 경비원으로 취직하고 방 한 칸을 세내었는데 그는 그 방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남들은 불편해 마지 않을 좁은 방을 조나단은 자기에게 편리하도록 꾸미며 흡족해했고, 드디어 그 방을 살 수 있을 만한 돈도 모아 이제는 은퇴 후 노년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방 앞에 비둘기 한마리가 창을 통해 날아들어왔고, 조나단은 비둘기를 본 순간부터 그 동물이 주는 끔찍한 느낌에 제정신이 아니게 되었다. 비둘기가 혹시라도 몸에 닿을 까봐 한여름에 겨울 외투를 꺼내입고 은행에 출근한 조나단은 이제 자신은 그 방으로 돌아갈 수가 없으며 평온할거라 생각했던 계획도 모두 틀어져버렸다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일을 하면서 실수를 연발하고, 가장 싼 호텔을 빌렸을 때 가지고 있는 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나 고민하는 등 더 이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급기야 공원 벤치에 바지까지 찢기는 사건이 일어나고 어렵사리 근무시간을 채운 그는 호텔로 돌아가 정어리와 빵, 포도주, 치즈와 배를 더할나위 없이 맛있게 먹고난 후 <내일 자살해야지>라고 말하며 잠 속으로 빠져든다.

밤사이 폭풍우가 몰아치고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전쟁 중 자신이 지하실에 갇혀 있다는 환상에 <도대체 사람들이 왜 안 오는 걸까? 왜 나를 구출해 내지 않지? 왜 이렇게 쥐죽은듯이 조용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지?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단 말이야!>라고 소리를 치려는 찰나, 요란한 빗소리에 제정신을 차린다.

그는 일어나서 옷을 입고 호텔을 나서서 '자유 속으로 걸어'나간다. 그리고 되돌아온 방 앞 복도에 비둘기가 남겨 놓은 오물과 깃털이 말끔히 치워지고 비둘기 역시 자취를 감추었음을 발견한다.

 

작년 여름에 집에 쥐가 들어온 적이 있다. 새벽 2시쯤 들어온 쥐는 그저 움직이는 시커먼 덩어리였고 나는 머리 끝이 쭈뼛할 만큼 놀랐었다. 어디 한군데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쥐가 도망쳐 들어간 방문을 잠그고 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후 회사에 출근했다. 겨우 문만 열고 쥐덫을 집어 넣어두었지만 그날 밤 쥐덫은 텅 빈채였고, 단지 그 방에 쥐가 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었다. 거의 공황 상태에서 다음날 밤 집에 돌아가길 포기하고 회현역과 서울역을 거쳐 숙명여대 입구까지 비가 오는날 여관을 찾아 전전했다. 회현역 인근 모텔은 성매매를 동반하지 않은 투숙을 거부했고, 서울역의 여관은 들어간지 5분만에 지불한 돈을 포기해야 할 만큼 더럽고 습했다. 결국 숙명여대역까지 걸어가 모텔에 들어섰을 때에는 우산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흠뻑 젖어 자못 처량한 느낌 마저 들 지경이었다. 에어컨 앞에 옷을 널어 말리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설책을 읽는 중간중간 입으로는 내 처지를 한탄했던 기억이 난다. <비둘기>를 읽으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너무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그리고 쥐가 들어온 그 사건이 뭔가 상징하기라도 하는 듯 느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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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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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래전 헤어진 여자친구 수진에게서 어느날 연락이 온다. 수진은 내가 알고 지내던 대학 선배와 결혼을 하였고, 나는 그동안 캐나다 유학을 다녀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녀는 이혼을 하였고, 원치 않는 10억이란 돈이 생겼으니 카지노에 가서 모두 써버리자고 한다. 나는 쿨한 인간이 되고 싶은 사람이나, 이 제안에는 마음이 흔들려 수진과 강원랜드로 향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주인공은 이론적이나마 카지노의 생리에 대해 알고 있어 확률적으로 돈을 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룰렛, 슬롯머신, 블랙잭, 바카라 등을 하는 동안 머리속으로 알고 있는 지식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고, 수진 역시 돈을 탕진하러 왔다고는 하지만 막상 게임에서는 돈을 따려고 한다.

수진과 한방을 쓰면서도 수진과 육체적으로 엮이는 일을 피하며 생활하는 나는 엄마가 도박을 하는 동안 방치되어 있는 일곱살의 명혜, 그리고 사연이 있어 보이는 스무살의 윤미를 알게 된다. 어느날 윤미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아 모처로 이동을 하는 도중 윤미의 과거에 대해 듣게 된다. 광부로 일하던 윤미의 아버지는 광부를 그만두고 철물점을 운영하던 어느날 지금의 강원랜드가 건설되기 전의 자리에 있던 카지노에 드나들고, 그곳의 주차장에서 히터를 틀어놓고 자다가 숨을 거둔다. 민사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던 윤미는 아버지의 사망과 아버지가 도박에 빠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현재는 대학을 중퇴하고 카지노를 드나들고 있다. 윤미와 함께 찾아간 나이트클럽에서 윤미의 이복언니가 조직폭력배의 동생집에 치정문제로 방화한 사실까지 알게된 나는 윤미에게 애틋함을 느낀다.

한편 엘리베이터에서 수진의 전 남편이자 나의 대학 선배를 만나자 나는 수진이 이혼했다는 말이 사실인지, 수진은 대학 선배의 카지노 출입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는지 의심이 든다. 대학 선배는 나와 술을 마시자고 제안하고, 운동권이었던 선배는 자신이 변절한 것이 아니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확실성을 높이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선배에게 '형이 예전에 원했던 세계와 형이 살고 있는 세계가 일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선배는 나에게 '너는 변한 것이 없구나'라고 말한다.

술에 취한 나에게 명혜 어머니가 유혹을 하고 나도 자괴감에 그녀와 모텔에 가지만 모텔에 간 그녀는 화장실에서 오래도록 울고 나는 그녀를 보내고 홀로 잠든다.

수진에게 호텔 입구에서 여기서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고 나에게 수진은 '오빠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게 전부는 아닐 거야'라는 여운을 남기며 떠난다. 그리고 윤미에게 전화를 걸어 꿈 얘기를 한다.

 

가끔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림자를 여기 저기서 느끼는 경우가 있다. 얼마전 읽은 전수찬의 <어느덧 일주일>, 그리고 지금 읽은 <슬롯> 모두에서 나는 하루키의 그림자를 느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다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담담하게 자신을 제어해나가는 주인공의 태도가 그렇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문학상 수상작(문학동네 작가상, 세계문학상)이고, 공식적으로는 처녀작이며, 작가와 주인공이 겹쳐진다.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달갑지는 않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이 이후가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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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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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서문은 존 레이 주니어 박사라는 인물이 쓴 것이다. 그는 원고의 저자가 <험버트 험버트>라는 인물로 1952년 11월 16일 구속된 상태에서 관상동맥 혈전증으로 죽었으며, 원제목은 <롤리타, 혹은 어느 백인 홀아비의 고백>이며 자신은 편집자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세르반테스가 <돈끼호테>에 관해 자신은 번역된 원고의 편집자에 불과하다고 밝히는 것과 같이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듯한 인상의 서문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자신이 에필로그에 <'롤리타'라고 제목이 붙은 책에 관하여>에서 직접 등장함으로서 존 레이 주니어 박사 역시 등장 인물에 불과한 허구임을 밝힌다.

 

1부

1910년 파리에서 태어난 <험버트 험버트>의 아버지는 리비에라의 호화로운 호텔 주인이고, 어머니는 '피크닉에서 번개에 맞았다'던가 하는 이유로 죽었다. 엄격한 이모 밑에서 자라던 그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애너벨이라는 소녀를 알게 된다. 해변에서 애너벨과 미숙한 성적인 경험을 하던 그들은 늙은 어부 (The Old man of the sea ; 해밍웨이의 The Old man and the sea의 변형)에 의해 방해받고 넉 달 후 애너벨은 발진티푸스로 사망한다. 이 강렬한 경험은 그가 아홉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어린 여자만을 사랑하는 상태가 되게 하고, 그녀들 중 특별히 자신의 마음을 끄는 여자아이를 '님펫'이라 부르며 갈망한다. 한동안 정상적인 삶을 위해 애를 쓰던 그는 자신의 내밀한 욕망을 숨기고 위장하기 위해 폴란드 의사의 딸 발레리아와 결혼하는데 그녀가 어린애다운 점을 다소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발레리아가 오히려 바람이 나 <험버트 험버트>를 떠나자 분노와 배신감에 정신이 이상해진 그는 요양원에 수용된다. 하지만 의사들을 속여 동성애자 혹은 성불능 진단을 내리게 만든 후 미국으로 떠나 이모부의 향수 사업을 물려받는다.

미국에 온 그는 램즈데일에서 샬로트라는 여성의 집에 하숙을 하게 된다. 그녀에게는 열두살 난 롤리타가 있는데 그는 한눈에 그녀가 '님펫'임을 알아보고 격렬하게 사랑에 빠진다. 롤리타는 무심하게 그에게 다가오고 <험버트 험버트>는 샬로트와 롤리타 모두에게 눈치 채이지 않을 만큼 그녀와 신체 접촉을 하며 그녀의 순결을 지켜주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샬로트가 그에게 사랑고백을 하자 그는 롤리타와 합법적으로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샬로트와 결혼한다. 롤리타와 둘만 있기 위해 샬로트를 살해할 공상까지 하는 <험버트 험버트>였지만 그가 샬로트를 죽이지는 못하리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내밀한 욕망을 기록한 일기를 샬로트가 몰래 보게 되고 분노와 수치심에 그 사실을 알리는 편지 몇 통을 써서 우체통으로 가던 그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롤리타의 합법적인 보호자가 된 험버트는 캠핑 생활을 하던 롤리타와 단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샬로트의 죽음을 당분간 숨기기로 결심한다. 샬로트가 입원한 병원에 가자며 롤리타를 데리고 떠난 그는 <도취된 사냥꾼들>이라는 호텔에 묵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생각하듯 롤리타가 순결한 아이가 아니고 이미 동성애적 경험과 이성애적 경험 모두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롤리타의 유혹하는 태도에 굴복하여 성적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그날 이후 롤리타와 <험버트 험버트>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험버트 험버트>의 관심을 끌기 위한 태도들은 사라지고 한껏 고개를 치켜들고 여러가지 요구를 하기 시작하는 롤리타에게 그는 끌려다닐 뿐이다. 오직 그가 점한 유리한 위치는 롤리타가 고아이며 이제는 갈 곳이 없다는 것 뿐이다.

 

2부

롤리타의 요구를 들어주며 값비싼 호텔을 전전하던 그들은 비어즐리에 잠시 정착하고 롤리타는 학교에 들어간다. 그는 롤리타를 남자들로 부터 보호(혹은 격리) 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롤리타가 시야에서 사라지곤 하는 얼마간의 시간에 악마적인 공상과 질투로 괴로워한다. 그가 괴로와하면 할수록 롤리타는 그에게 포악하고 잔인한 태도를 취한다. 롤리타가 학교 연극에 출연하게 되자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험버트 험버트>는 다시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한다. 롤리타는 자신이 여행경로와 목적지를 결정하겠다고 하고, 그들은 다시 호텔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여행 시작 직후부터 낯선 중년 남자의 추적을 받는 느낌(혹은 사실)에 시달리던 그들은 롤리타가 병에 걸려 어느 마을에 머물게 되는데 병원비를 지불하러 간 그는 롤리타가 병원에서 자취를 감추었음을 알게된다. 3년을 롤리타를 찾아 헤매던 그는 리타라는 여성을 만나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롤리타의 편지를 받고 그녀의 소재를 추적해 찾아내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밴 상태이며 그에게 원하는 것은 얼마간의 돈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를 떠나간 이유가 퀼티라는 극작가 때문이었으며 극작가가 그녀를 버려 현재는 시시껄렁한 남자와 구질구질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알고 자신과 함께 떠나줄 것을 간청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는 내 마음을 망가뜨렸고, 아빤 그저 내 삶을 망가뜨렸어요'라며 거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주는 그에게 그녀는 '너무 속여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런 게 삶인가 봐요'라고 말한다. 자신의 재산을 롤리타에게 모두 남기고 퀼티를 찾아간 그는 퀼티를 살해하고 자신은 경찰에 붙잡힌다.

 

소설은 많은 부분 현실감이 결여되어 있고 그로 인해 코믹하기까지 하다. 발레리아가 그를 떠날 때에는 '제 인생에 다른 남자가 생겼어요'라고 말하고, 험버트는 <이건, 이 말은 남편이 듣기에 좀 거북하다. 바로 거기, 거리에서 그녀를 때려눕히는 것은 불가능했다>라고 회상하며 '도대체 누구냔 말이야?'라고 묻는 그에게 그녀는 그들이 탄 택시의 기사를 지목하고, 택시기사는 자신이 새로운 남자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발레리아가 짐싸는 것을 거들어주고 험버트의 집 변기에 소변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고 나감으로서 험버트가 빗자루보다 좀 나은 무기가 없나 부엌을 뒤적거리게 만든다.

샬로트의 죽는 대목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를 죽이는 상상까지 하던 그가 일기장이 들통나 곤경에 처한 바로 그 때 그녀는 정말 개연성 없게도 차에 치어 죽어버린다. 죽음의 과정이 너무 사실감이 결여되어서인지 독자는 샬로트의 죽음과 험버트의 비열함을 연결시키기 어렵게 된다.

마지막 퀼티를 죽이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이다. 험버트가 총을 쏘는 장면에서 퀼티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여자처럼 아!하고 부르짖은 후 총알이 그를 칠 때마다 몸을 떨었고 '아, 아프군요, 그만! 아, 정말 지독하게 아파요, 내 사랑하는 친구여, 제발 빌 테니 그만 하시오. 아- 아주 고통스러워, 정말 고통스러워......하느님! 하아! 이건 정말 너무 심해요, 정말 이러시면 안-' 이라 말함으로서 반쯤은 코믹한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퀼티를 죽이는 장면에서 비장함이라든가 잔인함을 느끼기 보다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고, 그 비현실적인 느낌을 통해 퀼티라는 인물이 특정지어지는 한명의 인물인지, 아니면 환상에 불과한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바로 이러한 비현실적인 면이 롤리타에 대한 험버트의 감정을 더욱 사실적으로 대비시킨다.

한편, 험버트는 왜 롤리타를 임신시킨 사내가 아니라 퀼티를 죽인 것일까. 퀼티는 자신이 성불구라고 발언을 하는데,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는 죽임을 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퀼티는 성불구임에도 불구하고 롤리타가 험버트를 버리는 이유가 되었으며, 험버트처럼 작가 언저리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 실제 작가로서 명망을 획득한 인물이다. 험버트의 사랑이 상당부분 집착의 색채를 띠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09년 2월 22일에 <행복한 서점>이라는 이름의 서점에서 이 책을 샀다. 몇 번이고 읽으려고 집어 들었다가도 다시 내려놓고 내려놓고 했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지금, <위대한 개츠비>에 내가 집착하는 이유를 또다시 확인한 기분이다. 롤리타와 <험버트 험버트>가 비극적이 된 계기는 어디에 있을까? 어떤 이들은 <험버트 험버트>가 애너벨이 죽은 후 9세에서 14세 사이의 어린 여자아이에 집착한 것이 비극이며 잘못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험버트 험버트>가 어쩐지 개츠비인 것만 같고 롤리타는 데이지와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험버트 험버트>는 롤리타가 자신이 그려왔던 '님펫'이 아님을 1부의 마지막에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굴절된 사랑일 망정 그 사랑을 거두지는 않는다. 개츠비가 돈으로 데이지의 환심을 사더라도, 돈으로 환심을 살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 아니 이미 예전에 자신을 떠났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인해 자신이 사랑했던 데이지는 환상에 불과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가는 곳에 그녀가 있다는 것은 집착일까, 사랑일까. 집착하고 있는 자신을 또 다른 내가 보고 있으면서도 그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나,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경멸을 당하고 비굴함을 강요당하는 상황. 그것이야 말로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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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플란넬의 수의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2
헨리 슬래서 지음, 강성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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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플란넬의 수의>

데이비드 로빈스는 해거티 테이트 어소시에이트라는 광고회사에서 부사장 고든 테이트의 보좌역을 맡고 있다. 어느날 출근길, 사람들에 밀려 선로로 떨어져 죽을 위기를 넘기고 그의 회사 인물들도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는다. 먼저 카메라맨 로버트 번스테인이 해고된 후 집이 불에 타서 죽고, 자신의 상사 고든 테이트는 심장마비에 걸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데이비드 로빈스 역시 매일 복용하는 약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 죽을뻔할 위기를 다시 겪는다.

데이비드의 회사는 유아식을 만드는 버크사의 광고를 대행하고 있는데, '버크 베이비'라는 아기를 이용한 유아식품 판촉은 매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실제 태어난 아기를 버크 유아식으로 키워 건강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매달 광고로 삼는 방식이다. 그런데 데이비드가 회계장부를 조사하던 도중 AG라는 이름에 12만5천불이 지급되었음을 알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애니 갠더라는 여성이 회사의 사장을 방문하여 소란을 떨고 나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버크 베이비'의 모델이었던 아이가 사실은 뇌수막염으로 죽어버렸고, 은밀하게 애니 갠더의 아이로 바꿔치기 하여 계속 광고를 진행해 왔던 것이었고 죽거나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들이다.

소설의 각 장의 제목은 실제 광고문이라고 하는데 '산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뷔크 자동차)', '이제 잘 시간, 타이어를 바꿀때(굿이어 타이어)', '셔터를 누르세요, 그 뒤는 모두 맡겠어요(코닥)', '가장 친한 친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염색약)' 등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선전문구라고 한다. 헨리 슬레서 자신이 한때 광고업계에 종사하였던 경력이 있어 광고업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제목인 회색 플란넬은 당시 샐러리맨들이 즐겨 입던 양복으로, 군복이 회색 플란넬 양복으로 바뀌었을 뿐 광고업계는 전쟁터와 같다는 것을 비유한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나이>

어느날 루이스라는 남자가 데니슨을 찾아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으로 데니슨의 친구들에게 어떤 친절을 베풀었는지를 이야기 하는데 데니슨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루이스의 아내 네티는 어느날 요트를 타고 강을 항해하다가 일단의 청년들이 몰고온 모터보트 때문에 배가 전복되어 죽게 되는데 당시 데니슨은 당시 모터보트에 탔던 사람 중 한명이고, 루이스는 그들에게 교묘한 방법으로 복수를 한 것이다.

먼저 알콜로 문제가 있던 파울러가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술을 멀리하고 정상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시기에 최고급 술을 우편으로 부쳐 알콜 중독에 빠져 여자친구는 떠나가고 파울러는 폐인이 되도록 만든다. 다음으로 필 헤플화이트가 호색한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그의 회사에 여자들을 취직시켜 불륜관계에 빠지도록 만들고, 결국 그의 부인이 그를 총으로 쏘는 사건이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도박광인 윌리에게는 판돈을 조금씩 대주어 도박으로 인생을 파탄나게 만든다.

루이스는 데니슨의 약점은 무엇인지 알려달라면서 친절을 베풀고자 찾아왔다고 한다. 데니슨은 강박적인 상태에서 루이스를 살해하고, 현장 조사를 마친 경찰들의 뒷 얘기를 통해 데니슨의 약점은 화를 참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임이 밝혀진다.

 

<책도둑> - 빌 프론지니

고서점 주인으로부터 책도둑을 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무명의 탐정 이야기이다. 경보장치를 통과하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는 그에게 여자친구가 어느날 '속 빈 다리(술고래)'라고 놀리자 지도를 밖으로 가지고 나간 방법은 범인이 사장에게 선물한 속 빈 지팡이를 통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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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미스 프랭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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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코스 마을에 어느날 이방인이 방문을 하고, 늙은 베르타는 카를로스라는 가명을 쓰는 이 이방인이 악마라고 확신한다.

이방인은 마을의 바에서 일하는 샹탈 프랭에게 하나의 제안을 한다. 프랭이 알고 있는 곳에 하나의 금괴를 묻어두고 탐이 나면 훔쳐갈 수 있도록 하는데, 만약 프랭이 금괴를 훔쳐간다면 그녀는 '도둑질 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셈이 된다. 열개의 금괴는 이방인만이 알고 있는 곳에 묻되, 마을사람들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다면 금괴를 마을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한다. 이 제안을 마을사람들에게 알릴 것인지 말 것인지는 프랭의 몫이지만, 만약 프랭이 알리지 않는다면 이방인은 마을사람들에게 금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프랭이 박탈했다고 밝힐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살해 대상은 프랭이 될 것이다.

이방인은 열한개의 금괴 모두를 가지고 떠나게 된다면 자신이 믿고자 하는 바가 거짓이라는 게 증명될 것이지만 원치 않은 답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반대로 금괴를 가지고 떠나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좀 더 가벼워 질 것이라고 한다. 이방인의 정체는 무엇이고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일까? 그는 무기제조업자로 내세울만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며 살았다. 하지만 어느날 아내와 딸이 납치되고 납치범들은 체포 직전에 둘을 살해한다. 둘을 살해하더라도 납치범들이 체포를 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악에 물든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프랭은 마을 사람들이 그런 제안에 무관심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제안이 알려지자 마을사람들은 희생자를 찾기 위해 골몰한다. 그리고 마을사람들과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악을 체험하게 함으로서 신앙심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신부의 비뚤어진 선동을 마지막으로 늙은 베르타가 희생양이 된다. 하지만 살해 직전에 프랭이 금괴를 현금으로 바꿀 현실적인 방법이 없으며, 설혹 현금화를 감행한다 하더라도 대단히 위험한 일임을 상기시키자 마을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프랭은 이방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범죄자 아합이 성 사뱅에게 감화받은 이유는 아합의 질문에 성인이 자신도 유혹에 흔들릴 것은 당연하지만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 즉 성인이나 아합이나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작가 후기에서 파울로 코엘료는 <그리고 일곱번째 날......> 3부작,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1994)>,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1998)>, <악마와 미스 프랭(2000)> 을 마친다고 밝히며, 각각 사랑, 죽음, 부와 권력에 갑자기 직면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왠지 싸구려 소설 냄새를 강하게 맡았었는데, <악마와 미스 프랭>을 읽고 그 확신은 더 강해졌다. 긍정의 힘을 다루는 소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가 책을 팔기엔 그쪽 진영에 서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느낌을 받을 때, 더 그렇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991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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