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책의 서문은 존 레이 주니어 박사라는 인물이 쓴 것이다. 그는 원고의 저자가 <험버트 험버트>라는 인물로 1952년 11월 16일 구속된 상태에서 관상동맥 혈전증으로 죽었으며, 원제목은 <롤리타, 혹은 어느 백인 홀아비의 고백>이며 자신은 편집자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세르반테스가 <돈끼호테>에 관해 자신은 번역된 원고의 편집자에 불과하다고 밝히는 것과 같이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듯한 인상의 서문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자신이 에필로그에 <'롤리타'라고 제목이 붙은 책에 관하여>에서 직접 등장함으로서 존 레이 주니어 박사 역시 등장 인물에 불과한 허구임을 밝힌다.

 

1부

1910년 파리에서 태어난 <험버트 험버트>의 아버지는 리비에라의 호화로운 호텔 주인이고, 어머니는 '피크닉에서 번개에 맞았다'던가 하는 이유로 죽었다. 엄격한 이모 밑에서 자라던 그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애너벨이라는 소녀를 알게 된다. 해변에서 애너벨과 미숙한 성적인 경험을 하던 그들은 늙은 어부 (The Old man of the sea ; 해밍웨이의 The Old man and the sea의 변형)에 의해 방해받고 넉 달 후 애너벨은 발진티푸스로 사망한다. 이 강렬한 경험은 그가 아홉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어린 여자만을 사랑하는 상태가 되게 하고, 그녀들 중 특별히 자신의 마음을 끄는 여자아이를 '님펫'이라 부르며 갈망한다. 한동안 정상적인 삶을 위해 애를 쓰던 그는 자신의 내밀한 욕망을 숨기고 위장하기 위해 폴란드 의사의 딸 발레리아와 결혼하는데 그녀가 어린애다운 점을 다소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발레리아가 오히려 바람이 나 <험버트 험버트>를 떠나자 분노와 배신감에 정신이 이상해진 그는 요양원에 수용된다. 하지만 의사들을 속여 동성애자 혹은 성불능 진단을 내리게 만든 후 미국으로 떠나 이모부의 향수 사업을 물려받는다.

미국에 온 그는 램즈데일에서 샬로트라는 여성의 집에 하숙을 하게 된다. 그녀에게는 열두살 난 롤리타가 있는데 그는 한눈에 그녀가 '님펫'임을 알아보고 격렬하게 사랑에 빠진다. 롤리타는 무심하게 그에게 다가오고 <험버트 험버트>는 샬로트와 롤리타 모두에게 눈치 채이지 않을 만큼 그녀와 신체 접촉을 하며 그녀의 순결을 지켜주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샬로트가 그에게 사랑고백을 하자 그는 롤리타와 합법적으로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샬로트와 결혼한다. 롤리타와 둘만 있기 위해 샬로트를 살해할 공상까지 하는 <험버트 험버트>였지만 그가 샬로트를 죽이지는 못하리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내밀한 욕망을 기록한 일기를 샬로트가 몰래 보게 되고 분노와 수치심에 그 사실을 알리는 편지 몇 통을 써서 우체통으로 가던 그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롤리타의 합법적인 보호자가 된 험버트는 캠핑 생활을 하던 롤리타와 단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샬로트의 죽음을 당분간 숨기기로 결심한다. 샬로트가 입원한 병원에 가자며 롤리타를 데리고 떠난 그는 <도취된 사냥꾼들>이라는 호텔에 묵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생각하듯 롤리타가 순결한 아이가 아니고 이미 동성애적 경험과 이성애적 경험 모두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롤리타의 유혹하는 태도에 굴복하여 성적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그날 이후 롤리타와 <험버트 험버트>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험버트 험버트>의 관심을 끌기 위한 태도들은 사라지고 한껏 고개를 치켜들고 여러가지 요구를 하기 시작하는 롤리타에게 그는 끌려다닐 뿐이다. 오직 그가 점한 유리한 위치는 롤리타가 고아이며 이제는 갈 곳이 없다는 것 뿐이다.

 

2부

롤리타의 요구를 들어주며 값비싼 호텔을 전전하던 그들은 비어즐리에 잠시 정착하고 롤리타는 학교에 들어간다. 그는 롤리타를 남자들로 부터 보호(혹은 격리) 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롤리타가 시야에서 사라지곤 하는 얼마간의 시간에 악마적인 공상과 질투로 괴로워한다. 그가 괴로와하면 할수록 롤리타는 그에게 포악하고 잔인한 태도를 취한다. 롤리타가 학교 연극에 출연하게 되자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험버트 험버트>는 다시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한다. 롤리타는 자신이 여행경로와 목적지를 결정하겠다고 하고, 그들은 다시 호텔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여행 시작 직후부터 낯선 중년 남자의 추적을 받는 느낌(혹은 사실)에 시달리던 그들은 롤리타가 병에 걸려 어느 마을에 머물게 되는데 병원비를 지불하러 간 그는 롤리타가 병원에서 자취를 감추었음을 알게된다. 3년을 롤리타를 찾아 헤매던 그는 리타라는 여성을 만나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롤리타의 편지를 받고 그녀의 소재를 추적해 찾아내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밴 상태이며 그에게 원하는 것은 얼마간의 돈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를 떠나간 이유가 퀼티라는 극작가 때문이었으며 극작가가 그녀를 버려 현재는 시시껄렁한 남자와 구질구질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알고 자신과 함께 떠나줄 것을 간청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는 내 마음을 망가뜨렸고, 아빤 그저 내 삶을 망가뜨렸어요'라며 거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주는 그에게 그녀는 '너무 속여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런 게 삶인가 봐요'라고 말한다. 자신의 재산을 롤리타에게 모두 남기고 퀼티를 찾아간 그는 퀼티를 살해하고 자신은 경찰에 붙잡힌다.

 

소설은 많은 부분 현실감이 결여되어 있고 그로 인해 코믹하기까지 하다. 발레리아가 그를 떠날 때에는 '제 인생에 다른 남자가 생겼어요'라고 말하고, 험버트는 <이건, 이 말은 남편이 듣기에 좀 거북하다. 바로 거기, 거리에서 그녀를 때려눕히는 것은 불가능했다>라고 회상하며 '도대체 누구냔 말이야?'라고 묻는 그에게 그녀는 그들이 탄 택시의 기사를 지목하고, 택시기사는 자신이 새로운 남자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발레리아가 짐싸는 것을 거들어주고 험버트의 집 변기에 소변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고 나감으로서 험버트가 빗자루보다 좀 나은 무기가 없나 부엌을 뒤적거리게 만든다.

샬로트의 죽는 대목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를 죽이는 상상까지 하던 그가 일기장이 들통나 곤경에 처한 바로 그 때 그녀는 정말 개연성 없게도 차에 치어 죽어버린다. 죽음의 과정이 너무 사실감이 결여되어서인지 독자는 샬로트의 죽음과 험버트의 비열함을 연결시키기 어렵게 된다.

마지막 퀼티를 죽이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이다. 험버트가 총을 쏘는 장면에서 퀼티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여자처럼 아!하고 부르짖은 후 총알이 그를 칠 때마다 몸을 떨었고 '아, 아프군요, 그만! 아, 정말 지독하게 아파요, 내 사랑하는 친구여, 제발 빌 테니 그만 하시오. 아- 아주 고통스러워, 정말 고통스러워......하느님! 하아! 이건 정말 너무 심해요, 정말 이러시면 안-' 이라 말함으로서 반쯤은 코믹한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퀼티를 죽이는 장면에서 비장함이라든가 잔인함을 느끼기 보다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고, 그 비현실적인 느낌을 통해 퀼티라는 인물이 특정지어지는 한명의 인물인지, 아니면 환상에 불과한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바로 이러한 비현실적인 면이 롤리타에 대한 험버트의 감정을 더욱 사실적으로 대비시킨다.

한편, 험버트는 왜 롤리타를 임신시킨 사내가 아니라 퀼티를 죽인 것일까. 퀼티는 자신이 성불구라고 발언을 하는데,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는 죽임을 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퀼티는 성불구임에도 불구하고 롤리타가 험버트를 버리는 이유가 되었으며, 험버트처럼 작가 언저리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 실제 작가로서 명망을 획득한 인물이다. 험버트의 사랑이 상당부분 집착의 색채를 띠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09년 2월 22일에 <행복한 서점>이라는 이름의 서점에서 이 책을 샀다. 몇 번이고 읽으려고 집어 들었다가도 다시 내려놓고 내려놓고 했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지금, <위대한 개츠비>에 내가 집착하는 이유를 또다시 확인한 기분이다. 롤리타와 <험버트 험버트>가 비극적이 된 계기는 어디에 있을까? 어떤 이들은 <험버트 험버트>가 애너벨이 죽은 후 9세에서 14세 사이의 어린 여자아이에 집착한 것이 비극이며 잘못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험버트 험버트>가 어쩐지 개츠비인 것만 같고 롤리타는 데이지와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험버트 험버트>는 롤리타가 자신이 그려왔던 '님펫'이 아님을 1부의 마지막에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굴절된 사랑일 망정 그 사랑을 거두지는 않는다. 개츠비가 돈으로 데이지의 환심을 사더라도, 돈으로 환심을 살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 아니 이미 예전에 자신을 떠났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인해 자신이 사랑했던 데이지는 환상에 불과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가는 곳에 그녀가 있다는 것은 집착일까, 사랑일까. 집착하고 있는 자신을 또 다른 내가 보고 있으면서도 그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나,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경멸을 당하고 비굴함을 강요당하는 상황. 그것이야 말로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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