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오래전 헤어진 여자친구 수진에게서 어느날 연락이 온다. 수진은 내가 알고 지내던 대학 선배와 결혼을 하였고, 나는 그동안 캐나다 유학을 다녀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녀는 이혼을 하였고, 원치 않는 10억이란 돈이 생겼으니 카지노에 가서 모두 써버리자고 한다. 나는 쿨한 인간이 되고 싶은 사람이나, 이 제안에는 마음이 흔들려 수진과 강원랜드로 향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주인공은 이론적이나마 카지노의 생리에 대해 알고 있어 확률적으로 돈을 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룰렛, 슬롯머신, 블랙잭, 바카라 등을 하는 동안 머리속으로 알고 있는 지식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고, 수진 역시 돈을 탕진하러 왔다고는 하지만 막상 게임에서는 돈을 따려고 한다.

수진과 한방을 쓰면서도 수진과 육체적으로 엮이는 일을 피하며 생활하는 나는 엄마가 도박을 하는 동안 방치되어 있는 일곱살의 명혜, 그리고 사연이 있어 보이는 스무살의 윤미를 알게 된다. 어느날 윤미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아 모처로 이동을 하는 도중 윤미의 과거에 대해 듣게 된다. 광부로 일하던 윤미의 아버지는 광부를 그만두고 철물점을 운영하던 어느날 지금의 강원랜드가 건설되기 전의 자리에 있던 카지노에 드나들고, 그곳의 주차장에서 히터를 틀어놓고 자다가 숨을 거둔다. 민사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던 윤미는 아버지의 사망과 아버지가 도박에 빠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현재는 대학을 중퇴하고 카지노를 드나들고 있다. 윤미와 함께 찾아간 나이트클럽에서 윤미의 이복언니가 조직폭력배의 동생집에 치정문제로 방화한 사실까지 알게된 나는 윤미에게 애틋함을 느낀다.

한편 엘리베이터에서 수진의 전 남편이자 나의 대학 선배를 만나자 나는 수진이 이혼했다는 말이 사실인지, 수진은 대학 선배의 카지노 출입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는지 의심이 든다. 대학 선배는 나와 술을 마시자고 제안하고, 운동권이었던 선배는 자신이 변절한 것이 아니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확실성을 높이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선배에게 '형이 예전에 원했던 세계와 형이 살고 있는 세계가 일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선배는 나에게 '너는 변한 것이 없구나'라고 말한다.

술에 취한 나에게 명혜 어머니가 유혹을 하고 나도 자괴감에 그녀와 모텔에 가지만 모텔에 간 그녀는 화장실에서 오래도록 울고 나는 그녀를 보내고 홀로 잠든다.

수진에게 호텔 입구에서 여기서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고 나에게 수진은 '오빠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게 전부는 아닐 거야'라는 여운을 남기며 떠난다. 그리고 윤미에게 전화를 걸어 꿈 얘기를 한다.

 

가끔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림자를 여기 저기서 느끼는 경우가 있다. 얼마전 읽은 전수찬의 <어느덧 일주일>, 그리고 지금 읽은 <슬롯> 모두에서 나는 하루키의 그림자를 느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다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담담하게 자신을 제어해나가는 주인공의 태도가 그렇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문학상 수상작(문학동네 작가상, 세계문학상)이고, 공식적으로는 처녀작이며, 작가와 주인공이 겹쳐진다.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달갑지는 않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이 이후가 더 기대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30919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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