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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EBS라디오문학상 작품집 : 바보아재 외
유순하 외 지음 / 김영사on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다소 생소한 이름의 "EBS 라디오 문학상"은 "낭독하기에 좋고, 이야기와 감동이 살아 있는 우리 문학작품들을 발굴하기 위해 기획" 되었다. 책으로 발간된 것은 2회 뿐인 것 같고, 책 뒷면에 대상 수상작인 바보아재를 낭독한 오디오 CD가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다. 한창 라디오 독서실, 라디오 문학관 따위의 프로그램을 녹음해서 오디오북 듣는 데 취미가 붙었던 시기에 산 책인데, 종이책은 이제서야 읽는다.
마음에 와닿는 작품은 서진연의 <괴산>이다. 정빈-영희 부부는 괴산에 집터를 얻어 손수 집을 짓고 며느리 희수가 맡긴 손녀 서연을 키우며 살고 있다. 40년간의 고달픈 떠돌이 생활을 정리하고 이제 붙박이로 뿌리 내리는 하루 하루가 정빈에게는 고맙기만 하다. 한편, 남편이 죽고 시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생계를 위해 캐디 일을 하는 희수는 서연을 보러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불안정하나마 삶이 그럭저럭 살아지던 어느 날, 희수는 자신이 암에 걸렸음을 알게 되고 수술비를 걱정하다 시부모가 본인 몫으로 해준 괴산 집문서에 생각이 미친다. 하지만 노인네들의 마지막 생활 터전인 집문서에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차를 몰아 되돌아가는데 조수석에 낯익은 서류봉투가 놓여 있다. 서류봉투에는 집문서가 들어 있었다. 시아버지 정빈은 언제나 희수가 차를 몰고 떠날라치면 하늘에 대고 손전등으로 빛을 비춰 주었다. 혹시라도 희수가 뒤돌아 보면 배웅하는 빛들을 보고 위로를 얻으라는 뜻이었으리라.
유순하의 <바보아재>가 대상 수상작인데, 샘골 송순당의 바보아재와 그를 임종까지 지켜보는 장손 오상의 이야기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이 떠오르는 고졸한 맛의 작품.
구효서의 <여름은 지나간다>는 난해하고, 잔혹하다. 하는 전쟁통에 사상 때문에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북으로 갔다가 62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아내는 파는 염색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돌아온 집 부근에는 새를 잡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새를 잡는 족족 모가지를 꺾어 기절시키고 몇 겹의 투명 비닐 부대에 백여 마리씩 쑤셔 담아 발효시켰다가 호텔에 팔아 넘겼다. 열 대여섯 먹은 남자아이도 때때로 나타났는데 야구 방망이를 들고 왔다가 퍽퍽 소리를 수차례 낸 뒤 돌아갔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개를 두들겨 패는 소리였다. 파 역시 모기를 수북히 잡아 범무늬개구리 양식장에 팔았다.
TV는 하의 인터뷰를 따려 했지만 수월치 않았고, 의자에 앉아 육십년 이쪽 저쪽의 세월의 몽롱하게 회고하는 하에게 파는 무언가 먹을 것을 내밀며 '자셔요' 할 뿐이다.
김연수의 <벚꽃 새해>는 헤어진 정연이 선물로 준 태그호이어 시계를 되돌려 달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미 시계를 팔아버린 '나'는 정연과 함께 시계를 되찾기 위해 일시적으로 함께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시계방 아저씨의 병마용과 아내와의 '실행 하지 못했던' 여행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유타야에 있는, 보리수에 감싸여 땅 밑에서 올라온 불상 머리를 모티브로 쓰여진 소설.
권여선의 <봄밤>은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류머티즘 관절염에 걸린 수환과 알코올 중독에 걸린 영경의 생애 마지막을 신산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최민우의 <이베리아의 전갈>은 다소 아쉬운 작품으로 설정이나 디테일이 허술하다. 블랙요원이 장관표창 따위 때문에 조직에 등을 돌린다는 설정이나, 정직 처분으로 연금을 날린다는 표현 등은 작가가 공직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드러낸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요원들이 토사구팽 당하는 클리셰도 진부하다.
전재민의 <미염공>은 어느 날 일어나보니 수염 대신 풀이 자라나는 사내 이야기다. 탈모인 아버지가 자신을 부러워 하다 어느 순간 여성성을 띠게 되고, 어머니는 사회 생활을 통해 한껏 자신감을 획득하는 에피소드와 결합하여 경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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