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않는다
은희경 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여성 당선자 동인 작품집으로, 2000년에 발간되었고 다섯번째 동인작품집이다.

표제작은 은희경의 <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이다. 팔삭둥이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어머니의 도덕적 타락을 경험한 주인공이, 성당으로 표징되는 정상 세계로 재진입하고 싶어하는, 실현되기 어려운 욕망을 담은 피카레스크 소설이다. 은희경 특유의 재치와 입담 덕에 잘 읽힌다. 잘 읽히는 것만도 어딘가.

박자경의 <비닐 봉지 하나 새처럼 길을 가다>는 파편화된 도시인의 불안과 고독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들은 영문 이니셜로 표기되며, 그들 삶의 한 순간을 스케치하듯 그려내는데 딱히 와닿지 않는 작품이다.

송혜근의 <거울이 놓인 방>은 어딘지 모르게 강신재를 떠오르게 하는 부르주아풍 배경이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새엄마와 의붓딸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송우혜의 <치자꽃 필 무렵>은 고급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배계급 구성원의 일원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당숙모와, 그녀를 도우며 생계를 꾸려가는 인텔리 조카의 이야기이다. 상당히 고전적인 구성으로 짧은 분량의 이야기 속에 재미와 풍자, 교훈까지 담고 있어 그야말로 '단편소설'을 한편 충실히 읽은 기분이 든다.

김지수의 <패랭이꽃 한 송이>는 일종의 환몽구조식 소설이다. 주인공은 남편이 부도를 내자 낯선 공간으로 몸을 피신한다. 피신한 곳의 주인 할머니는 첫째 아들은 사고로 잃고 약간 모자란 둘째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난 후 다시 남편과 만난 주인공은 피임을 하며 한사코 아이 갖기를 거부했던 과거로부터 벗어나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한다.

전경린의 <목조 마네킨 헥토르와 안드로마케>는 결혼까지 생각했던 옛 남자친구가 동성애자임을 뒤늦게 알게되는 이야기다. 여성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남성과 여성, 그리고 그 경계까지 확장하여 섬세한 필치로 그린 짤막한 소설.

한정희의 <X>는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그 상실감을 청소년 상담전화를 받으며 달래는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는 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떠올리며 아이 또래 애들이 자살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정작 아이들은 '고통은 결코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다는 기억'만을 안고, '다음에 또 한번 자살을 시도한다면 그땐 꼭 성공하고 말리라는 결심' 할 뿐이다.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존재하는 그 심연의 시기에,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긴 할까...

윤명제의 <능안에서 살다>는 현실(아파트)과 능(치유의 공간)을 대비시켜 불치병에 걸린 중년 여성의 한 시기를 포착한 이야기다. 구도는 좋으나 알맹이가 부실하다.

조민희의 <우리들의 작문교실>은 2000년 당선 작품이다. 깜찍한 주인공 '나'와, 하나뿐인 단짝 위니의 이야기다. '나'는 어느 날부터 엄마 가게에 나타난 소설가 아저씨가 매우 좋았고 그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오던 그가 어느 날 부터 가게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위니가 그에 대해 알고 있다 했다. 위니의 말에 따르면 아저씨는 위니 엄마와 대학 동창이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저씨가 잘난 척 해서 싫어한다더라는 얘기 따위를 했다. 그런데 위니는 이런 말을 하는 도중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 롤러 블레이드를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에 '나'는 볼러 블레이드를 받아야만 우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위니가 이해 되지 않는다. 눈물 범벅이 된 위니를 떠올리며 롤러 블레이드를 주기로 결심한 뒤 '나'는 어제와는 다른 아이가 된 것 같다.

얼핏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연상시키는 소설로 깜찍한 주인공이 세상 만사를 잘 알고 있는 조숙한 아이인 듯 싶지만, 사실은 어른의 세계를 엿보아 버린 위니가 먼저 조로(早老)의 저주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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