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인지, 기운없고 하늘만 쳐다보게 되는 그런 날이 있다.

가슴 한 구석이 다크서클이라도 낀 것 같은 칙칙한 하루.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얼굴로 활기차게 걷는데

내 구부정한 어깨는 회색빛 먹구름처럼

우울한 그림자를 몰고다니는 것 같은 ...

아는 이름을 떠올려보고 책장을 뒤적여도

그곳에 닿기 전에 기억이 휘발성 작용을 일으킨다.

 

그때 썰물처럼 들려오는 오미희의 목소리가 애인보다 반가울까.

연인에게 수화기를 돌리듯

이 시간이면 자연스레 라디오를 켜는 것도.

그녀에게 중독된 탓이다.

심심할 때, 외로울 때, 허무할 때 ~!!

라디오는 내 애인.

어머니의 곰탕 끓이는 집으로 가면

가슴 시린 우울은 걷어질 꺼라는

그녀의 속살거리는 목소리가 사라지자

설렁탕 집에 가서도 설렁탕은 고이 모셔두고

김치에 돌솥밥만 비우고 나오는 내가

오늘은 그만, 곰탕에 밥 한그릇 후루룩 말아먹고 싶어진다.

 

바비킴의 목소리는 슬프다.

노래가사가 슬퍼서 슬픈건지

그의 목소리때문에 더 슬프게 들리는건지...

"너무 사랑했나봐

아직 사랑하나봐

오직 너만 사랑하게 태어났나봐

1년을 하루같이 아무것도 못하고

너만 생각하고 있잖아

아무리 기다려도 내게로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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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지지직~ 거리는 정체불명의

소리들을 조합해야 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을 비워놓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다만, 노트북을 켜고, 일상을 시작하기 전

자연스런 일과가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다 더 마음이 가고 애틋한 프로를 만나기도 한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면 사무실에 홀로 있어도

홀자라는 느낌보다 둘이라는 생각에 덜 외롭고,

오만가지 생각의 갈래가 가지를 쳐갈 때

차분한 클래식 음악이 대신 생각을 정리해주기도 한다.

남의 사연을 엿들으며 누군가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괜시리 고맙게 느껴지고, 이물없이 DJ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애청자의 사연은 아날로그의 도타운 정을 느끼게 한다.

만나서 이야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화장을 하고 치장에 신경써야 하는 격식에서 자유로운게

또한 라디오DJ들 아닌가.

나는 화장을 즐겨하지 않는다.

스킨과 로션, 그리고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면 끝.

어쩌다 형식을 갖춘 미팅이 있을 시엔 립스틱 하나 덧대는 정도.

약속을 하더라도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는 것보다

불현듯 그리운 사람을 우연히 만나듯 그렇게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일부러 그를,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아침부터 옷에 신경쓸 예정 따위는 없는 것이다.

간혹 라디오의 수다가 일을 방해하기도 하고,

대화에 끼고 싶어 볼륨을 높이기도 하지만

얄밉지 않은건 치근덕대는 집요함이 없기 때문이다.

꼭 보아달라고 방송 전에 예고편을 달리지도 않고,

다시 보아 달라고 재방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질리지 않고,

우연히 듣고 싶더 목소리를 만나면

오랜 친구를 만난듯 반갑기까지 한 것이다.

그래서 난 라디오가 좋다.

라디오같은 나.

그래서 난 라디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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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나무의 고통의 흔적입니다.

.....

가을이 가기 전에,

단풍이 지기 전에

나무를 보러 산으러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

고통의 흔적을 씻기 위함이 아닐까요.

당신이 고통 속에 있다면,

당신이 시련 속에 있다면

당신은 아름다워지기에 충분합니다. "

 

나무의 사색으로 시작한

오미희의 가을을 닮은 목소리.

단풍을, 가을빛을 지닌 아름다움으로만 생각하지만,

그것은 나무의 고통이라고,

지금 단풍을 닮아 아름다운 사람도

지난한 시간을 거슬러 온 거라고.

이야기한다.

가을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내게 말을 거는

낙엽들...

제 빛을 내기 위해

삭이고 견딘 나무의 시간을 기억한다면,

잃어버린 길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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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밤 9시, 작업실에 홀로 남다

강남역 특유의 활기와 불빛이 새어든다.

책에 고개를 쳐박고 읽으면서도

기억은 내내 과거와 현재를 떠돌며

온갖 잡생각을 끄러모은다.

그때, 라디오에서 들리는 익숙한 노래!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기억은 특정 시간을 가두고,

사랑은 기억 속에서 재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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