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 사일러스
조셉 셰리던 르 파누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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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마담은 잠결인 듯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시트를 꽉 붙잡고 얼굴을 틀었다.

첫등장부터 호감은 아니었던 마담 드 라 루지에르. 마담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버지 오스틴은 왜 이런 여자를 가정교사로 들인 것인지...
묘지 근처에서 만난 수상한 남자와의 알 수없는 은밀한 대화는 그 내용이 마치 범죄모의를 하는 듯 하고, 놀에 우연히 들린 행상이 자신을 알아보자 매수하는 등 마담의 수상한 행동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제는 모드의 친척인 레이디 놀리스마저 피하려는 의도가 빤히 보인다. 자는 척이라니! 이런 얕은 꼼수가 언제까지 통할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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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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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펴냄)

가끔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가곤 하는 스타벅스의 상호명이 <모비 딕>에 나오는 피퀴드 호의 일등항해사 스타벅에서 유래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비 딕을 쫒는 에이해브 선장과 그의 선동과 명령에 움직이는 선원들 중 유일하게 이성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타벅 만큼이나 유명한 첫 문장.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첫줄 "오늘, 엄마가 죽었다."만큼이나 강렬한 시작이다. 방랑자, 세상에서 추방당한 자라는 뜻의 이스마엘에서 유래된 이슈메일. 이름이 이슈메일이라고 밝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이슈메일이라고 불러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인간의 모험과 도전을 그려내는 몇 몇의 작품 중에 고기잡이를 통해 인생을 비유적으로 그려내었던 노인과 바다가 연상되었다. 노선장 에이해브가 집착하며 쫒는 모비 딕은 단순한 그냥 '흰고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주마의 발주악벽을 막기 위해 씌우는 눈가리개. 우승을 향한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말에게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게 하고 오로지 앞만 보게 만든 것이다. 에이해브는 복수라는 눈가리개로 이성을 가린 것은 아니었을까.

모비 딕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외치는 자에게 주겠다며 돛대에 못박은 금화는 선원들을 동요시키며 에이해브의 명령에 하나가 되어갔다. 광기에 사로잡힌 지도자가 불러들이는 위험은 그 광기가 복수심이든 권력욕이든 그를 따르는 자와 따를 수 밖에 없는 이들 모두에게 비극이다. 에이해브의 반짝이는 금화는 현실의 우리에게 젊은 가슴에 불을 지피는 애국심이 될 수도 있고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지역감정과 학연, 혈연, 지연 등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신의 다리를 앗아가고 다른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모비 딕을 에이해브는 철천지 원수로 여긴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한 생계의 방법으로 포경업을 하는 뱃사람들 만큼이나 죽지 않기 위해 발악해야하는 고래 모비딕도 모비 딕의 입장에선 오히려 사람이 원수가 아닐까. 영역을 침범한 것은 고래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다.

복수에 눈 먼 에이해브는 두 아들을 모두 바다에 묻어야하는 위기에 처한 레이철 호 선장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며 복수를 위한 광기를 지속했다. 바다위에서 만나는 모든 배에 흰 고래 모비 딕을 보았느냐 물으며 행적을 쫒던 그는 마침내 숙원하던 만남을 가졌다. 에이해브의 광기는 멈출 줄 몰랐고 에이해브와 피쿼드 호의 비극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슈메일이 퀴케그의 관으로 만들어진 구명부표에 올라타 바다 위를 표류하고, 그런 그를 건져 올린 것이 레이철 호 였다는 것은 드라마틱한 아이러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인생에서 끝내 놓지 못하는 자신만의 모비 딕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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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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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 (지음) | 샘터 (펴냄)

문학은 작가가 자신의 개인적 체험, 또는 상상력을 통해 하나의 허구적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일어날 법한 얘기를 창조해서 말한다. (중략)그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고 분명 남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문학작품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문학의숲을거닐다> 작가의 말 중에서

한 번 읽고는 책장에서 잊혀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남는 시간이 무료해 특정 장소에 비치되어 있는 도서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가 소장하기 위해 이미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매로 이어지는 책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소장을 목적으로 구매하는 책들은 대다수 고전문학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재독을 하기 위해서다.

가깝게는 백년 전쯤을 시작으로 멀게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이르기까지 문학작품을 통해 배우고 느끼게 되는 감동은 매번 다르다. 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시대와 문화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의 이야기인 듯한 마음 깊은 곳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시간 사랑받으며 읽혀지는 이유이기도 할것이다.

아주 널리 알려진 고전문학의 경우에는 출판사별로 소장하고 있다. 번역에 따라 달라지는 감동의 미세한 차이에 시각의 차이도 비교하며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하게 특정 출판사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A라는 책의 번역은 b가 좋고 B작품은 c가 좋기도 하니까. 이건 그저 개인의 취향일 수 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작가의 말에서 장영희 교수는 말하고 있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너와 내가 같고,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뇌와 상처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라고.

겉표지에 보이는 숲 사이에 나열된 작품들 이외에도 많은 문학작품에 대한 소개가 되어있다.

"걷다", "달리다"가 아니라 정말 "거닐다"라는 표현이 딱 맞게 찬찬히 호흡하듯, 휴식하듯이 읽혔다. 개인적인 얘기를 조금만 줄이시고 작품에 대한 얘기가 조금만 더 많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다. 읽었던 문학작품이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겼던 부분이나 가까운 시일 안에 읽으려고 준비중인 도서에 대한 소개는 숲에서 길을 잃지 않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마치 헨델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숲길에 떨어뜨려 두었던 조약돌들이 달빛에 반짝이는 것처럼, 장영희 교수의 작품 해설은 짧지만 쉽고 강렬했다.

같은 책을 5년, 10년 후 재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그간의 경험과 축척된 독서량을 바탕으로 마치 새로 눈 뜬것처럼 보여질 때가 있다. 매번 다른 교훈과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되는 문학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

두껍고 어려워 미뤄두었던 <모비 딕>을 시작으로 장영희 교수의 길 안내를 받으며 문학의 숲을 거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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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집, 여성 - 여성 고딕 작가 작품선
엘리자베스 개스켈 외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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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집, 여성

엘리자베스 개스켈, 버넌 리, 루이자 메이 올컷, 메리 셸리 (지음) |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펴냄)

상상력은 경험에 바탕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보고 듣고 만지는 등의 오감과 느낀점까지, 경험이 많을수록 상상력의 크기도 커진다는 얘기였다. 오래전, 여성들의 활동이 제한되던 시기에 그녀들은 어떤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특히 앞의 3편의 이야기인 <회색여인>, <오키 오브 오키허스트, 팬텀 러브>, <비밀의 열쇠>가 여성의 시각에서 서술되고 있는 것과 달리 마지막에 수록된 메리 셸리의 <변신>은 남성의 시점으로 진행되며 타인과 몸을 바꾸는 신비한 변신에 관해 얘기한다.

영혼을 담보로 한 악마와의 거래를 소재로 한 작품은 여럿 있었지만 육체를 뒤바꾸는 3일간의 거래라... 이 거래를 믿어도 될까?

세번째 수록작인 <비밀의 열쇠>는 내용도 흥미롭지만 작가가 <작은 아씨들>을 쓴 루이자 메이 올컷이라는 사실이 먼저 흥미를 끌었다. '가족애의 따뜻함을 그려내었던 그녀가 쓴 복수와 비밀은 어떤 결말을 보여줄 것인가?'

낯선 남자의 갑작스런 방문 이후 돌연 죽음을 맞은 리처드 경과 두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난 뒤 더할 수 없이 사랑하던 남편을 향한 사랑을 거두어들인 트레블린 부인. 결혼 전 남편에게 또 다른 아내가 있었다는 충격적인 비밀에 아내 앨리스의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사망자 명단이 뒤바뀌고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족을 체념하는 일은 우리에게도 있었지 않은가. 6.25라는 전쟁으로 북에 두고 온 아내와 남쪽에서 다시 꾸린 가정 사이에서 번민하는 가장의 얘기는 그리 멀지 않은 우리 할머니 세대에도 실재하는 이야기다. 뻔하게 흐르리라 예상했던 결말은 살짝 비껴가며 반전의 재미를 더했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회색여인>을 처음 읽었던 때를 기억한다. 입을 다물 수 없었던 충격적인 결말에 앞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복선이란 이런 것이지!'하고 감탄을 숨길 수 없었던 작품이다. 거듭되는 반전과 뒤늦게서야 알게 된 수많은 복선들이 회색여인이라 불렸던 아나의 인생을 더 측은하게 여기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각각의 작품에 등장했던 여주인공들에게선 연민과 응원을 함께 보내게 된다. 그러나 <오키 오브 오키허스트, 팬텀 러브>의 앨리스 오키에게는 왠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260년 전 동명의 조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1626년의 앨리스가 남편과 함께 자신의 연인을 살해했듯이 1880년의 앨리스는 그녀 안의 또 다른 앨리스와 함께 남편을 죽음에 몰아붙인다. 니콜라스 오키의 저주가 이루어진 것일까, 아니면 앨리스 오키를 사랑한 남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도 타고난 것일까?

<오키 오브 오키허스트, 팬텀 러브>와 <변신>은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열린 결말로 읽힐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바로 이 점이 읽을 때마다 다른 감상을 남기게 되는 매력이다. 단편이지만 그 깊이는 결코 짧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느낌과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을지 벌써 다음 재독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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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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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상)

표도르 도스또예프스키 (지음) |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함께 읽은 벗들이 모두 "어렵다 어렵다" 한다. 기간을 길게 두고 읽으면 오히려 더 어려울까봐 오로지 이 한 권에 집중하며 읽었다. 어렵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어렵지 않다고 하기엔 '내가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걸까?'하는 부끄러운 의문이 들었다. 도스또예프스키의 저작 의도를 과연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려나...

상권에서 라스꼴리니꼬프가 괴로워하며 병증을 보이는 이유는 전당포 여주인 알료나를 살해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그에게 전당포 노파는 사람이 아닌 사회에 무익하고 추하고 해로운 "이"일 뿐이었다. 자신의 행위는 '이'를 제거하는 것이며, '이'에게 핍박받는 이들을 구원하려던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이 오히려 핍박받던 리자베따를 죽이게 됨으로써 무너진다. 라스꼴리니꼬프가 생각하는 돈의 부족은 개인적으로는 자유의 제한, 사회적으로는 빈부의 격차와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사회악이었다. 사회악을 제거하기 위해 살인이라는 방법을 쓰려했던 라스꼴리니꼬프. 그에게 그럴 권리는 누가 주었나? 결국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유도 정의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을 포함한 타인들에 대한 혐오감을 얻었고 심리적인 부자유로 인해 잡히기를 원하는 상태가 되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아무와도 소통할 수 없고, 아무도 사랑할 수 없고, 아무런 기쁨도 없다. 그것이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육체의 구속은 심리적 자유로 향하는 여정이다. 그 시작은 소냐에게 한 고백으로 부터다. 라스꼴리니꼬프의 고백을 들은 소냐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불쌍한 사람이라며 연민한다. 이미 그가 받고 있는 벌의 무게를 짐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권에서는 죄를 지은 또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보였다.

환경과 배경을 죄를 저지르는 원인으로 보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던 라스꼴리니꼬프는 수감생활을 하면서 뉘우침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자신의 희생으로 해결하던 소냐와는 대조적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자수를 행동으로 옮기지만 죄책감이나 뉘우침의 결과는 아니었다. 오히려 뽀르피리의 말대로 자수를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이성적 판단이 컸다.

그렇다면 라스꼴리니꼬프의 결말이 자신의 욕심과 평판을 위해 비열하게 소냐를 이용했던 루즨과 욕정에 눈멀었던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맞이한 결말과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루즨은 타인들에게 지식인이라 평가받는 레베쟈뜨니꼬프와 라스꼴리니꼬프의 증언에 비겁한 꽁무늬를 빼기 바빴고,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목적을 이루려던 그 순간에 두냐의 눈빛을 보고는 마음을 바꾼다. 두냐의 눈빛에서 자신이 결코 닿을 수 없음을 본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죽음을 선택하고, 소냐에게서 사랑과 희생의 결심을 본 라스꼴리니꼬프는 진정한 참회를 하게 된다. 모두가 손가락질 하던 소냐가 라스꼴리니꼬프에게는 영혼의 구원자인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적어도 세번은 읽어야 <죄와 벌>을 읽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은 이해했으나 숨은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반드시 읽어봐야할 고전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그렇다, 반드시!

<죄와 벌>을 읽지 않고는 고전문학을 읽었다고 말할 수 없겠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에서 그 넘버가 왜 1번, 2번인지, 그만큼 꼭 읽어봐야할 명작이라서가 아닐까하는 짐작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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