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절판


두 사람이 친구의 선을 넘은 것은, 게이코씨가 계단을 굴렀기 때문이었다. 알게 된 지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둘은 다른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점심을 먹으려고 도서관을 나왔다. 도서관에서 한참 걸어나오다 보면 한단짜리 계단이 있는데, 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던 게이코씨가 미처 그걸 모르고 발을 헛디디면서 앞으로 굴렀다. 마치 슈퍼맨이 하늘이라도 나는 것처럼 몸을 좍 펴고 쓰러져 있는 게이코씨를 보고, 함께 있던 다니무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덩달아 모두들 웃었다. 물론 도리고에씨는 웃지 않았다. 게이코 씨는 어쩐 일인지, 금방 일어나지 않고 쓰러진 자세로 턱을 치켜들고 남자들을 노려보았다. 웃음소리가 그쳤다. 게이코 씨는 남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쏘아보면서 눈물을 머금었다. 당황한 남자들은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물론 도리고에 씨는 달랐다. 게이코 씨에게 다가가 두 손을 내밀었다. 게이코 씨는 도리고에 씨의 두 손을 잡고 일어선 후, 도리고에 씨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쿨쩍쿨쩍 울었다. 구르면서 까진 턱에서 피가 스며나와 도리고에 씨의 소중한 하얀 셔츠에 얼룩이 졌지만,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도리고에 씨는 게이코 씨에게 미칠 듯한 애정을 느꼈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면 게이코 씨를 꼭 껴안고, 온몸을 깨물어 버리고 싶은, 그런 격렬한 충동을 느꼈다.-137-13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