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큰 나무
고규홍 지음, 김성철 사진 / 눌와 / 2003년 4월
절판


대개의 큰 나무들은 신성한 나무로 받들여져서,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당산나무로, 혹은 삶에 지친 몸을 쉴 너그러운 정자나무로 오랫동안 사람의 곁을 지켜왔다.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큰나무들이 그 같은 역할을 해왔고, 그래서 수백 년을 아름다운 자태로 살아왔다. 또 놀잇감이 그리 많지 않던 옛날에는 어린아이들의 가장 좋은 놀이터이기도 했다. 나무를 기어오르며 숨박꼭직을 하고, 배가 고파지면 나무의 꽃이나 열매를 따먹으면서 놀 수 있었다.-137쪽

나무 앞에서 우리는 춤을 췄다. 덩실덩실. 절로 춤을 추게 한 나무는 높은 언덕 마루턱에 홀로 서 있는 반송 한 그루였다. 언덕 아래 큰 길가에서부터 눈에 들어온 둥근 공 모양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기뻐 춤을 췄고, 언덕을 허위허위 올라 나무 가까이 다가서서는 그리도 고운 자태의 나무가 크기 또한 작지 않은 것이 놀라워 춤을 췄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무 밑둥치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줄기가 사방으로 고르게 뻗어 나온 신비로운 나무의 생김새는 우리의 춤바람에 신명을 더해 주었다. 즐거웠다. 이르봄, 나무 주변의 언덕 위로는 아직 초록의 새싹이 돋아나지 않았지만, 소나무의 한 종류인 반송의 푸른 잎은 나른한 봄볕에 반짝이고 있었다.-147쪽

나무가 한자리를 지키며 수백 살씩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신비한 일이 아니다. 정작 신비로운 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진다는 것이다. 말없이 한자리에서 자라나는 나무들은 세월의 연륜이 쌓일수록 줄기는 점점 더 늠름해지고, 가지는 더 넓게 퍼진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젊었던 때의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사람과는 사뭇 다르다. 바람막이 하나 없는 넓은 들이나 산꼭대기에 홀로 선 나무들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줄기가 거센 바람을 맞아 부러지거나 썩기도 한다. 그러면 부러진 자리 옆으로 새 움을 틔워 줄기를 만들고, 썩어 구멍난 곳은 네 스스로 감싸안으면서 시치미를 뚝 떤 채 그 자리에서 새로운 나무로 거듭 태어난다.-214쪽

큰 나무를 찾아 나서는 일은 이 땅의 자연에 묻혀있는 사람살이의 알갱이를 찾는 일이며, 아울러 나무를 키워낸 산하의 강인한 땅힘을 찾아내는 일이다.-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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