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전혜린은 말했었다. "객관적으로 짧은 그러나 주관적으로는 지루하게 긴 우리의 생에서 그래도 진주빛 광채를 지닌 기간이 있다면 그것은 유년기리라. 유년기 그것은 누구에게나 실락원이다. 어린시절은 의외의 놀라움, 신비와 호기심, 감동에 넘친 지루하지 않은 한 페이지다"

난 전혜린의 이런 따뜻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말이다. 나에게 있어 유년기 그리고 그 이후의 짧은 기간이 나의 기억에 자리잡고 있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던 것에 올인! 내가 좀더 글발이 된다면 나의 이런 기억들을 글로 써내려가겠지만 아쉽게도 나에겐 그런 재주가 없다. 그래서 더욱 '멸치'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더 정확히 얘기한다면 '멸치'속의 '나'가 부럽다. '나'의 어린시절이 샘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어구와 필체로 잔뜩 써져 있으니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어린 시절은 작가가 구사한 미사여구와는 전혀 딴판으로 우울 그 자체이다. 집을 나간버린 어머니, 방황하는 아버지, 어니니가 집을 나가버린 이유일지도 모르는 외삼촌 달구,  이 모든 것들은 결코 '나'의 인생에 한치의 빛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나'의 인생의 먹구름일 뿐이다. 하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외의 존재들은 인간오염에서 '나'를 구제해주며 '나'의 얘기가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나를 만들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져보길 바란다. 나의 구성성분은 무엇인지 과자봉지 뒤의 성분 퍼센트처럼 명확하진 않더라도 나의 모습을 만들어준 것엔 분명 그 차지함에 있어 순위는 있을 것이다. 제발 그 순위의 맨 위를 차지하는 것이 개인적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인지 아님 그 사람들한테 한껏 상처 받은 후 그 상처를 치료해준 인간외 것인지는 누구나 다르겠지만 내가 저 깊은 곳에서 원하는 이름들이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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