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궁의 묘성 - 전4권 세트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보게 된 계기는 순전히 '칼에 지다'라는 책 때문이다. '칼에 지다' 또한 아사다 지로의 책인데, 정말 감명깊게 읽었다. 올해에 읽은 책 중 인상깊게 읽었던 책을 몇권 뽑으라면 그 중 '칼에 지다'와 '창궁의 묘성'을 자신있게 가리킬 수 있으리라. 이 책 '창궁의 묘성' 또한 '칼에 지다'와 같이 역사적 사실에 배경을 둔 소설이다. '칼에 지다'가 일본 막부 말기 '신센구미(신선조)'의 일원인 '요시무라 간이치로'라는 인물을 시대라는 용광로속에서 녹여버렸다면, '창궁의 묘성'은 뜻밖에도 배경을 중국(정확히는 청나라 말기)으로 옮겨와, 나날이 기울여져가는 청나라 왕조를 거대한 땅덩어리를 노리는 서양 열강 제국들의 먹잇감으로 만들었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뚜렷하다. 자신의 야욕을 이루어내기 위해 온갖 노림수를 쓰는 인간들과 자신의 일신은 생각치 않고 오직 대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인간들의 대비로 확연히 구분되어진다.
 
소설은 문수와 춘운이라는 두 명의 인물이 연다. 그리고 이들은 시종일관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객체로서 스토리를 양분하여 진행시킨다. 그러나 이 둘의 이야기가 진짜는 아니다. 이 진짜가 아니라는 의미는 두가지이다. 한가지는 정말 말 그대로 이 둘은 실존인물이 아닌 소설속 양념으로써 아사다 지로에 의해 탄생한 인물이라는 점과, 나머지 하나는 이 두 인물의 성장과 성공, 실패에 관한 이야기가 아사다 지로가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사다 지로는 이 두 인물이 발 디디고 서 있는 그 땅(청나라)과 그 시간(청나라 말기)을 말하고 싶어한 것이다. 그 시간, 그 땅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것이 아사다 지로가 스스로 풀어나가고 싶어했던 이야기의 중심이다.
 
이 소설은 수많은 갈등을 품고 있다.
 
먼저 청나라는 한(漢)족의 나라가 아니다. 만주족의 나라이다. 하지만 만주족은 한족을 중용하여 청나라를 이끌어가는데, 어찌 갈등이 없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예로 '만한전석 滿漢全席'만 보더라도 두 족(族)들의 암묵적인 반목이 그 시대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두번째로 서태후와 광서제의 갈등이다. 정확히는 이 둘간의 갈등이라기 보다는 환관(내시)들과 문관의 갈등, 그리고 보수세력과 진보세력간의 갈등이다. 이는 중국내의 갈등으로 볼 수 있겠다. 또한 농민 혁명까지 포함하면 이미 중국은 안에서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세번째는 그 시대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서양 열강들과 중국과의 갈등, 그리고 일본과 중국과의 갈등, 서양 세력들(일본을 포함한)간의 갈등... 중국땅에 발을 디딘 외세의 모든 갈등이다. 청,일 전쟁이 있었으며, 영국과의 아편전쟁, 베이징 조약(이 조약으로 영국에게는 홍콩을, 러시아에게는 외만주를 빼앗겼다)등 등이 있었다. 결국 중국은 한마디로 안으로나 밖으로나 화약통이었다.
 
이 모든 갈등의 소재를 아사다 지로는 '창궁의 묘성'이라는 소설로 아우르며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시킨 것이다.
 
이 소설의 재미는 역사속의 정치를 다루고 있지만 그 시작부터 이것을 다루지 않는다. 개인의 입신양명을 다룸으로써, 나아가 이 개인이 중국이라는 나라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는 일명 성공 스토리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처음부터 무겁게 시작하는 것이 아닌, 한번 읽으면 도저히 책을 덮을 수 없는 이야기부터(인간의 본능을 다루는 오히려..이쪽은 판타지라 부를 수 있겠다) 시작된다.
 
여기에서 개인은 앞에서 언급한 두 인물 문수와 춘운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인물이 초반에 등장한다. '백태태'라는 한 노파인데 이 노파는 이 둘에 대한 운명을 점친다. 여기에서 '창궁의 묘성'이 등장한다. '창궁'은 중국 황제가 있는 '자금성'을 가리키며, '묘성'은 북두칠성의 한 별로, 나라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는 운명이 서린 별이다.
 
과연 누가 '창궁의 묘성'이 될까..(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
 
문수와 춘운은 나이차가 있긴 하지만 둘 사이의 우정은 끔찍하다. 하지만 이 둘의 운명이 가리키는 방향은 서로 다른 곳을 가리킨다. 이 둘은 서태후와 광서제만큼이나 가까우면서(서태후와 광서제는 피가 섞이지 않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이다) 멀다. 문수와 춘운이 변방에서 중앙으로 진출하면서(이 진출과정 또한 매우 흥미롭다) 점점 이야기는 무거워지고 그 스케일이 커진다.
 
청나라 말기, 중국은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이려 한다. 천자(중국의 왕)가 존재하면서 서양 방식의 정치 체제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영국과 일본을 따라 하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의 이 시대는 개혁말고는 답이 없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그렇고, 조선의 갑오경장이 그렇다. 중국은 이미 양무운동으로 서양식 병기와 군대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이는 외세를 견제하려는 움직임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내의 크고 작은 변란들을 제압하기에도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고, 결국 변법운동도 실패로 끝나갔다. 이 모든 개혁의 실패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나라가 바뀐 것 만큼이나 청나라 또한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결국은 청나라는 얼마안가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천자가 사라지고 말았다.
 
간단하게나마 역사적 배경을 풀어놓긴 했지만, 이 소설을 읽어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말 뿐이 나오질 않는다. 이 모든 이야기를 두 명의 입장에서 그리고 두 명의 운명의 끈으로써 풀어냈다는 점은 개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정말 아사다 지로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인간의 운명을 믿고 싶다. 인간이 운명을 개척하든, 아니면 하늘에서 내린 천운을 순순히 받아들이든..운명은 분명 존재할 듯 싶다. 운명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던지(그래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던지) 아니면 자신 밖에서 맴돌며 자신을 조종하던지(그래서 정해진 운명을 가게 되던지) 간에 말이다.
 
한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들은 그들 자신만을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이미 나라의 운명을 놓쳐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느꼈다. 인간이 인간을 다스린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새삼 느꼈다. 소수의 인간 때문에 그 뒤에 서있는 엄청나게 많은 인간들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정말 무서운 것이다.
 
 
 
강자이었음에도 결국 모든 것을 수탈당한 약자의 위치로 들어선 중국이 다시금 강자의 입장으로 세계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있는 것도 그렇고, 항상 약자의 위치에 있던 일본이 어떤 기회로 하여금 그들을 강자의 위치에 올라서게 한 것도 그렇고, 항상 약자(물론 항상 약자는 아니었지만...)이면서, 강자들 틈에 끼어 있으면서, 바람앞에 촛불 흔들리듯이 흔들거리면서도 한국이 당당히 세계속에 서 있는 것도 그렇고 ...(물론 이 소설에서 조선은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때의 시대는 조선을 버린듯한 인상을 받았다 - 일본인이 쓴 중국 소설이라 그런가??)
 
암튼...이들은 현재에 다시 갈등하고 있는 중이다. 정치를 잘 모르지만, 이 변화무쌍한 역사의 중간에 서있는 개인들(국가의 중요인사와 정치인들)은 과연 믿을만 할까? 그것이 궁금하다.
 
끝으로 중국의 이야기지만, 일본 작가가 그려서인지는 몰라도 후반부에 일본의 이미지가 상당히 부드럽다.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야생 육식동물들 속에서 일본은 그 이미지가 도망치는 먹잇감을 위하는 듯한 설정이 좀 못마땅하다. 이토 히로부미가 어떤 인간이 되었든...한국인으로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도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정말 대작이다. 흥미롭다. 그리고 시대의 목소리들을 들려준다. 그래서 알찬지도 모르겠다.
 
 
 
<덧붙임..>
 
역사소설을 읽으니..요즘 나온...김탁환의 '리심'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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