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와 함께 일하던 사람 가운데 유명 대학에 출강하던 연구원이 있었다. 그가 부하 직원과 함께 수개월의 시행착오 끝에 한 제품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나는 그 제품을 보자마자 "가망없다"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왜 안 됩니까?" 고객들이 요구하는 성능을 그대로 맞췄는데요."

그는 공격적으로 물었다.

"아니지. 내가 기대한 건 좀 더 높은 수준이라네. 먼저, 색깔이 칙칙하지 않나?"

"당신도 기술자시니 '색깔이 안 좋다.'라는 식의 정서적인 문제는 이야기 하지 말아주세요. 이건 공산품입니다. 좀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평가해 주십시오."

"정서적인 문제라고 말하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본 것은 이렇게 칙칙한 색깔의 세라믹 제품이 아니라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 제품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다시 고치라고 말한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그의 노력이나 그가 쏟은 땀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 완성품은 외관상으로 다른 제품과 비슷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보아왔던 것들과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결국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결과 마지막에는 이상적인 제품이 완성되었다.

"손이 베일 정도의 물건을 만들어라." 그래 나는 이렇게 요구했다. 너무 뛰어나고 너무 완벼갷서 손을 대면 손이 베일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만큼 흠잡을 데 없는 완전무결한 제품을 만들라는 의미였다.

'손이 베일 정도'라는 표현은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이 자주 쓰던 말이다. 정말 완벽한 제품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거기에 손대기도 주저할 정도로 그것을 동경하고 경외한다. 부모님은 그것을 '손이 베일 정도'라고 표현했다.

그 말이 내 입에서도 튀어나온 것이다. "이제 이 이상의 것은 없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을 완성할 때까지 노력을 아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창조라는 높은 산의 정상을 올라야 하는 인간의 중대사이며 의무이다.

-- 카르마 경영 中 p. 48~50 --



이 말이 너무 와 닿았다. '손이 베일 정도'....

나는 내가 했던 무엇이 되었든...'손이 베일 정도'로 했던 적이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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