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침몰 세트 - 전2권
고마쓰 사쿄 지음, 이성현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상,하권 두권으로 이루어져있는데..딱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1권은 SF 냄새를 풍기며(혹은 과학적)이고, 2권은 정치적인 느낌이 나는 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일본 주변의 한 무인도가 가라앉으면서 부터 시작하는 지질물리학의 지식은 꽤 신선한 느낌이다. 보통 재난영화, 재앙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소재가 바로 지구의 지질특성이나 환경변화에서 나오는 발상이라고 봤을때, 영화가 아닌 글로써 그 스펙터클함을 상상하려 하니 힘이 부치긴 했지만 영화보다 좀 더 그럴듯한 단편적인 지식들을 내비치고 있는듯하다. 그러니까 무턱대고 막 쓴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소재들을 가지고 만든 영화들을 보면 그 스펙터클함이 바로 바로 인식되어버리니까 그 거대한 광경들로 인하여 시원한 감은 들지만, 책을 통해 글로써 읽어 내려가려하니 거시적 상상보다는 미시적 상상때문에 생각이 자주 멈추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개개인들이 풀어나가야할 절망이라는 안겨진 과제와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이루는 작고 다양한 국부적 시스템들의 물리적 해체는 그럴듯한 논리로 풀어나간다.
 
물론 영화라는 이미지보다는 글이주는 정보는 스펙터클함의 거시적 상상보다는 좀더 세세한 상황을 표현하려는 미시적 상상을 더욱 자극했다. 또 읽어내린 글을 상상으로 다시 풀려하니 역시나 앞서 말한대로 힘에 부치긴 하였다. 무너진 세상을 머릿속에서 온전히 그려내는것이 이렇게 어려울줄이야. 물론 내가 상상했던 것들도 영화속 장면들에서 많은 부분 들여왔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일본이 지진으로 가라앉는 장면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순식간에 가라앉기 때문이기도 하지만(물론 1년여정도의 시간차는 있지만...), 왜 가라앉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원인들의 분석과 가라않기전에 취해지는 대책들 이런것들이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아닌가싶다. 1편은 일본이 가라앉을거라는 확신을 갖기 위해 알아보는 분석 과정들이 세세히 묘사된다. 맨틀과 지각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부터 범 세계적인 지진대와 환태평양 조산대와 같은 일본과 매우 관계깊은 지진대까지 이 책에 나오는 과학 지식(지질학적 지식) 중 용어 부분만 따로 정리해놓아도 왠만한 지구물리 몇 챕터는 공부한 것과 마찬가지 일 듯 싶다.
 
보통 SF라 하면 이런 과학적 근거가 되는 뼈대에 얼마마큼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살을 붙였는가가 핵심일 듯 싶은데. 이 부분에서는 나로선 만족스럽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오는 '과학적 근거 + 상상의 발로'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한 바로는 유일하게 일본만이 가라앉는다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왠만한 지진대가 지구적으로 깊숙히 관여되어있고, 또 그 피해 범위는 더욱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 요즘에 쓰이는 영화적 소재라면(비록 영화속에서는 유럽과 아시아 이렇게 덩어리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이 책은 한반도 남부를 제외하곤(이것도 거의 이야기되는 것이 없다) 오직 일본만이 덤탱이를 쓴다.
 
일본만이 가련한 피해자이고,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수도 없는 희생자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2차세계대전과 연관지어 일본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원폭 피해자라는 것과 연관지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2차세계대전때의 원폭 피해와는 좀 차이는 있다. 왜냐하면 원폭 피해는 일본을 선의의 피해자라 보고 그들이 2차세계대전때 행했던 짐승같은 행동을 희석한 것일 수 있겠지만(일본을 옹호하는 시각속에 나타남...), 이 소설속에 나타나는 일본만이 입는 피해는 오히려 그들이 아시아, 세계속에 융화되지 못함을 비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일본인들에게 지진이라는 시련을 가정하고 피해를 가늠해봤을때, 좀 더 독선적이지 않고 아시아와 세계에 융화되려고 노력한다면 자국민을 좀 더 구제하고 피해를 줄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시각을 바탕으로 쓰여져있다.
 
이 책에선 그동안 탈아입구론적인 일본의 정책때문에 일본 주위의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인의 구호에 어느정도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본이 그 주위의 나라(한국과 북한을 포함하여)에 이웃의 정으로 구원해달라는 것이 아닌 인류애적인 감성을 가지고 구해달라는 것은 어찌보면 일본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그들도 그들 자신이 아시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냉소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2권에서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것들이다.
 
작가는 무너져 내리고 가라앉는 일본을 무덤덤히 그리고 가능한한 비참하게 그리려 하고 있다. 작가 자신은 아마 그럴듯한 악몽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작가가 꾸었던 이 악몽을 일본인들도 같이 꾸어보자고 동참시키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악몽은 어느 한 사람(이 책의 작가)만 공유하기엔 너무 아까운 악몽이다. 그러니까 이런 악몽은 꿈 꿀 만하고...어차피 꿈과 현실은 다르니까 이 악몽을 깬 순간 일본인들은 기쁨의 안도를 느끼며 정말 예전과는 다른 일상을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것을 작가가 노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가끔 정말 무서운(혹은 너무 슬픈...) 악몽을 꿈꾼 다음에 잠에서 깨어 그것이 한낱 꿈이고 허상이었다고 느끼는 순간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며 정말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특히 어렸을때 꾸는 꿈 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꿈과 같은...)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전체적으로 든 생각은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을 향해 경고를 한다기 보다는 일본인들이 느껴야 하는(일본인들을 계속 존재케 하는 이 땅과 국가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일본인들이 가지는 자신만을 위하는 독선적인 논리와, 일본이 하는 행동은 절대로 그릇된 것이 아니며, 절대로 나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결국엔 전후(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오직 일본의 성장과 발전만을 위해 희생한 일본인 아버지, 어머니들을 잊고 지내는 전후 2세대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라는 생각이 든다.
 
'너희들이 바라보는 도쿄의 스카이라인이 시사각각 변하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제품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 지금, 그 성장의 이면속에 희생하고 고통당했던 전후세대를 외면한다면 너희들의 모든 부는 일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유흥에만 힘쓰는 니들만이 옳고 잘 산다고 떠들지 말고...자중하며 살아라...'
 
나는 웃기게도 이 책속에서 이런 글을 본 듯 하다.
 
이 책이 1973년에 쓰여졌으니까 이 말이 맞을 듯 싶다. 지들(일본인들) 속에서 지들만 잘 살아보세 하다가 지들 땅값 올리고 결국 더 부자되었다는 소리 듣고... 그러다 거품경제로 일 순간에 쌓은 부가 사그르르 사라지게 되니까 말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꿈이었을때 행복한 것이다. 지금 우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꿈(악몽)이 현실로 되어가는 나라..
 
푸훗...
 
만약 이런 소설(그러니까 한 국가를 악몽속에 놓이게 하는 상상이 들어있는)이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쓰여진다면.. 일본이 지진으로 무너지는 것과는 다르게, 전쟁(제 2의 6.25라 부를 수 있는)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그릴 수 있을 듯 싶다. 전쟁의 악몽. 그런데...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우리 역사의 침탈 또한 하나의 악몽이며, 이는 현실이다. 일본의 말도 안되는 독도를 통한 영유권 침탈(분쟁은 일본측 말...)도 하나의 현실이니 실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악몽이 현실로 바꿔지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80년대 90년대에 이런 것들을 악몽으로나마 접해봤다면...지금과는 양상이 다르지 않을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물론 악몽만 꾼다면 한국의 미래상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바판도 당연히 나올 수 있겠지만(부작용도 나올 듯 싶다...), 아무튼 악몽을 꾸어보지도 못하고 바로 현실로 만나게되니 왠지 대책없이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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